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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4일 복지부는 제 6차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서 “가족 돌봄 청년 지원대책 수립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직접 돌본 조기현 <아빠의 아빠가 됐다> 작가가 이 발표의 내용과, 그 의미에 대해 짚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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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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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가족을 돌보고,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청년에게 이름이 생겼다. '가족 돌봄 청년'(영케어러)이다. 지난 2월 14일 복지부는 제 6차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서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 청년을 '가족 돌봄 청년'이라고 호명하며, 지원 대책 수립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말 대구의 한 청년이 간병 부담으로 거동을 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일명 '강도영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발 빠르게 마련된 대책이다.

그간 한 청년에게 아픈 가족 돌봄, 진로 이행, 생계 부양이 맞물려서 벌어지는 일들을 명확하게 설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청소년기, 청년기에 누군가를 돌보는 것은 또래들에게 흔한 경험이 아니다. 

가족 돌봄 청년은 주변 어른들에게서 효녀나 효자라는 말을 듣거나 '어른스럽다', '책임감이 강하다' 등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하지만 이는 '의무'를 짊어지게 하는 말일 뿐, 이들의 상황을 정확히 반영한 표현이라고 보기 힘들다.

이처럼 가족 돌봄 청년들은 어른이나 친구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주변에서도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년들이 고립감에 시달리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생각을 잘하지 못하는 이유다.

문제는, 이 같은 고립이 '격차'를 만드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가족 돌봄 청년들은 혼자서 돌봄을 감당하느라 생계비를 마련하지 못 하거나, 과도하게 의료비를 지출하다 빈곤해지거나, 학업이나 진로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일을 겪곤 한다. 따라서, '가족 돌봄 청년'이라는 공적인 호명은 이제까지 각자가 혼자 짊어졌던 이 상황을 국가가 함께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가족 돌봄 청년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 들려줄 때

복지부는 올 3월부터 가족 돌봄 청년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한다. 19세 미만의 중·고등학생과 학교 밖 청소년, 그리고 19세부터 34세까지는 대학생과 일하는 청년으로 나눠 각각 설문을 실시한다. 여기서 '일하는 청년'은 대학생이 아닌 청년 전반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학교를 다니든, 다니지 않든, 자신의 돌봄 경험을 말할 수 있는 창구가 생기는 셈이다.

가족 돌봄 청년들이 자신이 겪은 돌봄의 부담과 생계의 무게, 미래의 막막함을 세세하게 들려줄 때다. 그 외에도 온라인 패널 조사, 기존 행정 데이터 검토, 병원 조사 등의 작업을 통해 더 많은 가족 돌봄 청년들의 사례를 발굴할 예정이다. 만약 자신이 가족 돌봄 청년이라면 꼭 이 그물망에 포함되길 바란다. 실태조사 결과는 5월에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행정의 눈에 띈 가족 돌봄 청년들은 기존 제도에서 받을 수 있었으나, 받지 못한 서비스와 연계된다. 행정이 가장 우선적으로, 빠르게 해야 할 역할이다. 혼자서 아픈 가족을 돌보며 생계와 진로까지 담당하는 가족 돌봄 청년들은 받을 수 있는 복지 서비스가 있더라도 이를 모르거나, 알더라도 신청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서비스 연계는 돌봄 서비스, 생계 지원, 의료 부담 완화 뿐 아니라 학습 지원 등 가족 돌봄 청년에 맞춰 통합적으로 지원될 예정이다. 줄곧 지적되었던 복지 신청주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 돌봄 청년을 위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제도도 있다. 가족 돌봄 청년에게 마을 행정사 및 마을 변호사를 1 대 1로 매칭하는 사업을 실시한다. 이미 1월부터 가족 돌봄 청년 지원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에서 시범사업을 먼저 진행한다.

이제까지 가족 돌봄 청년들은 함께 협력할 어른이 부재한 상황에서 병원, 복지, 보험 등 행정 업무를 혼자서 해내야 했다. 혼자서 여기저기 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서비스를 신청했다. 그렇게 '홀로 헤매는'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사업이다.

그 외에도 가족 돌봄 청년이 필요한 각종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전담 홈페이지 구축하고, 온라인 상담 창구 등을 운영한다. 이 같은 시스템이 가족 돌봄 청년들의 복지 접근성을 높여주길 기대한다.

