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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어딘가 남과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서른에야 ADHD라는 병을 처음 알았고, 서른여덟에 성인 ADHD 확진을 받았습니다. 실체를 모르는 병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사람들 각자가 품고 사는 보이지 않는 아픔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많은 아르바이트와 직장을 거친 후 자신에게 맞는 생활을 찾은 지금, 저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보이지 않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분들의 삶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손을 흔들어 봅니다.[기자말]
강사 일을 그만두기 전 2년 정도, 일종의 공황 상태를 겪었다. 강단에서 머릿속이 하얗게 날아가고 숨이 가빠지며 근육들이 떨렸다. 그대로 모든 게 끝장나버릴 것 같은 기분. 아래로 떨어지면서 동아줄을 찾아 손을 휘젓는 듯도 했고, 수시로 지옥에 머리를 담갔다 쳐드는 듯도 했다.

촉발제는 외국인 대학생들의 '앞담화'였다. 내가 여러 외국어를 어설프게 알아듣는 게 독이 됐다. 처음엔 나름대로 당당하고 카리스마 있는 교사였다. 그런데 비판적 반응에 신경 쓰기 시작하면서 불안정한 자존감이 금세 정체를 드러냈다. 날 따르고 칭찬하는 목소리보다 지적하는 목소리를 믿었다.

가짜 감정은 쉽게 간파된다. 노력하는 일들이 역효과로 이어지자 난 최대한 쿨해 보이려 애썼었다. 그러나 어설프고 예민한 사람이 눈앞에서 4시간 동안 떠들고 움직이는 일은 그 자체로 불안해 보이게 마련이다. 어느 학기에 합이 꽤나 안 좋은 반을 만나, 수업 내내 나를 무시하고 비난하는 분위기를 참다가 마침내 공황 증상에 이르렀다.

그 후로 1년, 매분 매초가 아슬아슬하던 어느 날이었다. 학생들을 인솔해 외부 체험학습을 나갔다. 같이 탄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 옆에서 나누는 대화가 기어코 귀에 푹 꽂혔다. "사람들 앞에만 서면 사춘기라니까." "역량이 안 되는데 자꾸 이것저것 하려고 하잖아."

10년간 꾹꾹 누른 수치심이 산사태처럼 몰려왔다. 내가 나에게 제일 많이 해 오던 말들이었으니까. 마지막 잎새마냥 붙어 있던 일에 대한 애정이 그 산사태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수치심 직시하기
 
심리학자 쉴리 우람 박사에 따르면 '우리 뇌는 겉으로 잘 드러나는 충격적인 경험과 은밀하고 사소하고 조용한 경험을 구분하지 않는다'. 은밀하거나 불만에 찬 목소리, 웃음소리, 곁눈질, 들킨 듯한 표정 등은 나에게 정서적 플래시백(Emotional Flashback, 현재의 사소한 자극으로 과거의 괴로운 기억과 감정이  재현되는 현상)을 일으켰다.
▲ 트라우마 심리학자 쉴리 우람 박사에 따르면 "우리 뇌는 겉으로 잘 드러나는 충격적인 경험과 은밀하고 사소하고 조용한 경험을 구분하지 않는다". 은밀하거나 불만에 찬 목소리, 웃음소리, 곁눈질, 들킨 듯한 표정 등은 나에게 정서적 플래시백(Emotional Flashback, 현재의 사소한 자극으로 과거의 괴로운 기억과 감정이 재현되는 현상)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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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란 그렇게 사소한 것일 수 있다. 길을 걷다 외국어가 들리면 귀를 틀어막고 냅다 뛰었다. 일을 그만둔 후로도 몇 년간 피해의식에 시달렸다. 방금 나와 대화한 사람들끼리 귓속말을 나눌 때, 모임에서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테이블 분위기가 미묘할 때, 모르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흉볼 때, 어김없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아찔함을 다시 느꼈다.

일하는 동안 동료선생님들에게 고민을 에둘러 털어놓기도 했었다. 신기하게도 내 상태에 크게 공감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희일비하는 나를 답답하게 보기도 했고, 어쩔 줄 몰라 하며 화제를 바꾸고 싶어 하기도 했다. 직장에서 치부를 드러낸 게 후회스러웠다.

