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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가치가 퇴색하는 세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급격한 자동화로 인간의 노동 그 자체가 종말을 고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마주했던 노동 현실의 민낯을 보며 현장의 관찰자이자 조율자로서 신입 노무사가 보고 겪고 느낀 것들을 독자와 공유합니다.[기자말]
좋은 직장이란 무엇일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규모 있고 돈 많이 주는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액은 개인의 노동의 가치에 비례할 것이기에, 업계 1위 기업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지낼 수 있다면 적어도 직업적인 차원에서는 그보다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워라밸'로 대표되는 일과 삶의 균형이 중시되는 지금, 사람들은 더 이상 직업적 가치만으로 직장을 선택하지 않는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고용안정성이 떨어지면서 평생직장의 개념이 없어진 요즘, 다수의 사람들은 '성공한 직장인으로서의 나'라는 이상과 가정이나 사회 전체적으로 보아 '행복감을 느끼는 나'를 위한 길을 두고 심각하게 저울질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현대인에게 이직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특히 지나친 집단주의를 배격하고 임금 공정성에 민감한 청년들 사이에서는 노동인권이 중시되는 기업을 향한 이직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밤늦게 이어지는 회식이나 "까라면 까"로 대표되는 소위 '꼰대 문화'가 잔존하는 기업이라면, 설령 그 기업이 사회적 평판이나 급여 수준이 아무리 좋더라도 참지 않고 사직서를 던지는 현상이 목도되고 있다.

2021년 상반기 평균 퇴사율(15.7%)에 비해 입사 1년 미만 직원의 퇴사율(23.2%)이 훨씬 높게 나타난다는 조사(사람인, 2021)는 그중에서도 사회초년생의 이직관리가 사회적 문제로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에 이직을 맞이하는 데 서툰 노동자와 기업 모두를 위하여, 이직 과정에서 부딪히는 각종 문제를 타임라인 형식으로 정리해 본다.

[이직 1개월 전 ~ 2주 전] 이직 사실의 통보

다수의 근로계약서에는 "노동자가 퇴사하고자 할 경우 1개월 전까지 그 사실을 사용자에게 통보하고, 후임자에게 업무를 성실히 인수인계하여야 한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 문구를 두고 1개월보다 짧은 시일을 두고 이직 사실을 통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의가 종종 발생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드시 1개월 전에 통보해야만 유효하다고 볼 수는 없다. 1개월이라는 기간은 민법 제660조 제2항의 '기간의 약정이 없는 고용의 해지통고'에 기반하나, 엄격히 보았을 때 근로계약과 고용계약은 구분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근로기준법 제7조에서는 노동자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강제근로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가 스스로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이상 이를 강제할 방법도 없다.

다만 위 근로계약서 문구의 내용 뒷부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직원의 일방적인 퇴사 통보로 인하여 그가 수행하고 있던 일이 정상적으로 이어질 수 없다면 사용자는 유·무형의 손해를 입을 수 있다. 따라서 통상적인 업무 인수인계를 위한 기간으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2주 전까지 퇴사를 통보하여야 후임자를 지정 또는 채용하여 원활한 인수인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손해의 발생에 대해서는 사용자가 입증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실제 손해배상이 이루어진 경우는 드물다. 지난해 말에도 광고대행 업무 담당자의 무단 퇴사가 매출액 감소로 연결되었다는 증거가 없다는 하급심 판결(서울중앙지법 2021.11.25. 선고, 2020가단5281957 판결)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사용자가 무단퇴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좀 더 직접적인 증거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사용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직서상 이직일을 존중해 주고, 만약 경영상 필요로 인하여 이직 일자 조정이 필요하다면 당사자 간 합의를 해야 한다. 예정된 이직일을 기준으로 발생하게 될 연차 유급휴가 등을 사전에 정산하여, 지급여력이 부족하다면 당사자 간 합의 하에 잔여 연차를 소진한 뒤 이직하도록 합의할 수도 있다.
  
[이직일 2주 전 ~ 이직일 직전] 인수인계 및 자료 정리

이직을 통보한 뒤에는 본격적인 인수인계가 이어져야 한다. 특히 회사 내 주요 프로젝트 등을 수행하고 있는 경우라면, 해당 프로젝트에 소요되었던 수많은 자료 및 그 검토 내역부터 외부 관계사 담당자와의 연결까지 이직자 스스로 적극적으로 연결해 주어야 한다. 만일 귀찮다거나 하는 이유로 이에 소홀할 경우, 거창한 손해배상까지 들먹일 필요 없이 퇴사 이후에도 후임자로부터 계속 연락받게 될 것이다.

사용자 또한 이 기간에 원만한 정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업무이해도 내지 연속성이 있는 직원을 후임자로 지정하여 이직 이후에도 해당 업무가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인수인계에 만전을 기울여야 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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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더불어 회사 차원의 대외비 자료 등을 가지고 나오는 일은 금해야 한다. 가끔 이직자들 가운데 전 직장의 거래처 정보나 아이디어, 제품의 제조방법 등 경영상 비밀을 몰래 들고 나와 암암리에 활용하는 일이 있는데, 특히 계약 당시 '겸업금지 약정' 즉 입사 후에라도 자신이 전 직장에서 알게 된 영업비밀을 영리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특약을 둔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부정경쟁방지법에서는 영업비밀을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라고 규정하며, 법원은 이보다 더 넓은 기준인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의 개념에서 당사자 간 외부로 누출하지 않기로 한 약정이나 고객관계, 영업상 신용유지 등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대법원 2010.3.11. 선고, 2009다82244 판결).

