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0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노동자, 시민들은 자본의 이익이 중심인 사회가 아니라, 상호 돌봄하며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소망하고 있지만, 현재 대선 국면에서는 상호 돌봄은 커녕 또 다시 성장 중심, 자본 중심의 경제를 구축하겠다는 공약들만 난무한다. 노동자도, 여성도 보이지 않는 대선을 앞두고 여성노동자회는 기획기사 <성평등노동 없는 대선, 여성노동자가 말한다>를 통해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7회의 기획 연재 기사를 통해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알리고,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대선 의제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자 한다.[편집자말]

우리가 디지털기기를 통해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웹소설, 웹툰, 일러스트 등 다양한 디지털콘텐츠가 K-콘텐츠 열풍을 타고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인기와는 다르게 이를 창작하는 노동자들이 불공정한 수익배분, 과도한 노동량, 미약한 사회보장, 사이버불링, 페미니즘 사상검증 등 매우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여 있단 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나마 작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네이버와 카카오의 과도한 수수료가 다뤄져 대중에게 부각된 건 다행스런 일이다. 이 중에서도 웹툰의 경우는 매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을 통해 실태조사가 발표되고 관련 연구도 많지만, 웹소설 영역은 비교적 관심도가 덜한 편이다.

이에 웹소설 작가인 이수경 전국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지회장을 최근 만나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의 노동과정, 작업환경 등 웹소설을 쓰며 겪은 경험과 생각을 나누었다.

어릴 때부터 작가가 꿈이었던 이 지회장은 데뷔 6년차다. 작가를 꿈꾼 건 소설가였던 외할아버지 영향도 있었다. 작가가 돼도 돈을 못 벌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꿈을 버릴 수가 없었다.
 

외할아버지께 제가 꿈이 작가라고 하니까 굶어 죽기 십상이라고 하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외할아버지도 무명소설가여서 집안이 받쳐 주지 않으면 할 수 없었던 거죠. 소설로는 벌어들이는 수입이 없으니까 자비로 출판하고 그러셨거든요... 저한테도 정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으면 차라리 기자를 해라, 작가는 안 된다. 그걸 어릴 때 듣고 머릿속에 박혀 있는 거예요...할까 말까 계속 고민했는데 결혼 후 어느 정도 집안 상황이 안정이 되니까 이러면 좀 할 수 있지 않을까.

 
웹소설 작가가 되는 방법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 이 지회장처럼 출판사에 투고하는 방법, 둘째는 단행본을 내기 전에 무료연재 사이트에 연재를 하고 거기서 선호작품수(즐겨찾기)가 일정 이상이 되고 상업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는 경우인데, 이것이 가장 많은 데뷔 경로라고 한다. 마지막은 많지는 않지만 공모전에서 당선되는 경우다. 그러나 공모전에서 당선이 되어도 공모전 업체가 폐업을 한다든지 하면 시간만 보내다 일은 시작도 못 해보고 직업을 옮기는 경우도 있다. 보다 나은 출판사를 선택할 위치도 아니고 업계 관행을 잘 모르는 신인작가의 경우 부당한 조건으로 계약을 하고도 어쩔 수 없이 몇 년을 그 출판사에 매여 일하기도 한다. 그런 경우에 비하면 이 지회장의 시작은 꽤 운이 좋았다.
 

아는 작가님이 계약 조건이 그나마 괜찮다 싶은 출판사 리스트를 쫙 주셨어요. 거기서 6~7군데 투고를 했죠. 그중에 3군데서 연락이 와서 그래도 가장 좋은 곳과 계약했고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저는 이미 데뷔하신 작가님께서 굉장히 많은 조언을 해 주고 자신의 일처럼 많이 알아봐 주셔서 그나마 쉽게 데뷔를 한 편이에요.

 
그러나 주 3회~ 주 5회의 살인적 연재주기는 살림과 육아를 병행하는 이 지회장 입장에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구조였다. 이는 가정에서 주로 돌봄을 담당하는 여성 창작자들의 연재가 더 힘든 이유다. 단행본이라고 해서 낫지는 않다. 단행본 출간 전 이루어지는 무료게시에 대해서 플랫폼은 아무런 대가도 지급하지 않으며, 여기에 프로모션(이벤트)까지 붙게 되면 안 그래도 30%로 과도하게 높은 수수료율은 50% 정도까지 높아진다.
 

