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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혐오가 제20대 대선 정국을 뒤덮었다. 무책임하게 오가는 배제의 언어 속에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목소리와 현실은 지워졌다. 수많은 사람들의 투쟁으로 이뤄낸, 모든 시민을 포괄하는 민주주의와 정의가 오히려 정치에 의해 왜곡되고 부차적인 것에 불과해진 지금, 동료 시민들의 이야기를 힘주어 전하는 페미니스트 주권자의 목소리가 여기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에 대한 차별뿐만 아니라 모든 불평등한 권력관계와 구조에서 차별을 발견하는 관점이자 실천이다.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위기의 심화가 이전과는 다른 삶의 방향과 방식으로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지금, 페미니즘의 언어로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성평등 정부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편집자말]
젠더폭력 근절을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
▲ [페미니스트 주권자 연속기고⑥]  젠더폭력 근절을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
ⓒ 한국여성단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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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누군가는 일본군 '위안부' 운동, 누군가는 반성매매 운동, 누군가는 성소수자 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젠더 불평등과 폭력을 파악하기 위해 책장을 넘기면서도, 활동가로서 현실을 쫓는 이들이었다. 부끄럽게도 내 앞의 한 걸음만큼이 내가 보는 세계의 전부였던 나는 이들을 따라 집회에 참여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길을 찾기 시작했다.

죽음의 자리에서 삶을 약속하는 젠더폭력 생존자들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 9월 19일과 1월 29일, 군산 성매매 업소 화재로 인해 세상을 떠난 성매매 여성 추모의 날, 6월 17일,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추모의 날, 11월 20일, 혐오 범죄로 인해 살해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젠더폭력에 저항하는 운동에는 매해 이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거나 선택한 이들을 추모하는 날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국화 한 송이와 촛불을 들고 찾은 자리에는 성폭력 생존자, 성소수자 청소년, 청년 노동자, 지역 활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은 단상 위에 올라 자신의 위치와 관점에서 해석한 삶의 한 조각을 들려주었다. 연령, 직업, 지역, 섹슈얼리티 등 많은 점이 다르지만 이들의 이야기에서 나를 발견했고, '우리'의 삶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집에서, 학교에서, 길에서, 수많은 관계로부터 '여성'으로 읽혀서 또는 '여성'으로도 '남성'으로도 읽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겪거나 목격한 크고 작은 폭력의 경험이 '우리' 안에 있었으니까.

젠더폭력으로 인한 많은 죽음을 개인의 죽음으로 해석했다면, 추모의 날은 일상적으로 지나가는 하루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랜 시간 여성·퀴어를 향해 지속되어 온 젠더폭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페미니스트들은 이를 구조적 문제로 정확하게 의미화했다. 그렇기 때문에 추모의 날은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이러한 부정의가 반복되지 않도록, 남겨진 사람들이 다치지 않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자리가 되었다. 죽음에 가까운 자리에서, 역설적으로 삶을 약속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살고 싶고 행동하고 싶다고 느꼈다.

계속되고 진화하고 확산되는 젠더폭력

2018년 미투운동을 계기로 젠더폭력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최초의 성희롱·성폭력 사건인 것처럼 보는 일부의 사회적 반응이 있었으나 다양한 형태의 젠더폭력에 저항해온 운동의 역사가 있다. 기록되지 않거나 조명받지 못한, 그러나 지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한 개인적·사회적 실천들이 있다. 저항의 역사가 길다는 것은 폭력의 역사가 길다는 의미이다. 또한 저항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이 깊게 자리 잡아 왔다는 것을 뜻한다.

