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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공개홀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초청 토론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공개홀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초청 토론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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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열린 대선후보 4자 토론을 뜨겁게 달군 장면 중 하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우리도 기축통화국에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언급한 부분이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즉각 이를 두고 "가슴이 웅장해진다"며 조롱했고, 이재명 저격수를 자처하는 윤희숙 전 의원은 기다렸다는 듯 "최고의 똥볼을 찼다"며 비난에 가세했다.
  
산으로 간 기축통화 논란

이미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매체에서 팩트체크가 나왔으니 길게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엄밀한 의미에서 과거 금본위제 하에서 금이나 파운드 스털링, 1971년 닉슨의 금태환 중지 선언 이전의 미국 달러화 같은 기축통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디까지 기축통화인지 국제적, 형식적 기준선도 있을 리 없다. 결국 대중과 전문가들의 주관적 인식에 의해 설정된 기준에 의지해 가릴 수밖에 없는 문제다.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 바스켓(SDR)에 담기는 통화라고 주장할 수도 있고, 국제결제 비중이나 석유대금 결제의 기준통화 등 통화의 종합적 파워와 신용을 토대로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수 보도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상당수 전문가들은 달러만이 기축통화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보수언론들은 대부분의 생활인에게도 기축통화는 달러로 인식되고 있고, 기껏해야 유로나 엔 정도까지가 '힘센 통화'로 이해된다는 점을 교묘히 이용해 이재명 후보의 경제전문가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데 열중했다.

정치 공세가 이어지면서 정작 이 이야기가 왜 등장했는지는 깔끔하게 무시됐다. 이재명 후보의 발언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대한민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채무를 늘리기가 어렵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면서 나왔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같은 취지로 이 후보를 공격했다.

'기축통화국이 아니면 국채발행에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은 국채발행을 통한 확장재정을 반대하기 위해 한국 보수가 활용해온 오랜 논변이다.

그런데 이재명 후보는 이 논변의 허구성을 지적하기보다는 한국도 기축통화국이 될 가능성이 있으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반론하는 바람에 논란을 키웠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공정시장위원장을 맡고 있는 채이배 전 의원이 해명한 것처럼 경제의 건강함을 강조하기 위한 예시라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기축통화국'이라는 표현을 써버린 만큼 이런 오해를 피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민주당계 정치인들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부강한 대한민국이라는 그림을 지나치게 갈구하는 태도가 있고, 이게 이 후보의 발언에서 무의식 중에 드러났다고 본다. 때문에 아쉽게도 기축통화국이 아니라서 국채발행에 제약이 있다는 주장을 제대로 논박할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보수언론은 덕분에 저 논변의 허구성을 들키지 않고, 전국민 재난지원금과 기본소득으로 확장재정의 선두에 선 대표 정치인의 이미지를 훼손함으로써 우회적으로 목표 달성에 성공했다.
  
기축통화와 국가부채비율 연관 짓는 오래된 미신
       
일단 주요 결제통화인 달러와 유로 정도를 기축통화로 간주하고 이야기하자면, 주요통화국들은 애초에 상대적으로 강력하고 안정적이고 신뢰성 있는 경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주요 거래 통화로 인정된 것이다. 높은 경제 건전성 덕분에 낮은 비용으로 재원조달이 가능하고 이에 따라 국가부채의 비용 부담 능력도 높아질 수 있다. 기축통화국이라는 칭호는 가슴팍에 붙은 훈장 같은 것이다. 능력을 인정받아야 훈장을 받을 수 있지만, 훈장 자체가 훈장소유자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아니다.

만약 기축통화 여부가 국가부채비율을 정하는 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지 검증해보려면 국가의 재정 규모, 무역거래, 외환시장의 특성 등 다양한 지표들을 성공적으로 통제하는 엄밀한 방법론을 사용한 연구결과를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과문한 탓인지 그런 연구는 보지 못했다.

