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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역전종합시장 풍경
 군산역전종합시장 풍경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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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군산 역전종합시장을 찾았다. 오색찬란한 반찬가게와 떡집, 전집(부침개), 생선가게, 채소가게, 정육점, 옷가게, 이불가게, 신발가게 등의 진열대가 눈을 즐겁게 한다. 출출해진 속을 달래줄 분식집과 국밥집도 있고, 한쪽에서는 밥알이 동동 떠다니는 식혜도 판다. 조금 더 들어가면 한복집과 이불집, 만물상도 보인다. 과연 종합시장답다.

역전종합시장은 신영시장, 공설시장(구시장), 새벽시장 등과 벨트를 이루며 하나의 상권을 형성하는 전통 재래시장이다. 도착 시각은 오후 5시. 이때쯤이면 장 보러 나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뤄야 함에도 명절 끝이라서 그런지 무척 한산하다. 침체된 경기와 '코로나19 오미크론 확진자' 급증 때문인지 예전 모습과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군산 역전종합시장, 60~70년대 모습은

공설시장과 새벽시장은 일제강점기, 신영시장과 역전종합시장(아래 역전시장)은 광복 후 개설됐다. 그런데도 역전시장은 식민지 생채기가 가장 많이 남아있어 통한의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 예전엔 군산역과 인접한 '사창가'였던 것. 역전시장은 1930년대 군산역과 같은 번지(영정 3정목)에 속했음에도 '히파리마치(히빠리마치)'란 별칭을 가진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전통순대국밥 협동조합과 역전종합시장 교육관은 기차가 다니던 시절 군산역 화물취급소 자리였으며 공용주차장은 화물야적장이었다. 이 일대는 일제강점기부터 화물(장작, 석탄, 시멘트 등) 야적장으로 사용됐으며 장작시장도 있었다. 따라서 히파리마치는 가시철조망(훗날 블록 담으로 교체)을 경계로 군산역 화물취급소와 마주하고 있었다.

60~70년대엔 대부분 목조 건물로 화재에 노출되어 있었다. 사건도 자주 발생했는데 언론에는 '적선지대', '윤락가', '경찰력의 사각지대' 등으로 소개됐다. 또한 '대명동 사창가', '히파리마치(히빠리마치)', '쉬파리골목(시파리 골목)', '역전 색시골목' 등의 별칭이 따라다녔으며, 청소년들은 '18'의 영문인 '에이틴(Eighteen)'이란 은어를 즐겨 사용하였다.

언제부터 '쉬파리 골목(시파리 골목)'이라 불렸는지 그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소매를 잡아끈다(호객행위)'는 뜻의 일본어 '히빠리(引っ張り)'가 '히파리', '쉬파리', '십팔이(18)' 등으로 변용된 것으로 보인다. 
 
군산역 플랫폼에서 바라본 역전종합시장(2008년 모습으로 사창가 흔적이 엿보인다.)
 군산역 플랫폼에서 바라본 역전종합시장(2008년 모습으로 사창가 흔적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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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군산문화대전>은 "역전종합시장(대명동 138)은 1965년에 개설된 상가 주택 건물형 시장으로, 2010년 기준으로 점포 수 98개의 소형 시장"이라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시장 개설 시기에 대해 견해를 달리한다. 60~80년대에도 골목마다 윤락녀들이 집단으로 거주하였고, 불법 윤락행위가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사창가였기 때문이다.

1971년 7월 6일 치 <경향신문> 기사에도 잘 나타난다. 신문은 "군산시는 지난 5월 대명동 골목길에 시비 20여만 원을 들여 가로등 두 개를 세웠다."라고 전하면서 '윤락 여성과 좀도둑이 득실거리는 공간'으로 소개하였다. '일부 주민들이 가로등 설치 후 밤길이 너무 밝아 영업이 안 된다는 이유로 가로등 철거를 요구했다'는 대목 역시 사창가였음을 암시한다.
 
대명동 사창가 화재 보도한 1978년 1월 13일 치 <경향신문>
 대명동 사창가 화재 보도한 1978년 1월 13일 치 <경향신문>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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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하오 10시 10분쯤 군산(群山)시 대명(大明)동 138 사창가에 불이나 연건평 1백11.3평짜리 2층 목조건물을 모두 태우고 3천여만 원의 피해(경찰 추산 1천여만 원)를 낸 다음 40분 만에 진화됐다. 경찰조사 결과 불은 포주 한경희 씨(韓京姬·26) 집 2층에서 전기장판 안에 들어 있는 코일이 합선되어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1978년 1월 13일 치 <경향신문>)

이듬해인 1979년 1월 4일 치 <동아일보>는 "1일 새벽 3시 40분경 군산시 대명동 138 적선지대 옛 목조창고 건물에서 원인모를 불이 나 30세가량의 남자 두 명이 불타 숨지고..(줄임) 화재가 난 지역은 일제 때 지어진 목조창고(건평 120평)를 영세민 24가구가 조그마한 방을 만들어 윤락여성을 두고 장사를 해온 곳"이라고 전하였다.

