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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해 집에 들어서니 어머니는 목하 TV 시청 중이시다. 예의 그 이찬원이다. 일 마치고 돌아오는 장남은 안중에도 없다. 그저 힐끗 눈 한 번 돌려 '왔냐', 그게 다다. 화면에 집중하는 어머니 표정은 마냥 진지하고 행복하다. 이 광경, 보기 시작한 지 꽤 오래지만 볼 때마다 신기하다. 저 지고지순한 팬심이라니, 난 누굴 저리도 좋아했던 적이 있었던가.

아들이 저녁거리를 찾는데도 어머니는 요지부동이시다.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싱크대 한 편에 뚝배기가 눈에 든다. 엊그제 끓인 된장찌개다. 상하지 않았을까 코를 들이대려다가 이내 포기하고 만다. 만성비염환자가 무슨 냄새를 맡겠다고. 이럴 땐 어머니께 도움을 청하는 게 마땅하다. 악당과 맞닥뜨린 뉴요커가 슈퍼맨을 부르듯.

거실에 계신 어머니께 된장 뚝배기를 가져가 감정을 의뢰한다. 당신은 전문가 포스를 작렬하며 스윽 냄새를 맡아보신다. 그리고는 지긋이 두 눈을 감으신 채 본격 감정에 들어가시더니 오래지 않아 단호하게 그 결과를 발표하신다.

"먹어도 된다."

정말이냐 되물으며 미심쩍어하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못을 쾅 박는다.

"내 다른 건 몰라도 코 하나는 살아있다."
 
며칠 지난 거라도 문제 없다. 어머니의 AI 후각은 상했는지 아닌지를 불과 2~3초만에 판별해 낸다.
▲ 어머니의 된장찌개 며칠 지난 거라도 문제 없다. 어머니의 AI 후각은 상했는지 아닌지를 불과 2~3초만에 판별해 낸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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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어머니의 오감은 유명했다. 시각, 청각, 후각 등 모든 감각기관이 남달랐다. 당신 말씀대로 그중에서도 후각은 따를 자가 없었다. 특히 술이나 담배 냄새에 특화되어 있으셨다. 아무도 그걸 피해 갈 수 없었다. 경찰에서 스카우트해 가면 측정기 없이도 혈중 알코올 농도며 마신 술 이름까지 맞추실 것 같다고 내 사춘기적 친구들은 수군거렸다. 실제로 당시 어머니 별명은 냄새 맡는 '소머즈'였다.

다른 감각이야 나이 들며 퇴화했어도 후각만큼은 아직 자신한다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과연 그 말씀은 틀리지 않았다. 찌개는 멀쩡했다. 배 불리 한 끼 잘 때웠다. 배 두드리며 게으르게 앉았다가 문득 옛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맹인이 앉은뱅이를 업고 다니는 협업 구걸로 공전의 대박을 쳤다는 그 걸인계의 오랜 전설 말이다. 그러니까 그 둘처럼 지금 우리 모자(母子)도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공존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 거다.

오, 만약 그렇다면 그거야말로 대박사건이다. 아니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정말 장족의 발전을 한 거다. 누차 얘기했지만 어머니와 나는 도저히 함께 지낼 수 없는 초강성 캐릭터들이다. 

우린 극성 자체가 다르다. 물과 기름 이상이다. 그런 둘이 한 지붕 아래 함께 산 게 어느덧 4년을 넘었다. 처음 걱정과 달리 당초의 걱정은 많이 희석됐고, 이젠 은근슬쩍 콤비네이션까지 운운하는 단계에 이른 거다. 호들갑 떨만하지 않은가.

적절한 포기와 정확한 의사표명

물론 여기까지 오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싸움까지는 아닐지라도 우린 수시로 언성을 높였고, 문을 쾅쾅 여닫으며 다신 안 볼 것처럼 돌아설 때도 있었다. 그 이유야 다 달랐지만 대개는 어머니가 고집을 부리시고 내가 또 거기에 어깃장을 놔서였다. 내가 그냥 못 본 척 참고 넘어가면, 그냥 어머니가 하자는 대로 그러는 시늉만 했어도 넘어갈 것을 내 까칠한 성질머리는 늘 그걸 견디질 못했다.

2년쯤 지났을 무렵부턴 그런 국지전마저 많이 줄었다. 어머니도 공연한 걸 고집하지 않으시고 나도 웬만한 건 그냥 덮고 넘어가는 버릇이 생기기 시작했다. 언성 높이고 잔소리해봐야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고 성질부린 당사자만 피곤하단 걸 거의 동시에 깨달은 것 같았다. 지금은 유사상황이 발생하면 일단 나는 자리를 피한다. 어머니도 아들에게 아예 참견을 끊으셨다. 가끔 내가 말 듣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소리로 뒤에 대고 몇 마디 구시렁하시는 게 다다.

