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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 아침, 비몽사몽한 상태로 휴대전화를 열었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개관'이라는 큼지막한 문구가 박힌 포스터가 카카오톡 메시지로 날아와 있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투어 가이드북 <임정로드 4000km>의 저자인 <오마이뉴스> 김종훈 기자가 보낸 것이었다. 바로 답장을 보냈다. "오, 드디어!"

많은 이들이 그랬겠지만 나 역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의 개관을 손꼽아 기다렸다.

나는 지난 2013년 7월, 2014년 1월, 2020년 1월 세 차례에 걸쳐 임시정부의 노정을 좇아 중국으로 '임정로드' 답사를 다녀왔다. 2019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김종훈 기자와 의기투합해 <임정로드 4000km>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니 임정기념관 개관 소식에 가슴이 뛸 수밖에.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 전시 중인 <임정로드 4000km>. 출판사에 다니던 시절 나도 기획에 참여한 바 있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 전시 중인 <임정로드 4000km>. 출판사에 다니던 시절 나도 기획에 참여한 바 있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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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다음 주에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있어 일단 밀린 일정부터 처리하고 좀 느긋하게 방문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개관 직후 방문한 김종훈 기자가 보내온 사진들을 보면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앉아서 논문을 보면서도 정신은 이미 임정기념관에 가 있었다. 차라리 빨리 가서 보고 오자는 심산으로 짬을 내어 임정기념관으로 향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온전히 기념하는 공간

임정기념관이 있는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에 내리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었다. 그렇다. 임정기념관은 일제의 탄압으로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된 서대문형무소와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상징적인 면에서 최고의 자리 선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구에 도착하자 4층 규모의 거대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건물이 통째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기념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에 벌써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안내데스크에 있던 직원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3층-4층 순서로 상설전시를 관람한 뒤 다시 1층으로 내려와 특별전시를 보면 된다"고 친절히 안내해줬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전경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전경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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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전시는 총 3개의 콘셉트로 구성돼 있다.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을 다룬 '군주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1관), 최초의 국회인 임시의정원과 윤봉길 의거 이후 항저우-전장-창사-광저우-류저우-치장-충칭을 옮겨다니며 고군분투한 임시정부의 이야기를 담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사람들'(2관), 마지막으로 오늘날 대한민국이 임시정부를 어떻게 계승해왔는지 소개하는 '임시정부에서 정부로'(3관)이다.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의 입구를 본딴 전시실 입구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의 입구를 본딴 전시실 입구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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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건립은 문재인 정부의 역점 사업이기도 했고, 개관 전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던 만큼 공을 들인 티가 역력했다. 상설전시실에서는 문서·군복·무기·포스터·배지 등 임시정부의 역사를 증명하는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돼 있어 당시의 생생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1관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키네틱 아트는 황홀한 느낌마저 안겨줬다. 200여 개의 볼(Ball)이 군주의 나라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왕(王)의 모양을 이뤘다가 산산이 깨지고 다시 국민의 나라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민(民)의 모양으로 완성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2백여 개의 볼들은 3.1운동 당시 참여한 200여 만 명의 한민족을 상징한단다).
   
군주의 나라(王)에서 국민의 나라(民)로 바뀌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키네틱 아트
 군주의 나라(王)에서 국민의 나라(民)로 바뀌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키네틱 아트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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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관에서는 태극기·애국가·개천절 등 대한민국이 임시정부를 계승한 근거들을 나열하면서 '대한제국-대한민국 임시정부-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법통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해놨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여전히 임시정부의 의미를 폄훼하고 부정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의미 있는 전시 구성이었다. 그들의 손을 끌고 와서 '이걸 보고도 임시정부를 부정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과연 그들은 뭐라고 답할까?
  
김구 서명문 태극기 (1941)
 김구 서명문 태극기 (1941)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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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1층에서 열리는 개관특별전('환국, 대한민국 임시정부 돌아오다 1919-2022')에서 전시 중인 김붕준 선생의 양복과 트렁크였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양복과 초등학생 키만한 트렁크를 보면서 이 무거운 짐을 이고 지며 임정로드 4000km를 걸었을 임시정부 선열들의 모습이 연상되어 가슴이 뭉클해졌던 것이다(개관특별전은 6월 26일까지).
 
독립운동가 김붕준 선생의 양복과 트렁크
 독립운동가 김붕준 선생의 양복과 트렁크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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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오류와 아쉬웠던 점들도 눈에 띄어

그러나 아쉬운 점도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회인 임시의정원 코너가 그랬다. 

