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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콕의 나날이다. 그리고 파란만장 코로나의 나날이다. 국공립유치원에 다니는 일곱 살 아이는 유치원 등원이 쉽지 않다.

작년 12월 방학을 앞둔 시기에 원내 코로나 확진자가 생겨서 일주일 일찍 겨울방학을 시작했고 겨울방학이 끝난 뒤에 며칠 등원하다가 곧바로 봄방학에 돌입했다. 드디어 길었던 방학이 다 끝났다. 3월 3일 입학식을 한 시간 하고, 그 다음날은 적응기간이라 두 시간 활동하고 귀가했다. 이틀간 총 세 시간 유치원에 머물렀다.

그리고 유치원에서 또 메일이 왔다. 아이와 같은 반에서 확진자가 발생했으니 정확한 진단을 위해 되도록 병원에 가서 신속항원 검사를 받으란다. 목요일까지 세 차례 진단키트검사를 하고 음성인 경우에만 등원이 가능하다는 안내였다.

보고 있으면 스르륵 기분이 풀어지는 식물

겨울방학 때만 해도 희망을 가지면서 견뎠다. 내년 봄에는 제대로 된 유치원 등원이 이루어지고 친구들이랑 얼굴 보면서 놀 수 있겠거니. 나도 기나긴 가정보육에서 탈출 해 보자고. 그런데 망했다. 유치원에서 세 시간도 버티지 못할 상황이라면 애초에 원격수업을 진행했어야 한다. 등원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지라도 주던지.

속이 끓었다. 요동치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식물 돌보는 시늉을 하며 베란다를 서성거렸다. 아이가 쪼르르 따라 나와 아스파라거스 화분 앞에 서더니 '양치식물 고사리'라고 부른다. 아이한테 정확한 이름을 알려줘도 고사리라고 한다. 공룡시대가 그려진 책에 나온 양치식물의 모습과 우리집에서 자라는 아스파라거스가 꼭 닮았다는 거였다.

책을 들고 와서 엄마 이것 좀 보라며 나한테 들이밀었다. 대단한 증거라도 찾은 것처럼 의기양양해진 아이는 아스파라거스를 아주 진귀한 식물 대접을 한다. 공룡시대에서부터 살고 있는 엄청난 식물이라고. 그리고 최애 공룡 친구인 안킬로사우루스 피규어를 데려와서 고사리 냠냠 먹으라고 화분 위에 올려둔다. 베란다의 중요한 쓰임 중에 하나가 초식공룡 먹이 창고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초록의 줄기와 잎이 층을 이루면서 자라 수형이 멋지다.
▲ 아스파라거스 세타세우스 초록의 줄기와 잎이 층을 이루면서 자라 수형이 멋지다.
ⓒ 김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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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우는 아스파라거스는 세타세우스 종인데 고사리와 닮았다고 해서 영어 이름이 아스파라거스 고사리다. 사람 보는 눈은 다 비슷한 모양이다. 그러나 아스파라거스 속은 고사리와 아무 상관이 없으며 남아프리카가 원산지이고 백합과에 속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테이크 요리 옆에 몇 가닥 놓이는 초록 채소 아스파라거스도 한 식구다. 아스파라거스 속은 식용 채소를 포함해서 허브류, 덩굴류, 관목류까지 다양하다.

아스파라거스 세타세우스는 작은 숲처럼 생겼다. 얇은 줄기에 몽글몽글 돋아나는 잎이 층을 이루면서 자란다. 선의 유려한 모양과 층을 이루는 형태가 멋져서 자꾸만 눈길이 간다. 화려한 매력은 없지만 옆에 두고 있으면 금세 정이 드는 친근한 매력이 있다. 꼭 구름 같기도 해서 만져보면 촉감이 보송보송하다. 부드럽고 섬세한 초록 잎이 어찌나 예쁜지. 보고 있으면 스르륵 기분이 풀어지는 식물이다.

그리고 줄기와 잎이 확연히 구별되어 보이지만, 줄기는 길게 올라오다가 가늘어지면서 잎의 모습처럼 변화한다. 잎으로 보이는 부분도 가지인 셈이다. 건조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분 증발이 빠른 커다란 잎은 퇴화하고 가는 잎 모양으로 변형한 것이다. 새로 돋아난 줄기는 말간 연둣빛을 띠다가 자라면서 녹색으로 짙어진다. 

거센 현실도 견디게 하는 식물의 위로

식물을 키우면서 내멋대로 나눈 단순 분류법에 따르면 섬세하고 아주 얇은 잎을 가진 식물은 물 관리가 까다롭다고 입력되어 있다. 잎이 큼직하고 줄기가 단단하면 물을 잘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건조에도 강하고 어지간한 척박한 환경에도 잘 견딘다. 연약해 보이는 아스파라거스는 시중 좀 들게 하겠구나 싶은 까다로운 성향의 식물로 분류했다.

아스파라거스는 이런 식의 얄팍한 분류에 코웃음이라도 칠 기세다. 한없이 여리고 얇은 잎을 가졌으니 관리 난이도가 높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물관리가 의외로 쉽다. 건조한 상황에서도 그럭저럭 견디는 편이고, 물이 말랐을 때 충분히 관수해주면 별 문제 없다.

흙에 물이 많은 건 싫어하고, 공중 습도는 촉촉한 걸 좋아한다. 요즘 같은 건조한 시기에는 칙칙 분무해주는 관리가 필요하다. 가장 주의할 것은 강한 햇빛. 잎이 노랗게 타버릴 수 있으니 밝은 실내 정도가 적당하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다. 함께 부대끼면서 겪어봐야 성격이 나온다. 나의 엉터리 분류법은 되도록 멀리해야겠다.

아스파라거스는 한없이 순둥이다. 예상을 벗어난 반전이 짜릿하다. 까다로울 줄 알았는데 털털하고, 무뚝뚝하려니 짐작했는데 다정하다. 최소한의 환경만 만들어지면 군말 없이 지내고 새순을 쑥쑥 뽑아 올리면서 부지런하게 자란다. 하루하루 모습이 달라 보일 정도로 성장한다. 초보 식집사에게 추천해도 손색이 없는 반려식물이다.

지금은 작은 숲이지만 자라면서 덩굴성 기질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면 작은 정글이 될지도 모르겠다. 자생지에서 자라는 덩굴류 아스파라거스는 나무를 감고 올라가 마치 제 몸인 양 위세를 부리기도 한단다. 하도 세력이 강해서 나무 본체와 주변부의 생육을 방해해 아스파라거스 종 일부에 대해 유해식물로 지정한 나라도 있다. 생명력 갑이다.

그 생명력이 우리 집에 와서도 이어진다. 씩씩하게 자라줘서 고맙다. 순둥이 아스파라거스 덕에 구겨진 마음이 잠시나마 펴졌다. 고마운 녀석들. 식물이 주는 작은 위로가 모여 거센 현실도 견딘다. 베란다에서 아스파라거스와 아이랑 함께 노닥거리는 동안에 같은 반 아이 엄마가 신속항원 양성 소식을 알려온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지만 마음을 단단하게 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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