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의 고민과 관심사에 대하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감힐링 토크쇼 <써클하우스>가 첫 선을 보였다. 지난 2월 24일 방송된 SBS <써클하우스>에서는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오은영을 비롯하여 한가인, 이승기, 노홍철, 리정 등이 출연했다.
 
배우 한가인은 4년 만의 방송 복귀이자 첫 예능 MC 도전으로 주목받았다. 여전히 '국민 첫사랑' 이미지가 강한 한가인에 대하여 이승기는 "모두가 속고 있었다. 수다가 장난 아니다. 이 프로그램에 바라는 게 '최대한 녹화를 길게하고 싶다'고 하더라"고 폭로하여 한가인을 당황하게 했다. 한가인은 "집에 가고 싶지 않다. 아침 일찍 불러서 늦게 가도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한가인은 지난 36개월 동안 자신이 정한 원칙에 따라 육아에만 전념해왔다고 공백기의 이유를 고백하면서 "제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안정되었는데 오히려 저는 불안정해지더라. 실제로 불안장애가 와서 상담을 받은 적도 있다. 원래 웃음도 장난도 많은 성격이었는데 아이랑만 있다보니까 말수가 점점 줄어들더라. 여기 나와서 말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출연 배경을 밝혔다.
 
오은영과 리정의 오랜 인연도 소개됐다. 리정의 부친이 오은영의 50년된 남사친이라고. 리정은 "진짜 금쪽이가 바로 저"라며 미소를 지었다. 오은영도 절친의 딸이 성공하여 함께 방송을 하게된 상황을 두고 "제가 더 뿌듯하다"며 엄마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선물 요구하고 안 사주면 욕까지 하는 남친
 
 SBS <써클하우스>의 한 장면.

SBS <써클하우스>의 한 장면. ⓒ SBS

 
요즘 대한민국 청춘 MZ세대의 고민을 알아보는 시간이 그려졌다. '젊은꼰대', '5포세대', 'PTSD' 등 다양한 고민 키워드들이 등장했다. 1기 써클의 주제는 외롭긴 싫은데, 피곤한 건 더 싫은 '요즘 연애'였다.
 
새터민 출신으로 탈북보다 연애가 어렵다는 퐁당이, 의심병 만렙이라는 변호사 추궁이, 매일 다른 남자와 썸만 타고싶다는 댄서 심쿵이, 혼자가 좋은 비연애주의 중학교사 철벽이, 연애가 고픈 34살 모태쏠로 유투버 쓸쓸이까지, 다섯 남녀 고민자가 닉네임으로 등장했다.
 
퐁당이는 '을의 연애'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한국에 온 이후 7년 동안 4번의 연애를 했다는 퐁당이는,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하자마자 바람을 핀 남친, 선물만 받고 꽃 한 송이 안 사주면서 외모비하 막말까지 했던 구두쇠 남친들의 사연을 고백했다. MC들은 모두 안타까움과 분노를 드러냈다.
 
'1주일된 연인에게 내 월급의 30%에 해당하는 선물을 줄 수 있다?'는 질문에 대하여 출연자는 정확히 5대 5로 의견이 갈렸다. 반면 받는 입장에 대해서는 3대 7로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우세했다. 오은영은 반대의 상황에서 이해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서로 신뢰가 쌓이고 이해하기 전에 물건부터 사주기 시작하면, 다음 번에 만나도 사람보다도 물건이 궁금해진다. 나와 그 사람이 사귀는 게 아니라 선물과 사귀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퐁당이 역시 집요하게 선물을 요구하고 사주지 않으면 욕까지 하는 남친을 만난 일이 있다고 고백했다. 심지어 남친의 요구대로 반성문을 쓰고 무릎까지 꿇은 일도 있다고. 연인에게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데도 반복적으로 을의 연애만 하는 상황을 두고, 오은영은 '강박적 순환'으로 규정하며 "나의 내면의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물레방아처럼 같은 문제를 반복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오은영은 을의 연애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하여 "누가 주체이냐가 중요하다. 언제나 내가 주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오늘 남자친구를 만나고 싶은가? 그것은 나만 아는 이기적인 마음과는 다르다. '나의 마음을 아는' 주체적인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 오은영은 연애 초반에 능동적으로 약속을 정하고 그것을 지키는 연습을 할 것을 퐁당이에게 주문했다.
 
 SBS <써클하우스>의 한 장면.

