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외에서 선거철이 되면 언론사들이 으레 지지하는 후보를 공개적으로 천명하곤 한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에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조 바이든 후보에 대한 지지를, 2016년 대선 때에는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리뷰저널이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 대한 지지를 밝힌 바 있다.

한국은 어떨까? 역대 선거들을 살펴보면 규모가 큰 언론들이 한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적은 좀체 찾아볼 수 없다. 그 이유는 한 후보에 대한 지지를 밝히는 순간 독자의 반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는 물론이거니와, 자신들이 유권자들로부터 언론의 중립성을 잃었다고 비춰질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언론의 핵심은 사실성과 객관성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3) 등의 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력으로 평단의 찬사를 받았던 프랑스 배우 레아 세두가 주연을 맡고 브루노 뒤몽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프랑스>(2021)는 스타 기자이자 뉴스 채널 진행자인 주인공 프랑스 드 뫼르를 통해 날조되고 뒤틀린 신문 기사들과 그런 기사를 생산해 내는 언론을 비판한다. 나아가 프랑스 미디어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는 이 영화는 기자와 언론의 주관성이 뉴스와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지적한다.
 
<프랑스> 스틸컷 프랑스 드 뫼르가 취재하고 있다.

▲ <프랑스> 스틸컷 프랑스 드 뫼르가 취재하고 있다. ⓒ Indie Sales


프랑스 드 뫼르는 극중에서 TV 뉴스 프로그램의 간판 스타로 사건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취재한다. 간담회에서 손을 들지 않고도 대통령 마크롱에게 제일 먼저 지목되고, 파파라치들과 팬들이 항상 따라붙을 정도로 그의 기자로서의 명성은 대단하다.

그의 보도들은 겉보기에는 매우 진실되고 객관적인 것처럼 비춰진다. 그러나 진실은 프랑스 드 뫼르의 입맛에 맞게 더 자극적이고 센세이셔널하도록 재편집되고, 재구성되고, 무대화된다. 그의 취재 태도는 다분히 기만적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그림이 나오도록 취재 인물들과 스태프들에게 이동 동선과 행동, 대사를 지시한다. 난민들의 보트를 타고 함께 이동한 것처럼 카메라에 담지만 정작 카메라가 꺼진 뒤에는 큰 배로 옮겨 타고 취재 영상을 짜깁기해 마치 허름한 배에서 난민들과 계속 함께했던 것처럼 꾸민다.

프랑스는 실수로 운전 중에 오토바이를 치는 사고를 내고서 커리어의 전환점을 맞는다. 자신이 꾸준히 감행해 왔던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과장되고 조작된 기사'의 대상이 된다. 파파라치들은 연일 사고 소식을 보도하고, 프랑스는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회의감을 느낀다. 남편과 아이도 위로가 되지 못하고,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결국 그는 언론인으로서의 모든 일을 중단하고 휴식기에 들어가지만, 그가 겪는 정신적인 고통은 떠나지 않는다. 급기야는 요양을 위해 떠난 치료소에서 남기자와 불륜을 저지르는 등의 일탈적 행동을 계속한다.

그 뒤 프랑스는 미디어에 재기한다. 사고로 남편과 아이를 잃고 잠시 상심에 빠지기도 하지만 결국 그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는 그의 위선적 취재를 계속하고 결국 현실을 살아간다. 진보와 이상은 없다. 겪었던 모든 일들은 그를 발전시키지 못한다. 정부(情夫)였던 남기자의 스토킹에도 불구하고 그와 재회한 프랑스가 그의 어깨의 기대 씁쓸한 표정을 짓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프랑스의 취재에서 핍진성이란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뉴스는 뉴스가 아니다. 그것은 그저 하나의 픽션이자 스토리일 뿐이다. 그의 보도는 핍진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남은 부분은 주관성과 개인적 견해, 그리고 왜곡이 채워진다. 뒤몽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근대 민주주의의 상징인 프랑스라는 국가의 미디어 시스템이 얼마나 변질되고 진실을 오도하고 있는지에 대해 풍자하며, 언론의 기본 소임인 '객관성'을 강조한다.