그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수치스러움을 얘기하는 상황 자체가 낯설어서가 아니었을까. 수치심은 약점이라는 게 사회 통념이다. 나도 어려서부터 부끄러운 순간은 서둘러 회피했다. 겉으로뿐 아니라 내면에서도.

그런데 억누른 감정들은 하나하나 마음속에 남아, 작은 단서만 있어도 수시로 머리를 쳐든다. 일할 때는 내 기분 때문에 수업 분위기를 매번 망칠 수 없어 못 들은 척, 들어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즐거움을 꾸며냈다. 울지 못하고 꿀꺽 삼킨 마음들이 병이 됐다. 내가 보내주지 않은 감정은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브레네 브라운 박사는 책 <수치심 권하는 사회>에서 '수치심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방법들을 상세하게 제안한다. 첫 단계는 스스로 수치심을 인정하는 것. 수치심은 '자신에게 결점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거부당하고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고 느끼는 극도로 고통스러운 경험이나 느낌'이며,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이다.

왜 그렇게 자신이 창피했을까. 첫 수치심의 흔적을 더듬었다. 유치원 때, 학예회에서 선보일 부채춤을 연습하는데 계속 혼자만 멍하니 있다 지적받던 기억. '나는 뭔가 다르구나' 했었다.

핸드폰에 수치심의 연대기를 적어 내려갔다. 날 예뻐하던 선생님이 심하게 무안을 준 순간, 사촌동생들 앞에서 발가벗겨진 순간, 한 어른이 날 만졌던 행동의 의미를 깨달은 순간, '정신병자'란 말을 들은 순간, 썰렁한 농담으로 반 전체에 정적이 흐른 순간, 처음 보는 교수님이 후배들 앞에서 내 '맥락 없음'을 꾸짖은 때... 기억들은 같은 목소리를 냈다. "너는 부적절한 사람이야. 진짜 모습을 드러내선 안 돼."

대부분 나를 재단하는 타인의 기준을 성급히 내면화한 결과였다. 내향형 인간에게 강요되는 외향성, 부정확한 판단과 몸놀림 등 불완전함으로만 인식되는 지표들, 여성은 고분고분하면서도 신체적 자기결정권에서 빈틈없어야 한다는 이중잣대, 이성애 규범에서 벗어날 때 붙는 비정상이라는 꼬리표, 건강하지 못함을 드러낼 때 따라붙는 평가들, '학생들에게 휘둘리는 교사'라는 단정적 시선.

한 발만 잘못 떼면 수치였다(브레네 브라운 박사는 이를 '수치심 거미줄'이라고 표현한다). 옳음을 검증받지 않은 것들이 나를 틀린 존재로 규정하고 있었다. 놀라웠다. 일상 자체가 되어버린 이 현상에 대해 한 번도 터놓고 이야기한 경험이 없었다니. 이유는 간단하다. 수치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나를 감추는 게 쉽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먼저 약해지기

앞담화를 듣고 돌아온 그날, 난생처음 타인에게 안겨 울었다. 숨죽여 흐느끼는 나를 그 사람은 말없이 토닥여 줬다. 친하긴커녕 서로 잘 몰랐지만, 등을 두드리는 손끝이 메트로놈처럼 느긋해서 부끄러움을 삭일 수 있었다.

소리 대신 공기로 전해진 말의 온도가 방치된 마음의 온도를 넘어섰다. '불완전한 건 틀린 게 아니에요. 너무나 당연해요. 나도 그렇거든요. 자기 존재를 의심할 필요 없어요. 당신은 옳아요.' 내 마음엔 그렇게 들렸다.

수치심은 고립에서 나오고, 고립을 강화한다. 반대로 수치심 회복탄력성의 핵심은 공감과 연민, 유대감이다. 자신에게 갖는 유대감은 취약성을 당당히 드러내는 힘이 되고, 타인에 대한 유대감으로 확장된다. "사실은 나도", "그럴 만하지"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함께 치유된다.
 
