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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편집자말]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지인의 카톡을 보고 도서관 사이트에 들어가 바로 예약했다. 며칠 뒤, 그 책을 마주했을 때 첫 느낌은, '너무 두껍다'였다. 책장을 휘리릭 뒤로 넘겨 페이지를 확인한다. 무려 519페이지! 다시 서가에 꽂을까 말까 망설이다 집으로 가지고 왔다. 무겁네, 무거워 하면서.

저녁 차리기 전에 몇 장만 읽어보려고 책을 펼쳤는데, 첫 문장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여행에서 팔 하나를 잃었다. 왼팔이었다."
 
딸아이가 "엄마, 저녁 언제 먹어?" 하고 날 부르기 전까지 계속 읽었다. 후다닥 저녁을 차리고 후루룩 식사를 하고 또다시 책을 편다. 그날 앉은 자리에서 <킨>을 끝까지 다 봤다.

흑인 여성이 타임슬립 하는 이야기
 
옥타비아 버틀러 <킨>
 옥타비아 버틀러 <킨>
ⓒ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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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은 1976년을 살던 흑인 여성 다나가 우연히 타임슬립을 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다. 프롤로그에 결론이 나오고 이야기가 시작되는데도 전혀 긴박감이 떨어지지 않는다.

첫 사건은 1976년을 사는 다나의 스물여섯 번째 생일날 시작된다. 남편인 케빈과 이삿짐 정리를 하는데 현기증이 나더니 주변에 있는 것들이 사라졌다. 정신을 차리자, 난데없이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다. 다른 세계로 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하고 깔끔한 타임슬립이라니.

그러나 불행히도 그곳은 1815년, 미국의 남부다. 흑인이 백인의 노예이고 재산인 곳. 다나는 그곳에서 강에 빠진 백인 아이, 루퍼스를 구했음에도 루퍼스의 아빠는 다나에게 총을 겨눈다. 죽겠구나, 하는 순간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책 속에서 루퍼스가 죽을 위기에 빠지면 다나는 과거로 가고, 다나가 과거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 현실로 돌아온다.

독자는 다나와 함께 20세기에 살다가 순간, 19세기 초로 거슬러 간다. 너무나 다른 문화에 충격을 받는다. 흑인 여성은 흑인이라는 차별과 여성이라는 차별을 이중적으로 겪는다. 농장의 주인인 와일린은 자신의 노예인 테스를 섹스 파트너로 삼고 이도 지겹다며 농장 감독 에드워드에게 넘겨준다. 여성을 물건 다루듯 하며 인종과 여성을 차별하는 폭력적 태도에 소름이 돋는다.
 
세 번째 다시 과거로 갈 때, 현기증을 느낀 다나를 옆에 있던 남편 케빈이 껴안는다. 둘은 함께 과거로 간다. 그곳에서 백인과 흑인이 결혼하는 건 불법이다. 다나는 케빈의 부인이 아닌, 케빈의 노예로 새로운 관계 설정을 한다. 케빈은 그 집 아들 루퍼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다나는 노예들과 함께 부엌일을 하며 지낸다.
 
케빈과 나는 점점 이 집의 식구가 되어갔다. 친근해졌고, 서로를 받아들였다. 그런 생각을 하면 또 마음이 심란해졌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환경에 순응하는가.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이 시대의 역사에 적응하려면 좀 더 힘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중략) 한번은 케빈이 말했다. "여긴 굉장히 살기 좋은 시대일 수도 있어. 여기에 머무는 게 얼마나 큰 경험일지 계속 생각하게 돼. 서부로 가서 이 나라의 건설을 지켜보고, 옛 서부 신화가 어느 정도나 사실인지도 보고 말이야." 나는 씁쓸하게 대꾸했다. "서부라. 흑인 대신 인디언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곳 말이지!" 그는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p.182~183)

어느 날, 케빈과 다나는 함께 숲으로 가는 길에 노예상 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발견한다. 요즘 아이들이 병원 놀이, 엄마 아빠 놀이를 하는 것처럼 노예를 팔고 사는 역할놀이를 하는 것이다. 케빈은 단지 놀이일 뿐이라고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나는 마음이 힘들다.
 