SBS <써클하우스>의 한 장면. ⓒ SBS

 
퐁당이와 정반대 성향의 댄서 심쿵이(댄서 립제이)는 '연애말고 썸만 타고싶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연애는 설렘이 중요한데 관계가 오래 지속되면 서로에게 실망하게 되고 설렘이 사라지는 데 대한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온전한 비연애주의로는 갈 수 없다며 "양기의 설렘은 환영한다"고 이야기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썸과 연애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X세대인 노홍철은 스킨십을 기준으로 들자, 심쿵이는 썸이라도 스킨십이 가능하다며 '체험판'에 비유하여 폭소를 자아냈다. 리정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내가 이 사람에게 서운해야 할 명분이 있냐 없냐의 차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자유로운 연애를 추구하는 심쿵이는 매일 그날의 취향에 따라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일과 사랑의 비율'에서 룸메이트인 모니카가 '사랑이 100%'라면, 심쿵이는 불과 2%라고 밝혔다. 하지만 모니카는 곧바로 심쿵이의 반전 연애사를 폭로했다. 알고보니 심쿵이의 전남친들은 대부분 댄서였고 잘나가는 심쿵이에게 열등감이 많아서 자신을 낮춰주는 연애를 했다는 것. 정작 그렇게 헌신했음에도 바람을 피운 남친들이 많았다고.
 
또한 심쿵이는 5년간이나 켄드릭 라마를 닮은 외국인 남친과 장거리 국제연애를 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연을 밝혔다. 심쿵이는 "이제는 연애라는 것에 진입하는 게 무서워졌다"고 고백했다. 겉으로는 피상적인 연애를 추구하는 듯했지만 심쿵이의 실제 모습은 오히려 퐁당이와 흡사했던 것.
 
오은영은 "심쿵이는 뜨거운 여자다"라고 정의하며 "일이든 사랑이든 너무 열정적이어서 힘들었던 거다. 또 연애를 하면 열정적으로 할 텐데 상처받는 경험을 겪는 게 엄두가 안 나서. 원래 가벼운 사랑과는 맞지 않는다. 태생적으로 적당하게 썸만 타는 게 만족감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고 인정하는 것이 내가 바라는 연애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라는 것. 심쿵이는 오은영의 지적을 인정하며 앞으로 "짐승말고 인간을 만나보겠다"라고 다짐했다.
 
"사무실 나올 때 모든 걸 두고 와야"
 
 SBS <써클하우스>의 한 장면.

SBS <써클하우스>의 한 장면. ⓒ SBS

 
특검팀 특별수사관 출신이라는 추궁이는 직업 특성상 생긴 의심병 때문에 연애가 어렵다는 고민을 토로했다. 추궁이는 자신이 겪었던 장모와 사위, 형부와 처제의 불륜같은 충격적인 실제 사건들을 설명했고 출연자들은 모두 경악을 금하지 못했다. 비정상적인 사건을 계속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인간 자체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는 것.
 
그런데 오은영은 "일과 일상의 삶은 구별을 해야한다"고 지적하며 추궁이의 '직업탓'에 의문을 제기했다. 31년째 정신의학전문의인 오은영도 진료 현장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들을 일상의 대인관계로까지 이어가지는 않는다는 것. 추궁이는 여자친구의 사소한 언행에도 의심이 생기면 뒷조사를 했던 일화들을 언급하자 출연자들은 모두 경악했다.
 
오은영은 "거짓말이 곧 바람과 동의어는 아니다. 직접 물어보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데도 작은 거짓말에도 의심부터 한다. 왜 그럴까"라고 지적하며 "마음이 안쓰럽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추적하는 삶이 얼마나 힘들까. 과도하게 일반화를 해버리면 하루종일 그 기준으로 살아야 한다. 이건 너무 가슴아픈 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추궁이 본인도 의심의 악순환에 괴로울 수밖에 없는 자신을 암벽 등반에 비유하며 "내 가슴을 찍고 올라가는 기분이다. 그 위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려고"라고 씁쓸하게 고백했다.
 
오은영은 "저는 가운을 벗는 순간 진료실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다"고 설명하며 "추궁이도 변호사 사무실 문을 나설 때 '믿음이'가 된다는 의식을 가지고 몸을 털고 나올 것"을 주문했다. 어찌보면 사소한 행동이지만 일상속 작은 변화가 쌓여서 언젠가는 완전히 달라진 내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철벽이의 고민은 '연애를 안 하면 성숙해질 수 없는가'라는 주제였다. 26년째 연애 경험이 없는 모태솔로라는 철벽이는 썸도 타본 일이 없고 연애에 대한 궁금증도 없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연애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유에 대하여 철벽이는 "오히려 연애를 하고 나면 그때부터 외로움을 느낄 것 같다"고 고백하며 "혼자여도 잘살고 혼자여서 행복하다"라는 마음을 밝혔다. 비연애주의를 공개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의 상처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4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을 선택했던 한가인은 "사랑 때문에 상처받기보다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면 그것도 하나의 선택일 뿐, 성숙의 필수는 아니다"라며 철벽이의 생각을 지지했다.
 
