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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증오한 금욕주의자 

존 켈로그(John H. Kellogg), 미국인의 아침 식탁을 점령하고 있는 시리얼 콘플레이크(cornflakes)를 개발한 인물이다. 170년 전 오늘인 1852년 2월 26일 미시간 주의 타이론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난 그는 주변의 한 요양소 지도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사범학교와 의학교를 졸업한 자신의 학력을 잘 결합한 융합형 직업이었다. 절제와 금욕을 강조하는 제칠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서 운영하던 요양소였고, 그도 신실한 교인이었다.

결혼은 하였으나 자신의 금욕주의 신앙을 실현하기 위해 신혼 때부터 각방을 쓰면서 금욕을 완벽하게 실천하여 아이를 낳지 않았다. 42명의 아이들을 키웠는데 모두 입양하거나 데려다 키웠다.
  
콘플레이크(cornflakes)
 콘플레이크(cornflakes)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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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켈로그가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충실하고자 성욕 억제 식품으로 개발한 것이 바로 콘플레이크였다. 단백질이 들어간 육류 섭취가 성욕의 원인이라고 생각한 켈로그가 단백질이 들어가지 않은 옥수수 시리얼을 개발한 것이다. 요즘 동서양을 불문하고 아침 대용식으로 널리 소비되고 있는 시리얼이 성욕 억제용 식품으로 개발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히 시리얼을 즐겨 찾는 청년들은 알지 못하는 역사적 사실이다. 과학적 근거는 없다.

켈로그는 시리얼을 1894년에 개발하였고 1896년에 특허를 받았다. 우리가 동학농민전쟁, 청일전쟁, 을미사변, 아관파천을 겪던 암울한 시절이었다. 켈로그는 각성 효과가 있는 커피를 "커피는 몸에 해로운 마약" 혹은 "정신 이상의 원인"이라고 강하게 비판하여 주목을 끌었다. 과학적인 근거는 없었지만 많은 사람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한 자극적인 주장이었다. 켈로그의 주장은 의사로서의 그의 명성과 함께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커피가 바위를 뚫는다? 

링컨이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던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서 켈로그보다 2년 늦게 태어난 또 다른 인물이 있었다. 찰스 W. 포스트(Charles W. Post)였다. 일리노이대학을 중퇴한 후 농기계 개발 및 판매업을 하던 포스트는 심한 스트레스와 과로에 시달렸다. 당시에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신경쇠약증이었다.

텍사스로 이주하여 잠시 부동산 사업으로 돈을 번 포스트는 신경쇠약증 치료를 받기 위해 켈로그의 요양소가 있는 미시간 주의 배틀크릭으로 이주하였다. 그의 인생에서 최대의 변곡점을 맞게 되는 결정이었다. 커피를 증오하던 인물 켈로그와의 극적 만남이었다.

이곳 요양소에서 제공되던 한 음료의 레시피를 취득한 포스트는 1895년에 식품회사를 창업한 후 첫 제품으로 포스텀(Postum)이라는 시리얼 음료를 내놓았다. 켈로그가 개발한 캐러멜 커피 시리얼의 맛을 흉내낸 제품이었다. 커피를 증오한 켈로그가 시리얼에 커피 맛을 넣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 미국인 사이의 커피 열풍을 말해준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사업 성공욕을 절충한 제품이었다.

켈로그로부터 레시피 도용으로 고소당하기도 하였지만 포스텀은 승승장구하였다. 곡물로 만든 커피 대용품 포스텀이 인기를 끈 것은 시대가 만든 우연과 사업가 포스트의 노력이 결합한 결과였다. 우연은 당시 자바와 실론 등 커피 산지에서 커피녹병이 창궐해 시작된 커피 가격의 일시적 상승과 하락의 반복으로 인한 불안 심리의 확산이었다.

커피 가격이 상승할 때 포스트는 포스텀이 가진 가격 경쟁력을 앞세웠다. 커피보다 싼 가격으로 커피보다 좋은 음료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을 내세운 것이다. 건강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이 높아질 때는 커피를 '마약 음료'라고 몰아세웠다. 과학과 의학 기술의 발달로 전에 모르던 새로운 도시형 질병들을 알게 된 사람들의 불안이 하루하루 커가던 시대였다. 이런 불안 심리를 이용한 것이 포스텀의 성공을 가져온 배경의 하나였다.

다가온 우연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끈질긴 노력이었다. 포스트는 공격적인 광고를 통해 커피가 심장병, 신경통, 신경쇠약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커피 대신 포스텀을 마시면 이런 질병뿐 아니라 충수염(appendicitis)까지도 치료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커피에 들어 있는 카페인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지속적으로 커피를 마시면 시력을 잃는다거나, 혈액이 혼탁해진다는 광고를 반복하였다. 심지어는 커피를 계속해서 바위에 떨어뜨리면 바위도 닳아 없어지는데 당신의 위장에 구멍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광고도 등장하였다.
  
포스텀 광고
 포스텀 광고
ⓒ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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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커피를 비난하는 광고만 한 것은 아니었다. 포스텀이 가진 장점도 내세웠다. 허무맹랑하고 근거 희박한 주장들이 다수였다. 포스텀이 손상된 뇌를 회생시킨다는 문구 등이었다. 손상된 모발 정도가 아니라 뇌를 되살린다는 솔깃한 광고 문구에 소비자들은 현혹되었다.

