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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 웹소설 작가가 된 대학생 문민기
 25살 웹소설 작가가 된 대학생 문민기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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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는 것이 왜 좋냐구요? 저만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잖아요. 그 안에선 작가의 대리자인 주인공이 억만장자, 톱스타 연예인, 세계 최고의 스포츠선수, 심지어 초능력자가 될 수도 있고요."

올해 스물다섯 청년은 어차피 허구라서 더 즐겁다고 했다. 현재의 삶에선 결코 꿈꾸지 못할 이야기나 꿈들을 대신 만족시켜준다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이냐고 했다.
25일 한파가 그치고 낮 햇살이 달달한 봄을 재촉하고 있을 무렵, 충남 서산시 지곡면 오스카빌에서 웹소설작가 문민기씨를 만났다. 그는 소소하지만 재미와 호기심을 자극시켜주는 글을 쓰며 누구보다 행복해했다.

"힘들고 지친 일상, 혹은 방황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많은 사람에게 삶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싶어요. 짧은 인생이란 국한된 삶에서 벗어나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무한한 공간이 있다는 건 정말 멋지고 짜릿한 일이예요?"

어쩌면 시작은 자신의 성찰이자 불만을 토로하는 수단으로 여겼을지 모른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한탄이자 마지막 발악, 욕구 불만족의 성찰이고 영위? 그러나 이젠 아니다. 민기씨에겐 꿈의 일부이자 인생이 되어버렸다.

- 글은 어떤 계기로 쓰기 시작했는가.
"어린시절 집안 환경이 그리 부유하지 못했다. 당시 담임선생님께서는 문예담당도 맡고 계셨는데 우리 집안 형편을 다 알고 계셨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처음으로 수필을 써서 상을 받았다. 내가 정말 글을 잘 써서인지, 아니면 응원과 용기를 주시기 위함인진 잘 몰라도 우리 가족들은 매우 기뻐했다. '아~ 내가 글을 잘 쓰면 부모님이 좋아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던 거 같다."
 
각종 백일장 및 문예공모전에서 받았던 상장들
 각종 백일장 및 문예공모전에서 받았던 상장들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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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쓰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
"중학생 때부터다. 정확히 말하자면 창작이란 분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 물론 시나 수필도 좋았다. 하지만 길고 많은 이야기를 담기란 한계가 있어 아쉬웠다. 그래서 '내가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라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래서 문민기의 소설이 시작됐다.

나름 재미도 있었다. 처음으로 쓴 소설이 '만해 청소년 문학상'에서 대상을 받게 됐다. 그 당시 고등학생들과 경쟁을 했다. 아직 어린 중학생이 대상을 받은 건 처음이라 다들 놀라워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문예를 사랑하고 가까이했다. 이외에도 전국 학생모니터단 UCC 공모전에서 영광의 1위를 했고, 2013년 서산 인권영화제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이런 상복들이 모여 창작을 즐기며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뚜렷이 알 수 있게 해주었다."

- 아버지도 서산에서는 유명한 글쟁이셨는데 그 영향도 있을 것 같다.
"처음 문예대회에서 상을 받아올 때만 해도 몰랐다. 중학생이 되자 아버지께서 '나도 어렸을 때 꿈이 작가였다'고 하더라. 예상치도 못한 이야기에 깜짝 놀랐고, 독서와는 일가견이 없는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를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아마 아버지의 피를 어느 정도 이어받았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 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 아버지의 반응이 궁금하다.
"처음엔 티를 내지 않으셨지만, 최근엔 굉장히 좋아하신다. 아마 당신의 못다 한 꿈을 아들이 작게나마 이뤄줬다는 성취감에서 비롯되지 않으실까.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글을 쓰려 한다. 자랑스럽고 반짝이는 별이 되고 싶은 소망이 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학생회장 역임
 고등학교 재학시절 학생회장 역임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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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생 시절에도 나름 유명했다고 하던데.
"글쓰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친구들과 추억을 쌓기 위해 축제를 나갔던 게 시발점이었다. 그때도 그냥 재밌는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재미와 웃음을 선사하고자 콩트를 했다. 누군가와 소통한다는 것에 대한 기쁨을 알게 됐고, 또 그게 인기가 아주 좋았다.

몇 달 뒤 학생회장 선거에 나갔는데 그 덕분인지 당선이 됐다. 반장은 해본 적이 있어도 그런 막중한 자리를 맡게 된 건 처음이었다. 어려움과 부담도 많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다 보니 남들이 알아주더라. 그래서 더욱 잘하고 싶은 마음에 최선을 다했다.

공약으로 내세웠던 자판기 설치도 이뤘고 많은 친구가 인정해주고 좋아해 줬다. 덕분에 학생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다가가고 알려질 수 있었던 거 같다. 이 자리를 빌려 다소 무리한 요구에도 학생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서 결정을 내려주신 서일고등학교 조한구 교장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학생회장 경험은 나와 내 삶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주고, 성숙하게 해주는 굉장히 중요한 추억이 돼 주었다."
 
2016년 전국 농어촌청소년 문예제전 국무총리상 수상
 2016년 전국 농어촌청소년 문예제전 국무총리상 수상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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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인가.
"2015년과 2016년 전국 농어촌문예제전에서 대상으로 여성부장관상과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특히 2016년 수상 때 시상자들에게 나눠준 수상모음집을 통해 어느날 타지에 사는 학생이 SNS를 통해 연락을 해왔다. 그것도 내 소설의 소감문을 장문의 문자로 보내온 것이었다. '희망과 용기를 얻었고 롤 모델로 삼았다'는 내용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찬사를 받자니 온몸에 전율이 돋았다. 그 환희는 고등학생이었던 내게 어떠한 글이나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가치였다. 어쩌면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글을 쓰고 싶단 생각을 확고히 심어준, 내 앞날의 방향과 꿈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선물해준 최고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 순간을 항상 기억하며 향후 농어촌청소년육성재단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조금 더 좋은 환경과 기회를 줄 수 있도록 일조하고 싶단 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게 되려면 그만큼 책임질 수 있는 멋진 어른이 돼야겠지만 말이다."
     