예전엔 연재도 했는데, 지금은 단행본 위주로 작업하고 있어요. 연재는 많으면 5일 내내 하거나 보통 주 4일 정도 해요. 그럼 일주일에 적어도 2만 자는 써내야 돼요. 한 회 분량이 띄어쓰기 포함해서 5천 자 정도 되는 거죠. 단행본은 전자책 형태로 내는 거고 한 작품 완결하면 그때 출간하는 형식이라서 연재에 비해 마감 부담은 좀 적어요. 대신 돈(수입)을 포기하는 거죠. 하지만 단행본을 내더라도 그 전에 무조건 무료연재 사이트에 게시를 해요. 미리 써 놓은 걸로 하기도 하고 실시간으로 쓰기도 하고. 무료연재가 끝나면 거기에 외전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단행본을 내는 거예요. 15만 자~20만 자가 단행본 1권 분량이라고 보면 되는데 그걸 독자들이 일정 금액(권당 3000원~3500원)을 결제하고 다운받아 보는 거죠. 이벤트(페이지 상단 노출, 배너게시 등)에 들어가는 게 좋긴 한데, 그러면 정산비율을 조정해요. 평소엔 수수료가 30%인데 이벤트 들어가면 이걸 50%까지 늘려요. 이벤트 들어간다고 해서 수입에서 큰 메리트는 없는 거죠. 잊히지 않기 위해서 하는 거지.
 

누가 여성노동자의 '밥값'을 뺏어가는가 : 플랫폼의 비정상적인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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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0월 19일에 열린 <과도한 수수료에 생계가 위태로운 웹툰 웹소설 작가를 보호하라>기자회견에서 이수경 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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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작가들의 주요 수입원은 인세/선인세, 원고료/고료, RS(수익배분) 등이 있다. 이 지부장에 따르면, 현재 웹소설 시장에서 선인세, 원고료를 주는 곳은 거의 사라졌다고 하며 대부분 RS(수익배분) 방식으로 지급된다. 일부 인기작가의 경우 이 수입만으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을 정도라지만, 대다수는 경제적 어려움이 상당하다.

2020년 전국여성노동조합 실태조사 결과, 웹소설 작가의 연평균 소득은 1905만 원(중위값 1150만 원) 수준으로 최저임금에도 훨씬 못 미쳤다. 6000억 원대의 규모로 성장한 웹소설 시장에서, 작가가 영혼을 갈아 넣어 재주를 부리면 그 대가를 거대 플랫폼이 다 쓸어가는 형국이다. 이 기이한 상황이 왜 벌어지는지는 이수경 지회장이 알려준 수익분배 구조를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단행본을 올려놓고 팔리면 판매금액을 나누는데, 만약 100만 원어치를 팔았다면 구글(결제 수수료)이 10~15%를 가져가고, 남은 금액에서 플랫폼이 30~50%를 가져가고, 또 그 남은 금액을 출판사와 제가 계약한 비율대로 나눠요. 예전에 어떤 친구가 한 작품당 10만 원씩만 팔아도 너한테 백만 원 떨어지잖아 그러는 거예요. 용돈 삼아 하기에는 괜찮은 직업 아니야라고 하는데, 백만 원에서 수수료를 떼면 나한테 남는 건 30~20만 원 밖에 안 되거든요. 지인은 상황을 모르고 얘기한 거지만 한숨이 나왔죠.

지금이랑은 차이가 날 테지만, 제가 연재할 때는 선인세를 좀 받았어요. 금액이 많지 않지만, 그걸로 생활하며 원고를 좀 비축해놨죠. 그런데 선인세는 미리 땡겨주는 돈이잖아요. 나중에 정식 연재가 됐을 때 저한테 정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제 작품이 그렇게 대중적인 내용도 아니었고... 그래서 그랬는지 판매량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선인세를 금방 깔 수는 없었어요.

