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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루간스크 지방 세베로도네츠크의 버스에서 한 여성과 아이가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내 군사작전을 선언하며 전면전을 개시했다. 2022.2.24
▲ 불안한 표정으로 차창 밖 내다보는 우크라 동부 주민들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루간스크 지방 세베로도네츠크의 버스에서 한 여성과 아이가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내 군사작전을 선언하며 전면전을 개시했다. 2022.2.24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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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행정부 후반부 이후의 미국은 러시아 견제보다는 중국 견제에 방점을 찍었다. 도널드 트럼프 때는 러시아와의 관계가 비교적 평온했다. 그런데 조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견제를 최우선시하는 한편, 러시아 견제에도 큰 비중을 실었다. 이로 인해 바이든의 머릿속에서 북한과 이란은 중국에 이어 러시아의 다음 순위로 밀려났다.

바이든 행정부는 임기 초부터 러시아 압박에 공을 들였다. 이 점은 지난해 6월 28일 개막된 시브리즈(Sea Breeze)라는 다국적 연합해상훈련에서도 나타났다. 미국을 비롯한 무려 32개국이 이 훈련에 참가했는데, 훈련이 전개된 곳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면해 있는 흑해였다.

이것이 러시아를 자극했다는 점은 당시의 국제적 신경전에서도 나타났다. 지난해 6월 22일에는 주미러시아대사관이 연합훈련 중단을 촉구했다. 다음날에는 러시아가 '영국 해군 함정이 흑해 크림반도 앞바다에서 우리 영역을 침범했다'며 영국대사와 무관을 초치했고, 영국이 '사실 무근'이라며 부인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서방세계의 압력에 더해, 우크라이나의 친서방정책과 그에 편승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진 가능성이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의 한쪽 원인을 설명한다. 또 다른 한쪽 원인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의 팽창주의로 설명된다.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고 이로 인해 나토가 러시아 코앞에 도달하면 러시아 안보가 위협을 받게 된다는 점,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도네츠크공화국과 루간스크공화국이라는 사실상의 정부를 이루는 러시아 동포들의 민족자결을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 등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표면적 명분에 더해, 러시아의 부활과 팽창을 위한 유라시아주의 역시 푸틴을 강력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현지시각 21일 도네츠크 및 루간스크 두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의 평화를 유지하라'는 명령을 러시아군에 내린 뒤 현지 시각 23일부터 전투를 본격화된 데는 그런 '큰 그림'이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푸틴의 유라시아주의
 
푸틴 러시아 대통령(자료사진). 사진은 2021년 8월 23일 모스크바 외곽 패리어트 공원에서 열린 국제군사포럼 'Army-2021' 개막식 연설 중인 모습.
 푸틴 러시아 대통령(자료사진). 사진은 2021년 8월 23일 모스크바 외곽 패리어트 공원에서 열린 국제군사포럼 "Army-2021" 개막식 연설 중인 모습.
ⓒ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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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의 압박과 견제 속에서도 푸틴의 러시아는 세계 곳곳에서 힘을 과시했다. 일례로, 지난 1월 21일에는 러시아 해군이 이란·중국 해군과 함께 인도양에서 '2022 해상 안보벨트 합동훈련'을 실시했고, 2월 10일에는 우크라이나 북쪽 벨라루스와 연합군사훈련을 개시했다. 17일에는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의 새로운 군사협정으로 양국의 군대 공유가 가능해졌다는 <뉴욕타임스> 보도가 있었다.

전날인 16일에는 유리 보리소프 러시아 부총리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회담을 가진 뒤 양국 군사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같은 날 푸틴은 친미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을 만나 협력 강화를 다짐했다.

기시 노부오 방위대신의 표명에 따르면, 2월 1일부터는 동해와 오호츠크해 남부에서 러시아 해군 24척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러시아 군대의 동해 활동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2018년부터는 러시아 공군이 울릉도와 독도 주변에도 자주 출현했다.

이렇게 우크라이나 및 서방세계와 갈등을 빚는 속에서도, 푸틴과 러시아는 동유럽·중앙아시아·인도양·서태평양·동북아는 물론이고 중남미에까지 간여하고 있다. 미국의 앞마당인 중남미를 우군으로 끌어들이고자 베네수엘라뿐 아니라 친미국가인 브라질에까지 손을 내밀고 있다. 시리아 내전 개입에서도 나타나듯이 중동에서도 러시아의 영향력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세계 어디서든 러시아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유라시아주의라는 표현이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푸틴과 러시아는 글로벌하게 팽창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적대국들과 갈등을 빚는 동안에도 이렇게 했다는 것은 그의 머릿속에 담긴 것이 상당히 큰 그림이라는 추정을 갖게 할 만하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을 추모하고자 설립된 싱크탱크인 윌슨센터 홈페이지(www.wilsoncenter.org)에 '러시아의 유라시아주의: 제국의 이데올로기(Russian Eurasianism: An Ideology of Empire)'라는 글이 실려 있다. 이 글은 "유라시아주의는 러시아와 그 경계선이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 위치를 차지함을 확인하는 이데올로기로 정의될 수 있다"며 "유라시아주의는 유럽의 변방에 있다는 관점을 거부하고, 정반대로 이 나라의 지리적 위치를 일종의 메시아적 제3의 길로 해석한다"는 말로 푸틴의 유라시아주의를 규정한다.

