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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며칠 전 역할의 변동을 맞이했습니다. 첫째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이지요. 학부모라는 역할이 제게 새로이 주어졌습니다. 딸아이에게 학생이라는 신분이 낯선 것처럼, 부모에게도 학부모라는 역할이 낯섭니다. 먼저 경험한 선배들에게 이것저것을 묻고 다녔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지에 관한 정답은 없어보였습니다. 묻고 답하는 과정 중에 짙어져만 가는 생각은 '그 답들이 각양각색이로구나'라는 것뿐이었습니다.

학부모가 가진 공포와 불안

우리 아이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성인이 되고 난 후 제 밥벌이는 스스로 안정적으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이런 원론에 합의한 상태에서 각각의 각론들을 펼치고 있습니다. 각론이라는 게 말이 좋아 각론이지, 초보 학부모의 현실에서는 어서 결정해야 할 숙제로만 다가옵니다. 첫째, 학원을 보낼 것이냐. 둘째, 어떤 학원을 보낼 것이냐. 이 간단한 이 문제들이 어려운 이유는, 답을 내리는 과정에서 자신이 가진 공포와 불안, 그리고 현실적인 제약 조건들과 만나기 때문일 겁니다.

먼저 자신이 가진 공포와 불안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이가 성인이 되고난 후의 밥벌이로부터 출발합니다. 학부모들은 좋은 일터와 나쁜 일터,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린 노동신분사회에서 내 아이가 좋은 일터의 정규직 신분을 획득해야 한다는 장기적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 장기적 과제 하에서 좋은 대학 입학, 좋은 고등학교가 나오고, 이것들을 위한 사교육 몰입 필요성이 도출됩니다. 둘째는 아이를 경쟁체제에 몰입시켰을 때의 불안감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경쟁체제로 편입시키는 것이 올바르냐에 대한 윤리적 불안감은 차치하더라도, 우리 아이가 과연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느냐에 관한 것입니다. 너무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불안감, 어렸을 때는 그저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바람, 어린 시절의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 평생을 갈 것이라는 생각들이 우리를 갈팡질팡하게 합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현실적인 조건들이 이 공포와 불안을 정식으로 맞닥들이도록 할 수도 없다는 점입니다. 한정된 소득으로는 학원을 돌릴 수도 대안학교를 보낼 수도 없습니다. 맞벌이 가정에서는 학원을 보내지 않을 도리도 없습니다. 현실적인 조건에 개의치 않고 공포와 불안에만 집중해서 아이의 교육에 답을 내릴 수 있는 가정은,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좋은 조건의 교육 환경일 겁니다.

대학입시가 공정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통지일인 2021년 12월 10일 오전 경남 창원시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이 성적표를 받은 후 확인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통지일인 2021년 12월 10일 오전 경남 창원시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이 성적표를 받은 후 확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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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있으면 제20대 대통령이 탄생합니다. 이 기사가 게재될 시점에는 선거가 끝나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선거가 그렇듯이 이번 대통령 선거 역시 그 나름대로의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갓 학부모된 입장에서 주목한 것은 역대 대선에서 주요 이슈 중 하나였던 대입제도에 관한 논쟁이 이번에는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각 후보 진영이 이 문제에 관심이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공약집에는 나오니까요.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더라도 이전에 비해서는 그 고민 정도가 많이 약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대학입시와 관련해서는 공정성을 강화하겠다, 그 방법으로는 정시를 확대하고 수능 난이도를 조절하겠다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지금 체제에서 대학입시에서의 공정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교육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정성을 지고지순한 선(善)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불공정한 것보다야 좋겠습니다만, 공정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전망에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입시 공정성이 확보된다고 할지라도 대학의 서열화를 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주장하는 대학의 서열화 해체는 돈키호테가 노래한 '불가능한 꿈'에 가깝습니다. 대학 입시를 아주 오래 전 중고등학교 입시처럼 거주지에 기초한 소위 '뺑뺑이'로 전환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요.

대학의 서열화는 대학 교육과정 전후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먼저, 출신 학교가 일자리의 질을 좌우하게 됩니다. 혹자는 소위 명문대 간판이 좋은 직장을 보장해주는 시대는 지났다고도 이야기하지만,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명문대 출신도 그러할진대, 그렇지 못한 이들이 좋은 일자리를 갖는 건 더 어려워졌다고 말입니다.

출신 대학이 일자리의 질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고등학교 때까지 해야할 일은 명확해집니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애를 쓰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열심히 학원을, 남들보다 더 좋은 학원, 더 비싼 학원을 다니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이 더 좋은 학원, 더 비싼 학원을 다닐 수는 없습니다. 가계의 소득과 자산은 모두가 다르기에, 그 가계의 상황에 맞는 학원을 다닐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더 좋은"과 "더 비싼"은 비교를 전제로 한 것이니, 사교육은 결코 동일하게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게 과연 사교육 뿐일까요? 공교육인 학교에서도 사립은 국공립보다 더 많은 지출을 요구합니다.

결국은 어렸을 때부터 어떤 교육을 받고 자랄 수 있었느냐가 성년 이후의 일자리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느냐, 출생의 운(運)이 일자리까지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경제력이 부족한 집안에서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둘 중의 하나 이상이 받쳐줘야 합니다. 머리가 좋던지, 매우 많은 노력을 해야하던지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대학입시가 공정하게 치루어진다고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공정성이 확보될 수 없음을 알려줍니다. 좋은 머리는 타고난 것이기에 그렇지 못한 이들과의 경쟁이 공정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가계의 경제상황으로 인해 더 많이 노력해야한다는 것도 공정한 경쟁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이>는 개인 차원에서나 의미있을 뿐, 국가사회 공동체 차원에서는 이러한 경기가 잘못된 것이라며 휘슬을 불어야 합니다.