가족 돌봄 청년 가구가 기존 돌봄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고려해서 가족 돌봄 청년에 맞춘 돌봄 지원도 새롭게 시도된다. 돌봄 대상자가 65세 미만일 시 가사간병방문 서비스를, 돌봄 대상자가 65세 이상인 경우 노인맞춤돌봄 서비스를 가족 돌봄 청년 가구가 받을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하거나 예외 조항을 준비할 예정이다. 이같은 제도를 통해, 가족 돌봄 청년은 가족 돌봄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지자체, 학교, 병원이 서로 연계해서 가족 돌봄 청년의 안전망을 구축하고, 가족 돌봄 청년 지원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하며, 가족 돌봄 청년의 사회적 인지도를 확산하기 위한 계획도 마련할 예정이다. 이는 무척 큰 변화다. 돌봄을 가족의 당연한 의무로 여기고, 가족 돌봄 청년을 '효녀'나 '효자'라고 부르며 그 짐을 혼자서 짊어지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 돌봄 청년이 가족 돌봄 중년이 되면?


돌봄 대상자가 아닌 '돌봄 제공자'에 대한 지원을 시작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도 크다. 가족 돌봄 청년에 대한 지원은 돌봄 제공자가 돌봄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을 넘어, 돌봄 제공자여도 삶의 자율성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한 지원이다. 누군가를 돌보는 것이 희생을 넘어 삶 자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인다.

일본의 영 케어러 연구자인 시부야 도모코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학업, 진로, 일을 해야 하는 청년의 4시간 간병과 은퇴 후 주로 집에서 보내는 장년의 4시간 간병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분석은 가족 돌봄 청년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만, 크게 간과한 사실이 있다.

바로 가족 돌봄이 장기화될 때 상황이다. 청소년기, 청년기에 시작된 가족 돌봄이 중장년기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 돌봄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지원을 받는다고 마술처럼 자립해서 중장년기에 가족 돌봄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번 가족 돌봄 청년 지원에 대한 논의는 청년 뿐 아니라 '돌봄 제공자' 전반에 대한 지원으로 향하는 게 오히려 더 효과적일 것이다.

돌봄 그 자체는 사회적 가치가 있는 활동이다. 약자와 더불어 살아가며 공동체를 유지하는 시민적 활동이다. 그러므로, 모든 세대의 돌봄 제공자가 자신의 삶의 자율성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정부는 가족 돌봄 청년 지원을 법제화하려는 논의를 넘어서서, 돌봄 제공자 전반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아픈 가족을 돌보더라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무엇보다 가족 돌봄 청년의 고통은 돌봄 서비스의 양이 부족하기에 벌어진다. 가족이 돌보지 않더라도 빈틈없이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가족 돌봄 청년'이라는 호명은 더이상 필요 없어질 것이다. 돌봄과 부양의 가족 책임을 벗어나야 가족 돌봄 청년의 고통이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은 모든 돌봄이 서비스가 되고, 사적 관계에서 주고받는 돌봄이 사라져야 한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돌봄을 강제로 떠맡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을 때 하는 '돌봄할 자유'를 마련하자는 말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우리는 돌봄의 사회화와 재가족화를 여러 차례 반복하며 확인했다. 펜데믹 이후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회'와 '가족'이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돌봄의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사회'와 '시민'이 어떻게 협력할지에 대한 논의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 돌봄 청년에 대한 논의는 보다 적극적으로 '지역사회 통합돌봄' 논의와 이어져야 한다. 지역사회 통합돌봄은 아프거나 장애가 있더라도 자신이 살던 곳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책이다. 2019년부터 16개 시·군·구 기초 지자체에서 선도사업을 벌이고 있다. 누군가 자신이 살던 곳에서 돌봄 받으며 살 수 있으려면 공적 돌봄과 사적 돌봄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

그러려면 이제까지 잘 드러나지 않았던 돌봄 제공자를 가시화할 필요가 있다. 정책 수립 과정에 돌봄 제공자가 참여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 누군가에게 돌봄을 제공하더라도 잘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돌봄을 받는 이, 돌봄을 하는 이 모두 지역사회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 말이다. 가족 돌봄 청년, 돌봄 제공자, 지역사회 통합돌봄, 이 세 가지를 연결해야 우리 모두 잘 돌보고 돌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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