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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빨간 머리 앤>
 넷플릭스 <빨간 머리 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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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드라마 <빨간 머리 앤>을 정주행하였다. 이 드라마는 캐나다 CBC에서 2017년에 시작한 작품이다. 원작은 앤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현대에 와서 드라마로 각색되면서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녹아들었다.

1800년대 후반 캐나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과 인종에 대한 차별이 당연했던 당시의 가치관에 맞서 싸우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또한, 원작에는 없던 성 소수자 캐릭터를 등장시키면서 이들의 삶에 대한 편견과 그에 맞서는 이야기까지 포괄하고 있다.

앤은 모든 사회적 소수자들의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안아 내면서 편견 없는 시선으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한다. 물론 원작과는 달라진 이야기에, 지나친 정치적 올바름에 반발하는 시청자들도 있다.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 급진적인 부분도 분명 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이 기존의 가치관으로 일관하던 모습이 다른 이들과 부딪힘과 소통을 통해 변화해가는 과정이 주는 힘은 꽤 크다.

내가 이 드라마에서 주목해서 본 지점은 '가족'이었다. 앤과 함께하면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앤의 '가족' 매릴라와 매튜가 있다. 매릴라와 매튜는 남매 사이로 부모를 잃은 앤을 입양하여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배우면서 가족이 되어간다. 이들이 이룬 가족은 일반적인 가족의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기존에 매릴라와 매튜가 이룬 신뢰와 앤의 노력으로 이 가족을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 들여가는 모습을 그려낸다. 매튜는 어린 시절 마음을 나누던 여성과 재회하고 마음을 재확인하지만, 그와의 결합보다는 앤과 매릴라와 함께하는 삶을 택한다.

길버트는 병든 아버지를 잃고 증기선의 노동자가 되어 세계를 떠돈다. 함께 일하던 흑인 세바스찬과 친구가 되면서 그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의사가 꿈인 길버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농장을 관리할 수 없다. 자신 대신 세바스찬이 농장을 관리하기로 하고 공동체를 꾸린 것이다.

의사가 빨리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가득했던 길버트는 공부에 몰두하고 농장 일이 처음인 세바스찬은 일이 손에 익지 않아 너무나 힘들다. 몇 차례의 다툼 끝에 길버트는 가족인 세바스찬이 적응하고 일을 해 나갈 수 있도록 속도를 늦추기로 한다. 농장에 정착한 세바스찬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데 이들은 모두 서로를 '가족'으로 호명한다.

가족은 무엇일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주요 주인공인 앤과 길버트의 가족은 통상의 가족으로 불리는 혈연 중심의 이성애 가족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를 가족으로 호명하고 신뢰와 애정으로 함께한다. 가족은 무엇일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한국 사회는 모든 정책의 단위를 혈연 중심 이성애 가족으로 상정한다.

이성애 결혼을 기반으로 파생되는 혈연 관계만이 가족으로 인정되며 독점적 지위를 갖는다. 무심히 스쳐 갔을 수 있지만 가족은 의외로 많은 권한을 가진다.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 보호자로서 수술동의서 등에 서명하거나 면회를 할 수 있는 권한은 가족만이 가진다. 사망자가 유산 상속에 대한 서류를 작성해 남겼다 해도 직계존비속과 배우자는 유류분 청구권을 갖는다.

국민연금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평생을 함께해 왔다 하더라도 법이 인정하지 않는 가족은 연금도 재산도 한 푼 받지 못한다. 건강보험 부양자와 피부양자 관계를 성립하기 위해서는 혈연이거나 이성애 결혼으로 엮이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아파트 청약에서 부양가족은 혈연 중심의 이성애 가족만을 의미한다. 60점이 넘어야 겨우 당첨권에 드는 현재 상황에서 1인 가구이거나 다른 형태의 가족은 애초에 아파트 청약 당첨은 꿈도 꿀 수 없다.

부양가족 소득공제나 경조 휴가 등에서도 당연히 소외된다. 사회가 표준으로 만들어 놓은 가족 형태를 벗어나는 순간 많은 권리를 박탈당하고 어쩌면 위험하기까지 한 상황이 펼쳐진다.

하지만 이미 많은 이들이 기존의 '정상가족'을 벗어나 살아가고 있다. 2020년 여성가족부가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혼인, 혈연 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는데 약 70%가 동의하고 있다. 이성애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은 30% 미만으로 이미 비주류가 되었다.

이런 가족 정책은 노동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혈연 중심의 이성애 가족이 사회의 표준이어야만 현재와 같은 장시간 노동체제가 존속할 수 있다. 남성을 가장으로 여성을 무급 돌봄 노동자로 상정한 가족 기준에서 자본은 매우 편하게 노동자에게 장시간 노동을 요구할 수 있다. 모범 노동자는 자신의 돌봄뿐 아니라 아이와 노인, 장애인 모두의 돌봄을 다른 이에게 맡기고 임금 노동에 올인하는 돌봄의 무임승차자들이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순간

자본의 요구에 24시간 대기해야 하는 노동자는 누군가의 돌봄 노동에 기생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실제 그렇게 살든 아니든 이러한 성별 분업의 가치관이 여전히 일반적인 기준이고, 가족 정책이 혈연 중심의 이성애 가족을 기반으로 짜여져 있다면 이득을 보는 것은 자본이다.

임금 노동자의 노동은 무급 돌봄 노동자의 노동까지 포함한 형태이지만 돌봄 노동에 대한 대가는 지불하지 않는다. 또한, 무급 돌봄 노동이 원래의 자리인 여성이 임금 노동에 나설 때 낮은 임금과 불안정 고용을 제시해도 괜찮다 여겨진다. 국가 역시 돌봄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슬그머니 여성과 가족에게 떠밀어 놓는다.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돌봄의 부재를 메꾼 것은 여성과 가족이었다. 이 때문에 어린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여성들은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후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혈연 중심의 이성애 가족만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구조 안에서 여성들은 차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순간 모두가 돌봄자이고 모두가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 모든 삶과 정책의 단위를 개인으로 재편할 수 있고 성별 분업은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된다. 또한,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인정이 사회적 가치로 자리매김될 수 있다.

이는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막는 중요한 방패가 될 것이다. 가족 구성권을 개인의 선택에 맡기고 이를 인정하고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는 일은 단순한 가족 구성권의 차원이 아니다.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을 없애고,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삭제하며, 개개인의 독립적 삶을 제도적으로 존중하는 중요한 일이다. 예전에 한 연구자와 가족 구성권에 관한 토론을 한 일이 있다. 내가 선택한 이를 가족으로 인정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더니 그는 "어떻게 이용당할 줄 알고 아무나와 가족을 구성하느냐"고 반문했다. 같은 질문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묻는다.

"어떻게 이용당할 줄 알고 결혼을 하십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가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3,4월호 '女性여성女聲' 꼭지에도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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