'유능력자 제비뽑기'라는 대안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방법은 없을까요?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 만난 것이 마이클 센델(Michael J. Sandel)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제안한 '유능력자 제비뽑기'입니다. 이 제안을 간략히 요약한다면, ① 수학능력자들을 선별한 후 ② 그들을 대상으로 한 추첨을 통해 입학생을 선발하자는 것입니다. 수학능력자 선별 과정을 통해 능력주의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최종적인 선발은 운(運)에 맡기자는 것이죠. 이 제도의 장점에 관한 설명은 마이클 센델의 말을 직접 인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유능자를 제비뽑기로 뽑자는 대안의 가장 유력한 근거는 그렇게 함으로써 능력의 폭정과 맞설 수 있다는 점이다. 일정 관문을 넘는 조건으로만 능력을 보고, 나머지는 운이 결정토록 하는 일은 고등학교 시절의 건강함을 어느 정도 되찾아줄 것이다. 적어도 어느 정도는 영혼까지 끌어 모아 스펙을 채우고 강박적으로 완벽을 추구하는 경험에서 해방시켜줄 것이다. 또한 능력주의적 오만에서 바람을 뺄 것이다. 결국 어찌되었던 정상에 오른 사람은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가 아니라 운이 좋았던 것이며, 탈락한 사람이나 자신이나 엇비슷한 가정환경과 천부적 재능, 그리고 도덕적 자격을 갖추고 있음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마이클 센델(황규진 옮김), <공정하다는 착각>, 와이즈베리, 2020, 290면)

이러한 선발방식은 마이클 센델의 말처럼 나의 성취가 나만의 재능과 노력으로만 달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만듭니다. 나의 성공에 운(運)이 작용했다는 것은 다른 이의 실패에도 운(運)이 작용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듭니다. 부수적이지만 중요한 결과로는 이러한 선발방식으로 인해 대학 서열화가 어느 정도 완화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A대학에 떨어졌지만 B대학에 붙은 경우, 지금의 입시는 A대학에 입학할 능력이 안 되지만 B대학에만 입학할 능력을 갖춘 것으로 인식됩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학벌주의의 전제가 되는 A대학 졸업자의 능력이 B대학 졸업자보다 높다는 인식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유능력자 제비뽑기' 선발에서는, A대학에 떨어졌지만 B대학에 붙은 경우에 그 원인은 운(運)에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학벌주의의 전제를 무너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학벌주의의 힘이 약해진다면 입시를 위한 경쟁 역시 완화될 것입니다.

운(運)을 인정하기 위한 대학입시 정책방안

'유능력자 제비뽑기'를 우리의 현실에서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몇 가지 정책방안을 생각해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수능시험의 영역별 절대평가화 : 지금의 영어시험처럼 각 과목의 등급을 절대평가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절대평가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목표로 하는 대학과 학과를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학습 정도를 대강이나마 예측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입시전문가들은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꾸면 변별력에 문제가 생긴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능력자 제비뽑기'에서의 수능은 변별력을 확보하는 것이 아닌 능력 유무의 확인을 목적으로 하기에 이러한 비판은 무색해질 것입니다.

② 연 2회 이상의 수능시험 실시를 통한 자격고사화 : 수능시험의 목적이 수학능력의 유무 확인에 있으므로, 동일한 조건에서의 연 1회 시험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이기에 모든 수험생의 응시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수의 시험기회를 부여하고, 영역별 좋은 등급의 성적을 가져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의 수능시험 1차점수가 '국어 2등급, 수학 4등급, 영어 3등급', 2차점수가 '국어 3등급, 수학 3등급, 영어 2등급'이었다면, 그는 대학입시에서 '국어 2등급, 수학 3등급, 영어 2등급'을 제출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어떤 학생이 1차 수능시험에서 국어를 1등급 맞았다면, 2차 수능시험에서는 국어를 응시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③ 대학의 전공별 응시자격 설정 : 대학은 자율적으로 전공에 따라 응시자격을 설정합니다. 대학은 이 응시자격을 통해 입학 이후의 교수(敎授) 수준을 정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응시자격은 전공에 따라 일원화되어야 하며, 사회적배려자 전형이라고 할지라도 달라질 수 없습니다. 전공을 수학할 수 있는 능력요건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배려자 등은 응시자격이 아닌 추첨단계에서 우선 추첨을 하게 됩니다.

④ 대학의 합격자 선발 : 대학은 ⅰ) 응시자 중 응시자격을 갖춘 모든 사람을 수학능력자로 걸러낸 후, ⅱ) 수학능력자 중 추첨을 통해 합격자를 선발합니다. 추가합격자 선발은 가능하지만 그 대상은 이미 걸러진 수학능력자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이는 대학의 무조건적인 응시자격 상향화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이 제도가 논의의 수면 위로 올라올 경우 제기될 반론 중 귀기울여 들어볼만한 것은 학업능력 저하에 관한 우려일 것입니다. 마이클 센델은 이에 관해 적어도 상위권 대학에서는 그 수준 차이가 크게 나지 않을 것이라는 개인적 견해를 밝힙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만일 학업 능력 저하가 크게 걱정된다면 수능의 난이도를 조절하면 될 일이기도 합니다.

대학입시는 그것만을 보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흔히 교육을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합니다. 하지만 교육에만 집중에서는 올바른 계획이 도출되기 어렵습니다. 사회 전체에 대한 고민 가운데 교육 정책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십년이 가든 백년이 가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정부에서는 이러한 교육 정책이, 대학입시 정책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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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노동과 육아, 연구와 집필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을 기본적인 연구주제로 삼고 있으며, 최근에는 장애와 미디어까지 관심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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