적당히 자의적으로 기축통화국이라고 생각하는 나라들을 골라서 비기축통화국과 국가부채비율을 비교하는, 경제단체 산하기관이 제공하는 보도자료의 수치만 인용되고 있을 뿐이다. 이건 강남에서 태어난 아이가 비강남 출생자보다 미래소득이 높다는 통계로부터 자녀의 미래를 위해 강남 원정출산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기축통화가 달러뿐이라고 상정하는 이른바 '다수설'을 따른다면, 비교대상은 미국뿐이라 합리적 통계 검증조차 불가능하다. 그냥 우리나라는 미국이 아니라서 안 된다는 하나마나한 주장이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보수언론이 이 후보의 말을 팩트체크하면서 미국만이 기축통화국으로 대체로 인정된다고 보도하며 이 후보의 말이 얼마나 허황된지를 부각시켰다. 그런데 실상 보수언론이 허구헌날 한국이 기축통화국이 아니니 국채발행 하지 말라고 말할 때는 유로화나 엔화도 기축통화임을 전제하고 비교하는 이중성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안철수의 착각... 국채 해외수요가 많지 않아 안된다는 주장의 맹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공개홀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초청 토론회에서 인사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공개홀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초청 토론회에서 인사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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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후보는 토론회에서 기축통화국이 아니면 국채를 발행해도 외국에서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에 (국가부채비율을 늘리면)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이것도 황당한 이야기다. 일단 이른바 기축통화국의 해외투자자 국채수요가 높은 이유는 그 나라 통화가 기축통화여서가 아니라, 대체로 해당 국가의 경제건전성이 높고 불확실성이 낮아 안전자산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혹은 중국처럼 높은 경제성장률이라는 펀더멘털 위에 올라타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률이 기대되는 경우다. 기축통화국이 아니더라도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해외 국채 수요는 높을 수 있다. 대한민국 증권사들은 도대체 왜 기축통화도 아닌 브라질 헤알화 국채를 10조원어치나 갖고 있었나?

그런데 한편 국채의 높은 해외수요 자체는 부채 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는 리스크 요인도 될 수 있다. 미국 달러화의 잠재적 리스크 중 하나는 바로 국채의 해외 보유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미국과 세계의 패권을 놓고 다투는 중국만 하더라도 1조 달러 이상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몇 가지 안전장치가 있기는 하지만, 금융위기 국면에서나 정치적 이유로 중국정부가 국채 투매를 고려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일본 정부가 240%의 세계 최고의 국가부채비율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엔화가 주요 통화이기 때문이 아니라 높은 산업경쟁력과 이에 따른 담세력, 체제 안정성, 그리고 일본 내 경제주체들의 국내 자산 선호에서 기인한다. 개방경제에서 통화가치의 급격한 변화 같은 시장 충격에 외국인 투자자가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상식이다.

종합하면 기축통화국이라서 국채의 해외수요가 높은 것이라 말할 수도 없고, 자국 국채의 해외수요가 높다고 해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도리어 외국인의 투매로 인한 변동성 위기가 심화될 수 있는 것이다.
  
기축통화 발권력 주장의 허구성
 
미국 워싱턴 D.C.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본부 전경
 미국 워싱턴 D.C.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본부 전경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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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통화의 발권력이 이점이라는 주장도 합리적이지 않다. 기축통화 여부와 상관없이 자국통화의 신뢰성이 보장된 국가들은 자금을 조달할 때 대부분 자국통화 표시 채권을 발행한다. 한국 정부가 확장재정을 운용하기 위해서 굳이 달러 표시 채권을 발행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한국 정부도 이론상 국채에 대해 발권력의 권능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발권력을 대규모로 동원하는 건 통화 신뢰를 크게 저해하는 행동이므로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는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기축통화든 아니든 최종 수단으로서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점이고, 무리하게 결행하는 경우 통화 신뢰의 하락과 국채이자율 상승이라는 대가를 치르는 건 다 똑같다는 점이다.