언론인은 하나의 예술가와 같다

<프랑스>가 언론의 결핍된 객관성과 진실성에 대해 비판하며 주관적 저널리즘의 행태를 비판했다면,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2021)는 전혀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오히려, <프렌치 디스패치>는 기자 한 명 한 명을 예술가로 추앙하며 기자의 주관적 시선이 기사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한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편집장의 사망으로 폐간될 잡지인 '더 프렌치 디스패치 오브 더 리버티, 캔자스 이브닝 선'의 마지막 호의 세 특집 기사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그려 낸다. 앤더슨 감독 특유의 아기자기한 영상미와 함께, 기자들이 각 특집에서 주관적으로 그려 내는 스토리들에 초점을 맞춘다.
 
<프렌치 디스패치> 스틸컷 '더 프렌치 디스패치 오브 더 리버티, 캔자스 이브닝 선'의 기자들과 스태프들의 모습.

▲ <프렌치 디스패치> 스틸컷 '더 프렌치 디스패치 오브 더 리버티, 캔자스 이브닝 선'의 기자들과 스태프들의 모습. ⓒ 20th Century Studios


<프렌치 디스패치>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프랑스 도시 앙뉘는, 실제로는 그다지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전철에는 쥐들이 가득하고, 아이들은 술에 취해 노인들을 폭행하고, 해가 지면 매춘부들이 길을 메운다. 강에는 자살한 사람들의 시체가 종종 떠다니고, 실패한 노인들은 판잣집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기자인 허브세인트 새저랙(오웬 윌슨 분)은 앙뉘의 아름다움을 발굴해 도시를 매우 매력적으로 서술한다. 다른 특종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영화 안의 두 번째 특종인 '선언문 개정'에서 기자 루신다 크레멘츠(프란시스 맥도맨드 분)는 학생 운동을 하는 리더 제피렐리(티모테 샬라메 분)의 선언문을 손봐 준다. 그 과정에서 최루탄과 폭죽이 날아다니는 광장에 서 여학생 줄리엣(리나 쿠드리 분)과 말싸움을 하는 장면이 상당히 코믹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현실 속에서는 학생과 성인 기자의 감정 싸움일 뿐이며 코믹한 요소는 어디에도 없다.

영화 속에서 기자는 현실 사건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렌즈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자들은 각 특종에서 사건과 특정한 관계를 맺는다. 첫 번째 특종 '콘크리트 걸작'에선 기자 J. K. L. 베렌슨(틸다 스윈튼 분)은 취재 대상인 예술가 모세 로젠탈러(베니시오 델 토로 분)와 연인이었고, 두 번째 특종 '선언문 개정'에선 기자 루신다 크레멘츠가 리더인 제피렐리와 연인으로서 줄리엣과 미묘한 삼각 관계를 이루는 모습이 나타난다. 마지막 특종인 '경찰 시장의 전용 식당'에서는 기자 로벅 라이트(제프리 라이트 분)가 동성애자로서 갖는 소수자성과 셰프 네스카피에 경위(스티브 박 분)가 동양인으로서 겪는 소수자성이 접목되어 두 사람이 연대감을 느끼는 장면이 등장한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영화 안에서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상술한 말싸움 장면에서 줄리엣은 루신다 크레멘츠가 선언문을 수정해 준 것에 딴지를 걸며, 그가 기자로서의 '언론 중립성'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옆의 두 명의 남학생은 줄리엣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런 건 없어."
"언론의 중립성은 비현실적 개념이야."


웨스 앤더슨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이 두 대사에 함축되어 있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기자들을 작품(기사)을 창조해내는 '예술가'로서 추앙하고, 그 안에 담긴 주관과 해석, 그리고 예술성을 예찬하고 싶었던 것이다.

저널리즘이 지향해야 할 길은 어디인가?

과연 언론은 <프랑스>의 지적처럼 객관성과 현실의 반영을 필두로 주관을 배제하고 사실 전달을 최우선해야 하는가? 아니면 <프렌치 디스패치>의 주제처럼 기자 한 명 한 명의 주관성과 예술성을 존중해야 하는가? 올바르고 가치 있는 저널리즘을 위해 언론계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어디인지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프랑스> : ★★★★
<프렌치 디스패치> : ★★★★☆
저널리즘 프랑스 브루노 뒤몽 프렌치 디스패치 웨스 앤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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