차별과 폭력을 파악하지 못하고, 파악하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 수많은 남성(중심)정치는 이러한 사회를 만드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 많은 여성 유권자들이 젠더폭력과 안전을 중요한 정치적 쟁점으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남성(중심)정치는 여성가족부 폐지와 성폭력 무고죄 강화를 주장하고, 남성 커뮤니티에서 사용되는 여성혐오적 언어를 그대로 받아쓰고 있다. 젠더폭력을 재생산하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고 폭력과 차별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긴 폭력과 무시 속에서 여전히 많은 여성·퀴어들이 관계와 노동, 재생산 영역에서 성희롱·성폭력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2020년 한 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성폭력 사건들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중상을 입거나 살해된 여성은 최소 228명이다. 성매매·성착취는 한국 여성뿐만 아니라 인신매매로 유입된 러시아, 필리핀, 태국 여성 등을 대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 더해 성매매 알선 후기 사이트가 운영되면서 불법촬영과 개인정보 노출을 비롯한 새로운 피해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사이버 스토킹, 언어 성폭력, 피해 경험자 신상정보 유포 등이 확산되고 있고, 남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젠더폭력의 장면이 영상과 사진, 텍스트로 중계되고 있다.

젠더폭력을 개인의 문제로 취급한 결과는 또 다른 폭력과 죽음

이를 개인적인 문제로 취급한 결과는 또 다른 폭력과 죽음이다. 2021년 11월과 2022년 2월,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이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남성에게 스토킹에 시달리다 살해당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군산 화재참사 이후 서울 미아리 성매매집결지(2005), 서울 청량리 성매매집결지(2010), 창원 보도방(2011), 서울 천호동 성매매집결지(2018) 등 많은 곳에서 성매매 여성들이 화재 또는 구매자·알선업주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여성을 협박하여 성착취 영상을 받고, 이를 텔레그램을 통해 집단적으로 유포와 판매를 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과 같은 온라인 성착취 사건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피해자들은 죽음에 가까운 공포를 마주하고 있다.

젠더폭력은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고 있으며, 연령과 국적 등 피해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그리고 피해를 경험하고 목격하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갖게 된 여성·퀴어들에게 일상에서의 안전과 편안함은 불가능한 감각이 되어 버렸다.

페미니즘 자체를 문제 삼고, 조롱과 멸시, 혐오가 만연해진 사회적 분위기를 보며, 나는 '우리'의 이야기가 사라진 것에 답답함을 느꼈다. 단상 위에 올라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들, 젠더폭력 관련 연구를 하며 만났던 사람들, 온라인 뉴스를 통해 접한 젠더폭력의 피해자들,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서로를 만나고 안부를 묻기 어려워진 상황과 함께 다시 좁아진 세계에서 나는 무력감에 지쳐버렸다.

그러던 중 성매매 경험 당사자 네트워크 뭉치의 <무한발설>을 읽었다. 뭉치로 활동하면서 마주하게 된 비난과 위협 속에서 운동을 멈춰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했지만 "우리의 입을 막고자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왜 막으려 하는지를 생각하니 우리가 계속 발설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는 글을. 이 글이 내 의지로 살고 싶다는, 뭐라도 다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켰고,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활동가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오랜만에 열린 페미니스트 주권자 행동 집회에 전국연대 활동가로 참여했다. 집회에 모인 사람들을 보며 많은 이들이 이 날을 기다려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부정당한 차별과 폭력의 생존자들이 지금, 여기 존재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하는 마음들이. 함께 구호를 외치고 행진하면서 혼자 눌러왔던 숨이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페미니스트들은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여전히 죽음에 가까운 자리에서 삶을 약속하고 절망을 저항으로, 용기로 만든다.

"우리는 지지 않는다." "페미니스트가 세상을 바꾼다."
"페미니즘은 시대정신이다."
남성(중심)정치는 성평등 정부로 응답해야 한다.


[연재 순서]
① 기후정의를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사라 여성환경연대 활동가)
② 일터와 삶터에서 모두의 평등한 공존을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노헬레나 한국여성노동자회 활동가)
③ 페미니즘 복지국가를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류형림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장)
④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김정수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
⑤ 익숙하지만 낯선 이주여성을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남지은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활동가)
⑥ 젠더폭력 근절을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백조연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활동가)
⑦ 우리 모두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양이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⑧ [지역 2030 페미니스트 활동가 집담회 후기] 지역/청년/페미니스트에게도,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양희주 제주여민회 사무국장)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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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창립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지속가능한 성평등 사회를 만들고 여성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연대를 이뤄나가는 전국 7개 지부, 27개 회원단체로 구성된 여성단체들의 연합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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