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양(春陽). 경북 봉화군 춘양면으로 들판이 넓고 양지 바른, 항상 봄볕처럼 따뜻하다는 곳. 이름도 재미있는 억지춘양시장부터 보물 제2048호 봉화 한수정 등 문화재와 볼거리가 많다.
행선지는 백두대간수목원. (춘양군 춘양면 서벽리 485) 버스 시간이 많이 남은 데다 내가 취재를 간 날은 5일장이 서는 날이다. 춘양 장날은 4일과 9일. 1980년대까지 봉화군 최대의 전통시장으로 요즘도 볼거리와 먹거리가 다양하다.
간단한 요기 거리를 찾았다. 반쯤 열린 식당 문 앞에서 아침 식사 가능 여부를 여쭈니 어서오라며 반겨 주신다. 음식 맛을 보기도 전에 일단 마음속으로 합격이다.
멸치육수로 삶았다는 칼칼한 칼국수를 국물까지 싹 비웠다. 금강산도 식후경, 어디를 가도 일단 속이 든든해야 한다. 잘 먹었다는 인사를 연거푸한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의 시장은 봄을 알리는 나물이 주를 이룬다. 간간히 보이는 손두부에 눈길이 간다.
버스 시간이 다가와 정류장으로 이동한다. 서벽 행 버스로 20~30분을 달렸을까 어느새 수목원 후문이다. 일단 규모가 웅장하다. 야트막한 산을 끼고 있는 마을부터 골짜기 전체가 수목원이다. '백두대간 수목원'이라는 이름이 괜한 것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바람 또한 예사롭지 않다. 첫 겨울 등산 때 준비물없이 애를 먹었던 추억이 떠올랐다. 다른 곳은 봄이라도 여기는 시베리아다. 안내문을 보니 이해가 됐다. 춘양은 대한민국에서 동절기 가장 추운 지역이란다. 사전 지식없이 가벼운 차림으로 나온 자신을 원망해본다. 겨울 트레킹은 사전 정보를 습득한 뒤 방한장비를 철저하게 갖춰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생각지 못한 매서운 바람에 정신이 바짝 든다.
백두산~지리산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 '백두대간'의 중심에 수목원은 자리한다. 산림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고 복원한 것이 아시아 최대 규모다. 5179㏊ 면적에 조성된 전시원 37곳에는 구상나무, 모데미풀, 설앵초 등 다양한 희귀특산식물과 월귤. 한계령풀, 만병초와 같은 고산식물이 산다.
관람 코스는 ▲쉬엄쉬엄 산책 ▲깊은 산속 호랑이 ▲수목원 완전 정복 3곳이다. 오늘은 '수목원 완전 정복'으로 발길이 간다. 덩굴정원~무지개정원~돌틈정원~고산습원~호랑이숲~암석원~만병초원~백두대간자생식물원~잣나무숲길~방문자센터로 돌아오는 3시간 거리다.
정리가 잘 된 앞마당을 지나니 숲길을 만난다. 나무마다 붙여진 이름표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언뜻 봐서는 그게 그거 같은데, 이름이 다 있다. 나무든 약초든 확실하지 않으면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꽁꽁 언 땅이 살짝 녹았다. 뽀드득 눈 밟는 느낌, 푹신푹신 흙 밟는 느낌이 섞여 있다. 봄 마중 나온 땅의 느낌이 신기하다.
골짜기로 올라가니 한겨울 그대로다. 골짜기 물이 넘친 돌다리는 얼음으로 맨질맨질하다. 넘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자세를 낮춘다. 두 팔을 넓게 벌리고 뒤뚱뒤뚱 펭귄처럼 걷는다. 얼음에 비치는 지금 내 모습이 어떨까. 우스꽝스럽지만 자연스러울 것 같다. 보자기가 풀리듯 마음이 활짝 펼쳐진다.
오솔길을 뒹구는 솔방울과 적당한 울림의 새소리는 겨울 숲 속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걷다 보니 숲속 무도회가 열릴 듯한 널찍한 돌틈 정원이 나타난다. '산중호걸이라하는 호랑이의 생일날이 되어~'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린다.
돌틈정원은 만병초로 가득하다. 그 틈에 눈이 남아 있는 언 땅을 뚫고 꽂을 피운 개복수초가 의기양양하다.
호랑이숲에 다가오니 호랑이 조형물과 아기자기한 포토존이 눈에 띈다. 아이들에게 인기 많은 관람 코스겠다. 호랑이 숲을 지나 펼쳐진 넓은 정원은 새 봄을 준비중이다.
겨울 수목원은 아기 같다. 이곳에 살고 있는 수목들은 무한한 능력을 내포했다. 햇볕과 물, 온도가 맞으면 다양한 모양을 드러낼 것이다. 활짝 핀 꽃, 무성한 숲도 결국은 이런 과정을 거쳤음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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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이숲길 백두대간수목원 전체를 보며 천천히 걷는데 3시간 정도 걸린다 |
ⓒ 이보환 | 관련사진보기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천단양뉴스 '걷기좋은 길' 코너에도 실립니다. (제천단양뉴스http://www.jd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