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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7회의 연재 칼럼을 통해, 약 3000년 동안 지속되었던 물리적 매체들, 즉, 점토, 죽간, 양피지, 비단, 한지, 종이 등등에 의존한 인쇄지식이 근대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최고조에 이르렀고, 이제 정보화 혁명을 거치면서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에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였다. 그 과정에서 지식과 정보를 다루는 일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리고 지식과 정보를 생산-재생산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학교 교육이 어떤 변화에 직면했는지를 논의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시대의 도래는 실체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동안 손으로 만져지고,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던 매체에서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맡을 수 없고,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도 모르는데, 검색하면 바로 눈앞에 나타나는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과 정보를 낯설게 여기거나, 종이책에 인쇄되어 있던 내용이 그저 화면으로 이동한 것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듯하다.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은 그 형태, 유통 방식, 저장 및 소환 방식, 그리고 결정적으로 생산-재생산 방식과 담당자-종이매체 기반의 인쇄지식과는 완전히 다른 지식이다. 인쇄지식은 근대 산업사회에서 지식인이라 불린 특정한 집단에 의해 생산되고, 유통되었으며, 지식인에 의해 생산된 지식의 일부가 학교와 언론매체 등을 통해 비지식인에게 전달되거나 소개되었다. 하지만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과 정보는 누구나 생산하고, 누구나, 언제나, 어떤 방식으로나 접속하여 활용하고, 곧바로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추가하거나 창조해 낼 수 있는 체제를 성립시켰다. 이제 모두가 지식인이 되거나 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인류가 직접 경험이나 접촉을 통해서 지식과 정보를 얻던 사회에서 객관화, 물체화된 지식, 즉 문자화된 지식과 정보를 통해 직접적인 접촉이나 경험 없이, 공간적, 물리적 거리나 시간에 상관없이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 저장할 수 있고 나아가 재생산할 수 있는 체제, 즉 인쇄지식 체제로 전환한 이후, 여러 번에 걸쳐 매체의 변화가 있었지만, 지식과 정보의 생산-유통-저장-재생산 시스템은 동일성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으로의 전환은 가장 크고 깊고 강력한 지식과 정보 체계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의 생산-재생산 매커니즘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지식인과 비지식인의 구분을 없애고 있다. 따라서, 기존 인쇄지식에 익숙한 세대에게 현대사회의 지식과 정보 체계는 매우 당혹스럽고 이질적인 것으로 느껴지며, 암암리에 거부감을 지니게 되는 것도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패러다임 전환의 어려움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하고 있다. 일례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일컫는 지동설의 등장 이후, 지동설이 정설로 인정받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천동설을 주장하던 학자들이 지동설의 타당성, 과학성을 인정하고 지동설을 지지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천동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서서히 사라져 가는 동안, 신진학자들이 지동설의 과학성과 설명력을 받아들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수가 되면서 서서히 지동설이 정설로 인정받게 되었다'라고 설파하고 있다. 기존의 천동설을 주장하던 학자들은 하늘을 겹겹의 천구로 설명하면서 예외적인 천체 현상을 새로 발견할 때마다, 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더 높은 곳에 또 한 겹의 천구를 늘려갔을 뿐이었다. 결국, 사람이 변한다는 건 죽기보다 어렵다고 말하는 듯하다.

동일한 변화가 학교와 교육 분야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다.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과 정보는 인쇄 지식과는 다른 양상으로 생산-재생산되고, 학습하고 교육되어야 하는데, 근대학교체제는 그런 전환을 이룰 수 없는 시스템을 지니고 있다. 미래학교가 요구하는 변화는 전근대학교에서 근대학교로 전환되던 시기에 경험했던 변화보다 훨씬 더 크고 넓고 깊다.