전시실에서는 임시정부가 이념을 넘어 하나가 됐음을 강조하기 위해 한국독립당(여당)과 조선민족혁명당(야당)이 마침내 좌우합작을 이뤄 연합정부가 출범하게 되는 과정을 길게 설명하고 있었다.
 
좌우연합을 이룬 제34회 임시의정원 의원 일동 (1942.10.25)
 좌우연합을 이룬 제34회 임시의정원 의원 일동 (1942.10.25)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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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임시의정원에는 양당뿐만 아니라 조선민족당 해외전권위원회·조선민족혁명자통일동맹·신한민주당 등 다양한 정당들이 활동했었다. 일부 정당은 조선민족혁명당에 흡수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한국독립당과 조선민족혁명당이 주도하는 질서를 거부하고 뛰쳐나오는 이들도 있었다.

해방 직전 조직된 신한민주당이 대표적인 사례다. 1945년 2월 홍진·유동열·김붕준·문일민 등이 조직한 신한민주당은 기존의 한국독립당 및 조선민족혁명당에서 탈당한 인사들이 '제3당'을 표방하며 조직한 정당이었다.

이들은 사실상 한국독립당 일당독재와 다름 없던 임시정부 내각을 비판하면서 임시의정원 내에서 강렬한 대여투쟁을 전개했다. 또 독자적으로 연합군과 연계한 대일항쟁을 추진했을 뿐만 아니라 국내외 각지의 모든 독립운동가들을 대표할 수 있는 '독립운동자대표자대회'를 소집함으로써 임시정부를 확대 개조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이처럼 임시의정원에서 또 다른 목소리를 냈던 '군소정당'들은 그 자체로 임시의정원이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갖고 있으면서 의회민주주의가 활발히 작동하는 공간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럼에도 이들의 역할에 대한 언급이 전무하다시피 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 전시 중인 '정당 계보도'. 해방 전후 임시의정원에서 활약한 군소정당들은 생략되어 있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 전시 중인 "정당 계보도". 해방 전후 임시의정원에서 활약한 군소정당들은 생략되어 있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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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가(독립군가)'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코너 역시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내가 알고 있던 원곡이 아닌 인디밴드들이 편곡한 버전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곡들은 원곡과 전혀 다른 곡조였다.

물론 독립군가를 더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젊은 감각으로 리메이크하는 시도는 대찬성이다(나도 크라잉넛의 독립군가를 즐겨 듣는다). 다만 원곡의 곡조 역시 역사적 의미가 있기에 당시 독립군들이 짓고 불렀던 버전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리메이크 버전과 오리지널 버전을 비교하며 들어볼 수 있도록 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전시 설명에서 일부 오류도 눈에 띄었다. 대표적으로 1관 의열투쟁 코너에 걸린 안경신 지사의 사진은 작년에 언론보도 등을 통해 근거 없는 사진으로 밝혀진 바 있었기에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된다(관련 기사: 독립운동가 안경신으로 알려진 사진 속 여성의 정체 http://omn.kr/1vb5k ).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안경신 의사'로 소개하고 있는 사진. 그러나 학계에서는 해당 인물이 안경신 의사라는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안경신 의사"로 소개하고 있는 사진. 그러나 학계에서는 해당 인물이 안경신 의사라는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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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 바란다

올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3주년이 되는 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된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 무색하게도 우리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훌쩍 넘긴 뒤에야 비로소 임시정부를 기념하는 공간을 세웠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환국 당시 모습을 담은 전시물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환국 당시 모습을 담은 전시물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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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통 끝에 어렵사리 문을 연 기념관인 만큼, 그리고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만큼 관람객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보다 많은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공간으로 발돋움해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역사수정주의 세력에 맞서 임시정부의 올바른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서라도 자라나는 세대를 대상으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컨대 청소년들이 직접 임시의정원 의원이 돼 의회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배워보는 '청소년 모의 임시의정원'과 같은 프로그램은 어떨까?

또 임시정부 연구자들을 위한 지원사업도 마련해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구와 선양을 위한 허브로 자리잡기를 기원해본다.

덧붙이는 글 | 관람시간: 오전 10시 ~ 오후 6시
휴관일: 매주 월요일
관람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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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 수료(독립운동사 전공) / 형의권·팔괘장·활쏘기(국궁)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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