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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나는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이 어려웠다. 어렸을 적 우리 집에는 그 당시의 내 키만한 전축(?)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종합 오디오 세트 같은 것이었는데, LP와 CD, 테이프 그리고 라디오까지 들을 수 있는 우리 집에서는 꽤나 값이 나가는 물건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다수의 클래식 CD와 소수의 팝송 CD를 가지고 계셨는데, 엄마가 클래식을 틀면 나는 항상 팝송 CD 를 틀어달라고 졸랐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클래식은 어렵기도 하지만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 음악이었다.

중학교 음악 시간에 음악 감상 평가라는 것이 있었다. 오래 돼서 정확한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정해진 음악을 듣고 그 음악이 누가 작곡한 곡의 몇 악장 몇 절이었는지를 맞추는, 이를테면 음악 듣기 평가 같은 것이었다.

여러 명의 작곡가와 여러 시대의 음악을 다뤘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를 할 때였다. 일단 각 동물이 몇 악장인지를 알아야 했고, 어떤 악기를 메인으로 연주했는지와 실제 음악을 들었을 때 그게 코끼리인지 사자인지 백조인지까지 알아야 했다.

다행히 엄마의 CD 컬렉션에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가 있었고, 그 CD를 주구장창 들으며 달달 외웠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성적에 반영 되었는지 아닌지는 가물가물한데,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 떠오르는 걸 보니 조금은 성적에 반영이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안 그래도 중학교 시절, 한창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소녀는 서태지와 아이들, H.O.T. 나 DEUX 같은 '오빠'들에게 푹 빠져 있던 시절이라 '클래식' 하면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것이라는 공식이 더더욱 확고하게 머릿속에 박혔다. 게다가 이렇게 듣기 평가까지 더해지니 원래부터 클래식과 친하지 않았던 나는, 클래식과 점점 더 멀어져 갔다.

다시 클래식이 궁금해지다 

20대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클래식을 조금씩 접할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어쩌다 클래식 음악 연주회에 가게 되면 어느 부분에서 박수를 쳐야 하는지가 늘 헷갈렸다. 자칫 박수를 엄한 데서 치게 되면 급격하게 '싸해지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클래식 공연에서는 박수 치는 에티켓도 매우 중요하다고 들어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적당한 눈치가 필요했다. 주변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한 후에야 나도 박수를 쳤다.
 
드뷔시의 달빛 악보 중 일부
 드뷔시의 달빛 악보 중 일부
ⓒ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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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이 넘어가기 시작하자 클래식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특히 아이를 임신하면서 태교에 좋다고 하길래 '태교에 좋은 클래식 모음' 같은 것을 찾아 들었다. 아주 가끔 아는 선율이 나오면 반갑기도 했는데 어느 작곡가의 몇 악장 몇 절이 아니라, "OO 광고에 나왔던 음악" 등으로 기억하는 정도였다.

클래식에 대한 관심이 조금 생기기는 했으나, 특별히 각 잡고 앉아서 클래식 공부를 할 것도 아니니, 그냥 기회가 되면 클래식 음악을 듣고 "아, 이 곡 좋네"라고 하는 수준이었다.

클래식이 두뇌 발달에 좋다 하여 태교할 때도 많이 들었지만, 신생아용 장난감 및 육아 용품들 중에서도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것들이 제법 많았다. 그 몇 가지 테마 음악 중에서 아이도 나도 유독 좋아하는 음악이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음악이 드뷔시의 달빛(Debussy, Claire de Lune)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라디오에서 그 선율이 흘러나오는 것을 듣기 전까지는 나와 아이가 좋아하던 그 음악이 클래식일 것이라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렇게 30대가 다 지나가도록 클래식을 듣고도 클래식인지 모를 정도의 '클알못'으로 살았다.

클알못이지만 피아노는 배우고 싶어

그러다 지난 여름, '초보자를 위한 클래식 음악 산책'이라는 모임에 들어가게 되었다. 코로나 창궐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행이 되어서, 타 지역에서 모집하는 것이었지만 다행히 나도 신청을 할 수가 있었다.

모임의 장이 음악을 정해서 알려주고, 그 음악에 얽힌 이야기도 들려주는 그런 모임이었다. 단톡방에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회 이야기라던지, 이름 모를 다른 유명한 사람들의 공연 소식도 접할 수 있었다.

또 이름도 어려운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연주 동영상도 자주 올라왔다. 여전히 나는 클알못이었지만 전에는 듣지 않았던 (혹은 들어도 몰랐던) 작곡가들과 연주자들의 음악을 접하며 클래식의 매력에 발가락 하나 정도 걸치게 되었다.

그 모임에는 모임 성격에 걸맞게 악기를 연주하는 분들이 꽤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피아노를 치는 분들이 제법 많았다. 간혹 본인이 친 피아노 연주를 동영상으로 찍어 올려 주기도 했는데, 아이를 등원 시키고 피아노 학원에 들려서 연습했다는 분부터, 퇴근하고 잠시 연습해 보았다고 하는 분들까지, 피아노를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취미 생활로 즐기는 어른들이 꽤 많았다.

그들이 연주 영상을 올릴 때마다 나는 "와아! 너무 멋져요!"와 같은 리액션을 남기면서도 속으로는 조금 부러웠나보다. 클래식은 알지 못하지만 피아노는 치고 싶어서 그런 영상이 올라올 때면 그 당시 집에 있던 저렴한 건반 앞에 앉아 이것 저것 뚱땅거려 보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피아노를 다시 시작한 지 이제 두 달이 되었다. 소위 말하는 정통 클래식이라고 할만한 곡은 아직 시도해 보지 못하고 있지만 간단한 소나티네만으로도 클래식에 발을 들이려는 나에게는 신선한 자극이 되고 있다.

심지어 유튜브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재즈나 팝송보다 클래식을 찾아 듣는 일이 더 잦아졌다. 얼마 전에는 나와 아이가 좋아했던 'Clair de Lune(드뷔시의 달빛)' 악보를 찾아보았다.

세상에, 플랫(내림표)이 두세 개도 아니고 무려 다섯 개나 붙어 있는 고난이도의 곡이었다. 아직은 기껏해야 플랫이나 샵(올림표)이 한 개 붙은 곡들을 치고 있지만, 언젠가는 플랫 다섯 개가 붙은, 나와 아이가 좋아하는 그 곡을 멋지게 연주할 수 있는 날이 오려나?

앞서 말한 클래식 초보자 모임이 끝나고 반년 정도 지나서 피아노를 배울 기회가 왔을 때 덥석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알게 모르게 그때 피아노 연주 영상을 올려주던 이들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온 우주의 기운이 모여 어릴 때부터 클래식을 어려워하던 클알못인 내가 플랫이 다섯개나 붙은 클래식 피아노곡을 연주할 꿈까지 꾸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더 이상 모임에 참여하고 있지 않지만 가끔 혼자 연습을 하다가 유독 잘 되는 날에는 나도 그들을 생각하며 연주 동영상을 찍어 두기도 한다. 아직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개인소장용 영상들이지만, 언젠가는 나도 "취미로 피아노를 치고 있어요"라며 당당하게 나의 연주 영상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날이 오기를 바라며. 오늘도 시간을 내어 피아노 앞에 앉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저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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