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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9일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텔레비전 앞에서 조용히 출구조사 결과를 기다렸다. 카운트다운 시간이 지나고 나온 출구조사 결과는 박빙 그 자체. 하지만 더 중요했던 것은 3위로 예상되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득표율이었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심상정 후보의 지지율은 몇 분이 더 지나고서야 간단히 언급하는 수준에 그쳤다. 

심상정 후보의 출구조사 결과는 2%였다. 생각보다 더 충격적인 결과. 적어도 3%는 나와줄 것이라 생각했던 심상정 후보 지지자인 나로서는 실망을 넘어 불안감까지 느껴졌다. 그 마음은 내일 출근해야 하는 나의 수면까지 방해해서 결국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선거 이후 몰려든 12억의 후원금
 
10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선대위 해단식에서 심상정 후보가 인사말을 마친 후 소속 의원을 비롯한 당직자들의 격려를 받고 있다.
 10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선대위 해단식에서 심상정 후보가 인사말을 마친 후 소속 의원을 비롯한 당직자들의 격려를 받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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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후보는 일찍이 대선 패배를 선언했다. "국민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저조한 성적표가 솔직히 아쉽습니다만, 저와 정의당에 대한 민심의 평가인만큼 겸허하게 받들겠습니다"라는 그의 발언은 진보정당을 지지해 온 이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일까. 심상정 후보가 아깝다면서 개표 과정 내내 정의당에 후원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규모가 무려 12억 원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낯선 게 아니다. 5년 전 대선에서도 심상정은 비록 진보정당 역사상 최대 대통령 선거 득표자가 됐지만, 주요후보 5명 중에서는 꼴찌였다. 그때도 사람들의 십시일반은 이어졌다. 19대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가 모은 후원금은 14억9000만 원가량으로 후보 중 1위였다. 또한, 진보적인 대안으로서 나온 정치인 심상정이 남긴 의미가 무엇인지 되짚어보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됐다. 제목은 '꼴찌 심상정이 남긴 것'(SBS).

그때나 지금이나 더 진보적인 사회를 위한 사람들의 마음은 심상정과 정의당에게 열려 있었고, 이들은 후원으로, 진심으로 응원했다. 이때 후원금은 열악한 상황에 놓인 진보정치 세력에게 있어 일종의 희망이었다. 다시 일어서서 뛸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증표였다.

귀중한 증표는 표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후원금 행렬이 투표 행렬로는 이어지지 못했다는 데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의당과 심상정은 후원금으로 버틸 수 있었으나, 표를 받지 못해 정치 권력을 획득하지 못했고 세상을 더 진보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어째서인가? 가장 큰 원인으로는 한국의 고질적인 양당체제가 꼽힌다. 민주당계 정당과 보수정당은 지금까지 선거로 번갈아 집권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특징이 가장 심했다. '초박빙'이라는 수식어를 매일 볼 수 있었다. 온갖 네거티브와 부패 의혹이 거대 양당 후보들에게 따라 붙었다. '비호감 대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권자들은 정치에 환멸감을 느겼다.

그럼에도 이재명과 윤석열은 치열하게 경쟁했고, 민심도 이 두 후보간의 대결에 점점 빨려들어갔다. 이에 '제3의 선택도 있다'고 외친 후보들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게 됐다. 안철수, 김동연은 각각 윤석열, 이재명과의 단일화를 단행해 제3의 선택지를 줄여 버렸다. 결국 '제3세력' 중 가장 큰 정의당이 남긴 했으나,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층 결집에 당초 3자 대결시 5% 이상 지지율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던 심상정 후보는 2%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제3의 선택으로 고려하게 되는 유권자들이 심상정 후보를 찍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팔을 자르는 심정'으로 심상정 후보가 아니라 이재명 후보를 찍었다. 거대 양당 체제의 악순환이다. 만약 결선투표제 등의 제도가 한국에 있었다면 심상정 후보는 2%보다 더 선전했을 것이라고 예측 가능하다. 그래서 '모 아니면 도'를 선택하게 하는 한국의 정치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힘을 얻는다.

