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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몰라?'

누구나 한 번쯤, 무엇을 배울 때 들어봤을 말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떨까? 모르니 알려달라고 하는 순수한 호기심보다 '이 사람이 나를 무시하고 낮게 보고 있구나' 같은 당황스러움이 앞설 것이다.

우리는 말에 대해, 쉽게 인지적 오류에 빠질 때가 있다. 내가 아는 것은 상대방이 당연히 알 것이라는 착각. 그래서 모르는 사람에게 일부러 어려운 단어를 물어보면서, 스스로 권위를 높이려 애쓰기도 하고, 그것이 신분이라 여기며 '모르는 게 많네. 아는 게 힘인데...' 하면서 우월의식에 빠지기도 한다.

역설적이게도,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일수록 이런 오류에 빠지기 쉽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는 기쁨과, 정보를 알고 있다는 든든함이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며칠 전, 지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품을 권유하려고 하는데, 반응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게 뭐에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이게 꼭 저에게 필요한가요?'라는 반응이 많다고 했다.

"이렇게 좋은 것을 왜 모를까요?"

지인은 이렇게 물었다. 내가 자주 듣는 말이기도 했다. 이 상품, 서비스를 모른다는 것을 고객 탓을 할 수는 없는 법, 현재 흐름을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좋으니 써보라고 하는 공급자, 아무리 말해도 반응하지 않는 소비자. 비단 이 흐름은 여기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가 좋으니 써보라고 하는 외침은 많았지만, 고객들은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 않은 곳도 있었다. 공급자들은 '이렇게 좋은 것을!'이라고 답답해 했고, 고객들은 '아, 어디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라는 고민에 빠져있었다. 이 문제를 풀 실마리는, 놀랍게도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세종 14년 6월 9일, 세종은 <삼강행실도>를 편찬해 당대의 백성이 본받을 만한 일들을 모아 글, 그림, 시를 모아 전국에 배포했다.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고민하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고민하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
ⓒ 그림작가 콩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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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는 백성들이 천성에 어두워 각박해지고, 훌륭한 행실과 높은 절개가 있어도 풍속, 습관에 물들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일도 많을 것이다.

널리 민간(民間)에 펴서 어진 이, 어리석은 자, 귀한 자, 천한 자, 어린이, 부녀자의 구별 없이 다 즐겨 보고 익히 듣도록 해야 한다. 그림을 구경하며 상상하고, 시를 읊으며 인정과 성품을 본받게 한다면, 부러워하고 감탄하고 마음속 깊이 따를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들의 마음이 감동하여 분발할 것이니, 자신들의 해야 할 일을 다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 (세종 14/6/9)
 
그로부터 2년 뒤, 세종은 앙부일구(해시계)를 혜정교와 종묘 앞에 설치한다.
 
"... 신(神)의 몸을 그렸으니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것이요, 각(刻)과 분(分)이 소소(昭昭)하니 해에 비쳐 밝은 것이요, 길옆에 설치한 것은 보는 사람이 모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시작하여 백성들이 일할 때를 알게 될 것이다." (세종 16/10/2)
 
세종은 글자를 모르는 백성을 위해 그들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인 그림을 적극 이용했다. <삼강행실도>에는 이야기를 표현하는 그림을 그려 쉽게 상상할 수 있도록 했고, 앙부일구에는 시(時)를 상징하는 동물을 그려 직관적으로 시간을 알 수 있게 했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은 세종은 결국 백성을 위한 바른 소리, 훈민정음을 창제하기에 이르렀다.
 
" ...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28자(字)를 만들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할 뿐이다." - 훈민정음 어제 서문
 
세종은 '왜 이것을 모르는가!' 답답해 하고 백성을 탓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언어를 창제하며 직접 행동으로 보여줬다. 세종은 그들이 알기를 기다리거나 기대하지 않았다. '그들이 알기 위해서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을 멈추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행동했다. 백성들이 알 수 있도록, 백성들이 정보에 가까울 수 있도록.

우리는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 자신감 있게 '온 힘을 기울였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책을 쓰고 강의를 한다고 해도, 고객들이 모르는 단어로 쓴 것이라면 그것은 최선이 아니다. 그저 '우리만의 최선'일 뿐. 우리가 하는 최선은 지금 고객을 향한 최선인가?

문득 세종 공부를 하면서, 글을 쓰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나도 '이렇게 좋은 것을 왜 몰라?'라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세종에게서 배운 것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나의 언어가 아닌 그들의 언어로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는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 아는 사람들만이 누리는 문화가 아닌, 함께 하고 즐겁게 나누어 오래도록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만들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세종리더십연구소와 제 브런치에 함께 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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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을 읽어가며, 세종을 공부하고 그의 삶을 따르고자 하는 사업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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