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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을 이틀 앞둔 27일 서울도서관 외벽에 마련된 대형글판 '서울꿈새김판'에 "나는 당당한 대한의 국민이다"가 게시돼 있다.
 삼일절을 이틀 앞둔 27일 서울도서관 외벽에 마련된 대형글판 "서울꿈새김판"에 "나는 당당한 대한의 국민이다"가 게시돼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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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없는 국경일은 언제일까. 실은 물어보나 마나 한 질문이다. 당연히 7월 17일 제헌절이다. 왜냐고? 쉬는 날이 아니어서다. 주지하다시피, 지난 2008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노파심에서 미리 한마디 얹고 가자면, 우리나라의 국경일에는 앞서 언급한 제헌절을 비롯해 3.1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까지 총 다섯 날이다. 말 그대로, 국가의 경사를 기념하는 날이다. 하여 당일 집집마다 태극기를 게양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헌절 다음으로 인기가 없는 국경일은? 바로 낼모레인 3.1절이다. 3.1절이 무슨 날인지 모르는 아이는 없지만, 그날에 '감사해하는' 경우도 거의 없긴 마찬가지다. 전국 모든 학교의 개학과 입학 바로 전날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겐 존재감이 없다. 

아이들에게 3.1절이 '찬밥 신세'인 것은 순전히 3월에 새 학년을 시작하는 학사일정 탓이라는 이야기다. 3.1절은 기나긴 겨울방학의 맨 마지막 날일 뿐이다. 등교 준비에 경황이 없어 거리 곳곳에 펄럭이는 태극기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는 때다.

언감생심 여느 국경일처럼 수업 시간에 계기 교육을 하기도 어렵다. 3월 초면 아이들도 교사들도 분초를 쪼개 써야 할 만큼 분주한 때다. 명색이 24년 차 역사 교사로서 참으로 민망한 고백이지만, 지금껏 때맞춰 3.1절 계기 교육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3.1절은 다섯 국경일의 '맏형'으로서 가장 중요한 날이다. 달력의 맨 앞자리이기도 하려니와, 다섯 날 중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공화국'의 시작을 의미하는 기념비적인 날이기 때문이다. 

제헌 헌법 제정 당시부터 명토 박은 헌법 서문의 첫머리에 3.1운동이 등장하는 이유다. 헌법 서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로 시작된다. 3.1운동이 대한민국 정통성의 뿌리라는 뜻이다. 

'대한민국 헌법'

올해도 새내기 아이들 대상 3.1절 계기 교육은 힘들 듯하다. 3월 2일에 개학하자마자 입학식에다 모꼬지, 수련 활동이 연달아 이어지고, 학교생활 적응을 위한 상담이 급선무라 수업 진도 나가는 것조차 버겁다. 더욱이 코로나 방역 업무조차 학교로 이관된 상태 아닌가. 

그런데도 새내기 아이들의 담임교사이기 앞서 역사 교사로서 뒤통수가 따갑다. 그러잖아도 무관심한 그들 앞에서 교사마저 3.1절이 뒷전이면 안 되겠다는 다짐이 섰다. 좌고우면 대안을 고민하다가 동료 교사와 아이들 모두에게 '3.1절 선물'을 건네기로 했다.

입학을 축하한다는 의미를 담아 '대한민국 헌법'을 선물하기로 계획했다. 입학식 날 뜬금없는 선물에 적이 당황할 테지만, 적어도 전날이 3.1절이었다는 사실 정도는 되짚어보게 될 것이다. 3.1운동이 대한민국의 시작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책 구매 비용은 학교장께서 흔쾌히 지원해주셨다. 해마다 아이들이 3.1절의 의미도 모르고 지나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건 그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책값이 딱히 비싼 것도 아니어서, '가성비'로 따지면 그 어떤 선물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헌법 책이 권당 2000원이 채 안 된다고 하니 동료 교사들조차 깜짝 놀라는 눈치다. 심지어 '요약본' 아닌지를 되묻는 이들도 있다. 순간 교사 중에도 최고의 기본법인 헌법을 단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흠칫 놀랐다. 

