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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상암SBS스튜디오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초청대상 대선후보 2차토론회(정치분야)가 시작되기 전 준비하고 있다.
 25일 상암SBS스튜디오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초청대상 대선후보 2차토론회(정치분야)가 시작되기 전 준비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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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대선후보 TV 토론회에서 소름끼치는 발언이 나왔다. 유사시에 일본군을 한반도에 들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TV 토론이 시작된 지 46분을 경과한 시점에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물었다.

"지난번에 사드 3불 폐지하신다고 그랬는데, 여전히 입장 변화 없으신가요?"

사드 배치로 인한 한중관계 악화를 누그러트리기 위해 논의된 사드 3불 정책을 정말 폐지할 것이냐 하는 질문이었다. 3불 정책은 ▲사드 추가 배치 검토하지 않는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MD)에 참여하지 않는다 ▲한미일 안보협력이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윤 후보는 "그 정부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저는 그런 입장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라고 답했다. 문재인 정부의 입장을 자신은 따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드 3불 정책을 폐기하고 한미일 안보협력을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격상시킬 의향이 있느냐'는 취지의 추가 질문이 나왔다. 심 후보는 "한미일 군사동맹에 참여해서 유사시에 일본이 한반도에 개입하게 하실 생각은 아니실 거 아닌가"라고 물었다.

윤 후보는 "우리와 일본 사이의 군사동맹까지 가야 되는지는...", "아직 그런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기 때문에"라면서도 "그러나 그걸 안 한다고, 우리가 그걸 안 한다고 중국에 약속할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심 후보가 "한미일 군사동맹도 검토하시는 건가"라고 되묻자, 그는 "가정적인 상황이니까 지금은 그런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심 후보가 "유사시에 한반도에 일본이 개입하도록 허용하는 건데, 그거 하시겠나"라고 재차 질문하자 윤 후보의 입에서 이런 답변이 나왔다.

"한미일 동맹이 있다고 해서... 유사시에 들어올 수도 있는 거지만, 꼭 그걸 전제로 해서..."

한반도 유사시에 일본군이 들어올 수도 있지만, 비상 상황이 발생하지도 않은 지금 시점에 미리 이야기할 필요가 있느냐는 취지의 말로 해석된다.

대선 TV토론에서 나오는 발언들은 거의 다 미래 상황을 전제로 한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상황을 놓고 '앞으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이렇게 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구상을 드러내는 자리다.

윤 후보는 일본군이 한반도에 들어오는 일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상황이라 지금 당장 논의할 필요는 없지만 "유사시에 들어올 수도 있는 거 아니냐"는 입장을 밝혔다. 미래의 가정적 상황을 전제로 논의되는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이 정도로 발언했다면, 유사시 일본군의 한반도 진입에 대해 윤 후보가 찬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돼도 무방할 것이다.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는 25일 별도의 공지문을 내고 "한미일 군사동맹에 반대하지만, 그 얘기를 3불이라는 형식으로 중국에 약속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라며 윤 후보가 한반도 유사시 일본군의 개입을 허용했다는 해석에 반박한 바 있다. - 편집자 말)

우리 민족이 겪은 지난 과거를 잊었는가

지난 백여 년간 우리 민족이 숱한 고난을 겪고 고조부 이래의 우리 조상들이 혹독한 수난을 겪은 것은 유사시에 일본군이 한반도에 진입하는 것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반도 유사시를 빌미로 일본군이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이 우리 민족과 우리 집안들의 불행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1875년 일본군이 강화도에서 군사 도발을 일으킨 결과로(운요호 사건·운양호 사건), 이듬해에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이 체결되고 조선 시장이 일본에 개방됐다. 이로 인해 조선 상권이 흔들리고 서민경제가 악화되는 속에서 1882년 임오군란이 발생했다.

한성부(한양은 별칭) 주민들이 하급 군인들과 함께 일으킨 민중항쟁이 임오군란이다. 표면적으로는 군인 봉급의 부실 지급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 됐지만, 본질적으로는 시장개방과 경제 악화를 둘러싼 대중적 불만이 원인이 됐던 사건이다. 이로 인해 고종 정권은 1개월 동안 '식물 정부'가 됐고, 그 기간에 주도권을 잡은 쪽은 임오군란 주역들의 지지를 받은 흥선대원군이었다.