오은영은 "인간은 선천적인 공감능력이 있어서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라도 간접 경험이 가능하다"면서도 철벽이의 선택이 단순한 가치관이나 이념이 아닌 다른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오은영은 철벽이에게 관계가 '공격과 방어'로 나뉘어져 있다며 부모와의 관계성에 주목했다.
 
철벽이는 어린 시절 외도로 집을 나간 아버지의 이야기를 거론했다. 하지만 철벽이에게는 아버지의 존재 자체가 희미해서 미운 감정조차 없다고. 그녀에게 아버지의 의미란 "나에게 DNA를 물려주신 분"이라는 데 불과했다.
 
한가인도 철벽이에게 공감하며 "행복하지 않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고 싶었던 이유도 우리 집과 너무 다른 가정의 모습을 보며 이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한가인은 가정적이고 자상한 남편의 모습을 통하여 "내가 바랐던 아빠의 모습을 발견하며 많은 치유가 됐다"고 고백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오은영은 '해리 할로우의 원숭이 실험'을 거론하며 새끼원숭이가 배가 고플 때는 젖병을 찾았지만 나머지 시간은 하루종일 어미 원숭이 모형에 안겨있었다는 결과를 언급했다. "먹고사는 문제보다 중요한 것이,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애착'이라는 것. 한가인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애착 결핍을 남편과의 애착 관계로 건강하게 대체해왔다는 것. 반면 철벽이는 아직 자신의 속마음을 온전히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밝혔다.

오은영은 철벽이에 대하여 "누군가와 관계를 형성하는 게 편치 않은 것"이라고 분석하며 "너무 많이 붙으면 집착이 되지만, 너무 관계를 멀리해도 건강한 생존에 어려움이 생긴다. 인생을 살면서 누군가와 친밀해지는 경험(꼭 연인이 아니라도)이 큰 행복을 주기도 한다. 너무 차단하지말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하라"고 당부했다.
 
 SBS <써클하우스>의 한 장면.

SBS <써클하우스>의 한 장면. ⓒ SBS

 
유명 뷰티 유투버인 쓸쓸이는 '방송의 모습이 아닌 내 본모습에 실망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을 드러냈다. 추궁이 역시 공감하며 나를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멋진 모습을 지키기 위하여 내가 아닌 무언가를 연기하고 있다는 괴리감을 느낄 때가 있다고 고백했다. 쓸쓸이는 완벽해지고 싶어서 스스로를 가꾸고 노력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일화들을 설명했다.
 
듣고 있던 오은영은 "완벽이라는 단어를 강박적으로 많이 쓴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쓸쓸이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뚱뚱한 외모와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왕따를 당했던 아픈 경험을 고백했다. 중학교 때 좋아했던 여학생이 자신과 짝꿍이 되자 울음을 터뜨린 것도 쓸쓸이에게 큰 트라우마가 되었다고. 아픈 경험속에서 쓸쓸이는 자신이 더 완벽해져서 타인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실망하고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는 강박을 가지게 됐다.
 
오은영은 "어린 시절의 가정폭력이나 학교폭력은 그 사람의 존엄성을 짓밟고 평생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 상처가 있는 부분은 어린 아이 그대로인 채 남아있는 것"이라고 분석하면서도 "그 시절의 아이와 지금의 쓸쓸이는 다르다. 이제 현재를 살아가는 어른의 관점이나 마음으로 바꿔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승기는 "과거의 아픈 경험을 고백하는 건 남자로서 큰 용기다. 이 이야기를 한 것만으로도 그 과정을 뛰어넘었다"고 격려하면서도 "아직 완벽한 사람=강자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저도 경험해봤는데 관계에서는 완벽함이 중요하지 않더라. 저 사람이 좋은지, 함께 있으면 즐거운지가 더 중요하다"며 완벽에 대한 강박을 털어버릴 것을 당부했다. 오은영 역시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을 때 편안한 사람을 좋아한다"며 쓸쓸이를 격려했다.
 
<써클하우스> 첫회는 연애라는 주제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성이 주는 희노애락에 대한 이야기였다. 인간은 누구나 관계를 통한 존중과 공감을 원한다. 함께 모여서 내 이야기를 말로 털어놓는 자체로 부정적 감정에서 벗어나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정서적 환기효과가 발생한다. 그리고 들어주는 사람들은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나의 모습을 통하여 스스로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자아존중감을 형성한다.

<써클하우스>는 써클이라는 공간 안에서 나이와 직업, 배경을 뛰어넘어 모두가 동등한 존재로서 나와 우리 시대의 현실적 고민들을 함께 공유하는 '힐링 토크쇼'라는 공감대를 자아냈다. 오은영은 첫 번째 서클챌린지로 모든 출연자들에게 일주일 동안 자신이 기억나는, 사랑하는, 혹은 떠오르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달해볼 것을 숙제로 주문하며 관계의 소중함이 주는 행복을 일깨웠다.
써클하우스 오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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