그야말로 커피는 만병의 근원이고, 포스텀은 만병에 치료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산업화의 성공에 따른 육류 소비의 증가로 건강, 특히 소화 장애에 대한 염려가 커지고 있던 당시 미국인들에게 이런 광고가 효과가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과학적 사실과 무관한 가짜뉴스 수준의 주장이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렸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맛있군"

당시 커피가 벌여야 했던 또 다른 벅찬 싸움은 카페인 유해론과의 싸움이었다. 당시 인기를 얻기 시작하였던 탄산음료 코카콜라도 연루된 논쟁이었다. 콜라에는 커피 이상의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카페인의 유해성 논쟁에는 음료나 식품업자뿐 아니라 많은 과학자들도 가세하였지만 명확한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결론은 하나였다. 지나친 카페인 섭취는 해롭다는 것, 그 이상의 새로운 이야기는 없었지만 소비자는 불안했다.

이런 논쟁 끝에 탄생한 것이 디카페인 커피였다. 커피 열매에서 카페인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1819년 독일의 과학자 프리들리프 룽게(Friedlieb Runge, 1794-1867)였지만, 커피 생두에서 카페인을 추출하는 데 성공한 것은 1906년 역시 독일인 과학자 루드빅 로젤리우스(Ludwig Roselius, 1874-1943)였다. 1910년대에는 이 특허 기술을 응용한 다양한 디카페인 커피 제품이 경쟁적으로 등장하여 건강 염려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포스트가 선도하였던 음해성 광고와 카페인 커피 유해론 전파 움직임에 가장 크게 반발하였던 인물 중 하나가 <티 앤 커피 트레이드 저널 Tea & Coffee Trade Journal>의 편집장 윌리엄 우커스였다. 올해로 발간 100주년을 맞는 유명한 커피책 <올 어바웃 커피>의 저자다.

우커스가 앞장서서 포스트의 광고는 소비자 기만이라는 사실을 쉴 새 없이 지적하였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진실보다 가짜뉴스가 우둔한 이들에게 더 먹히는 시대였다. 커피 유해론으로 가득한 광고 속에 커피 소비는 위축되고, 대용 음료 포스텀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맛있군. Good to the last drop"이라는 문구를 사용하여 인기를 끈 맥스웰하우스 광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맛있군. Good to the last drop"이라는 문구를 사용하여 인기를 끈 맥스웰하우스 광고
ⓒ maxwell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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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반 커피의 세계에서 광고의 위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맥스웰하우스의 전략은 특히 유명하다. 1915년 광고를 통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맛있군. Good to the last drop"이라는 문구를 사용하여 인기를 끌었다.

1930년에는 이 말을 한 것이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라는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하였다. 1907년 10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내슈빌의 휴양지 허미티지(Hermitage)를 방문하던 길에 맥스웰하우스 커피를 한 잔 마셨고, 커피를 마시자마자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맛있군"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광고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번지기 시작한 맥스웰하우스 커피의 세계적 인기에 이 문구가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이 광고 문구는 훗날 맥스웰하우스를 인수한 제너럴푸드의 회장 클리퍼드 스필러(Clifford Spiller)가 만든 것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출처가 어디인지 근거가 정확하지 않은 이 말은 지금도 맥스웰하우스 커피의 로고에 들어가 있다.

충수염 아이러니

커피 유해론의 주인공 포스트는 1914년에 맹장의 끝부분에 염증이 생기는 충수염 진단을 받았다. 그는 광고를 통해 커피를 마시면 걸릴 수 있는 질환의 하나가 충수염이라고 주장했고, 자신의 제품인 포스텀을 마시면 절대로 충수염에 걸리지 않는다고 했기에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에 처했다.

커피 유해론의 열렬한 지지자, 커피 대용품 포스텀 개발자로서의 자존감을 상실한 포스트는 충수염 수술을 받은 직후 불과 59세의 나이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의 재산을 물려받은 마조리 메리웨더 포스트(Marjorie Merriweather Post)와 그녀의 두 번째 남편 에드워드 허튼(Edward F. Hutton)은 훗날 미국을 대표하는 식품 기업 제너럴푸드(General Food)를 세웠다.

제네럴푸드는 1928년에 미국을 상징하는 커피 회사 맥스웰하우스를 인수하였다. 커피 유해론의 열렬한 지지자가 만든 회사가 커피 사업을 하게 된 것이다. 성욕 억제 식품으로 개발된 시리얼을 데이트하러 나서는 젊은이들이 아침 식사로 즐기는 일상의 아이러니에 견줄 만한 역사 속 아이러니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 푸른역사.
Mark Pendergrast(2010). Uncommon Grounds. N. Y.: Basic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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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교육학 교수이며 커피인문학자이다. 대표적인 저서로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2021), <한국교육 제4의 길을 찾다>(2019), <세계의 교과서 한국을 말하다>, <글로벌 시대의 다문화교육>(2015), <20세기 한국교육사>(200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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