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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예프 로이터=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러시아군 폭격으로 TV 송신탑에 불길이 치솟고 있다. 현지 언론은 여러 차례 폭발음이 들린 후 TV 방송이 중단됐다고 전했다.
 (키예프 로이터=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러시아군 폭격으로 TV 송신탑에 불길이 치솟고 있다. 현지 언론은 여러 차례 폭발음이 들린 후 TV 방송이 중단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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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면전 이후 안 그래도 오름세였던 석유와 천연가스 값이 출렁이고 있다. 러시아는 세계 3대 산유국이자 세계 2위의 천연가스 생산국이기에, 푸틴의 개전 명령 직후 브랜트유 선물가격은 한 때 100달러를 넘어섰고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도 폭등했다. 국내 휘발유값도 6주 연속 상승세다.

이런 가운데 원자력 발전소(이하 원전) 업계의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남의 나라 에너지에 의존하지 않는 데다 날씨에 상관없이 균일한 전력을 생산하는 기저 전력으로서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될 지점도 있다. 안전성이다.

일촉즉발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에는 지난 1986년 인류 최악의 방사능 유출사고로 기록된 체르노빌 원전 외에도 4개의 원자력 발전소와 15개의 원자로가 있다. 체르노빌 원전은 사고 뒤 가동을 멈췄지만 전력의 절반 이상을 원전에 의존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는 지금도 4개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다.

전면전이 시작된 직후 제임스 액튼 카네기 국제평화기금 핵 정책 이사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직접적인 핵 위험은 체르노빌이 아니라 지금 가동 중인 4개의 원자력 발전소'라고.

"체르노빌은 주변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거대한 격리시설 안에 있지만, 우크라이나의 다른 원자로들은 격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들 원자로에 있는 연료들은 체르노빌보다 실질적으로 더 많은 방사능을 갖고 있고요."

그는 가동중인 원자로 주변에서의 교전 가능성에 주목한다. 모스크바가 원자로에 대한 직접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이지만, 근거리 무기들이 항법장치 고장으로 원전을 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발전소 내부 관리인력들이 작업을 못하게 되거나 원자로 냉각에 필요한 전원이 차단되는 상황도 우려했다.

"간단히 말해, 전쟁에 대비해 설계된 원자로는 없습니다."

실제로 미사일 피격 등 전시 상황은 원자로 설계에서 고려대상이 아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의 관련 규정에도 '원전 면허 신청자에게 외국 정부나 개인의 공격과 파괴적 행위로부터 원전 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설계까지 요구하지 않는다'라고 명시돼 있다.

우리나라 원자력 안전위원회와 원자력안전기술원도 항공기 추락위험은 고려하지만 미사일 피격은 설계에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적의 미사일 피격까지 고려하면서 경제성 있는 원전을 짓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체르노빌 원전 주변에서의 교전 우려
 
지난 2월 25일 촬영된 위성사진에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주위로 군용 차량들이 보인다.
 지난 2월 25일 촬영된 위성사진에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주위로 군용 차량들이 보인다.
ⓒ Black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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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인 라파엘 그로시는 지난달 27일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15개 원자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행동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군사행동을 자제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가동이 중단된 체르노빌 원전에 대한 걱정도 감지된다. 체르노빌 사고에 대해 저술한 케이트 브라운 MIT 교수는 원자로 주변 지역 전투를 걱정한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토양에서 화재가 나면 연기를 매개로 방사능이 주변 지역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체르노빌을 '격리구역'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해 축구장 3개 길이의 철제 구조물로 덮었어요. 그곳에 미사일이 떨어진다면 최악이죠."

미국 에너지부 방사성 폐기물 관련 부국장직을 역임한 레이크 바렛도 체르노빌 원전 부근에서의 폭발을 우려했다.

"가장 큰 위험은 방사성 세슘으로 오염된 토양 주변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겁니다. 먼지처럼 공중으로 퍼져나가는 거죠."

만일 전쟁이 장기화되며 통제 불가능 상황이 되면 더 큰 위험에 직면한다. 원전은 가동이 중단된다고 해도 많은 핵폐기물이 남아있어 이에 대한 처리 작업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20년 넘게 전기 생산을 해온 체르노빌 원전도 사고 이후 중단됐지만 여전히 많은 핵폐기물이 남아 있다. 손상되지 않은 다른 원자로에서 제거된 수 만 개의 사용 후 연료도 보관돼있고 이보다는 덜 위험한 중 저준위 폐기물도 여전히 현장에 남아 있다.

지난달 28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무기 운용 부대에 경계 태세를 강화할 것을 지시한 가운데 우크라이나 핵시설 2곳이 공격을 당했다. 35개국으로 구성된 IAEA 이사회는 2일 긴급회의를 열어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참고자료]

James M. Acton, 'The Most Immediate Nuclear Danger in Ukraine Isn’t Chernobyl' (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누리집, 2022. 2.24)

Hannah Northey, Peter Behr, '‘Grave concern.’ Invasion puts spotlight on Ukraine nuclear reactors' (E&E News EnergyWire 누리집, 2022. 2.25)

김정수, '원전이 미사일·항공기 공격에도 끄덕없다고?' (한겨레, 2021. 3.12)

박근태, '러, 우크라이나 침공 불구 체르노빌 원전 무사…"전투 휘말리면 1986년 재앙 재현 우려" (동아사이언스, 2022. 2.27)


태그:#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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