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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반려인의 세계'는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룹니다.[편집자말]
"아이도 키우시고 강아지도 키우시잖아요. 아이를 키우는 마음과 강아지를 대하는 마음이 어떻게 달라요?"

얼마 전 반려견 3마리와 함께 사는 한 지인이 내게 이렇게 물어왔다. 아이를 두지 않은 그에게 강아지들은 자식과 같은 존재였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다, 지난 겨울의 일을 떠올렸다. 

궁금해하기 vs 잔소리 하기

유난히 건조했던 지난 겨울. 우리 가족 세 명(나, 남편, 아들)은 종종 입술이 터지고 코피가 나곤 했다. 반려견 은이의 코도 촉촉함을 잃어갔다. 심각했던 실내 건조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거실 바닥에 놓는 커다란 가습기를 구입했다. 사무실에나 있을 법한 큰 크기의 가습기라 거실에는 영 어울리지 않았지만, 건강을 위한 선택이었다.

가습기를 담은 커다란 택배 상자가 도착했을 때 은이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택배 상자에 코를 대고 킁킁댔다. 설치가 완료되고 마침내 가습기가 물을 뿜어내기 시작했을 때에도 은이는 가습기 이곳저곳의 냄새를 맡으며 탐색을 즐겼다.

그러다 은이의 코가 가습기 가장 아래에 있는 전원 버튼을 건드렸다. 터치식 버튼이었는데 은이의 코를 인식하자 곧바로 소리가 나면서 가습기가 꺼졌다. 은이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이번에는 앞발로 버튼을 건드렸다. 은이의 따뜻한 발바닥 패드에도 가습기는 반응했다. 소리가 나면서 불이 들어왔고 가습기가 켜졌다.

은이는 놀라워하며 한걸음 물러나 가습기를 유심히 바라봤다. 그러더니 다시 다가가 냄새 맡고 발로 건드리고 반복했다. 그때마다 가습기는 은이의 체온에 반응했다. 나는 새로운 물건에 호기심을 갖는 은이의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동영상 촬영을 했고, 반려인인 지인들에게 동영상을 보내며 "우리 은이 정말 똑똑하고 귀엽지? 인과관계를 파악하려나 봐"라며 자랑을 해댔다.

그런데, 만일 중학생이 된 나의 사람 아들이 은이와 같은 행동을 했다면 어땠을까? 새로 온 가습기가 신기하다며 전원을 껐다 켰다를 반복하고 한참을 지켜보고 있었더라면, 나는 그 모습을 귀엽게 바라봐줄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니었을 것 같다. 가습기를 관찰하느라 시간을 흘려보내는 아들을 '한심하다' 여겼을 것이고, 잔소리를 해댔을 것이다. "대체 뭐 하는 거니? 가서 숙제나 해." 아마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체온에 반응하는 가습기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은이
 자신의 체온에 반응하는 가습기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은이
ⓒ 송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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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판단 없는 사랑 vs 판단하고 평가하는 사랑

나는 바로 이것이 아이와 강아지를 대하는 마음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아이도 강아지도 몹시 사랑한다. 아들도, 반려견 은이도 내겐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다.

하지만, 사람 아들을 향한 사랑에는 어떤 바람이나 가치 판단이 늘 개입되어 있다. 빈둥거리는 시간을 좀 줄였으면 좋겠고, 공부도 열심히 했으면 좋겠고,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를 돌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는 마음을 늘 품고 있다.

아이에 대한 바람들은 사랑하는 마음과 더해져 더 간절해진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이에 부합하지 않는 아이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잔소리로 표현된다. 가습기 앞에서 아이의 행동들은 나의 바람에 맞지 않았을 테고 나는 분명 날선 말들을 내뱉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려견 은이를 향한 내 마음엔 어떤 기대나 평가가 포함되지 않는다. 빈둥거리는 시간을 줄였으면 하는 마음도,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하는 바람도, 어떤 강아지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없다.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 고마울 뿐이다. 때문에 은이가 하는 행동 모두가 신기하고 경이롭게 느껴진다.

