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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명 개그맨과 배우가 낚시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그 예능프로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낚시 인구가 부쩍 많이 늘었음을 집 근처 호수나 저수지만 가도 느낄 수 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여력이 없어 지금은 좀 뜸해졌지만, 한때 필자의 취미는 낚시였다.
 
20년 전 필자 남편이 직접 만든 나룻배. 아이들과 뱃놀이를 하던 모습
 20년 전 필자 남편이 직접 만든 나룻배. 아이들과 뱃놀이를 하던 모습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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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이 아닌 타의에 의한, 그러니까 남편과 연애가 한창이던 시절, 불쑥 가격이 제법 나가는 낚싯대와 릴을 선물로 받고 낚시를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전국으로 낚시를 할 수 있는 저수지를 찾아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잘 잡히는 날도 있었고, 어느 날은 빈손인 날도 있었다. 물고기를 잡는 즐거움과 더불어 물가 주변 자연풍경을 즐기는 게 필자에겐 더 큰 기쁨이었다.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 날이면 건너편 걸어서 접근할 수 없는 곳을 멀리서 바라보며,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저쪽에만 가면 월척이 있을지도 모를 거란 이야기를 자주 했다. 갈 수 없는 곳에 대한 동경이었다.

그런 동경이 최고조에 이를 때쯤 마음을 먹었나 보다. 남편은 배를 만들어야겠다고 했다. 농담이려니 했으나 남편은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재료를 알아보고, 해외에서 책과 도면을 사는 등 점점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작업장을 빌려 사부작거리기 3년 만에 노를 저어 가는 조그만 나룻배를 나무로 만들어 갖고 왔다. 톱질도 하나 제대로 못 하던 사람이 배를 만들었으니 그 과정이 참으로 험난했겠다 싶다.

하지만 미지의 장소에 대한 간절함과 그 간절함을 행동으로 실천했을 때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낸 모습이 20년 전 필자에게 가장 큰 사건이었다. 그것이 한동안 많은 추억과 즐거움을 가져다 줬다.

장미 터널로 된 대문을 지나 집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작은 아이의 바람을 실현해 주기 위해 며칠 전 근처 꽃 재배단지에 들렀다가 넝쿨장미 한 그루를 사 왔다. 다른 마당 일이 많다 보니 1년 넘게 인터넷 쇼핑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를 되풀이하며 구매를 망설였던 장미다.
 
뜻밖의 즐거움을 기대하며 구매한 장미 묘목
 뜻밖의 즐거움을 기대하며 구매한 장미 묘목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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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추운 날씨에 꽃은커녕 새싹만 조금 나온 게 앙상해 보이는 나뭇가지뿐이었지만, 막상 눈앞에 실체를 보니 작은 아이가 생각 나서 구매 목록에 없던 나무를 선뜻 데려올 수 있었다.

장미 묘목을 보며 머릿속에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마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남편과 아이들의 힘을 빌려 아치를 세우고 넝쿨을 올려야겠다. 아치를 만들어야 할지 기성품을 사야 할지도 고민해야겠다.

사계절 피는 장미라 영양분이 많이 필요할 테니 묘목을 심을 때 거름을 듬뿍 줘야겠지. 병충해 예방을 위한 대책도 세워야 하고, 올봄에도 할 일이 많아지겠군. 5월부터 꽃이 필 때쯤이면 집으로 가는 길이 더 즐거워지겠단 생각으로 흐뭇해진다. 작은 아이의 바람이 내 즐거움이 되어 가고 있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동경한다. 장소뿐만 아니라 물건이든 지위든 뭐든지 간에 그런 바람을 하나 이상 갖고 살아간다. 그런 바람이 현실이 되었을 때 기뻤던 혹은 허탈했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속에 남는 건 그 과정에서 누군가와 함께했던 즐거움이나 아주 소소하게 다가왔던 것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오히려 내 바람과 달리 우연이 겹쳐 생각지 못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었을 때 더 큰 기쁨을 느꼈다. 그런 우연은 신기하게도 자연과 엮였을 때 자주 일어났다.

남편이 만든 배는 아이들에게 큰 추억을 만들어주었고, 마당을 꽃으로 가득 채우고자 했던 내 바람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던 배롱나무가 채워줬다. 다이어트를 기대했던 매일 아침 강아지와의 산책은 새로운 식물들을 알게 되는 즐거움을 주었다.

나의 즐거움을 위해 가꾸던 소박한 정원은 의도치 않게 마을 어르신들의 눈요기가 되어 정원을 가꾸는 즐거움에 더해 나누는 즐거움까지 누릴 수 있었다.

마당에 갖가지 싹이 또다시 올라온다. 조바심 나는 내 마을은 올해 또 어떻게 달래주며 어떤 모습으로 나를 놀라게 해줄까? 자연이 주는 횡재는 그래서 늘 기대가 된다. 아, 그 옛날 간절한 마음으로 동경했던 저수지 건너편은 결국 배를 타고 들어갔지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추억으로 끝났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생태환경교육협동조합 숲과들 활동가 입니다.


태그:#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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