몇 해 전 겨울방학을 앞두고 헌법을 주제로 수업을 진행했던 적이 있다. 시험 뒤끝이라 진도를 나가는 대신 아이들과 함께 헌법 조항을 읽어보려는 의도였다. 그땐 헌법 책을 따로 구매하지 않고, 그저 제1장 '총강'과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부분만 출력해서 사용했다. 

아이들의 첫마디는 이랬다. "헌법이 그렇게 얇아요?" 헌법 전문을 A4 용지로 출력하면 10장도 안 된다고 했더니 튀어나온 반응이다. 아이들은 대한민국 헌법이니만큼 그 이름에 걸맞게 적어도 사전 두께는 될 줄 알았다며 서로 마주 보고 멋쩍게 웃었다. 

그때 새삼 깨달은 게 있다. 아이들은 헌법을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법처럼 여기며, 조항 내용을 '공자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을 안다고 해서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무슨 도움을 주느냐고 반문하는 아이 앞에서 적이 당황하기도 했다. 

헌법보다 교칙을 더 두려워하는 아이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은 헌법보다 교칙을 더 두려워했다. 최고 기본법이 헌법에 견줘 최하위 법인 교칙이 그들에겐 더 추상같은 위엄을 지닌다. 헌법 아래 법률이 있고, 그 아래에 명령과 조례가 위계적인 강제력을 갖는다는 건 교과서에서나 등장하는 내용일 뿐이다. 

입학 전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안내 책자에는 교칙이 몇 페이지에 걸쳐 실려 있다. 여전히 용의 복장 규정이 존재하고, 흡연과 음주, 도난, 소란 등에 대한 단속과 처벌 규정이 꼼꼼하게 안내되어 있다. 받자마자 밑줄 긋고 별표 쳐가며 공부하는 아이도 더러 있다.

수많은 교칙 조항들이 헌법은커녕 바로 위 상위법인 조례에 어긋나는지 따져볼 여유가 그들에겐 없다. 교칙 외엔 그 어떤 상위법의 조항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것들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아이가 태반이다. 사실상 그들에게 법이란 교칙이 전부다.

선물용으로 구매한 헌법 책은 80여 페이지 분량의 문고판 크기다. 가방에 넣어 다니며 수시로 꺼내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선택한 것이다. 그마저 읽기에 부담된다면,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조항만이라도 반복해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제10조 행복추구권부터 제39조 국방의 의무 규정까지 고작 서른 개 조항이다. 내용의 의미를 곱씹으며 천천히 읽어도 10분이면 충분하다. 대부분 단문이어서 반복해 읽다 보면 이내 딱딱한 법조문이 입말처럼 느껴진다. 남달리 명석한 아이라면, 통째로 외울 수도 있다.

헌법 선물 계획을 꺼냈을 때,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는 동료 교사가 없진 않았다. 몇몇 되바라진 아이들이 '헛똑똑이' 행세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사사건건 헌법 조항을 들이대며 두루뭉술 교칙에 태클을 거는 경우가 빈번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 앞에선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내심은 그러기를 바란다. 교칙과 헌법 조항을 나름대로 견줘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교육이 될 수 있으리라 여겨서다. 교칙이 헌법 조항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여기면 권위를 갖게 될 테고, 반한다면 합당한 절차를 거쳐 개정하는 게 옳다. 

지금 '선물'이 도착하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로 대면 입학식조차 취소된 마당에 지나친 욕심인 줄 알지만, 학교마다 입학식을 3.1절 기념식처럼 치르면 좋겠다. 장황한 훈화 대신 3.1운동으로 시작되는 헌법 서문을 아이들과 함께 읽는 풍경, 생각만 해도 뭉클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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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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