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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은 인류가 창조한 유산 중 역사적, 미적 가치가 충만해 인류가 관리·보호·보존해야 하는 것들을 유네스코가 엄선해 지정한 것이다. 세계문화유산 옆에 지어지는 신축 건물은 과거의 위대한 유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현대 건축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아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닌다.

잘못하면 문화유산의 경관과 지형을 해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도 취소될 수 있기에, 세계문화유산 옆에 건축물을 지을 때는 그만큼 주변의 경관을 고려해 신중히 설계해야 한다. 그렇다면 고유의 문화유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과거와 현재의 유산이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역사와 현대 건축의 만남 도서 이미지, 이관석 지음
 역사와 현대 건축의 만남 도서 이미지, 이관석 지음
ⓒ 경희대 출판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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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대 건축의 만남>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대표적인 문화재 8곳에 신축된 현대 뮤지엄 11곳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건축적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본다.

삼성건설에 재직하며 리비아와 사우디아라비아 현장에서 다양한 건설 경험을 쌓고, 건축역사와 이론을 섭렵한 이관석 경희대 교수가 역사, 지리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자신의 경험과 성찰을 책에 담았다.

저자 이관석 교수에게 세계문화유산 옆에 지어진 현대 뮤지엄이 과거 유산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법에 관해 물었다.
 
"역사와 현대 건축의 만남" 저자 이관석 교수
▲ 이관석 교수 "역사와 현대 건축의 만남" 저자 이관석 교수
ⓒ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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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저는 파리에서 공부하면서 유럽의 고풍스러운 도시환경에 들어선 현대 건축물을 자주 접했는데, 과거와 현대 사이의 이질감을 거의 느끼지 못했었습니다. 그 후 귀국해 한국에서 여러 활동을 하면서 우리의 역사적 환경 안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데 상당한 거부감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과거와 닮지 않으면 자주 배격되고, 드물게 새로운 제안이 용납될 때도 과거를 잘 배려하면서도 현대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성공적인 사례를 접하기 어려웠습니다. 과거와 이웃한 현재가 오히려 서로를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는 것 같아요. 과거를 흉내만 내는 현재는 문화의 연속성을 대변하는 건축의 잠재력을 훼손시킵니다. 과거를 제대로 보좌하는 올바른 방안이 아니지요.

우리의 훌륭한 문화재를 소중히 지키려는 선의와 노력에는 충분히 공감하고 존중합니다. 하지만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과거에 집착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전통은 과거에의 고착이나 회귀가 아니라 계속해서 진화하는 변화입니다. 전통은 미래로 전달되어야 하므로 현재가 없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전통 수호 의식이 과도하게 현재를 통제하는 현실은 개선이 필요합니다.

과거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현재성을 지킨 건축적 사례를 찾다 보니 인류가 함께 소중히 지켜야 할 대상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인근에 신축된 현대 뮤지엄 건축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여기에 제가 평소에 연구해온 현대 뮤지엄 건축을 엮어 얘기를 풀어가게 됐습니다.

비록 유럽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인근의 사례지만, 과거 모방만을 고집하지 않아도 우리의 탁월한 문화유산이 현대 건축과 잘 어울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과거가 시간과 공간 모두에서 현재와 단절되어 고립되지 않고, 다가서는 젊은 이웃에 영감과 활력을 줘 함께 밝은 오늘을 이루는 문화 생명체로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습니다."

- 세계문화유산 근처에 지어진 건축 유형 중 특히 뮤지엄에 집중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해하시겠지만 유럽에서도 유네스코 세계유산급의 문화재 옆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기획부터 특별한 동기가 있어야 할 테고, 그렇더라도 신축 허가를 받는 것 자체가 어렵고 드문 일일 수밖에 없지요.

상대적으로 제가 장시간 연구해온 뮤지엄 건축이 역사와 기술을 포함한 문화와 예술에 헌정된 건축 유형으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인근에 새롭게 들어서는 데 유리했고, 그만큼 좋은 사례가 여럿 보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모두 유명 관광지가 됐는데, 이웃에 현대 뮤지엄이 들어서면 더욱 중요한 문화예술 중심지로 부각되는 시너지 효과도 노릴 수 있지요.