우리나라에서 학교 형태의 변화가 크게 일어난 시기는 개항을 전후한 1900년경이었다. 그 이전 조선의 학교는 서당이나 서원이었다. 하지만, 전근대학교의 근대학교로의 전환은 빠르게 진행된 측면이 있다. 그 이유는 개항기를 전후한 시기의 국가적, 민족적 위기의식과 근대 기술의 절대적 우위를 경험한 사람들의 적극적인 노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하지만, 더 큰 요인은 전근대학교와 근대학교가 모두 인쇄지식에 토대하고 있는 교육체제라는 측면, 즉, 종이 매체 중심의 지식 관리와 중요 지식의 저장-소환 활동 중심으로 진행되는 교육 활동의 동일성으로 인해 근대학교로의 전환은 부드럽게 진행된 측면이 있다.

물론,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근대식 학교보다는 서당이 많았지만, 형식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서당에서 가르치는 교육내용은 근대식 학교의 내용으로 채워졌다. 이후 근대학교의 양적인 성장은 일제강점기 기간에도 1면 1학교 운동, 민립대학 건립운동과 같이 자발적 촉진의 양상을 띠고 전개되었다. 해방 이후 근대적 산업화와 결합된 한국 근대학교의 팽창은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할 정도의 급속한 팽창과 교육적 성과를 냄으로써, 근대학교의 효율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근대학교와 미래학교 사이에는 범주적 단절의 협곡이 있다

하지만, 지금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시대에 직면한 학교의 변화는 근대학교 도입기에 경험한 변화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가장 큰 어려움은 교육중심에서 학습중심으로 교육운영과 학교시스템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점에서 범주적 단절(categorical break)을 요청한다는 점이다. 근대학교의 주요 역할을 담당하는 교사는 잘 정리되어 있는 교육과정 상의 지식과 정보를 학생에게 잘 전달해주는 교육의 주체였다. 하지만, 미래학교는 근대학교의 주요 역할인 지식과 정보의 전달 자체를 부차적인 역할로 규정하면서, 학생이 주도적으로 지식과 정보를 활용 및 재생산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운용할 것을 요청한다는 점에서 학생, 학습자 중심 학교운영체제를 토대로 한다.

디지털 네트워크에 기반한 미래학교에서는 교사의 지식 정보 상의 우위가 보장되지 않는다. 왜냐면, 돈 탭스코트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에서 설파한 것처럼 학생이 디지털 네트워크 활용에 교사보다 더 능숙하기 때문에, 청소년 세대가 교사 세대보다 지식과 정보의 검색과 활용에서 더 뛰어나다. 교육중심의 근대학교는 교사의 우월적 지위와 역할에 기반하여 운영되지만, 학습중심의 미래학교는 무한한 지식과 정보의 바다에서 더 빠르고 정확하게 검색하고 필요한 곳에 적실하게 활용할 줄 아는 학습자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근대학교의 교육중심, 교사우위 운영체제가 학습중심, 학습자 우선의 운영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은 범주적 단절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두번째 큰 차이점은 전근대학교와 근대학교는 성인기를 준비하는 과정, 직업적 노동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구성된 기관이었다. 특히, 산업사회의 학교는 산업현장에서 정확한 시간 관념을 지니고, 지시와 명령에 따라 정확하게 작업하는 노동자를 훈련시키는 기관으로 설계되고 운영되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준비되지 않은 노동자, 미성숙한 성인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시대에 필요한 학교는 지식과 정보, 기술을 익혀두었다가 나중에 발휘해야하는 과정으로 운영될 필요가 없다. 학습자는 바로 검색하고 즉시 적용하면서, 지식과 정보의 유용성, 효과성을 검증, 확인, 재생산하는 과정을 수행하게 된다. 즉, 배워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활용하고 적용하면서 배우는 시대가 되었으므로, 미래학교는 활용과 실천의 플랫폼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미래학교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프로젝트" 플랫폼

현대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시대의 학교, 포노 사피엔스 학교, 미래학교는 사실 학교가 아니다. 인쇄지식 시대의 학교와는 전혀 다른 지식과 정보의 생산-재생산 시스템 하에서 작동하는 학교가 미래학교이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가 경험했고, 운영하고 있는 근대학교와 같은 학교라고 할 수 없다. 근대학교와는 달리, 교사가 주어진 지식체계를 따라 학생을 가르치는 학교보다는, 학생이 배우고 싶은 분야를 중심으로 스스로 찾고 활용하면서 실천하는 과정을 교사는 돕는 학교가 더 적실한 시대가 된 것이다. 교사와 학생의 역할이 반전된 공간, 학교의 중심점이 지식에서 학생의 욕망과 관심으로 변경된 관점, 교과목을 따라 구성되는 수업보다는 학생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시간을 요구하는 학교가 미래학교이다.