 
이수경 지회장은 아마 웹소설 수입만으로 살았으면 신용불량자가 됐거나 (굶어) 죽었을 거라고 말한다. 주로 장편 작품을 쓰는 그는 한 작품을 출간하는 데 2년이 걸린 적도 있다. 차기작 준비 시 이전 작품의 수입이 들어온다면 다행이나, 수입이 전혀 없는 경우엔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 버티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이렇듯 웹소설 수입만으로는 생계를 꾸릴 수 없기에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렇게 되면 낮에는 일하고 밤에 글을 쓴다든지, 다른 일을 하는 틈틈이 글을 써야 해 자연스레 노동강도가 높아져 건강을 해칠 수밖에 없다. 부업으로 시작한 일이 주업이 되고 글쓰기가 부업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도 많은 작가들이 글쓰기를 포기할 수는 없고 그저 부업으로라도 하는 것에 만족하기도 한다. 2020년 실태조사에서도 웹소설 작가를 주업으로 해서 창작에만 전념하는 경우가 전체 응답자의 35.5%밖에 되지 않았다.
 

저도 2019년부터 겸업했는데, 몸이 너무 안 좋아져서 최근 1년은 일을 그만뒀어요. 겸업을 하는 동안엔 글 쓸 시간이 하도 없어서 녹음을 하기도 했어요. 밤에 애들 다 재워놓고 혼자 이어폰 끼고 낮에 녹음한 걸 들으면서 글 쓰고, 주말에도 어딜 나가지 않았어요. 남편이 글 쓰라고 애들 데리고 나가줬을 때 3만 자까지도 써 봤어요. 주말이 아니면 시간이 없으니까 집중해서 쓰는 거죠.

그때는 몸은 힘들지만 마음이 어느 정도 편했는데, 그건 부업으로 그래도 돈을 버니까. 한국 사람들 그거 있잖아요. '밥값 해야 된다.' 웹소설 작가가 되니까 밥값이 안 되는 거예요... 제가 웹소설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저는 너무 운이 좋게도 남편이 '내가 너의 꿈까지 지원해 줄게'라고 하면서 작업실도 얻어 줬어요. 그럼에도 제가 너무 미안한 거예요. 그냥 가정주부로 있었으면 애들 돌보고 살림하는 게 충분히 밥값하는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 저에겐 웹소설 작가가 직업이잖아요. 직업인데 돈은 안 벌리고 글 쓴다고 애들 팽개치고 집안일도 제대로 안 되고 이런 경우도 있으니까 우울증이 좀 많이 왔죠. 

자신의 노동의 결과물이 팔리지 않아서 밥값을 못한다면야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잘 팔리는데 정작 노동자에게 돌아오는 게 없어서 밥값을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건 누구의 책임일까. 밥값을 못한다고 자책하게 만드는 구조, 돈이 안 돼서, 노동량을 감당할 수 없어서, 자신이 꿈꿨던 일을 부업으로 만드는 구조가 문제다.
 

(별도 작업실이 없는 경우) 저희는 휴일도 없이 회사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하는 거랑 같다고 보시면 돼요. 몸이 안 좋아지기 전까지는 하루에 순 노동시간만 따지면 10~12시간 정도 글을 썼어요. 그러다 당수치가 높아져서 당뇨병 전까지 갔었어요. 어깨, 목, 손, 손가락 안 아픈 데가 없어요. 타자를 너무 많이 쳐서 손가락이 덜덜 떨릴 정도거든요. 아침, 저녁으로 파라핀 요법을 해야 돼요.

