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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작가 막스 밀러는 "하나만 아는 사람은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He who knows one, knows none)"고 했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자신의 공간에 갇혀 자신을 객관적으로 비춰볼 거울을 갖지 않을 때 우리는 편향적인 세계관에 빠지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시민을 위한 없는 나라 지리 이야기>는 '없다'는 점에 착안하여 세계 곳곳의 지리와 문명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게 하는 좋은 거울이 된다.

지리학은 '땅(geo)에 새겨져(graphien)' 있는 흔적들을 토대로 인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일곱 명의 지리교사들은 땅에 새겨져 있지 않은, 그 땅에는 없는 것에 주목한다. 모두가 어떤 지역의 지형 특징, 특산품, 관광명소 등 그 지역이 보유하고 '있는 것'에 눈길을 줄 때 그 지역에 '없는 것'을 통해 그 지역을 재조명하는 역발상의 접근법은 신박하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거스름의 방식으로 없음(無)에서 있음(有)으로 나아간다. 이는 사냥에서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돌아오면 신에 대한 정성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한 고대인이 무녀에게 춤(舞)으로 기도하게 하고 마침내 손에 고기를 들고(有) 돌아왔다는 무와 유의 조어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없음이라는 결핍은 자신의 정성이 부족하지 않았나 돌아보는 성찰을, 또 결여의 불편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과 모색, 극복의 의지로 이어진다.
  
기존의 있음에 ‘없음’이라는 새로운 하나의 축이 더 생기면서 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한다.
▲ 세계 시민을 위한 없는 나라 지리 이야기 기존의 있음에 ‘없음’이라는 새로운 하나의 축이 더 생기면서 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한다.
ⓒ 롤러코스터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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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이란 사태가 불러온 도전과 극복의 의지들
 
"지금 무언가 없다고 아쉬워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환경에 걸맞은 방법을 찾아내고, 다른 환경의 나라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바로 세계시민다운 생활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9쪽
 
<세계시민을 위한 없는 나라 지리 이야기>는 22개 세계 각국의 저마다의 없음을 불러온 지형적, 기후적 원인을 이해하기 쉬운 개념으로 설명하고, 그 없음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문명사적 몸짓들을 흥미롭게 소개한다. 친절한 설명과 함께 지도와 사진이 더해져 책 읽는 재미와 속도를 높인다.

열대기후인 싱가포르는 눈이 없는 대신 열대 우림의 동식물을 보호하며 그들만의 멋진 사파리로 관광객을 모은다. 강이 없는 사우디아라비아는 비록 지속가능한 방법은 아니지만 중앙회전식 원형 관개 농법으로 사막에서 밀을 생산한다. 밤이 없는 러시아는 그들의 하얀 밤을 백야의 별 축제와 붉은 돛 축제로 장식한다. 공항이 없는 모나코는 버스, 기차, 선박, 헬리콥터로 그들만의 매력을 외지 사람들과 연결하고 또 공유한다.

문명의 거름망으로 걸러낸 선택적 '없음'
 
"고유한 '포유류'가 없는'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반려묘 '집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양이 규제 법안을 만든 것입니다." -261쪽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매년 '올해의 새'를 투표하는 나라 뉴질랜드에 대한 부분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2000km 떨어진 뉴질랜드는 포유류가 없는 새들의 천국이다. 천적이 없으니 새들은 굳이 하늘을 날 필요가 없어졌으며 타조, 에뮤, 키위, 모아 등 무려 26종의 주금류(走禽類)의 천국이 되었다. 그런데 고양이, 개, 양, 소 등의 외래종이 유입되면서 이들 고유종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없는'과 '있는'은 동전의 양면처럼 연결되어 있다. 어떤 있음을, 또 어떤 없음을 선택할 것인지는 오롯이 공동체 구성원 선택의 몫이다. 현금 대신 모바일페이를 선택한 중국, 자국의 지폐를 폐기하고 미국 달러를 선택한 짐바브웨, 열차 대신 자동차를 선택한 아이슬란드, 상호 의존성이 높아지는 세계 관계 속에서 친구도 적도 만들지 않겠다는 중립 전략을 선택한 스웨덴. 저마다 자국의 국정에 맞는 최선을 고려한 구성원의 합의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오랜 있음을 눈 앞의 이익이나 편의를 위해 일거에 없음으로 몰아내는 일은 없길 바란다.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지리의 포로로 살아간다. 자신이 태어나 평생 발 딛고 사는 땅의 위력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라서 우리의 사유와 가치관을 절대적으로 지배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다른 세계에 대한 이해와 소통의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물 안에서 하나만 아는, 정작은 아무 것도 모르는 개구리가 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하늘 길이 막힌 상황에서 7인의 지리선생님들을 가이드로 모시고 세계 22개국으로의 여행을 추천한다. '없음'이라는 다소 지엽적이고 변방의 주제는 흥미를 유발하는 입구로 기능한다. 입구를 지나면 더 풍부하고 다채로운 지리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기존의 있음에 '없음'이라는 새로운 하나의 축이 더 생기면서 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한다. 겉으로 드러난 표면적인 지도, 그 아래, 그 배후의 세계를 맘껏 상상하게 한다. 우리와 다름을 인정하고 공감하는, 상호 존중과 배려의 마음을 간직한 세계시민으로 성장하게 한다.

세계시민을 위한 없는 나라 지리 이야기

서태동, 한준호, 배동하, 이건, 박상은, 이태우, 이대진 (지은이), 롤러코스터(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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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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