개켜놓은 빨래를 은이가 헤쳐 놓고 그 위에 앉아 있을 때에는 "아이구, 우리집 말썽꾸러기" 하고 웃음이 나지만, 빨래를 아이가 치우지 않았을 때에는 "개켜놓은 것도 안 가져가니?"라고 잔소리가 나오는 것 역시 이런 마음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나는 너를 잘 모른다는 자세
 

그렇다면, 나는 왜 사랑하는 두 존재에 대해 이토록 다른 태도를 갖게 된 걸까. 왜 아이에게는 무언가를 늘 기대하고 평가하고 판단하면서 은이의 행동은 무엇이든 호기심을 갖고 들여다볼 수 있는 걸까. 나는 이것이 상대방에 대해 내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정도와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부모들은 사람 자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 모든 성장 과정을 함께 한 데다 어딘지 모르게 나와 닮은 아이에 대해 부모들은 내가 마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때문에 종종 "엄마 아빠가 널 모르니? 우리 말대로 하면 절대 후회 안 해"라는 말이 튀어 나온다. 때로는 아이와 스스로를 동일시 하면서 좌절된 자신의 꿈을 아이에게 바라고, 아이를 통해 나 자신을 높이려는 마음을 품기도 한다.

이런 마음들은 아이가 '내가 바라는 사람'으로 아이가 자랐으면 하는 기대나 판단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는 잔소리나 비난의 방식으로 표현된다. 아이 입장에서는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는 것에 불과하지만, 부모는 이를 사랑이라 굳게 믿는다.

하지만, 반려견을 대하는 태도에는 '나는 널 잘 모른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생김새부터 너무 다르고, 먹고 싸는 일, 지각하는 감각, 삶의 시간까지 모두 다른 반려견을 사랑하는 일은 '잘 모르는 세계'를 알아가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반려견의 행동을 관찰하고, 표정과 몸짓의 의미를 깨달아가면서 반려견과의 사랑은 더욱 깊어진다. 때문에 우리는 반려견을 '판단'하거나 '평가'하지도, 나의 욕구나 바람을 '투사'하지도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그 존재를 받아들인다.

<개와 함께 한 10만 시간>의 저자 엘리자베스 마셜 토머스 역시 '인간과 개의 우정은 서로 다르다는 자체'에서 기반한다며 '너무 다르기 때문에 인간과 개는 서로를 평가하는 레이더망을 작동시키지 않으며 판단하지 않고 함께할 수 있다'고 적은 바 있다.
  
반려견의 행동을 판단하지 않고 '궁금해하는' 그 마음으로 서로를 대한다면, 서로를 보다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있을 것이다.
 반려견의 행동을 판단하지 않고 "궁금해하는" 그 마음으로 서로를 대한다면, 서로를 보다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있을 것이다.
ⓒ una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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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을 대하듯 아이를 대할 수 있다면

만일 반려견을 대하듯, 아이를 대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이의 행동을 평가하고 판단하기 전에 왜 그럴까 궁금해할 수 있다면 아이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반려견이 나와는 다른 존재이기에 판단하지 않듯, 아이가 나와 다른 독립된 사람임을 전제하고 아이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면 아이를 더욱 존중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 역시 이럴 때 부모의 사랑을 보다 진하게 느끼지 않을까.

사실 그렇지 않은가. 아이와 부모는 엄연히 다른 사람이다. 아이들은 부모와는 다른 저마다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나름의 꿈과 생각을 키워나간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아이의 행동을 비난하기 전에 그 이유를 물어봐 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뿐 아니라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도 그렇다. 우리는 모두 다르고, 저마다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를 '궁금해 하며' 대하는 것은 서로를 존중하는 데 기반이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아이가 아침 식사 시간에 유난히 툴툴댔다. 그 태도가 못마땅해 "얼굴 좀 펴고 다니지!"라는 말이 입에서 빙빙 맴돌았다. 그때 아이 곁에 앉아 있는 은이가 보였다.

난 생각했다. 아마도 은이가 툴툴댔다면 어떻게 했을까?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왜 기분이 안 좋은지 더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잔소리 대신 이렇게 물었다.

"아들 오늘 아침에 기분이 좀 안 좋아 보이는 데 무슨 일 있어?"

아이는 오늘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 짜증이 난다고 했다. 우리는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고, 아이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방법을 함께 찾을 수 있었다.

다 은이 덕분이었다. 나는 은이를 통해 또 배운다. 그리고 조금 더 좋은 엄마가 되어 간다. 이런 마음을 확장해간다면 타인에게도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긴다. 김보경 작가가 <동물을 만나고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하듯, 나 역시 그런 것 같다. 은이 덕분에 나는 오늘도 자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루는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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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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