 
프리랜서라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지만 한 곳에 매여서 노동하는 이들 못지않게 자유는 제한된다. 작가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또한 지속가능한 창작 노동을 위해서는 정기적인 휴식이 필요함에도 플랫폼에서는 정기휴재를 잘 허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웹소설 업계에는 정기휴재라는 체계 자체가 없는데 휴재는 곧장 수익 감소로 직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하는 모두'를 노동자로 인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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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1월에 있었던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 실태와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 모습
ⓒ 한국여성노동자회	관련사진보기

 
디지털콘텐츠 창작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가장 시급하게 해결돼야 하는 건 뭔지 물었다. 이수경 지회장은 과도한 수수료도 문제지만 먼저 정산서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산서가 제대로 지급돼야 내가 얼마를 벌고 있고 그 중에서 얼마의 수수료를 내고 있는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정산서가 먼저 개선이 돼야 한다고 봐요. 정산서만 봐서는 내가 이 작품의 매출이 얼마고, 내가 정산을 제대로 받고 있는 건지 잘 알 수가 없거든요. 저는 출판사 5곳 하고 계약을 해 봤는데 정산서 형식이 다 달라요. 한 가지 공통된 점은 내 작품이 도대체 얼마를 벌었고 그래서 이 정산액이 맞는 건가 하는 확신이 하나도 안 든다는 거예요. 어느 플랫폼에서, 누구한테, 얼마를 정산한다, 이 내용이 끝이에요.

이벤트가 들어가도 10%할인은 아예 알려주지도 않고, 그나마 계약조항에 있기 때문에 30% 이렇게 크게 들어갈 때만 알려줘요. 국정감사에서도 카카오나 네이버는 정산서를 제대로 출판사에 보낸다고 했으니까 출판사가 제대로 해야되는데 출판사는 또 영세하다 어쩐다 하고. 문체부에서 정산통합망을 만들어서 어떤 출판사든 이용할 수 있도록 투명한 정산서를 제공해야 되지 않나 싶어요. 
 

 
더불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이들의 노동환경 개선방안을 추가로 얘기해 보면, 플랫폼의 과도한 수수료를 규제하기 위해 수수료 상한제를 도입하고, 현재는 권고사항인 표준계약서 체결을 의무화하는 것 등이 있다. 또한 예술인들의 안정적인 삶을 지원하기 위해 2020년 12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예술인 고용보험제도의 혜택을 웹소설 작가는 받지 못하고 있다. 고용보험을 적용받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수입이 있어야 하는데, 보통 저작권 계약을 하며 매달의 수입이 다른 웹소설 작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웹소설 작가들은 저작권 수입으로 이 사람이 생계를 꾸리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면 가입 가능하게 해달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코로나를 겪으며 사회안전망 구축의 방안으로 논의됐던 전국민고용보험을 시급히 도입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업계 페미니즘 사상검증 사태 때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침해와 차별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근로기준법 상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진정을 각하한 바 있다. 일하는 모두를 노동자로 폭넓게 인정하고 사각지대 노동자들을 보호할 방안 마련이 절실하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으로 이 기사를 보는 독자에게 이수경 지회장이 전하고 싶다고 한 말은 '제발 불법공유, 불법다운로드 하지 마세요!'이다. 웹툰은 사이트를 통해 불법공유가 행해지니 불법의 심각성을 말하기가 쉬운데 웹소설은 개인적 공유가 많고, 오픈카톡방이나 밴드, 카페 등 가입해서 등업을 해야 볼 수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을 통해, 아니면 메일에 첨부파일로 올려놓고 주소만 따서 공유하는 등 조금 더 음습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이에 대한 대응도 결국 다 작가의 몫이다. 변호사 기본 수임료가 300만 원부터 시작하는데 300만 원이면 어떤 작가에게는 1년 연봉보다 더 많은 금액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냥 올리는 순간부터 '불펌 되겠지'라며 포기한 상태다.

그만두고 싶을 때가 없느냐는 질문에 "맨날 해요.(웃음) 그래도 글 쓰는 게 제일 재밌고 제일 행복하고. 힘든 건 정말 많아요. 글도 안 써져, 반응도 없어, 수입도 안돼. 그런데 너무 좋아요. 짝사랑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로서 한번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걸 실제 하게 되니까 너무 행복하고 좋죠"라는 이수경 지회장. 꿈을 이룬 그녀의 행복이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그녀의 노력에 정당한 대가로 응답해 줄 수 있도록 디지털 창작노동자를 둘러싼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고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제도의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