미국과 서유럽인들이 사용하는 세계지도에서는 한국과 태평양이 동쪽 끝에 있다. 그런 지도에서는 러시아 역시 주류 진영인 미국과 서유럽의 동쪽 변방에 있다. 대서양 양안의 미국과 서유럽이 주도하는 현존 세계질서 하에서, 러시아는 동쪽 변방에 있는 '힘은 세지만 덜 개화된 나라'로 인식돼왔다.

하지만 푸틴의 머릿속에서는 그런 지도가 아닌, 태평양이 정중앙에 놓인 세계 지도가 펼쳐져 있다. 이 지도에서는 러시아가 아시아와 유럽을 잇고 아시아와 아메리카를 잇는 중간 지역이 된다. 푸틴은 이런 관점으로 세계질서를 대하고 있다는 게 위 글의 설명이다.

위 글은 푸틴의 유라시아주의에 메시아적 신앙이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단순히 러시아의 팽창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슬라브문명이나 중앙아시아 이슬람문명의 역할 확대도 의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위 글은 "슬라브어와 투르크-무슬림의 혼합"을 유라시아주의의 특징 중 하나로 거론한다. 새로운 문명 조합을 갖고 세계질서를 재편하려는 푸틴의 비전을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한반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한 24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한 방공기지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날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곳곳의 군사 시설을 정밀 타격하고 있다고 밝혔다.
▲ 러시아군 공격으로 검은 연기 솟는 우크라 방공기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한 24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한 방공기지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날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곳곳의 군사 시설을 정밀 타격하고 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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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이 단순하게 실질적 종신 대통령이 되거나 옛 소련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만을 꿈꾸는 게 아니라 훨씬 더 큰 것을 가슴에 담고 있다는 점은, 크림반도 병합 이듬해인 2015년에 출범시킨 유라시아 경제연합(EAEU)에서도 감지된다.

EAEU 회원국은 '고작' 다섯이다. 러시아를 비롯해 벨라루스·아르메니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이 가입해 있다. 하지만 이 기구 홈페이지(www.eaeunion.org)에 제시된 가입국 현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 나라들이 차지한 영역은 유라시아대륙의 절반 정도가 된다.
 
유라시아경제연합의 가입국들.
 유라시아경제연합의 가입국들.
ⓒ 유라시아경제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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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땅이 크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유라시아 어느 지역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은 이 기구가 가진 특장점이다. 경제적 역량의 총합은 그다지 대단하지 않지만, 경계선이 유라시아 어디든 연결된다는 점은 이들의 잠재력을 이루는 요소다.

EAEU를 만들 때 푸틴이 어떤 생각을 했을 것인가는 조직 구성을 통해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EAEU 내에는 사법적 기능을 행사하는 유라시아경제연합 법원(The Court Of The Eurasian Economic Union), 회원국 국가수반이 포함되는 최고유라시아경제위원회(The Supreme Eurasian Economic Council)가 있다. 또 회원국 정부수반이 포함되는 유라시아 정부간 위원회(The Eurasian Intergovernmental Council), 항구적인 초국가적 규제 기관인 유라시아경제위원회(Eurasian Economic Commission)가 있다.

이런 조직 구성은 유럽연합(EU)을 떠올리게 만든다. 기독교문명을 기반으로 하는 EU에 맞서 슬라브문명 등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고자 EAEU를 출범시켰으리라는 느낌을 갖게 할 만하다.  

위의 '항구적인 초국가적 규제 기관(a permanent supranational regulatory body)'은 EAEU 홈페이지에 나오는 표현이다. 러시아를 제외한 나머지 회원국 국민들에게는 불쾌할 수도 있는 표현이다. 그런 표현을 운운하는 것이나, EAEU 내에 법원을 설치한 것 등은 푸틴의 유라시아주의가 상당히 구체적인 비전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윌슨센터 홈페이지의 글처럼 '제국의 이데올로기'까지 담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러시아나 중국의 팽창은 기존의 팍스 아메리카나를 견제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새로운 글로벌 질서의 기득권을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 각국을 압박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어느 정도는 미국과 서방의 압박이 낳은 결과물이지만, 푸틴의 유라시아주의로 인한 결과물인 측면도 농후하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 인접한 우크라이나가 '제국의 이데올로기'의 초기 피해자가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푸틴이 압박하는 것은 러시아 서쪽 우크라이나이지만 그가 추구하는 유라시아주의에 입각한 러시아제국의 부활이므로, 그의 군대가 향후 어디를 향하게 될지 알 수 없다. 과거 러시아제국의 남진 통로 중 하나였던 한반도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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