우리의 평화는 그렇게 정착되기 시작해 지금까지 잘 유지되고 있다. 비결? 글쎄, 굳이 하나를 들자면 '포기'가 아닐까. 상대방에 대한 '불필요한' 혹은 '이기적인' 기대나 희망을 아예 거두는 것이다. 어머닌 80년 넘게, 나는 60년 가까이 이렇게 살았다. 누가 뭐라 한다고 이제껏의 태도와 생활양식을 바꾼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그저 그러려니 하는 거다. 그게 영 못마땅하고 눈에 거슬릴지라도 그건 그만의 것이려니 해야 한다. 그게 '희망적인 포기'다.

두 번째는 '소통', 아니 그까지는 아니더라도 제 의사표시는 늘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가령 상대가 무언가를 강요할 때 무턱대고 반항하고 거부할 게 아니라 그게 왜 싫은지, 대안은 있는지를 조곤조곤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가령 어머니께서 머리나 수염 좀 깎으라 성화를 내시면 '스타일 테스트 중', '이게 더 잘 아울린다는 사람이 많으니', '계절 바뀌면 더 산뜻하게'라는 식으로 해명하거나 약속하면 어머니는 마지못해 물러나곤 하셨다.

그런 시의적절한 포기와 정확한 의사소통으로 우린 우리만의 공존의 질서를 잡아가면서 이제껏 잘 살고 있다. 그리 사니 세상 평화롭고 행복하다. 이래서 가정이 최고라 하는구나, 그걸 나이 육십에야 새삼 깨닫기도 했다. 참 어렵게, 오랜 시간을 돌아와서야 깨닫게 된 것이니만큼 그냥 쉬 잃기 싫었다. 오래도록, 우리 모자 살아있는 동안이라도 이 행복한 나날이 유지됐으면 싶다. 더듬어 들어가 보니 그 해답도 두 걸인의 우화에 담겨 있었다.

그들의 성공신화는 한동안 계속됐다. 정말 힘겨운 처지의 둘이 그렇게 우애 좋게 구걸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감동했다. 둘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동냥이 쏟아져 들어왔다. 처음 약속대로 둘은 모든 걸 똑같이 나누어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앉은뱅이는 불현듯 자신이 손해 보는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자기가 길을 일러주지 않으면 맹인 혼자 몫 좋은 곳을 찾아갈 리 만무했고, 저 멀리서 오는 단속 포졸을 피할 재간도 없었을 터였다.

생각이 그에 미치자 공연히 부아가 치밀고 심술이 났다. 앉은뱅이는 그때부터 기름지고 맛난 음식은 모두 제가 차지하고 맹인에게는 상하고 거친 음식만 주었다. 날이 갈수록 앉은뱅이는 살이 오르고 비대해졌다. 반면 맹인의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기력은 날마다 떨어져 갔다. 둘이 어느 마을의 논둑길을 지날 때였다. 앉은뱅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맹인의 무릎이 푹 꺾이며 논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안타깝게도 그 둘은 그 자리에서 절명하고 말았다.

초심을 잃지 않기를

이야기는 인간의 그릇된 욕망, 헛된 이기심이 모든 걸 망친다는 교훈을 일깨워 준다. 그에 비유하자면 어머니는 우화 속 맹인이고 나는 앉은뱅이다. 나는 어머니보다 훨씬 유리한 생존조건을 가졌으니 그렇다. 그런데 그걸 악용해 내가 더 많은 것을 챙기고 좋은 걸 독차지하려다가는 비극으로 빠지게 마련이다. 그 반대로 내가 더 많이 포기하고 희생하면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우화는 일러주고 있다.

솔직히 이 나이에 그 정도를 모를까. 그거야 초등학교 저학년생도 훤히 아는 상식인데. 정작 문제는 그렇게 잘 알면서도 그만큼 실천하지 못한다는 거다. 그나마 이번에 얻은 깨달음은 내가 실생활을 통해 얻은 살아있는 지식이다. 책에서 얻은 박제된 지식보다는 조금 더 강하게 오래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 어머니와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조금 더 길고 평화롭게 공존할 필요가 있다. 너무 오랫동안 그걸 모르고 살아온 게 억울해서라도.

태그:#앉은뱅이와 맹인, #공존, #평화, #의사표시,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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