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사장이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SH공사 본사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 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사장이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SH공사 본사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 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로또분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건설업계와 보수 언론이 지어낸 말로, 아파트 가격이 저렴하면 분양을 받은 사람이 막대한 시세 차익을 누리는 현상을 설명하는 표현입니다. 로또분양은 분양가상한제 등 부동산 가격에 대한 정부 개입을 비판하거나, 시세보다 낮은 분양가의 아파트가 나올 때 언론 기사에서 단골처럼 등장합니다. 

지난 24일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사장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의 일입니다. 이날 김헌동 사장은 서울 강남 세곡동에 분양한 아파트 4개 단지의 분양원가를 공개하면서 향후 공사가 분양하는 아파트 분양가는 3억~5억원 수준에 맞추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건물만 분양하는 방식으로 땅값을 받지 않고 건축비만 받으면 충분히 고품질의 주택을 건설할 수 있다는 게 김 사장의 구상입니다. 지금 웬만한 서울 아파트 가격이 10억원이 넘는 것을 감안하면, 반의 반값도 안됩니다. '건물만 분양' 아파트는 과거 토지임대부 아파트로 불려왔던, 김 사장이 오랫동안 구상해온 정책이기도 합니다. 

건설업 폭리 구조 정당화하려는 '로또분양'이라는 레토릭

기자들의 질의응답 시간 때였습니다. 한 기자가 서울 아파트 3억 분양가격을 두고 로또분양이란 우려를 제기했습니다. 공사가 아파트를 낮은 가격에 분양을 하면 입주자가 막대한 시세차익을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김헌동 사장의 답변은 '로또분양'이라는 말에 담긴 토건족들이 숨기고 싶은 진짜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만약 이분(수분양자)들이 로또 받는 게 배 아파서 (시세와 비슷한 가격에) 분양하면, 그 이익은 누가 다 가져갑니까. 우리 SH공사나 민간 건설사가 다 가져가겠죠. 아파트 원가가 3억밖에 안되는데 로또분양 막겠다고 계속 아파트를 10억, 15억원에 분양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그런 걸 원치 않습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입니다. 3억~5억이면 분양할 수 있는 아파트를 10억 넘게 받으면 그 돈은 당연히 분양한 건설사와 사업자가 가져갑니다. 그동안 '로또분양'이란 단어는 건설사들의 폭리 구조를 교묘하게 가리고, 수분양자의 시세차익만을 부각시키면서 분양가상한제 등의 제도를 공격해왔습니다. 

로또분양이 우려되니 아파트 분양가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은 토건족들의 이익극대화를 위한 레토릭일 뿐입니다. 

건설업계는 서울에 아파트를 3억~5억에 분양하겠다는 김헌동 사장의 구상도 못마땅할 겁니다. 3억~5억 아파트가 나오면, 지금처럼 미래가치를 반영한다는 핑계로 10억, 20억씩 분양가를 매기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고분양가를 책정해도 '왜 그리 비싸냐'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로또분양을 우려하는 기자의 질문 내용도 건설업계의 그런 우려를 반영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날 SH공사가 공개한 분양원가 공개 자료를 보면 서울에 3억~5억짜리 아파트 공급은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공개된 서울 강남 세곡지구 아파트의 원가는 평당 1000만~1200만원이었습니다. 분양수익을 20%나 붙였는데도 분양가는 평당 1300만~1400만원, 30평 아파트 기준 4억원 수준이었습니다. 공사가 수익을 낮추면 2억~3억 아파트도 가능해 보였습니다. 

SH의 서울 3억 아파트 공급 구상에 대한 기대

그런데 요즘 서울 아파트 가격은 무지막지합니다. 지난해 분양한 서울 서초구 래미안원베일리의 분양가는 평당 5653만원, 전용 59㎡ 분양가격이 14억원을 넘었습니다. 물론 입지의 차이는 있지만 SH공사는 서울 강남지역에서 래미안원베일리의 반의 반값에 분양하면서도 20%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그렇다면 분양가 14억을 받은 삼성물산과 재건축 조합은 얼마의 수익을 남겼을까요? 자세한 내용에 대해 물으면 건설사들은 마치 담합이라도 한 듯 '영업기밀'이라며 입을 다뭅니다. 건설사들이 깜깜이 분양가에 막대한 폭리를 취하도록 놔두는 것은 건전한 시장경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고분양가를 책정한 아파트를 제대로 짓던가요? 얼마전 건물이 붕괴된 현대산업개발(HDC)의 광주 아이파크는 분양 당시 광주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였습니다. 비싸게 분양한 아파트들이 입주 후 하자 시공 등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오랫동안 아파트 거품빼기 운동을 해왔던 김헌동 SH공사 사장은 건설업계의 폭리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SH공사 사장으로 취임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분양원가 공개'였습니다. 이를 통해 서울에서 3억~5억 아파트 분양이 가능하다는 점을 똑똑히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SH공사가 선보일 '건물만 분양'(토지는 임대하고 건물만 팔아 분양가를 낮추는 방식의 아파트) 주택 등 새로운 시도가 투기와 폭리로 자율적인 조정 기능을 상실한 주택 시장 질서에 가져올 변화에 주목해 봐야겠습니다.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회경제부 소속입니다. 주로 땅을 보러 다니고, 세종에도 종종 내려갑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