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무런 특별함도 없는 내게 아주 가끔, 행복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 행복이란 것은 별거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주변의 공기가 따뜻하게 느껴지며 이정도면 살 만하겠다, 소소하게 행복하다고 생각이 드는 어느 날.

그런 날은 꼭 두 가지 정도의 일이 일어난다. 출근 길 마을버스를 내려 큰 대로변의 중앙차선으로 가는 중에 마주치게 되는 요구르트 여사님, 그분을 마주치면 꼭 아침 커피를 사서 손에 쥐고 출근을 한다. 그러고 더 재수가 좋은 날이면 1002번 버스를 타게 된다. 이 버스는 경기도에서 오는 노선이 긴 버스인데, 이 버스를 타면 회사 앞 정문에서 내릴 수 있다. 

배차 간격이 있어서 그 버스 타기가 참 쉽지 않은데, 아주 가끔 이 두 가지를 모두 성공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출근길에서부터 좋은 날이 될 것이라는 예감과 함께, 이런 출근길이라면 매일 해도 감사하고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커피 한 잔과 회사 바로 앞에 내려주는 버스라니! 그것으로 행복하다고 충분하다고 느껴지는 일상이라니…. 내가 바라는 행복이란 건 이다지도 소소하다. 큰 무언가를 욕심내거나 바라본 적은 없다.

소소한 행복에 찾아든 "더 노력하라"는 말
 
서울의 모습
 서울의 모습
ⓒ Pixabay

관련사진보기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소소하지만 충만한 아침을 시작하는 듯했던 그 날, 나는 대학 선배와 저녁 약속이 있었다.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인생의 좌표가 되는 선배였다. 지식과 지혜, 그리고 본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위인이었다. 그런 선배를 늘 부러워했고 닮고 싶었으나 나는 역량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선배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것만으로도 내 삶의 자양분을 얻는다고 여겼다.  

선배는 어느샌가 대단한 자산가가 되어 있었다. 소위 말하는 파이어족(경제적 자립을 통해 빠른 시기에 은퇴하려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 된 것이다. 이미 대학생 때부터 주식, 부동산이 준비되어 있던 아주 남다르던 선배였다. 단순히 많은 부를 축적해서가 아니라, 그가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남달랐던 혜안과 실행력은 늘 나를 자극했다.

그 선배의 행보를 듣는 것은 나에겐, 중국 무협지를 보는 것 같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건지,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고난과 결핍을 어떻게 견뎌내는 것인지,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 밖의 영역인 것이다.

마침 나는, 이사를 고민 중인 터라 고민을 털어놨다. 큰아이의 초등입학 전 좋은 학군으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신랑도 왕복 출퇴근으로 3시간을 넘게 보내는지라 서울 집을 정리한 후 경기도로 내려가야 할까, 묻는 내 말에 선배는 "너는 더 노력하고 고생해야 한다"고 했다.

'아니 이 이상 더 노력해야 한다고? 지금도 양가 도움 없이 애 둘을 키우고 일도 하는데? 나는 나의 힘으로 지금까지 왔는데?'

누구보다 씩씩하게 내 삶을 나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겼다. 최고는 아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자 애썼다. 나를 지탱하던 무언가가,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처럼 뚝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지방러였다. 서울, 이 도시에서 혼자 공부하고 생활하며 어렵게 취업을 했다. 취업한 뒤에 어땠는가? 남들 승진할 때 승진하지 못했고 남들 받는 월급만큼도 받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자책하며 아주 오랜 시간, 자신을 괴롭혔다.

내가 더 공부하고, 내가 관련 자격증을 더 따고, 영어도 더 잘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늘 무엇인가를 했다. 늘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서울 생활이었다. 그렇게 숨이 턱 끝에 차도록 달려야 남들과 비슷하게라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일찍 경제적, 정신적으로 부모에게서 독립했기에 무엇이든지 나의 힘으로 해치웠다. 결혼이든, 내 집 마련이든 그러했다. 싱글일 때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남편과 반지 하나만 주고 받고 결혼을 했다. 소위 스드메, 다이아반지, 시계로 이어지는 것들에 언감생심 욕심도 내질 않았다.

지금 이 도시에서 버티는 사람들에게
 
가끔은 가혹하게 느껴지는 도시,서울
▲ 서울의 모습 가끔은 가혹하게 느껴지는 도시,서울
ⓒ Pixabay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점점 더 세상은 나와 반대로 달려간다. 나는 제자리인데 세상 사람들은 나보다 저만치 달려가는 듯하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벌어지는 양극화를 목격하고 나니 나의 자부심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자의 몸부림이었던 것이었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현실.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기에 내 능력은 너무나도 볼품없다는 사실들이 사무치게 서글퍼졌다.

아주 소소한 일상에 참 행복하다 느꼈는데, 무슨 조화인지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밤 9시 48분, 승객이 6명뿐이었던 버스 안에서 눈물이 났다. 손바닥 뒤집듯, 마음의 동요가 일어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처럼 어딘가로 나의 행복이 사라지고 있었다.

세상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 정직하고 진실한 눈을 크게 뜨고 지킬 것을 지키고 내 것을 양보할 줄도 알면서, 때론 사람에 기대어서 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서울, 이 도시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삶의 불공평함도, 부조리도 눈을 크게 뜨고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누군가와 불행을 견주며 그것에 기대어 위안 삼고 싶지 않다. 좌절해서 주저앉거나 울고 싶지도 않다.
  
나에게 주어진 어떤 일을 하며, 어떤 것에 희망을 가질 수 있기를. 늘 행복하지 않아도 어느 날 찾아온 순간의 행복에 감사와 기쁨을 느낄 수 있기를. 지금 이 도시에서 버티며 애쓰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위해, 당신과 나의 안녕을 빌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워킹맘이자 냥집사, 나를 알아가는 글쓰기 중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