- 반대로 슬펐던 순간은?
"참 조심스럽다. 내겐 16살 차이가 나는 늦둥이 동생이 있다. 내겐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이다. 동생에 관해 쓴 글이 모 주간지에 실릴 만큼 무척 아끼고 사랑한다. 하지만 햇볕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지는 법, 언제나 행복과 불행은 공존할 수밖에 없다.

부모님 연세가 많으므로 동생의 앞날을 책임지고자 하는 사명 같은 게 항상 마음속에 있다. 실제로 부모님도 내가 그러하길 바랐다. 주변 지인들은 '그것을 왜 네가 애써 떠안으려고 하냐'고 묻지만, 나는 내 가족들을 사랑하는 만큼 조건 없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고3 때 대학교 수시원서로 넣었던 문예창작학과 진학을 포기했고, 취업이 용이한 현재의 지역사회개발학과로 진학했다. 하지만 난생처음 듣는 학문으로 인해 대학에 가고 나서도 방황을 많이 했다. 그래도 지금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서산을 포함한 다른 여러 지역에서 문예와 문화사업 발전을 위해 이바지하고자 진로를 설계 중이다."

- 웹 공간에선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웹소설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군 전역 후 추가로 휴학을 1년 더 했다. 막내가 태어난 뒤 어머니는 경력단절 여성이 됐고 늘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고자 하셨다. 직장생활을 하는 누나와 대학생활을 하는 남동생은 막내를 돌볼 여력이 되지 못했다.

'내가 휴학을 해서 막내를 돌본다면 어머니가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과감히 휴학계를 제출하면서 나는 육아와 집안일을 도왔고, 덕분에 나름의 환기할 시간도 가졌다.

익숙한 생활이 반복되기를 반년, 무언가 하고 싶단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건 다시 돌고 돌아 '글'이었다. 아득히 작가의 꿈을 꾸었던 어린 날의 어렴풋한 기억들을 다시 꺼내 보았다. 그것은 아직도 아름답고 영롱한 빛을 띠고 있었다. 고유한 역사를 자랑하는 서산의 문학 동호회 '갯벌문학회'를 통해 나름의 문예활동도 했다. 하지만 무언가 자꾸 부족했다. 조금 더 많은 사람에게 내 글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게 바로 웹소설이었다.

현재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다양한 인터넷 매체와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나도 자유 연재를 통해 내 소설을 선보였다. 그게 바로 '프로야구의 전설'이란 소설이다. 지금 생각하면 육아 휴학을 하지 않았다면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왜 야구를 주제로 이야기를 다루었는가.
"무언가 큰 목표를 원하고자 했던 게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휴학생의 단순한 취미생활이었으니까. 교훈을 주거나 감동적인 서사는 학창시절에도 많이 해봤으니 가벼운 내용과 마음으로 글을 써보고 싶었고, 그래서 평소 좋아하는 야구이야기를 썼다.

시작은 그저 소소한 즐거움에 불과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면서 인기대열에 편승하게 됐다. 꿈만 같은 매일의 연속이 펼쳐졌다. 자고 일어났더니 여러 매체의 출판사로부터 출간제의가 들어왔다.

가장 먼저 연락을 준 출판사와 계약을 하게 됐다. 현재 출판사의 '현대판타지' 및 '스포츠장르' 첫 작품의 작가라는 멋진 2가지 타이틀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내 날개는 꺾인 게 아니라 잠시 접혀있었단 걸."
 
올해 2월 네이버 시리즈에 런칭된 웹소설 '프로야구의 전설'
 올해 2월 네이버 시리즈에 런칭된 웹소설 "프로야구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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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소설이란 뉴미디어 문학 장르를 통해 작가가 되었다. 또 다른 꿈이나 목표가 있는가?
"내 꿈과 미래에 대한 진취적인 계획이나 구체적인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평생의 업으로 삼을 만큼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나와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라면 모두 한 번쯤은 고심해봤을 거다.

내 꿈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뚜렷하게 무슨 일을 하고 싶거나 꿈이 있다기보단 그저 지금처럼 다채로운 생각들을 폭넓게 갖고 싶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다른 내용의 소설도 써보고 싶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거나, 불우한 환경에서 꿈을 접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손도 내밀어주고 싶다. 또 삶의 회의를 느낀 이들에겐 찾아가 대화도 나누고 힘과 용기도 주고 싶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내 글은 딱히 재미가 있지도, 그렇다고 문장력이 기똥찬 것도 아니다. 저자인 내가 봐도 아직 허술한 점도 많고 배울 것도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내가 쓴 소설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다는 게 너무 신난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었지만 꽤 만족하고 있다.

프로야구의 전설 가장 후반부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주인공이어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게 아니라, 그 고난과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섰기 때문에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거다.' 청년들에게 말하고 싶다. 코로나로 다들 어려운 시국이지만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나아간다면 반드시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있을 거라고. 그러니 기죽지 말고 힘내자고 말하고 싶다."

아름다운 청년 문민기 작가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접었던 날개를 다시 펼치려고 하는 저처럼, 지금 이 글을 접한 당신도 반드시 세상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힘내십시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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