문화권도 성격도 천차만별인 학생들을 만나며 저마다 생각과 정서가 얼마나 다른지 절감했고, 불특정다수를 향해 애정만을 요구할 수 없다는 사실도 조금 받아들이게 됐다. 쫄보인 내가 지금 용기 내 글을 쓰는 건 그 시간의 힘이 크다. 많은 사람들에게 글을 보이는 것도 비판과 오해를 무릅써야 한다. 그러나 글을 통해 마음의 이어짐을 느끼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 이어짐 문화권도 성격도 천차만별인 학생들을 만나며 저마다 생각과 정서가 얼마나 다른지 절감했고, 불특정다수를 향해 애정만을 요구할 수 없다는 사실도 조금 받아들이게 됐다. 쫄보인 내가 지금 용기 내 글을 쓰는 건 그 시간의 힘이 크다. 많은 사람들에게 글을 보이는 것도 비판과 오해를 무릅써야 한다. 그러나 글을 통해 마음의 이어짐을 느끼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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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강해지는 방법은 마음껏 약해지기로 결심하는 게 아닐까. 자신에게도 타인 앞에서도 마음 편히 약해지기. 글쓰기 플랫폼에 올려놓은 내 소개말은 이렇다. '꼭 단단해지지 않아도 좋다는 단단함.' 난 내가 지은 이 말을 참 좋아한다.

시작은 표현되지 못한 감정들에 다가가는 것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수치심을 쪼개보면 당혹감, 죄책감, 굴욕감, 단절감, 무력감 등이 섞여 있다. 혼자 꺼내보고 정리하는 것만으로 수치심의 무게는 반으로 줄어들 수 있다. 우리에겐 감정을 충분히 응시하고 제대로 이별하는 일이 필요하다.

누구의 말을 믿을지 결정하기

수치심은 사회가 개인의 입을 막고 행동을 제한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사건의 원인에 자신의 특성이 섞여 있다는 것만으로 나를 비판하는 이들의 생각이 모두 옳다고 믿기 쉽다.

'상대의 반응을 분류하라.' 브라운 박사가 제안하는 또 다른 시도다. 요점은 누구의 의견을 받아들일지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 그리고 그 '누구'란 "'당신이 불완전하고 취약하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 말고, '당신의 그런 면들 때문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이건 아무에게나 권력을 주지 않기로 결정하는 일과 같다. 내가 원하는 걸 상대가 가졌을 때 상대는 권력을 갖는다. 그런 면에서, 나를 상처 준 이들을 미워하는 일도 동조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나는 내 가능성을 피해의식에 묶어두고 싶지 않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고, 나는 그 길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달리는 데 목적이 있었지 처음부터 나를 걷어차려 한 건 아닐 거다. 난 비킬 여력이 없었던 것이지 걷어차여 마땅한 인간이었던 건 아니다. 그들과 나는, 삶의 한 지점에서 서로 그렇게 만났던 것뿐이다. 장담하건대 모르는 사이 내가 가해자가 된 적도 많을 거다. 내 삐딱하고 모난 마음. 서툰 표현 방식을 생각해 보면 관대해진다.

이제 나는 자신을 한결 강한 존재로 느끼게 하는 사실들을 많이 알고 있다. 사람들의 말로 재단되고 조롱당해도 난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 나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했고, 내 취약성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사실. 그리고 이해를 구하기 어려운 삶이라도 세상의 누군가는 다른 이에게 잠시 어깨를 내어준다는 것.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덧붙이는 글 | * 전문가들은 공황에서 벗어나려면 그 상황을 사랑하거나, 바꾸거나, 떠나야 한다고 합니다. 공황 상태를 겪던 당시에 저는 그 상황을 사랑하거나 바꾸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습니다. 강의를 분석하고, 스피치학원, 보이스트레이닝, 상담에 참여하고, 심리와 교육 서적을 읽고, 출근 전 아이돌 춤을 추며 기분을 바꾸고, 자신감을 준다는 '파워포징(power-posing)'을 연습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극복되지 않은 이유는, 많은 사람에게 면전에서 평가받는 환경 자체가 저의 공황 촉발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공황은 몸과 정신이 보내는 강렬한 경고신호이자 보호장치입니다. 새로운 공황 치료법을 창안한 클라우스 베른하르트는 책 <어느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왔다>에서, 오래전에 시도했어야 할 변화를 억눌러 왔거나 잠재의식을 너무 오래 무시했을 때 공황이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공포에서 벗어나려면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환경과 생각, 신체반응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 패턴을 차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간 돌보지 못한 몸과 마음이 공황을 일으킨다면, 무리하게 참기보다 전문가의 도움을 꼭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 ADHD 진단을 받지 못했을 때의 일입니다.
* 브런치에도 연재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adhdworker)
* 다음 화에서는 '인간관계에서의 회피 성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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