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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뭐라고 번역하시나요? 우린 '성평등주의'로 읽습니다. 성별로 인한 차별을 없애자는 얘기죠(오바마도 페미니스트라네요!). 페미니즘이 오해받는 한국, 그 안에서 페미니스트로 사는 두 여성의 이야기. 2주마다 한번씩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대와 성장을 꾀해봅니다.[기자말]
오늘이 힘겨운 당신에게, 성애가 드립니다

(* 아래 오디오 버튼을 누르시면 편지를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지낭독 서비스는 오마이뉴스 페이지에서만 가능합니다.)

당신 곁의 페미니즘 · [마지막 편지] 대선은 끝나도 인생은 끝나지 않으니까

어느새 마지막 편지네요. 지난해 여름부터 약 9개월 간, 반팔을 입었을 때부터 패딩을 두껍게 껴입은 지금까지, 울고 웃으며 써온 편지가 끝에 다다랐습니다. 지난해 발이 다친 채 길에서 구조됐던 아깽이 쨔삐는 어느새 만 1년을 향해가는 캣초딩, 듬직한 반려묘가 됐어요. 몸무게도 처음의 500g에서 10배 가까이 커졌는데, 그러면 그 기간 우리도 조금은 성장했을까요? 잠든 고양이를 지켜보다가 문득 궁금해집니다. 

저는 며칠 전 엄마와 처음으로 둘이서 영화를 봤는데요(어릴 적 동네엔 영화관이 없었거든요). 32년 간 세탁노동자로 일하다 은퇴한 엄마가 꽤 편안해보이시네요. 봉제공장 여성노동자들을 그린 <미싱 타는 여자들>을 보러 갔는데, 배움에 대한 열의로 '노동교실'을 지키려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여성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모습이 중학교 중퇴 뒤 뒤늦게 검정고시 공부를 하던 엄마 같기도, 여전히 분투하는 제 주변 친구들 같기도 해서요. 

떠도는 20대 여성 표심, 어디로  
 
다큐 <미싱타는 여자들> 스틸컷.
 다큐 <미싱타는 여자들> 스틸컷.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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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미씨, 저는 요즘 <20대 여자>란 책을 읽었는데요. 혜미씨가 지난 편지서 꺼낸 문제의식('여성 청년들은 어디 있느냐'라는 게으른 질문)에 정면으로 답하는, '페미니즘' 렌즈로 2030을 들여다보는 책이에요. 20대 남녀 600명(다른 연령대 포함 2000명)에게 '페미니스트에 대한 감정온도' '성별 임금격차에 대한 의견' '가장 지지하는 정치세력' 등 총 238개 질문을 뽑아 묻고, 그걸 분석해 보여주거든요.     

책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20대 여자'의 정체성은 이들이 "부유하는 심판자"라는 것입니다. 정치와 정치참여엔 열정적이지만, 또래인 20대 남자와는 다르게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뚜렷하진 않다는 거죠(111쪽). "20대 여성은 '국민의힘이 나를 대변하진 않는다'라고 생각하지만, 민주당과 정의당에 효능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박빙의 대선, '부유하는 심판자' 20대 여성의 표심은 과연 어디로 향할까요.

하나 더 놀라운 건 20대 여성-남성 간 인식 차가 너무 극명하단 점이었습니다. 한국리서치가 2021년 7월 30일~8월 2일 한 조사에 따르면, '페미니즘은 남녀의 동등한 지위를 이루려는 운동'이란 문장에 20대 여성의 66.9%가 동의한 반면, 20대 남성의 69.6%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여성은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있다'란 질문에 20대 여성 71.2%는 '그렇다'고 했지만, 20대 남성 75.8%는 '그렇지 않다'고 했고요.

양 극단에 선 듯한 이들… 이를 갈등이 아니라 조화로 이끌 책임이, 정치인들에게 있는 거겠지요.  
     
