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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래 민속신앙 중에 '영등할미'가 있습니다. 바람을 관장하는 신인 영등할미는 음력 2월 초하룻날 하늘에서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살피다가 보름(15일)에 다시 하늘로 올라갑니다. 영등할미가 내려오는 2월 초하룻날은 꽃샘바람이 불고 날이 추운 게 보통입니다.

지난 2월 26일은 음력으로 1월 26일이었는데도 영등할미가 내려오기라도 한 양 바람이 많이 불었어요. 영등할미는 딸을 데리고 올 때도 있고 며느리를 데리고 올 때도 있는데, 딸을 데리고 올 때는 바람이 불고 며느리와 함께 올 때는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영등할미'가 내려왔나, 바람 많이 분 날

26일 토요일 이른 아침에는 비가 살짝 왔지만 바람도 많이 불었어요. 영등할미가 며느리를 데리고 오려다가 딸을 데리고 땅으로 내려올 준비를 한 거였나 봐요. 
  
망월 들판에서 바라본 계룡돈대.
 망월 들판에서 바라본 계룡돈대.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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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2월 26일) 우리는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에 있는 계룡돈대를 만나러 갔습니다. 계룡돈대는 조선 숙종 5년(1679)에 만든 48개 돈대 중 하나로 드넓은 망월평야의 남서쪽 끝자락 언덕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차를 타고 달려 '계룡돈대'에 왔어요. 돈대 근처 빈 터에 차를 세우고 내리려는데 바람이 휙 불어와서 차가 조금 휘청거렸습니다. 이런, 영등할미가 계령돈대에 미리 오셨나 봐요.

강화 최고의 명승지, 계룡돈대

서해를 훑고 온 바람이 거침없이 들이닥칩니다. 드넓은 망월들판을 앞에 두고 전의를 다지는 듯 바람은 사정없이 붑니다. 우리는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계룡돈대로 올라갔어요.

계룡돈대는 바닷가의 언덕 위에 있어요. 천연의 암반 위에 앉아 있는 이 돈대는 주변 풍광이 매우 아름다워서 일 년 사계절 아무 때 가도 다 좋습니다. 특히 가을철의 해 질 무렵이 매우 아름다운데, 가히 강화도의 최고 명승지라 할 만합니다.
 
10월의 '계룡돈대'와 망월 들판
 10월의 "계룡돈대"와 망월 들판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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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끝자락에 계룡돈대에 왔습니다. 340여 년 전인 1679년 이맘때도 이 계룡돈대를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들은 우리처럼 놀러온 게 아니라 일을 하러 왔습니다. 돈대를 쌓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입니다.

돈대는 조선시대에 만든 군사시설입니다. 사방이 훤히 잘 보이는 바닷가의 놓은 곳에 둥글게 또는 네모나게 성을 쌓습니다. 돈대를 한 바퀴 두른 둘레가 대개 120미터 내외이니 테니스 코트 크기와 비슷할 것 같네요.

이 정도 시설물을 만들려면 기술과 장비가 좋은 지금 시절에도 꽤 시간이 많이 걸릴 겁니다. 그런데 300년도 더 전 옛날에 그런 큰 돈대를 한 개도 아니고 무려 48개나 한꺼번에 만들었습니다. 석 달도 안 되는 기간에 다 만들었으니 사람이 한 일이 맞나 싶을 정도로 대단합니다.

숙종은 14세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가 보위를 받았던 1674년 무렵은 여러모로 나라 사정이 어려웠어요. 1636년에 일어난 병자호란의 참화로부터 아직 회복되지 못했는데 여러 해 흉년이 들어 굶어죽는 사람까지 나왔을 정도였습니다.
 
바다에서 본 계룡돈대 모습
 바다에서 본 계룡돈대 모습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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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나라 형편이 어려운 때에 국가적인 큰 공사를 해야 하는가, 숙종은 고민이 컸을 거예요. 그래도 돈대를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나라의 기틀이 흔들리는 상황을 또 다시 맞고 싶지 않았거든요.

왕이 적국의 장수 앞에 무릎을 굻고 항복을 하다니, 두 번 다시 그런 치욕은 당하고 싶지 않다는 결기가 나라 안에 팽배했어요. 그래서 보장지처(保障之處)인 강화도에 48개의 돈대를 쌓는 대공사를 했습니다.

숙종, 강화도에 48개 돈대를

그 전 해(1678년) 가을에 사전 조사를 했습니다. 숙종은 병조판서 김석주를 강화도로 보내 돈대를 쌓을 위치를 조사하고 파악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그해 12월에 돌을 깨는 석수들 400여 명을 강화도로 보냅니다. 그리고 이듬해(1679) 봄에 돈대를 만들 일꾼 8000여 명을 강화로 보내 돈대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두 달 안에 끝낼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돈대 쌓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아 공기가 늦춰졌습니다. 바닷가 언덕이나 산 끄트머리에 돈대를 쌓는 경우는 그래도 쉬웠습니다. 그러나 바닷가 평지나 수로 끝에 돈대를 만들어야 할 경우는 생각보다 일이 훨씬 어려웠습니다.
 
바닷가 언덕에 계룡돈대를 쌓았다.
 바닷가 언덕에 계룡돈대를 쌓았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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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수로가 만나는 지점은 땅이 물렁합니다. 그런 곳에 돈대를 쌓자면 터를 단단하게 다지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돌을 깨어 와서 땅에 쏟아 부었겠지요. 물렁물렁한 갯벌을 단단히 다지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그래서 시일이 예상보다 초과됐습니다.
  
