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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때만큼은, 착각하고 계시나요?

쓰는 순간만큼은 다양한 성격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이 그러하듯, 실은 쓰는 동안 다양한 나를 만나기도 하고요. 다중이(다중인격을 가진 캐릭터)처럼 너그러웠다가도 엄격했다가, 은밀한 부위의 발모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울다가 웃다가, 충분한 듯해 수정을 멈췄다가도 모자람에 다시 책을 들춰보거나... 쓰기에 임하는 우리 태도는 시시각각 달라집니다.

개중 오늘은 '착각'에 대해 이야기 나누려 합니다.
여러분은 쓸 때만큼은 온전히 착각하고 계시나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여러분이 '착각'하셨으면 합니다. 쓰는 동안은 누군가 내 글을 기다리고 있다는 착각, 제법 쓰임새 있는 글이 될 거라는 착각. 마냥 낙천적으로 말입니다. 영화 <I feel pretty>의 주인공 르네 베넷처럼요.
 
영화 <I FEEL PRETTY>
 영화
ⓒ IFEELPRET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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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영화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못 보셨을 여러분을 위해 짤막히 소개하자면, 주인공 르네 베넷은 외모에 콤플렉스를 가진 여성입니다. 두툼한 몸매와 평범하게 생긴 얼굴은 베넷에게 수치로 작용합니다. 낮은 자신감은 자격지심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베넷은 생각합니다. '그래, 누가 날 좋아하겠어.'

천둥 비바람이 치던 어느 밤 베넷은 한 동상 앞에 서 소원을 빕니다. "예뻐지게 해 주세요!"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다음날, 베넷은 소위 얼짱몸짱이 됩니다(정확히는 다음날 운동 중 넘어져 머리를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후입니다).

누가 봐도 매력적인 여성을 거울 앞에 마주하게 되죠. 그 후로 위풍당당 베넷이 됩니다. '나는 제일 예뻐, 내 몸매는 미쳤어.' 공주병까지 돋았나 봅니다. 거리를 활보하면 모든 남자가 쳐다볼 거라 믿기까지 합니다.

허나 이 모든 게 착각입니다. 베넷은 전혀 변하지 않았어요. 뱃살도 얼굴의 여드름도 푸석한 머릿결도 그대로입니다. 다만 착각이 해낸 것에 불과했습니다. 비바람에 미역줄기가 된 앞머리도 아랑곳 않고 소원 빌던 그 밤, 베넷에게 능력 하나가 부여되었을 뿐이었죠. 거울에 비친 동일한 자신을 '얼짱몸짱으로 보는' '착각 능력'(이쯤 되면 능력이라고 불릴만합니다) 말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이 베넷을 180도 바꾸었습니다. 매사에 자신감 넘치는 사교적인 여성, 베넷의 당당한 태도는 그를 매력적이게 보이도록 합니다. 순전히 착각에서 비롯한 태도 덕에 그토록 바라던 인기녀가 되기도 하고요. 비록 후에 착각이었음을 깨닫습니다만, 결국 베넷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게 되며 영화는 해피엔딩을 맞습니다.

착각이 동력이 된다면 
 
착각으로 맞이한 해피엔딩
 착각으로 맞이한 해피엔딩
ⓒ IFEELPRET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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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베넷을 빌려와 말하고 싶던 건 여러분이 착각을 동력으로 삼기를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내 글을 읽겠어, 라는 냉소적 방관은 더 쓰지 못하게 합니다. 이는 착각의 반대인 오해겠지요. 글로 탄생하기도 전 꺼뜨려버린 생명의 불씨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써 봤자, 라는 몹쓸 오해 말고 착각을 부추기는 건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쓸 때만큼 누리는 착각은 태도를 다르게 합니다. 무어라도, 게다가 꼼꼼히 쓰게 합니다. 내 글을 기다리는 독자가 어딘가 단 하나라도 반드시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착각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완전한 착각일 수도 있겠죠.

저 또한 착각 속에 삽니다. 저는 일개 작가입니다. 이제야 작가라 불리는 것에 조금 익숙해진, 작가입니다. 나라는 작가를 알고 있는 독자 수 헤아리자면 고작 10분여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요. 김훈 작가님이나 이기주 작가님, 이지성 작가님처럼 팬덤이 형성된 작가도 아니고요.

그저 쓸 때 만나는 희열이 좋아 쓰고, 써야 해서 쓰고, 쓰는 재능을 찾은 것 같아(이 또한 착각이겠죠) 씁니다. 그러니까 제 글을 기다리는 특정 독자가 실재해 쓰는 건 아닙니다. 단지 쓰는 시간만큼은 착각에 머무르려 하고, 그래서 지금도 쓸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매일 새로운 착각을 합니다.

'내 글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입가엔 미소, 가슴엔 뭉클을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이 그렇지 않을까?'
'그렇다면 매일 써야 하지 않을까?'


손은경이 아니라 손베넷으로 개명해야 할까 봅니다. 그 뜻은 '글로 베풀 베', '착각할 넷', 따라서 베넷. 그러나 저러나 매일 쓸 수 있다면. 착각이 모터가 되어 부릉부릉 손가락에 시동을 걸어줄 수만 있다면, 기꺼이 손 르네 베넷이 되겠습니다.

착각이 우리를 쓰게 할 겁니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유익과 재미, 위로가 될 것이라는 착각이, 불특정 그이에게 힘이 될 거라는 설렘이, 수신자가 분명 있을 거라는 믿음이 끝내 쓰도록 도울 겁니다.

마지막으로, 설사 착각이 착각에 그치더라도 상처받지 마세요. 올린 글에 '좋아요(like)' 한 개 달렸다고 울상 짓지 마세요. 좋아요가 덕지덕지 붙은 옆집 글을 부러워하는 것도요. 한 편 썼잖아요. 쓰는 횟수가 늘수록 글력은 점점 단단해질 테고, 머지않아 마르지 않고 반짝이는 좋아요를 만날 테니까요. 그리하여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쓰는 것!

오늘도 여러분이 읽어주실 거라는 착각에 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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