238개 질문으로 살펴본 '20대 여자 현상', 책 <20대 여자> 표지
 238개 질문으로 살펴본 "20대 여자 현상", 책 <20대 여자> 표지
ⓒ 시사IN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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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없었으면 좋겠다 

매일 정치기사를 읽고 편집하다보니 제 일상은 온통 정치여서, 꿈에서도 대선후보를 만나는(!) 정도네요. 그러나 최근엔 심신이 불안정한 데다, 코로나 밀접접촉으로 일주일 넘게 고립되면서 어느날 밤엔 '다 관두고 싶다'는 충동이 몰려오기도 했었어요. 신물이 나지만 그럼에도 저 또한 투표할 생각입니다. '권리와 의무' 보다는, 실은 잘 살고 싶어서요. 마포구 황예진씨처럼 이성친구에 맞아 죽는 여성이 더는 없었으면 해서요. 

대선 끝난 뒤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3월 10일 아침은 오겠지만 부디 더 나은 하루였으면 합니다. 투표하러 갈 당신을 위해 미국의 대배우 메릴 스트립이 했던 말을 들려주고 싶어요.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이 연설 중 장애가 있는 기자를 흉내내어 비하 논란이 일자, 메릴이 그를 비판하며 했던 말이에요(바로 보기).  

"혐오는 혐오를 부르고 폭력은 폭력을 낳습니다. 권력을 지닌 이들이 타인을 괴롭히려 자기 지위를 이용할 때, 우리는 모두 패배할 것입니다(When the powerful use their position to bully others, we all lose)."

당신께 권할 제 마지막 추천 컨텐츠는 <미싱타는 여자들>입니다. 여자, 노동(일), 배움... 집이 가난해서, 남자형제의 교육을 뒷받침하기 위해 10대 때부터 일터로 내몰린 여자들, 그래도 어떻게든 배우려 애쓰는 모습에 코끝이 찡해졌어요. 온라인 관람도 가능하니 꼭 한번 보시길 추천드려요(예고편 보기


고립되고 외로웠던 코로나 시기,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어 기뻤습니다. 고마움만 전하고 싶어요, 당신도 그랬기를 바랍니다. 

2022년 3월 2일 
우리의 안녕을 기원하며, 성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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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에 선 당신에게, 혜미가 드립니다.    

우리의 짧고도 긴 여행이 이렇게 마무리가 되네요. 지난해 연재를 처음 기획하면서 설렜던 순간이 떠올랐어요. 9개월여 동안 편지에 담긴 스무번의 페미니즘을 마주하고 고민하면서 저는 또 좀 자란 것 같아요. 편지를 쓰고나서, 돌아온 답장을 읽다가 울컥했던 기억들이 떠올라요. 절절하고 애틋한 마음들이 독자들에게도 전해졌을지…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차별금지법과 생활동반자법, 난민과 성소수자·홈리스 등. 그간 우리는 어떤 이들에겐 매우 '인기 없을' 얘기를 주로 나눴던 것같아요. 그래도 주어진 시간과 공간 안에서, 갈 곳을 잃어버린 가장자리의 사람들을 모아내려 했는데, 얼마나 성공했는지 모르겠어요. 댓글로 메일로, 응원을 보내온 익명 독자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렇게 된 이상 페미니즘으로 간다
 
행동하는보통남자들 주최 기자회견이 2월 9일, 3월 5일 양일간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대선후보가 SNS에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글자를 남기는 등 혐오와 차별을 일삼는 목소리가 정치권에 울려지고 있다며, 혐오 부추기기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행동하는보통남자들 주최 기자회견이 2월 9일, 3월 5일 양일간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대선후보가 SNS에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글자를 남기는 등 혐오와 차별을 일삼는 목소리가 정치권에 울려지고 있다며, 혐오 부추기기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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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따뜻해진 오늘(5일), 저는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이 3.8 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준비한 '이렇게 된 이상 페미니즘으로 간다' 기자회견 현장에 갔었어요. 40여 명 동료 시민들이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여 한 시간 넘게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페미니즘이 국방개혁'이라는 지적, '성차별은 상상이 아니라 실존한다'는 호소, '행복해지기 위해 더 많은 페미니즘을 원한다'는 지지의 말. 쉼없이 이어지는 목소리들을 들으며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어떤 정치인들은 남녀와 세대·지역을 갈라치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여기에서 우리는 함께 한다'는 감각이 오랜만에 확실히 느껴졌거든요. 