물론 단순히 영업비밀이 적힌 자료를 가지고 퇴사하는 것만으로 어떠한 위반이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그러나 '견물생심'이라고, 당시에는 별 의도 없이 가지고 나온 자료라도 앞으로 어떻게 사용하게 될지는 확신할 수 없는 만큼 내 것이 아닌 자료는 애초에 인수인계하거나 파쇄기에 넣는 것이 매너 있고 책임감 있는 자세다.
  
[이직 당일] 정상 업무 

마음이 싱숭생숭한 마지막 출근일이지만, 이 날 또한 법적으로는 근로계약상의 의무가 적용되는 날이기에 이직자는 여전히 업무에 만전을 기울여야 한다. 마지막 날이라고 슬쩍 일찍 퇴근한다거나 전날 술을 진탕 마시고 와 정상적인 업무수행을 못한다면 떠나는 마지막 모습이 꼴불견으로 남게 된다.

일과가 끝난 뒤에는 사원증, 출입증 등 회사와 관련된 비품을 모두 반납해야 한다. 회사는 사전에 반납하여야 할 물품 등을 문서로 통보하여 당일 혼선이 없도록 조치하고, 이직자는 이에 협조하여 향후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

특히 마지막 날 관리자나 회사 임원 등이 이직자와 간단한 면담을 하는 것도 좋다. 이 자리는 단순히 환송의 의미라기보다는 그간 이직자의 공로를 치하하는 한편 이직사유 등을 허심탄회하게 들을 수 있는 자리로 활용될 수 있다. 이직자로부터 회사에 대한 솔직한 감회를 듣고 향후 개선 사항으로 반영할 수 있다면, 동일 이유로 퇴사하는 상황을 예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권장한다.
  
[이직 후] 법상 부과되는 사용자의 의무

일단 근로계약관계가 끝났다면 회사가 이직하는 노동자에게 추가 의무를 부과하는 일은 거의 없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영업비밀을 부당히 활용하지 않겠다는 등의 사회통념상의 의무가 그 전부다.

다만 이 시점부터 사용자에게 '완벽한 이직'을 위한 여러 의무가 주어진다. 가장 먼저, 마지막 출근일 바로 다음날을 퇴사일로 하여 4대 보험 상실신고를 하고, 근로소득세 정산을 하는 등 행정 절차를 기한에 맞추어해야 한다. 만일 이직자가 곧바로 취업하지 않고 구직급여(실업급여)를 받고자 한다면 이직확인서도 작성하여 공단에 제출해야 한다.

마지막 근로계약기간에 대한 임금 등은 근로기준법 제36조에 따라 퇴사일로부터 14일 이내에 정산해야 함이 원칙이다. 만일 회사가 관리상의 이유 등을 들어 별도의 정산 대신 기존 임금지급일에 맞추어 잔여 임금 및 퇴직금 등을 지급하려 한다면, 그 임금지급일이 퇴사일로부터 14일이 초과되는 경우라면 이직자의 동의를 사전에 구해야 한다.

이로써 근로계약에 따른 여러 의무가 사실상 정산되지만, 이후에도 사용자는 '경력증명서'로 불리는 사용증명서를 이직자의 요구에 따라 발급할 의무를 가지며(근로기준법 제39조), 퇴사 후에도 3년까지 그 근로계약서 및 퇴직 관련 서류 등을 보존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법 제42조).
  
이직자를 바라보는 눈

전통적인 평생고용의 개념이 붕괴된 현실에서, 단 한 번도 이직하지 않는 노동자의 비율은 앞으로 갈수록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만큼 이직은 현실적이고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이고, 더 이상 노사가 서로의 탓으로 돌리며 적대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따라서 이직자는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우지 말고 아름다운 퇴장이 될 수 있도록 퇴사일을 여유 있게 통보하고, 급작스럽게 퇴사하게 될 경우 충분한 인수인계가 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불만을 갖고 퇴사하였더라도 그 불만이 법을 위반하는 등 권리 자체가 침해된 수준이 아닌 한, 단순히 서운하다는 이유만으로 '과장 섞은 후기'를 관련 사이트에 작성하는 것도 피해야 할 일이다.

사용자는 이직 자체가 비용의 손실로 직결되는 만큼, 이직자의 무책임함을 탓하지 말고 '왜 퇴사해야만 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급여 수준과 같이 당장 바꾸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면, 조직문화를 개선하고 내부적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손보는 것만으로도 같은 사유로 이직하는 제2의 이탈자를 방지할 수 있다.

이직자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도 더욱 개선될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도 곳곳에 남아있는 공채 제도 등 순혈주의에 따라 암묵적인 차별을 정당화하거나, 잦은 이직을 한 사람에 대해 '부적응자'라며 낙인을 찍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직업의 자유가 말뿐만이 아닌 현실에서 보장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태그:#노무사, #이직, #퇴사, #퇴직, #30일전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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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조은노무법인 공인노무사, HR컨설턴트(위장도급/산업안전보건 등) // 前 YTN 보도국 영상취재1부 영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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