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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에 꽂힌 책과 우연히 만나는 순간에 대해 씁니다. [편집자말]
10년 전, 수업이 다 끝난 어둑해진 저녁 한 대학교 강의실에서 김혜미를 처음 만났다. 그는 아무런 근심과 걱정이 없어 보일 정도로 무척 밝은 얼굴이었다. 그 후 우리는 3년 동안 대학 학생독립언론 활동을 함께 하면서 가까워졌다. 나름대로 친밀하다면 친밀한 관계였다.

그런 김혜미가 몇 년 전 부모와 불화해 끝내 집을 나왔다는 소식을 건너 전해 들었다. 그때는 그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겠지'라고 생각하고 말을 거는 일은 따로 하지 않았다. 나는 김혜미가 겪은 일을 10년 뒤 그가 쓴 책에서 자세하게 알게 됐다.
 
어느 날 엄마를 생각하다가 썼다.

'나는 엄마와 사이가 좋다
나는 엄마에게 맞았다'

이 두 문장은 양립할 수 없다. 한 문장을 지워야 했다. 망설이지 않았다. 펜을 들고 '나는 엄마에게 맞았다'는 문장을 죽죽 그어 지웠다.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 맞은 사실을 문제 삼지 않았다. 우리 가족이 화목하다고 굳게 믿었고, 화목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울타리에서 절대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 31쪽
 
걱정거리 없을 것 같은 밝은 얼굴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김혜미는 가장 안전해야 할 자신의 집에서 최고조의 갈등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 무렵 김혜미는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여성인 박순애를 만났다. 김혜미는 그 운명적인 만남을 책 <박순애, 기록, 집>에 꼼꼼하게 기록해 세상에 내놨다.

접점 없는 두 사람
 
책 '박순애, 기록, 집' 표지 이미지
 책 "박순애, 기록, 집" 표지 이미지
ⓒ 이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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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사는 박순애는 김혜미와 어떤 접점도 없는 사람이다. 이 책을 쓸 무렵 김혜미는 20대였고 박순애는 90대였다.

박순애는 일본에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회원 집에 머문 적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박정희 정권 아래서 간첩으로 조작돼 1977년부터 12년 3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다. 반면 김혜미는 박정희라는 인물을 역사책에서만 보았을 뿐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1992년 11월 태어났다.

비록 시대가 조작 간첩 피해자 박순애를 만들기는 했어도 당시 법대까지 진학했을 정도로 '엘리트'였던 박순애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기록으로 남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김혜미는 그의 기록을 들으러 온 사람이었다. 불꽃이 튈 것 같지만 이들의 첫 만남은 기대와 달리 싱겁게 끝나고 만다.
 
"근데 너 책 써봤냐?"(중략) 이해는 못 해도 당신 말을 잘 듣고 있다는 대답을 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솔직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니오. 안 써봤는데요." 못 미더운 눈치였다. 그래도 이야기는 이어졌다. 듣는 척이라도 해야 하니까 열심히 대답했다. 저녁으로 초밥을 얻어먹고 하룻밤을 잔 뒤 허둥지둥 박순애의 집을 빠져나왔다. - 22쪽
 
김혜미는 박순애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보겠다는 무모한 결심을 한동안 후회했다. 김혜미는 이후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기록 작업을 못 하겠다는 말을 하러 박순애를 찾아갔는데, 그 말을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온다.
 
급한 일이 생겨 서울로 가야 한다고 둘러대고는 박순애 이야기는 듣지 않았다. 박순애는 이야기를 듣지 않고 가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나를 배웅하면서 또 오라고,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기다리겠다는 말은 무거웠다. 박순애가 내 마음을 눈치챈 걸까 두렵고 부끄러웠다. - 78쪽
 
박순애의 기다리겠다는 말이 역시 무거웠던 걸까. 김혜미는 못 쓰겠다던 마음을 바꿔서 들은 것까지만 쓰기로 하고 박순애와 연락을 계속하게 된다. 그러던 중 안부를 묻게 되고 반말을 사용하게 되고 밥을 같이 먹게 되면서 점차 서로의 상처를 마주한다.