언제나 새로운 것은 연약하고 어설퍼 보이고 취약하고 낯설다. 하지만, 새싹이 추위를 이기고 성장하여 아름드리 나무가 되고 숲이 되듯이, 지금 우리는 작고 약하지만, 미래학교를 먼저 열어가는 여러 사례를 볼 수 있다. 일찍이 많은 대안학교들이 근대학교를 벗어나려는 탈근대학교 운동을 수행했지만, 물리적, 기술적, 시대적 한계로 인해 소수에 머물렀을 뿐만 아니라, 근대사회를 넘어서게 하는 기술적, 문화적 변화를 수용하는데 소극적인 한계를 노정하였다. 최근 기술적, 문화적 장점을 적극 활용하는 대안학교들이 생겨나고 있다. 국외에서는 '미네르바 스쿨'이 대표적이고, 국내에서는 '거꾸로 캠퍼스'가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시대의 새로운 학습플랫폼으로서 미래학교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마크 프렌스키는 이제 모든 학교교육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프로젝트"(Education to Better their world)로 구성되어야 하며, 모든 진학과 취업은 개개인의 프로젝트 포트폴리오에 기반하여 수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범주적 단절과 퀀텀 점프가 절실한 한국 교육

한국의 근대학교는 근대학교의 틀과 시스템에 전근대적 내용을 담아 운영해왔다. 성리학 대신에 국가교육과정을, 사서삼경 대신에 국검정 교과서를, 과거제 대신에 수능시험과 고시제도를 대신 운영하고 있을 뿐, 지식이란 도서관에 저장되고 책을 통해 유통되며 결국은 개개인의 머리에 저장되어야한다는 신념에 기초하고 있는 학교체제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학교는 전근대적이다. 이제 지식과 정보는 클라우드와 네트워크에서 생산-저장-유통-재생산이 동시에 일어나며, 유무선 인터넷을 통해 스마트 기기를 거쳐 개개인에게 스트리밍되는 서비스로 전환되었다. 지금 한국 교육은 전근대적 교육체제에서 근대적 운영체제를 뛰어넘어 미래학교 체제로 도약해야하는 도전에 직면했다. 따라서, 전근대적 학교를 탈피하려는 근대적 교육운동은 모두 주소를 잘못 찾은 헛된 노력에 불과하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유선통신망을 건너뛰어 바로 무선 모바일 통신체제로 직진하듯이, 중국이 신용카드 체제를 건너뛰고 바로 모바일 결제시스템으로 진입했듯이, 이제 우리 교육도 근대적 교육이념을 구현하려는 차원을 뛰어넘어 곧바로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시대에 적합한 미래학교로 도약해야한다. 근대적 학교와 교육이념에 머문 그 어떤 시도도 흐릿하고 모호하며 계속 헛도는 느낌을 떨칠 수 없을 것이다. 근대학교와의 범주적 단절이 필요하고, 전근대적 방식에서 디지털 네크워크 방식으로의 퀀텀 점프(Quantum Jump)가 한국 교육에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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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울시교육청에서 근무 중. 플로리다주립대 정책학 박사: 「차터스쿨이 공립학교의 학업성취도 및 인종분리에 미치는 영향 분석」 (2012) 강의: 순천대 객원교수(2015), 숙명여대 및 광주교대 등 강의 저서: 《교육을 교육답게》(2018), 《포노사피엔스 학교의 탄생》(2020), 공역서 《교육은 어떻게 사회를 지배하는가》(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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