임오군란은 일본 기업의 대(對)조선 수출은 물론이고 일본 정부의 대조선 영향력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이런 사건이 돌발하자, 일본은 자국민과 자국 공관 보호를 명분으로 출병을 감행했다. 조선 민중의 분노로 인해 일본공사관이 공격을 당한 것을 빌미로 일본 정부는 내각 긴급회의를 열어 '거류민 보호를 위해 긴급히 군함을 파견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때 파견된 병력은 육군 1개 대대, 해군 군함 4척 및 수송선 2~3척이다. 일본 공사인 하나부사 요시모토가 이 병력 중에서 2개 중대를 차출해 한성부로 진입했다.

하지만 이때는 일본군이 힘을 쓰지 못했다. 함께 들어온 청나라 군대가 선수를 쳤기 때문이다. 청나라군이 조선 조정을 먼저 장악하고 내정간섭을 실시하는 바람에 일본군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이로부터 12년간 조선은 청나라의 직접적 내정간섭에 시달렸다.

종전의 조선·청나라 사대관계는 조선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바탕에서 이루어진 데 반해, 1882년부터 12년간의 조청관계는 조선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내정간섭 형태로 이루어졌다. 유사시 외국군의 한반도 진입을 막지 못한 결과였다. 일본군이 선수를 쳤다면 이때부터 일본의 지배가 시작됐겠지만, 청나라가 기선을 제압하는 바람에 일본의 지배는 실현되지 못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018년 10월 14일 일본 육상자위대 사열 행사에서 예를 표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018년 10월 14일 일본 육상자위대 사열 행사에서 예를 표하고 있다.
ⓒ 총리 관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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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2년 뒤인 1894년에는 달랐다. 조선에서 동학혁명(동학농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이번에도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파병을 감행했고, 이때는 청나라보다 선수를 치고 조선에서 청일전쟁까지 일으켜 승리를 거뒀다.

일본군이 개입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동학군과 정부군은 외국군을 돌려보내고자 서둘러 사태 수습에 나섰다. 동학군이 전주성을 정부군에 되돌려준 것은 그 때문이었다. '유사시 일본군의 한반도 진입'이 가져올 후과(後果)에 대해 동학군과 정부군 모두 공포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일본이 파견한 병력은 군함 7척과 육군 7천 명이었다. 반면, 청나라군은 3천이었다. 12년 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일본이 적지 않은 규모의 병력을 파견했던 것이다.

고종은 외국군 철수를 요구했다. 청나라군도 외국군 철수를 주장했다. 자신들도 외국군이면서 그런 주장을 했다. 유사시를 빌미로 한반도에 들어온 일본군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을 뿐 아니라 일본의 의도를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나라 역시 공동 철수를 요구했지만, 일본은 거절하고 청일전쟁을 일으켰다.

청일전쟁은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거의 제거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는 한반도가 일본의 수중에 떨어지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렇게 해서 확보한 대조선 영향력을 일본은 상실하지 않고 끝끝내 지켰다. 고종의 대일본 견제로 인해 1896~1898년에 러시아와 일본의 세력균형이 유지됐지만 이 기간에도 일본은 영향력을 잃지 않았다.

이것이 기반이 된 것이 1905년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과 1910년 경술국치(한일병합)다. 유사시 일본군의 한반도 진입을 막지 못한 것이 이런 재앙으로 연결됐던 것이다.

유사시에 청나라군이 들어온 것 역시 불행이었다. 그것은 조선이 12년간 내정간섭을 받아 국제적으로 식물국가처럼 보이도록 만든 원인이었다. 유사시에 일본군이 들어온 것은 훨씬 더 큰 재앙이 됐다. 지난 백년간 한민족이 당한 수난, 우리 조상들이 겪은 고난의 원인이 거기에 있다.

윤 후보는 2월 3일 TV토론 당시 사회자 '취임 뒤 정상회담 순서'를 묻자, 한미정상회담에 이어 한일정상회담을 열고 한중정상회담·남북정상회담은 그 이후에 열겠다며 상대적으로 일본 중시 태도를 보였다. 여타 후보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는 이번에는 '일본군이 유사시에 들어올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보였다. 일본군이 유사시 한반도에 들어온 뒤에 벌어진 지난 백 년간의 민족적 수난을 고려하지 않는 태도다. 윤석열 후보가 집권하면 'Again 1882', 'Again 1894'가 일어나지 않을까 소름이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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