박순애 당시 여성으로서는 '예외적으로' 1949년 법대에 진학해 '변호사'라는 꿈을 꾼다. 하지만 박순애는 '예외 없이' 시대 안에서 사는 사람이었기에 결국 시대가 만들어둔 어두운 구멍에 턱턱 걸리고 만다.
 
엄마 하나 없으니까 나한테 다 눈칫밥이여, 눈칫밥. 육이오 전까지 2년 동안 명륜학원에서 공부를 했는데, 인민군이 들어와버려서 학교를 못 다녔잖아. - 62쪽
 
시대가 만들어낸 구멍에 걸려 그는 대학을 그만두고 만다. 한국전쟁 때문에 여성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박순애는 결국 1969년 다른 가족을 찾아 일본으로 떠났지만 가족에게 다시 외면당하고 만다. 그는 불법 체류자 신세가 돼 조국으로 돌아오지만, 중앙정보부와의 조사에서 '조총련'이라는 단어 한 마디로 인해 간첩으로 조작돼 억울하게 12년 간 옥살이를 한다.

하지만 억울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박순애는 45년에 걸쳐 지독하게 재심을 시도했고 결국 무죄를 받아내고야 만다. 박순애의 반평생 삶은 박순애 본인이 한 적 없는 일에 대한 무죄를 끌어낸 삶이었다.

시간이 만들어주는 접점
 
서울에 와서도 박순애와 나는 서로 전화를 걸지 않았다. (중략) 박순애는 한 번도 먼저 전화를 건 적이 없어서 무슨 큰일이 생긴 줄 알고 급히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 무슨 일 있어?" 박순애는 내 말에 대답을 하지는 않고 왜 요새는 전화를 안 하냐고 호통을 했다. (중략) 박순애는 이렇게 말을 마무리했다. "그래서 너도 외롭겠다 싶었다." - 204쪽
 
박순애는 날줄이고 김혜미는 씨줄이다. 시간이 흐르고 둘은 교차하고 엇갈리면서 새로운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박순애는 적어도 '기록자' 김혜미와의 첫 만남에서 그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김혜미가 박순애에게 단순한 '기록자'가 아니라 "너"가 되면서 이 관계는 변한다. 이 책은 조작 간첩 피해자 박순애의 삶을 진득하고 꼼꼼하게 기록한 '박순애 기록집'이지만 단순히 박순애의 과거의 삶만을 순서대로 기록해놓은 '기록집'은 아니다.

책 <박순애, 기록, 집>은 그래서 '박순애 기록집'이 아니라 '박순애, 기록, 집'이다. 박순애라는 든든한 벽을 타고 김혜미는 몇 년에 걸쳐 천천히 오른다. 박순애는 과거 자신의 '집'에서 제대로 살지 못했지만 자신의 삶을 새로이 '기록'할 수 있는 동지를 만났다. 김혜미는 박순애를 만나고 박순애의 삶을 '기록'하면서 비로소 자신이 떠나온 '집'을, 그리고 엄마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났다.
 
박순애는 이야기했다. "버텨, 버텨야 해." 버텨온 시간이 계속 쌓이면 더 살고 싶어질 테다. 솔직히 말해야겠다. 박순애의 말을 들은 뒤에 나는 죽음을 더는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이 됐다. 죽을 수 없는 사람이 됐다. - 8쪽
 
김혜미는 박순애를 만나고 "죽을 수 없는 사람이 됐다"고 말한다. 아무런 접점이 없는 누군가의 삶을 듣고 기록을 하는 사람이 스스로 변하는 경험, 죽으려고 했던 사람이 죽을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기이한 기적을 이 책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이 만나봤으면 좋겠다. 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또 다른 사람의 삶을 들으려 할 때 이 책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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