당장의 선거뿐 아니라 그 너머의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 우리는 오늘 함께 외쳤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페미니즘으로 간다!' 고요. 

더 거센 물결로 

당신께 권하고 싶은 마지막 컨텐츠는 책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박정훈 저)입니다. 

책 제목을 보곤 무릎을 쳤어요. 여성인 저를 '나름대로' 배려하는 남성동료들이 고맙긴 했는데, 그게 불편했던 순간도 분명 있었거든요. 독립된 개인 사이 존중은 당연한 것인데 싶어서요. 한때 저를 마치 '보호해야 할 약자'처럼 대하는 이들에게 전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돌려준 적 있었는데요. 어떤 이는 "예민하다"며 되려 저를 공격하는데, 어떤 친구는 솔직하게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저자는 이렇듯 남성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언행이, 언뜻 자연스러워 보였던 일상이 실은 얼마나 가부장적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일례로 독립운동가 유관순은 언제까지 '누나'로 호칭돼야 하는지, '난 잡혀산다'고 농담하는 남자들이 이리 많은데 폭력으로 다치는 건 왜 늘 여자들인지 말이에요. 대뜸 집 앞에서 기다리겠다는, 스토킹에 가까운 행동을 로맨스로 여기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가요.

책을 통해 그는 우리 곁에 페미니즘이 왜 필요한지, 여성과 남성이 왜 서로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만듭니다. 성착취라는 지옥을 없애기 위해서, 모두를 존중하는 관계의 혁명을 위해서 말이에요. 3.8 여성의 날을 앞두고, 여성의 날에 남성들이 왜 함께 기뻐야 하는지, 왜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5일 오후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7회 한국 여성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든 모습.
 5일 오후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7회 한국 여성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든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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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를 동력 삼는 정치가 판을 치지만, 그러나 그 어떤 백래시에도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는 결국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애인이 편리해야 모두가 편리하고, 아동이 안전한 사회에서야 우리 모두가 안전한 것처럼요. 그렇게 보면, 성평등을 향하는 페미니즘은 결국 모두의 행복으로 향하는 길의 초입새 아닐까요.  

성애님, 그간 우리가 여성의 죽음에 주목하고 성폭력을 지적하고, 불평등한 구조를 따져 물을 때 누군가는 불편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그랬다면, 우리는 그렇게 오늘도 한 뼘 성장한 것이라 믿습니다. 편지로 스무 번의 페미니즘을 통과하면서 저는 많이 자라게 된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같은 세상을 바라는 우리는 언젠가 어디선가 또 만나게 되리란 생각입니다. 당신이 늘 건강하길, 몸과 마음 모두 아프지 않길 바랍니다. 

대선은 끝나도 우리의 여정은 계속될 테니까요.

2022년 3월 5일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길 바라며, 혜미 드림.  

덧붙이는 글 | *이번 편지를 끝으로 '당신곁의 페미니즘'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김혜미>
연재는 처음이라. 마포에 살고, 녹색 정치를 하며, 사회 정책에 관심있게 움직이는 사람. 셰어하우스에 살며 분리수거를 잘 하고싶은 페미니스트. 삶과 이상을 잇고-짓고 싶은 사회복지사. 날기싫은 비행기와 춤추고 싶은 멋쟁이 토마토를 간신히 연주할 수 있는 우쿨렐레 초보. 토마토 음식으로 해장하는 사람.

<유성애>
아픈 몸을 사는 사람, 편집노동자. 스스로 장애인-비장애인 경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20대 초반 한 팔 두 다리가 부러졌던 경험이, 의도치 않게 여자로 태어나 살며 겪었던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소외된 사람들 목소리에 마음이 더 기운다. 성평등한 국회, 성평등한 오늘을 꿈꾸는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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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기자.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자세히 보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A political reporter. I'm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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