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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방가사 전시를 설명하는 서주연 학예사 @최준화
▲ 내방가사 전시를 설명하는 서주연 학예사  내방가사 전시를 설명하는 서주연 학예사 @최준화
ⓒ 최준화, 김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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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은 1975년 유엔이 지정한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이다. 마침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조선 후기부터 해방 후까지도 줄기차게 이어져 내려온 여성들의 한글 가사인 '내방가사' 관련 전시가 열리고 있다. 국립한글박물관 3층 기획전시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이내말삼 드러보소, 내방가사'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 7일 박물관을 찾았다.

마침 이번 전시를 위해 1년 이상을 땀 흘린, 전시 실무를 담당한 서주연 학예사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필자는 <조선 시대 여성의 한글발전>(역락)이란 책을 통해 조선 시대 여성들이 아니었으면 한글이 살아남기 어려웠다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내 관심이 갔던 전시였다.

지난 2021년 12월 23일(목)부터 시작해 2022년 4월 10일(일)까지 전시가 이어지는데, 코로나19 핑계로 찾지 못했다가 '여성의 날'을 계기로 최준화 사진작가와 함께 비로소 전시를 살펴보았다. 
  
우리를 제일 먼저 반긴 작품은 <쌍벽가>였다. 흔히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경우에 쓰는 말이라 더욱 흥미로웠다. 다음은 서주연 학예사와의 질의 응답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한계를 뛰어넘는 여성들의 힘이 깃든 '내방가사' 
 
<쌍벽가> 국립한글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최준화
▲ <쌍벽가> 국립한글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쌍벽가> 국립한글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최준화
ⓒ 최준화, 김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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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벽가'를 전시 앞머리에 세운 이유가 있나요?
"내용도 내용이지만 창작 연대(1794년/정조 18)와 작자(연안 이씨)가 분명해서입니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내방가사가 작가와 창작 시기가 불분명한 게 많습니다. 반면에 이 작품은 연대가 가장 오래된, 꽤 이른 초기 작품이기도 하고 작품 이력이 분명합니다. 내용도 쌍벽을 이루는 두 아들 이야기를 통해 당대의 삶을 잘 드러내 주고 문장도 빼어나기 때문입니다."

- 준비하면서 어떤 점이 어려웠고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무엇인가요?
"학계에 알려진 내방가사들의 소장처가 불분명해서 자료를 찾아내는 것이 어려웠고, 없어진 자료들도 있습니다. 내방가사는 붓으로 흘림체로 쓰기 때문에, 원문 자료의 판독이 힘듭니다. 또한, 19세기 영남 방언으로 적혀 있는 것이 대다수로, 원문의 현대어 역이 어려웠습니다.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한양가>입니다. 한양가는 원래 남성이 지은 것이었지만 수많은 여성들이 가장 많이 필사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창작도 중요하지만, 수많은 필사를 통해 여기저기 한글이 퍼져나간 겁니다. 그래서 내방가사가 여성들의 한글교육서 역할도 했지요. 필사를 많이 한 건 사실에 상상을 결합한 이야기가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어서인 듯합니다."

내방가사가 주로 경상북도 안동을 중심으로 창작되고 향유되었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만주 지역까지 유통이 확대되었고, 해방 이후까지도 창작이 이어졌다. 그러고보니 지금 시대 내방가사 전시의 의미는 무엇인지 전시 기획자의 시선이 궁금했다.
  
- 이번 내방가사 전시의 주안점은 무엇인지요?
"조선 후기부터 여성의 삶을 실어 나르며 지금까지 창작되고 있는 내방가사 노랫말 속에 담긴 소통과 공감의 가치를 알리고자 기획하였습니다."