공사 완료 예정 기간이 끝났는데도 작업을 다 마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영군 4000여 명이 더 투입됩니다. 계룡돈대를 만든 경상도 군위현의 어영군들도 그때 강화도로 올라왔습니다.

경상도 군위에서 온 사람들

어영군(御營軍)은 수도 방위와 왕을 호위할 목적으로 조선 인조 때 설립한 군사 조직입니다. 숙종 때는 2만 명 이상의 어영군이 있었습니다. 함경도와 강원도, 황해도의 승군(僧軍) 8000여 명이 투입되어 돈대를 만드는 공사를 했지만 약정 기일 안에 일을 끝마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영군 4300여 명이 강화도로 들어옵니다. 경상도 땅 군위현의 어영군도 그때 강화도로 왔습니다.

군위현의 어영군들에게는 계룡돈대를 쌓는 일이 맡겨졌습니다. 음력으로 4월부터 5월까지였으니 날은 춥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도 그 큰 바위덩이들을 층층이 쌓아 돈대를 만드는 일은 뼈가 삭고 살이 녹아나는 일이었을 겁니다.
 
언제 누가 계룡돈대를 만들었는지 돌에 새겨 남겼다.
 언제 누가 계룡돈대를 만들었는지 돌에 새겨 남겼다.
ⓒ 이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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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개의 돈대를 석 달도 안 되는 기간에 다 쌓았습니다. 강화도 해안을 따라가며 쌓은 돈대입니다. 승병과 어영군 등 모두 1만5000여 명의 인원이 동원된 큰 공사였습니다. 각각의 돈대를 책임지고 쌓은 부대가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48개 각각의 돈대를 어디 소속의 어떤 사람들이 쌓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계룡돈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 언제 쌓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돌에 글자를 새긴 명문(明文)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康熙一十八年四月日慶尙道軍威御營'(강희18년 4월 일 경상도 군위어영) 이렇게 새겨 넣은 돌덩이 하나가 돈대 출입문 근처 성벽의 아래 부분에 있습니다. 

돌에 새긴 기록, 천 년을 가리라

강희(康熙)라면 중국 청나라의 4번째 황제인 강희제 때 사용한 연호입니다. 1662년부터 1722년까지 이 연호를 썼으니, 강희 18년이라면 조선 숙종 5년인 1679년입니다. 그해 4월에 경상도 군위현의 어영군이 계룡돈대를 쌓았다고 이 명문은 말해줍니다.

강화도의 54개 돈대 중에 명문을 남긴 곳은 두 군데입니다. 이곳 계룡돈대와 북쪽의 초루돈대에 명문이 남아 있습니다. 초루돈대는 계룡돈대보다 훨씬 뒤에 만들었습니다.
 
계룡돈대 성첩 너머로 본 바다.
 계룡돈대 성첩 너머로 본 바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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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루돈대에 있는 명문을 살펴보면 강희 59년(1720년) 4월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계룡돈대를 만든 해로부터 40여 년이나 뒤입니다. 그러니 계룡돈대와 같은 시기에 축성된 48개 돈대 중에 명문이 있는 돈대는 계룡돈대가 유일합니다.

세상 모든 것은 태어났다 사라집니다. 그런데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록입니다. 사람의 평생은 길어봐야 백 년인데, 기록은 천 년을 갑니다. 아니, 우리 민족이 존재하는 한 기록들은 영원히 존재할 겁니다.

2월 26일, 영등할미가 찾아온 듯 바람이 많이 불었던 그 날의 계룡돈대는 1679년 4월로 우리를 데려가 주었어요. 세월의 바람과 함께 돈대는 허물어지고 흐트러진 곳이 많지만 기록은 남았습니다. 계룡돈대의 명문은 기록의 힘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계룡돈대는 긴 사각형 형태이며 둘레는 약 108미터임. 규모는 북서-남동쪽이 33m, 북동-남서가 22m 가량이며, 높이는 2-4m 내외임.
 계룡돈대는 긴 사각형 형태이며 둘레는 약 108미터임. 규모는 북서-남동쪽이 33m, 북동-남서가 22m 가량이며, 높이는 2-4m 내외임.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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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돈대( 墩臺) 기본 정보>

. 소재지 :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 282번지
.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2호.
. 크기 및 모양, 규모 : 긴 사각형 형태이며 둘레는 약 108미터임. 규모는 북서-남동쪽이 33m, 북동-남서가 22m 가량이며, 높이는 2-4m 내외임.
. 계룡돈대의 특이 사항 : 돈대 동쪽 벽의 아랫부분에 글자를 새긴 명문(明文)이 남아 있다.
. 근처 돈대 : 1.5km 남쪽에 석각돈대가 있고 북쪽으로 약 1.2킬로미터 거리에 망월돈대가 있음.
. 현재 상황 :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됨. 2008년 발굴 조사, 2009년 복원공사 완료. 여장을 포함, 복원이 거의 온전하게 이루어진 돈대임.
. 주변 볼거리 및 편의시설 : 강화나들길 16코스 '서해황금들녘길' 구간이며 석양 무렵의 해넘이와 새 관찰 등을 할 수 있는 명소이다. 돈대 인근에 너른 빈 터가 있어 주차 가능하나 공용주차장 및 화장실 등 편의시설은 없음.

덧붙이는 글 | <54개 돈대 찾아 강화 한 바퀴, 계룡돈대>의 답사기입니다.
'강화뉴스'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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