뮤지엄은 건축적 제안에서도 유연성이 크기 때문에 여기서 거론되는 뮤지엄들은 건축 자체의 작품성만으로도 관심을 끕니다. 이 작품들의 바탕에 각자 방법은 다르지만 기존에 대한 깊은 존중심이 깔려 있습니다. 배려해야 할 절대자에 대한 제약이 오히려 각 프로젝트의 개념이자 특징이자 장점이 된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게으른 모방과 무비판적 재현을 넘어 원본과 핵심을 지키면서 건축가들이 대지에서 추출된 특성을 건축에 담는 맥락에 대한 민감성과 그것을 건축적으로 보편타당하게 풀어나가는 능력을 발휘한 결과물들이죠."

- 우리나라 전통 문화재 옆에 지어진 신축 건물 중 잘된 사례와 아쉬운 사례가 있다면?
"최근의 좋은 사례라면 경복궁 바로 옆에 건립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들 수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이 미술관이 기획될 때부터 이런저런 관여를 했었는데, 여기에 어떤 미술관이 들어와야 하느냐에 대한 여러 견해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떤 개념이 적용되는가와 무관하게 이웃한 경복궁은 반드시 존중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그 자리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같은 미술관이 와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했죠. DDP도 나름의 건축적 가치를 지녔지만, 경복궁 옆에서는 그럴 수 없다고 봅니다. 건물 높이 제한이 있는 곳이기도 했지만 지면 아래로 깊이 건물을 내려 지상에 충분한 여백의 공간을 둔 단정한 미술관 육면체의 볼륨들은 전혀 과시적이지 않습니다.

지하로 내려갔지만 자연광의 혜택은 충분히 누리고 있고요. 원래 자리로 돌아온 조선시대의 종친부 건물, 얼룩진 근대사의 일부인 국군기무사령부 본부와 단순미를 보이는 신축 건물이 고전과 근대와 현대의 품격 높은 조합을 보여줍니다. '무형의 미술관, 일상 속의 미술관'이라는 건축가의 설계 개념의 바탕에 경복궁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쉬운 사례라면 경주에 있는 황룡사역사문화관 같은 경우일 겁니다. 이 문화관은 신라왕경복원사업의 일환으로 발굴조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황룡사지 바로 옆에 건립됐습니다. 황룡사지의 연구 및 발굴조사 성과를 국민과 공유하기 위한 공간이지요. 황룡사는 복원을 위한 자료가 거의 없는데도 2035년 복원을 목표로 무리한 추진을 해 유네스코가 역사적 기록에 근거하지 않는 복원에 반대하는 역풍을 맞았습니다.

이 문화관은 건물 자체가 건축적으로 큰 흠이 있다기보다는 차라리 빈터로 있는 것이 더 좋았을 넓은 황룡사지 터에 기와를 얹은 현대 건축물이 덩그러니 혼자 서 있는 모습이 어색합니다. 건축가는 당연히 그 장소에 적합한 현대 건물에 대한 고민을 했겠지만, 사실 이런 장소에 지을 건물의 설계권을 얻으려면 설계자가 알아서 과거 건축을 모방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건축의 범주를 넘어선 사회적·문화적 인식의 차원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입니다."

- 서구처럼 과거 유산과 신축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건축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뚜렷한 논리를 따라 특정한 답을 찾아가는 수학과 달리 현대 건물이 과거 문화유산과 조화를 잘 이루는 방안에는 일괄적인 해법이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겠지요. 어떤 지침을 세우고 엄격히 지키게 해야 한다는 유혹이 늘 따르지만, 문화유산마다 건축적 특성과 장소성이 다르므로 각자에게 맞는 접근법을 찾고 그 제안을 허용할 수 있는 아량과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처럼 닮으려고 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닮는 방법도 여러 가지일 것이며, 그 외에도 문화유산의 위엄을 지켜주기 위해 현대 건물의 존재감을 약화시키거나 오히려 반대의 특성으로 서로를 대비시켜 돋보이게도 할 수 있습니다. 사변적이고 까칠한 현대 철학이 적용된 현대 건축물로도 고전적인 환경을 거스르지 않을 수도 있음을 유럽의 사례들로 확인했지요.

경주 양동마을 앞에 눈에 잘 띄지 않도록 낮게, 뒤돌아 서 있는 양동마을교회에서 가능성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건축가 김헌은 교인이 40명 남짓한 이 작은 교회를 구상하며 대상의 존재감을 한껏 희석시키거나 가능하다면 이의 소거마저 노렸습니다. 그 결과는 문화유산에 대해 분명히 겸손하지만 역설적으로 현대 철학과 생태신학에 관한 신념이 강하게 읽혔습니다. 현대 건축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것이지요."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이 책의 편집자입니다.


역사와 현대 건축의 만남 - 유럽의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공존하는 현대 뮤지엄 건축 이야기

이관석 (지은이),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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