- <조선 시대의 여성과 한글발전>(역락)이란 책의 지은이로서 이런 전시가 눈물겹도록 고맙지요. 앞으로 여성 관련 한글 전시를 지속해서 더 발전시킬 수는 없을까요?
"저도 그 책을 잘 읽었습니다. 여성이 아니었으면 한글이 살아남기 어려웠다는 기자님 주장에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요. 전시를 준비하면서, 내방가사는 여성들의 문자와 문학 활동이 어려웠던 조선 시대에 탄생한 여성 문학으로, 내방가사 작품들 하나하나에는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은 여성들의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한글 창제 이후 한글 보급과 전파를 말할 때 여성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쓰기 쉬운 문자 창제로 인해 여성, 낮은 신분의 사람들까지도 개개인의 역사를 남길 수 있게 된 점은 조선 시대 한글을 다룰 때 지속해서 언급될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때의 <한양가> 국립한글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최준화
▲ 일제강점기 때의 <한양가> 국립한글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일제강점기 때의 <한양가> 국립한글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최준화
ⓒ 최준화, 김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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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방가사 세계 기록유산 등재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와 연관 지어 진행 상황은 어떤지요?
"이번 3층 기획전시실의 전시와 온라인으로 제공되고 있는 내방가사 전시가 등재 추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유네스코 등재에 있어서 중요한 점이 여러 개가 있지만, 그중 기록유산에 국민들이 얼마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가도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번 전시를 온라인 전시로도 만들어 언제 어디서나 내방가사를 즐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2월 17일에 문화재청에 등재신청서를 접수했습니다. 3월 중으로 국내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후보가 결정될 예정이며, 후보로 채택이 되면 6월 15일까지 영문으로 등재신청서를 다시 제출하고 11월 말에 최종 등재 여부가 결정될 예정입니다."

- 이번 전시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지요. 이제 전시가 약 한 달 남았는데 못 본 사람들을 위해 어떤 홍보를 하실 것인지요?
"'시집 간 후 내방에만 있어야 하는 여성들의 한과 설움을 표현한 작품이라는 내방가사의 편견을 깨주었다'라는 반응이 가장 많았습니다. 전시와 기록유산 등재 추진 등 내방가사와 관련한 일을 지속할 예정입니다. 국립한글박물관 기획특별전은 4월 10일로 막을 내리지만, 5월 20일부터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순회전시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마치 랩 같은 노랫가락으로 긴긴 사연을 풀어냈던 내방가사야말로 오늘날 한글의 뿌리요, 힘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전시장을 빠져나오면서 한글이란 보물을 지켜온 여성들에 대한 성명순 시인의 절절한 시가 귓가를 맴돌았다.
 
한글, 여인이 지킨 보물_ 성명순

곱고 빛나는 옥은
아무리 진흙 속에 굴러도
그 빛을 잃지 않는 법
오랜 멸시와 천대를 견디고
이 세상 가장 뚜렷한 글자로 자리매김한 한글
소중히 간직하고 갈고 닦은 고운 마음들이 있었네.

대왕이 만드신 글자 가갸거겨 써놓고
낮이면 물 긷고 밤새워 물레를 돌리던 아낙네
등잔불 밑에 바느질할 때 쏟아지는 졸음을 쫓으며
짬짬이 쉽게 익히고 날로 씀에 제 뜻을 글로 펼쳤네
떡살과 시루에도 그 글자 새기어 음식에 정성을 담고
실패와 버선본에도 적어넣어
내 식구 곱고 따뜻하게 입히고 신게 하였네

동짓달 기나긴 밤의 적막함을
장끼전 홍계월전으로 달래고
딸자식에게는 한글로 적은 내훈으로
아녀자의 도리를 가르쳤지
굽이굽이 사연 많던 생애도
우리 글로 적어 한을 풀었네

노류장화라고 얕보지 마소
사람의 가슴 속에 품은 정은 매한가지
천릿길 떠난 임께
묏버들 꺾어 보낸 곡진한 노래 속에 담은 뜻이
양반님네 멸시하던 한글을 지키었네

대왕이 만드신 큰 글자를 지킨 것은
흰 도포 자락이나 휘날리고
한글을 쓰면 오랑캐라고 헛기침이나 해대던
큰 나라 지성으로 섬긴 선비들이 아니라
이 나라의 이름 없는 여인들이었네.

_김슬옹(2020). <조선시대 여성과 한글 발전> 뒤표지에서

태그:#내방가사, #한글, #국립한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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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학과 세종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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