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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혐오가 제20대 대선 정국을 뒤덮었다. 무책임하게 오가는 배제의 언어 속에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목소리와 현실은 지워졌다. 수많은 사람들의 투쟁으로 이뤄낸, 모든 시민을 포괄하는 민주주의와 정의가 오히려 정치에 의해 왜곡되고 부차적인 것에 불과해진 지금, 동료 시민들의 이야기를 힘주어 전하는 페미니스트 주권자의 목소리가 여기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에 대한 차별뿐만 아니라 모든 불평등한 권력관계와 구조에서 차별을 발견하는 관점이자 실천이다.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위기의 심화가 이전과는 다른 삶의 방향과 방식으로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지금, 페미니즘의 언어로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성평등 정부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편집자말]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
▲ [페미니스트 주권자 연속기고④]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
ⓒ 한국여성단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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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의 한 대선 후보가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해 선제타격론을 주장하고 사드 추가배치를 거론했다. 이에 대해 여당 후보는 위험한 전쟁 도발 주장이라 비판했다. 다른 야당의 국방 전문가는 대통령의 임무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 충고했다.

지난 2월 10일, 220명의 여성연구자와 활동가들은 '한반도 평화와 성평등 민주주의 후퇴를 염려한다'는 제목의 공동입장문을 내고 "우리들은 한반도 평화의 위기 상황을 이용해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지도자를 원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전쟁이 일어날 때 누가 가장 큰 피해를 입을까?

생각도 하고 싶지 않지만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여기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핵전쟁이 될 것이다. 남북한을 막론하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삶이 송두리째 사라질지도 모른다. 또 힘들게 이룩해 온 우리 사회의 모든 것, 우리의 삶, 우리의 미래는 그야말로 총체적 또는 영원한 암흑(black out)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

평화운동에 참여해온 사람들은 그래서 전쟁을 막는 일에 힘을 다하려 하고, 현재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무엇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는 데 힘을 모은다. 값비싼 전략무기를 도입하고 군사훈련을 하고 군사비를 증가하는, 힘에 의지하는 평화보다는 대화와 협상을 기본으로 하는 외교에 집중하자고 주장하는 이유다,

시민들이 전쟁을 종식하고 전쟁을 중단하는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시민 주권행동의 하나다. 주권자로서 여성들은 지금까지 전쟁과 평화, 안보의 문제를 누가 결정해왔는지 질문하고, 여성의 생존과 안전, 평화를 좌우하는 심각한 문제를 소수의 정치인들, 권력자들, 군인들만이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왜 그런가?

그것은 전쟁과 무력 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시민들 중에서도 여성과 소녀들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유고 내전과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분쟁 그리고 최근의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그와 같은 상황을 너무 많이 보았다. 또 멀리 가지 않아도 일본군 '위안부'(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통해 너무 잘 알고 있다.

여성들, 전쟁과 무력분쟁의 피해자에서 평화건설의 피스메이커로

여성들은 그동안 평화와 안보 영역에서 주로 일방적인 피해자 혹은 보호대상자로 인식되어 왔다. 여성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여성들이 평화과정에 참여하고 평화협정에 직접 서명자로 참여할 경우에 평화의 지속성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35% 이상 증가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여성들은 무력분쟁에서 일어나는 여성폭력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그리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또 분쟁 후 재건과정에서 여성들의 목소리와 경험을 반영하기 위해, 여성들이 평화를 만드는 전 과정과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유엔과 국제사회의 권고이자 규범이기도 하다.

한반도에서는 지난 30년 동안 여성들이 지속가능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의미 있는 도전을 해왔다. 1953년 휴전협정 후 공식적인 남북 민간교류의 물꼬를 트고, 군사분계선을 통과한 이들이 바로 여성들이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남-북-일 여성들은 동경-서울-평양-동경을 오가면서 4차례의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를 개최했고, 평화 창조를 위한 여성들의 역할을 확인하고,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공동과제로 결정했다. 그리고 수 년 전까지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해 남북여성들이 만남을 가졌다.

정말 아쉬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북 민간교류를 시작한 이를 1998년 소떼를 몰고 방북한 고 정주영 현대회장으로 기억한다는 점이다. 여성들의 역사를 공적인 장에서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하며, 그 의미를 현재의 것으로 또 미래를 위한 유산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북관계가 다시 얼어붙었던 2015년 5월에는 리마 보위와 메어리어드 맥과이어와 같은 노벨평화상 수상자와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 글로벌 여성평화운동가 30여 명이 평양을 방문하고 개성을 거쳐 북쪽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횡단한 Women Cross DMZ 행사가 진행됐다. 이 행사는 한반도 분단과 평화 문제가 국제여성들의 연대와 협력으로 글로벌 여성평화운동의 과제로 전환되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였다. 이렇듯 여성들은 분단선을 넘어 균열을 내는 평화 활동을 선도적으로 이끌어 왔다.

한국도 페미니즘 관점의 통일·외교·국방 정책 수립해야

미국은 2017년에 '여성·평화·안보법'(Act on Women, Peace, and Security)을 제정했다. 또 스웨덴과 캐나다, 프랑스에서는 페미니스트 외교정책(Feminist Foreign Policy)을 외교정책의 기조로 수립해서 개발협력이나 공적개발원조(ODA), 평화유지활동 등을 추진할 때 성인지 관점에 기초해 정책을 수립·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국내외 여성평화활동가들의 선도성이나 적극성에 비하면, 통일·외교·국방 정책은 여성들의 역량을 담아내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이 분야의 성평등 민주주의가 너무 취약하다. 2020년 5월, 84개 여성단체가 통일부에 양성평등담당관을 배치하라고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으나 아직까지도 통일부에는 양성평등담당관이 배치되지 않았다. 국방부에는 양성평등담당관이 배치되어 있지만 군대 내 성폭력 문제만을 담당하고 있으며, 이 문제 또한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오는 3월 9일이면 향후 5년 동안 대한민국을 이끌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된다. 통일·외교·국방 문제를 다룰 새로운 정부는 여성들이 북한여성들과의 협력을 통해 미래의 삶의 공간을 확장시킬 기회의 창을 열어야 한다. 개발협력이나 ODA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여성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개발하는 동시에 공공적 가치에 적극 기여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 또 여성들이 우리 사회의 안전을 이룩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새 정부는 과감하게 페미니즘 관점의 통일·외교·국방정책을 도입하고 시도하여 여성과 청년들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가 주권자로서 시민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 노력을 다 해야 한다.


[연재 순서]
① 기후정의를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사라 여성환경연대 활동가)
② 일터와 삶터에서 모두의 평등한 공존을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노헬레나 한국여성노동자회 활동가)
③ 페미니즘 복지국가를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류형림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장)
④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김정수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
⑤ 익숙하지만 낯선 이주여성을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남지은(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활동가)
⑥ 젠더폭력 근절을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백조연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활동가)
⑦ 우리 모두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양이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⑧ [지역 2030 페미니스트 활동가 집담회 후기] 지역/청년/페미니스트에게도,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양희주 제주여민회 사무국장)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입니다.


태그:#한반도와 세계 평화, #페미니스트 주권자 행동, #페미니즘, #한국여성단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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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창립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지속가능한 성평등 사회를 만들고 여성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연대를 이뤄나가는 전국 7개 지부, 28개 회원단체로 구성된 여성단체들의 연합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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