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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본이 제국주의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 세운 '팔굉일우(八紘一宇)'비가 3.1절 103주년을 맞아 옛 경기 용인문화원(처인구 김량장동) 건물에서 전시를 시작한다. '팔굉일우'는 일제가 제국주의 침략 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운 구호로, '전 세계가 하나의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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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가 발견된 것은 양지초등학교다. 2008년 처인구 양지면 양지초등학교 운동장 인조잔디 조성공사 중 송병준 선정비 및 송종헌 영세기념비 등과 함께 발견됐다. 선정비와 영세기념비는 씨름장 지하에 묻혀 있었지만 팔굉일우비는 운동장 가장자리에 나무 벤치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돌에 새겨진 글의 의미도 모른 채 벤치로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측은 친일과 관련된 부끄러운 유물이지만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중요한 역사자료라는 입장에서 교육청 및 동문회 동의를 얻어 용인문화원에 기증했다.

이 비가 제작된 경위는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을 내세우던 일제가 1940년 태평양 전쟁 시기로 접어들 무렵, 조선 전역에 건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지초에서 발견된 것도 그중 하나다. 친일파 1호 송병준의 아들 송종헌이 친필로 쓴 이 비석은 왼쪽 측면에 '개교 30년 기념 소화 16년 9月1日 동창회 후원회 증정' 이라고 쓰여 양지초등학교 개교 30주년을 기념해 1941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화강암으로 조성된 투박한 표주박 형태의 팔굉일우비는 하단 너비 최대 64㎝, 상단 너비 25㎝, 높이 149.5㎝, 두께 41㎝, 무게 450kg이다. 비석의 전면에 '팔굉일우'라는 글자가 한자로 음각돼 있다. 전면 왼쪽에 작은 글씨로 '삼위 백작 야전종헌 근서', 측면에 '개교 30년 기념 소화 16년 9월1일 동창회 후원회 증정'이 써있으며 뒷면에는 글씨가 없다.

용인문화원이 보관 중인 팔굉일우비는 대표적인 친일 상징물로서 '용인시민 소장 문화재전 및 독립운동 100주년 기념 자료전' 등을 통해 공개 전시된 바 있다. 전시관은 2021년 경기문화재단의 친일상징물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예산을 지원받아 개관하게 됐다.

이번에 전시하는 팔굉일우비는 역사적 가치가 상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비는 3개 밖에 없다. 그중 용인문화원 소장 '팔굉일우비'는 광복 이후 발견된 첫 사례이자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용인문화원 김장환 사무국장은 "팔굉일우비는 일제 침략과 지배 이데올로기를 증언하는 자료이자 친일 인사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료"라며 "우리 스스로 반성하고, 반면교사로 삼아 다시는 역사적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도 오욕의 증거물은 소중하다"고 말했다.

한편, 친일 반민족 행위자 송병준(1857년~1925년, 창씨개명-노다 헤이지로)은 정미칠적 중 한 명으로 고종의 퇴위와 한일병합, 일진회 조직, 중추원 고문 등 일제의 국내침탈과 매국행위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1890년~1891년 양지현감을 역임했으며, 1910년 한일병합에 앞장선 공로로 일본에서 자작 작위를 받았다. 1920년 백작으로 승작됐다.

그의 아들 송종헌(1876년~1949년, 창씨개명-노다 소노리)은 송병준 사후 백작 작위를 물려받았다. 양지 추계리 별저에 거주하며 의병 체포에 앞장섰다. 양지초 전신인 추양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양지초등학교 증축비 5000원을 기부해 개교 30주년에 영세기념비가 세워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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