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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면 어떤 꽃일까!

누구는 장미, 누구는 튤립, 누구는 야생화라! 그들도 아름답긴 해도 최고는 아닐 듯... 최고의 아름다움엔 보는 아름다움도 있어야겠지만 무엇보다 생명의 지향성을 담아야 한다고 보는데, 뭐가 있을까? 1톨의 낟알을 심어 2천개의 꽃을 피워내, 자신의 생명성을 영위하고 나아가 인간과 세상까지 이롭게 한다면 그보다 더한 희생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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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꽃, 벼가 무슨 꽃을 피우겠냐하겠지만, 벼가 출수한 후 이삭을 만들어내면서 그 속을 쭉쩡이가 안 되게끔 수정이 이룰 때 이삭은 살며시 그 입술을 벌리며 세상 가장 황홀한 꽃을 내민다. 정오의 태양이 높게 떠올라 가장 빛나는 햇살이 쏟아질 때 모든 벼꽃이 일거에 꽃을 피워내는데 그 찬란하게 빛나는 꽃밭이란! 그래서 농부는 세상 가장 아름다운 꽃을 키우는 사람! 

우리의 선조들을 왜 벼를 심어 쌀을 주업으로 삼았을까?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은 간단하다. 바로 살아있는 동식물 중 가장 많은 사람이 먹고 살 수 있기 것이 쌀이기 때문이다. 벼에게 최상의 생육조건을 설정한 후 나락 한 톨을 파종하면, 그 한 톨은 자라나 약 20여 포기로 나눠진다. 20여 포기로 자란 나락이 달린 개수를 세어보면, 많은 줄기에선 150여립, 적은 줄기에선 약 50여립 정도 낟알을 영글어 놓은데, 모두 합해 약 2500여립의 2세를 얻을 수 있다.

중세 유럽 밀 1알을 뿌리면 6~7알 정도를 수확할 수 있었다고. 이에 비해 쌀은 1알을 뿌리면 평균 25~30알 정도를 수확했다고 한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볍씨 1말을 뿌려 60말을 거두면 살기 좋은 곳이고, 40~50말을 거두면 다음, 30말을 거두면 살기 힘든 곳이라 했다. 

학자들 또한 벼를 심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쌀을 재배하여 100명이 먹고 살 수 있는 넓이의 땅에 밀을 심으면 75명이 먹고 살 수 있고, 목초지를 만들어 고기를 먹는다면 9명이 먹고 살 수 있다고 한다. 일부 종교에서 고기를 금한 것 또한 종교 발생과 관련하여 인구밀도가 적정선을 넘어서 육식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인류학자도 있다. 또 밀에는 필수 아미노산이 부족하여 고기를 곁들여 먹어야 하지만, 쌀은 기본적인 영양소가 고루 갖추어져 있어 약간의 영양소만 보충하면 될 뿐이었다고 한다.

이로 보아 쌀은 단순한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필히 벼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며, 쌀을 먹는 것이야 말로 국가안보와 연결되는 식량주권을 지키는 일임이 분명한 듯 보인다.

더불어 벼의 높은 산소방출 효과로 인해 전국의 곡창지대에서 뿜어내는 산소는 우리가 맑게 숨을 쉴 수 있으며, 국가에서 책정한 벼의 경제적 가치는 9조원인데 반해 이런 부대 가치까지 포함하면 몇 배는 더 상회할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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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청산도의 특징 중 하나는 청산도에서만 발견되는 구들장 다랑논이다. 구들장은 한민족 고유의 난방문화로 아궁이에 불을 때어 불기운이 방바닥 밑으로 퍼지도록 하는 난방장치로, 구들장은 불길과 연기가 통해 나가는 길인 방고래 위에 덮어 바닥을 만드는 얇고 널찍한 돌을 말한다. 

구들장논은 온돌방의 구들장처럼 돌로 구들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쌓아 논을 만든다. 그렇게 하면 구들장 위의 흙으로 인해 논의 물이 잘 빠지지 않으며, 필요 이상의 물은 아래쪽 논과 돌 틈으로 흘러내린다. 돌이 많아 물이 잘 고이지 않는 섬의 특성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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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장 논은 2013년 국가중요농업유산 1호로 선정되며 보존 가치를 인정받았다. 2014년 4월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농업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계중요농업유산은 근현대 농업이 지나치게 생산성에 편중돼 세계 각지에서 산림 파괴와 수질 오염 등 환경문제를 일으키고, 지역의 고유문화와 경관, 생물의 다양성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창설됐다. 

농촌지역의 인구 감소, 고령화,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인해 수천 년에 걸쳐 유지되던 농촌의 전통 경관 문화 기술이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농업과 농촌의 자원을 보호하고 계승하기 위한 제도가 한국의 국가농어업유산과 FAO의 세계중요농업유산이다. 산업화의 침범을 이겨내고 현재까지 살아남은 농업유산들은 환경 보호라는 관점에서도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4월 1일부터 5월 8일까지 열리는 청산도슬로걷기축제를 주관하고 있는 서길수 관광과장은 "이 구들장논은 나이가 700여 살 정도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며 "논이 귀한 섬 지방, 산비탈 따비밭을 구들장을 채웠었는데 가파른 경사면은 자갈밭이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 밭을 논으로 바꾸는 데는 한두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해 온 동네가 땀방울을 모아야만이 가능했다"고 전했다.

서 과장은 "논바닥에 평평한 구들장을 깔고, 그 위에 다시 흙을 놓아 물이 새어나지 않게 만들었다. 한옥의 방고래 위에 구들장을 놓던 기술을 논바닥에 응용했던 지혜, 논에 물을 저장할 기막힌 방법을 온돌방의 구들장에서 생각해 낸 것이다. 그러한 노고까지 더해지면 청산도 구들장에서 생산되는 쌀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쌀이지 않겠냐"고.

쌀 한 톨이 생명이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한 톨이라도 더 내어 부모 봉하고, 쌀밥 고봉으로 담아 배불리 먹여 딸 시집보내려는 농심이 그 속에 있다. 청산도 농민들의 단합 정신이 돌담 사이사이에 이끼로 서렸다.

청산도에서 만난 할아버지. "밥 자체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여! 그 밥을 통하여 하늘의 얼을 호흡하고 이웃과 자연과 서로서로 소통하는 것이제. 밥을 먹을 때 기도하는 것도 그 이유여." 

농부가 짓는 쌀을 일반인이 산다는 것은, 이 땅에 한 농부를 심는다는 것이요 한 농부를 농촌사회에 심고 키운다는 의미로써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의 농부가 모여 농촌사회가 바로 선다면 농업 회생의 길을 열어갈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완도, #청산도, #구들장논,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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