"그래서 수월하다는 사실이 무섭게 느껴졌구나. 이제 이유를 알았어."
"무슨 말이야?"
"수월함 말이야. 우리나, 아이들이나... 노예제도를 받아들이도록 훈련시키기가 얼마나 수월한지 전에는 몰랐어." (p.191)

좋은 생각이 몸에 스며들도록

나는 스스로 차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년 전, 가족과 3개월 해외여행을 할 때 내가 편견 있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북유럽에서는 쭈뼛쭈뼛 영어를 하고 상대방이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항상 긴장모드였다. 그런데 동남아시아에서는 엉터리 영어도 당당하게 하고 나 스스로가 자신감에 차 있는 거다. 내 태도의 변화를 인지하고 깜짝 놀랐다. 무의식 중에 내가 그들보다 낫다고 여긴 게 아닐까. 더 무서운 건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부족하더라도 실수하더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말이다. 차이는 단지 다른 것일 뿐 차별의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차별의 태도가 몸에 배어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여행 후 독서 모임을 하며 편견에 대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장애에 대한 <어른이 되면>, <노란 들판의 꿈>이나 페미니즘에 대한 <여자 전쟁>, <자기만의 방>,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등을 읽었다. 한 권 읽고, 두 권 읽고, 주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니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조금은 변화하는 것 같다.
 
어떤 책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페미니즘 책을 읽고 있는 내게 남편이 페미니즘이 뭐냐고, 남자들을 몰아세우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아니야. 남자, 여자에 상관없이 그 사람 자신으로 살 수 있게 하는 신념이야."

남편처럼 일부 남자들은 여전히 페미니즘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페미니즘이라면 덮어놓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여성 중에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킨>을 권하고 싶다. 사실 <킨>은 전면에 페미니즘을 내세우는 책은 아니다. 그래서 페미니즘이라면 그냥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추천하기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인종과 젠더에 대한 이야기, 약자를 향한 태도가 재미있는 스토리에 잘 녹아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페미니즘에 동의하지만, 아직 페미니즘적인 행동 양식이 몸에 배지는 않았다. 내가 말하는 책 내용에 귀는 기울이지만 스스로 찾아 읽지는 않는다. <킨>을 읽는 내내 남편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던 이유다. 의미를 떠나 우선 무엇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재미있게 술술 읽다 보면 그런 책을 하나, 둘 접하다 보면 자연스레 좋은 생각이 몸에 스며들지 않을까. 좋은 생각이나 이념을 재미있는 그릇에 담아 먹음직스럽게 내어주는 책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아 더 반갑게 읽은 책이 바로 <킨>이다. 
 
남편에게 정말 재미있는 책이 있다며 <킨>을 건넸다. 며칠 뒤, 안방에 들어갔더니 자는 남편의 머리맡에 책의 중간 부분에 책갈피가 끼워진 <킨>이 놓여 있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 뒤에 남편은 내가 읽던 <여성 전쟁>도 가져가 읽더니 스스로 자신의 SNS에 감상을 올리기도 했다.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남편에게 의미 있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면, 그 남편이 가부장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중년이라면, 아직 페미니즘 도서를 한 권도 접해보지 않았다면,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을 권하고 싶다. 심지어 최근에는 만화로 제작되어 그래픽 노블로도 출간되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킨 : 그래픽노블, 옥타비아 버틀러(원작), 존 제닝스(그림)
 킨 : 그래픽노블, 옥타비아 버틀러(원작), 존 제닝스(그림)
ⓒ 프시케의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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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킨 : 그래픽노블

옥타비아 버틀러 (원작), 존 제닝스 (그림), 박설영 (옮긴이), 데이미언 더피 (각색), 프시케의숲(2022)


옥타비아 버틀러 (지은이), 이수현 (옮긴이), 비채(2016)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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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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