기사에서 '대명동 138'은 지금의 역전시장 일대를 가리킨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두 신문이 '사창가'와 '적선지대'로 각각 소개하고 있다는 것. 그 시절 역전시장 일대는 '사창가'였음을 시사하고 있다. 70년대 당시엔 판잣집이 다닥다닥 늘어붙은 빈민촌(사창가)이었으며, 몇 년 주기로 대형화재가 발생, 인명 피해로 이어져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주부와 여중생을 무차별적으로 납치, 유인하여 사창가에 팔아넘기려다 적발되는 인신매매 관련 사건도 종종 일어났다. 1985년 9월에는 전국을 무대로 가출소녀를 납치하여 윤락가에 팔아온 인신매매단에게 10대 소녀들을 사들인 대명동 사창가 포주 두 명이 윤락행위등방지법 위반 협의로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통한의 역사 돌아보게 하는 일제 잔재들
 
일제강점기 군산역 모습(제공: 일제강점기 군산역사관)
 일제강점기 군산역 모습(제공: 일제강점기 군산역사관)
ⓒ 군산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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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동 사창가(히파리마치)는 언제쯤 생겨났을까. 군산선(군산-이리) 개통과 함께 군산역이 영업을 개시하는 1912년 3월 이후 조성됐다는 게 통설이다. 사창가는 강화도조약(1876) 이후 일제가 개항장 중심으로 조성한 유곽(공창)에 기원을 둔다. 공창(公娼)은 관청에서 허가받은 매음업을 말하며, 사창(私娼)은 그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불법매음업을 뜻한다.

일제강점기 군산에는 '공창'과 '사창'이 서너 곳 있었다. 지금의 명산동에 자리했던 산수정 유곽은 공창이었고, 창성동 말랭이에 있었던 은군자마을(오백고지)과 대명동 역전시장 자리에 있었던 히파리마치는 불법 성매매가 이뤄지는 사창가였다.

기록에 따르면 군산선 개통 이후 군산역은 화물과 여객이 해마다 증가하였다. 여객 증가로 역구내가 혼잡해지자 일제 당국은 경찰관을 파견한다. 그런데도 업무가 미치지 못하자 철도 이용객 취체(取締)를 명분으로 1921년 히파리마치와 마주 보는 위치에 파출소를 신설한다. 따라서 히파리마치는 파출소 설치 이전부터 존재했을 거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고은 시인의 연작시집 <만인보>와 자전적 소설 <나의 산하(山河) 나의 삶>에서도 1950년 전후 히파리마치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또한 1·4후퇴 때 피난민 2만5천여 명이 군산에 정착하고, 군부대(신병보충대)가 철도 건너 공설운동장과 중앙초등학교에 주둔하면서 사창가는 더욱 확장된다. 주말이면 미군과 한국군 헌병들이 순찰을 펼 정도로 번성하였다.
 
역전시장 골목 입구(2000년 9월 발생한 화재현장 앞에서 찍음)
 역전시장 골목 입구(2000년 9월 발생한 화재현장 앞에서 찍음)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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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이후 윤락업소가 하나둘 감도가(감독)로 이전하면서 수요가 줄다가 2000년 9월 역전시장 골목 입구 3층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 성매매 여성 5명이 사망하였다. 피해자들은 모두 20대 여성으로, 포주에게 감금된 채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었다. 인명피해가 컸던 이유는 윤락녀들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창문에 쇠창살을 설치해놓았기 때문으로 알려진다.

역전시장 일대에 자리한 상가(商家)들은 대부분 70~80년대 건축물로 '청소년통행금지구역' 안내판을 비롯해 한 사람도 걸어가기 어려운 비좁은 골목,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가스통과 여인숙 간판들, 감옥을 연상케 하는 녹슨 쇠창살 등 지금도 곳곳에 사창가 흔적이 남아 있다. 이 모두 일제가 남긴 생채기로 통한의 역사를 돌아보게 하는 잔재들이다. (계속)

덧붙이는 글 | 덧붙임
참고문헌: 디지털군산문화대전(군산역전종합시장)
동아일보(1920년대), 경향신문(1970년대), 동아일보(19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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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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