또한, 5년마다 정의당 후보에게 쏟아지는 후원금을 보면서도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지하는 만큼 대표될 수 있는 정치제도로 바꿔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뿐인가
 
10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선대위 해단식에서 심상정 후보(앞줄 왼쪽 네번째)가 소속 의원을 비롯한 당직자들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
 10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선대위 해단식에서 심상정 후보(앞줄 왼쪽 네번째)가 소속 의원을 비롯한 당직자들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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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거대 양당 체제 비판'이 표로 이어지지 못하는 후원금을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심상정을 찍지 않는 이유에는 '최악을 막기 위해서' 이재명을 뽑은 부분도 있지만, '심상정도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왜 심상정은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했을까.

심상정 후보는 19대 대선 기간 성소수자를 위한 1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번 20대 대선에서는 그 1분을 나눠준다는 취지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심상정 후보가 만난 이들은 정말 다양하다. 의료비로 신음하는 사람, 노동자, 여성 등 이번 대선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사람들은 대부분 심상정을 만났다. 

그러나 이것이 국민들에게 정의당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청사진으로 다가가진 못했다. 개별적인 문제에 있어 정의당은 민주당보다 진보적이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정책들을 내놓는다. 또한, 기존 정치권에서 주목하지 않는 사회적 소수자들은 정의당의 문을 자주 두드린다. 그래서 개별 사안에 대해서 진보정당은 약자들과 함께하고 투쟁하며 권리를 쟁취하는데 분명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 사안들을 모아서 하나의 세계, 정의당이 꿈꾸는 사회가 어떤 것인가 하면 '차별없고 평등한 사회'라는 추장적인 명제만 남는다. 구호는 좋다. 그러나 그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는 상상이 잘 안 되곤 한다.

앞으로 정의당이 반성하고 가다듬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이 점 아닐까. 이 거대한 양당 체제를 바꾸기 위해 결선투표제 등의 정치개혁은 필수적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제도가 도입 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결국, 진보정당이 집권해서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싶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더 많이 얻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운동 일각에서 제시되는 '체제 전환'이라는 말을 정의당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삶을 변환시키는 정의당만의 체제. 사람들에게 확신을 줄 수 있는 정의당만의 세상. 이런 것들이 있다면 유권자들도 강력한 양당 체제의 압박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정의당과 진보정당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또 해결해야 할 과제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가 7일 경기도 화성시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앞에서 퇴근하는 노동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기아차 공장 앞으로 달려간 심상정 "하이파이브"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가 7일 경기도 화성시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앞에서 퇴근하는 노동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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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에게 이외의 과제가 있다면 후원금을 표로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이들이 진보정당의 성원이 되도록 조직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일시적인 후원도 진보정당에게 있어 큰 힘이지만, 진보정당의 힘은 기본적으로 조직력에서 나온다. 당원 수가 늘어야 하고, 활동하는 당원도 많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후원금에 감사하는 인사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정의당에서 활동해서 같이 세상을 바꿔보자'는 메시지도 함께 나와야 한다.

다행히도 정의당 이기중 관악구 구의원 페이스북에 따르면, 입당자의 행렬도 늘고 있다고 한다. 일부 언론은 '왜 이재명과 단일화하지 않았나' 하면서 탈당 사례를 보도하지만, 더 진보적인 대안과 함께하기 위해 진보정당에 입당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정의당에게는 귀중한 기회다. 이들이 더 오랫동안 진보정당과 함께 하기위해 좋은 진보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심상정 후보는 대선 패배 선언에서 '정의당은 다시 뛰겠다'라고 했다. 그동안 한국 진보정당 역사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성과도 분명 많았지만, 최근의 상황은 암울하다. 그러나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구체적인 청사진을 그려 제도를 뛰어 넘는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면, 정의당은 이 시련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진보정당이 나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정의당이 부디 더 열심히 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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