심지어 미국은 연방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연방준비제도가 직접 인수하는 것을 아예 금지한다. 왜 그들은 자신의 발권력 이점을 적극 활용하지 않는가? 이른바 비기축통화국이라고 하는 한국정부도 허용하고 있고 심지어 결행까지 한 적 있는 국채 직매입 같은 수단을 '달러 화수분'을 가진 미국이 도리어 사용하길 꺼려하는가? 기축통화국도 통화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노벨상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미국이 달러를 이용함으로써 얻는 이익은 실상 미미하다고 단언한 바 있다. 기축통화라서 채무비율 유지에 유리하다? 계속 말하지만 기축통화라서 유리한 것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경제 건전성에 대한 신뢰가 높아서 유리한 것이다. 그리고 그 건전성을 유지하는 능력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치르는 기회비용 덕에 주요 통화의 지위가 부여된 것이다.

바꿔 말하면, 경제의 기초체력이 높다면 기축통화국이 아니더라도 확장재정을 위해 국가채무비율을 높게 유지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비기축통화국은 국가채무 늘면 신인도 타격? 현실은 달랐다

기껏해야 현재로서는 국가채무 증가가 불러올 수 있는 현실적 부작용은 국가신용등급에 대한 부정적 영향에 따른 조달비용 상승이다. 그러나 이것마저 현실이 보여주는 증거와 차이가 있다. 보수야당이 늘 비난하는 대로 대한민국의 GDP대비 국가부채비율은 지난 10년간 30.3%에서 47.3%까지 꾸준히 늘었다. 국가신용등급은 어떻게 되었을까? A+에서 AA까지 올라(S&P 기준) 세계 최고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무디스나 피치의 평가도 다르지 않다. 단 한 차례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자비용 부담 면은 어떤가? 지난 6년간(2015~2020) 국고채는 발행잔액 기준 연평균 11%, 총 300조 가량 증가했다. 그런데 정부의 국고채 이자부담은 17조3000억원에서 18조9000억원으로 연평균 1.5%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GDP대비나 전체 세수 대비로 보면 부담 비율은 오히려 하락했다.

외화표시 채권은 어떤가? 외평채의 사상 최저금리 발행 소식은 기획재정부가 수시로 써먹는 단골 자랑거리고, 미국 연준이 금리를 가파르게 올리겠다고 시그널을 보낸 시점에서 수출입은행은 역대 최대 규모인 30억달러 채권 발행을, 그것도 최저수준의 가산금리로 성사시킬 정도다.

즉 자본의 논리에 따라 지극히 냉정하고 현실적인 판단을 하는 신용평가사나 금융기관, 해외투자자들에게도 대한민국의 가파른 국가채무비율 상승 추이는 그다지 중요한 변수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빚이 있거나 말거나 기축통화국이나 말거나 돈 잘 벌고 빚 잘 갚고 산업 튼튼하고 구매력 높고 체제가 안정적이면, 저들 입장에서 만사형통이다. 이자비용이 17조가 아니라 170조인 상황이라면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국가채무가 늘어난다 한들 국가신용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국채라도 발행해 돈을 쓰지 않으면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약화하고 산업이 무너지고 경기가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자산시장과 실물경제의 위기가 찾아올 수 있고, 이것이 국가신인도에 더 큰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정부 부채는 그냥 허투루 쓰는 돈이 아니라 국민의 구매력이 되고 공공인프라가 되고 소상공인과 골목상권에 흘러가는 돈이다. 경제학의 기본은 모든 경제적 선택에 기회비용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세계 최고 수준의 국가신인도를 금지옥엽으로 지켜내는 것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국민들에게 충분한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국가부채비율을 높일 것인가? 어떤 선택의 기회비용이 더 높은가?
  
국가부채비율의 한계가 60%? 국민의힘 기조 뒤집은 윤석열
 
7일 오전 명동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보여주고 있다.
 7일 오전 명동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보여주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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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적정 부채 규모에 대한 후보들의 언급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국가부채비율의 한계를 어느 정도로 보냐'는 윤석열 후보의 질문에 이재명 후보는 IMF가 85% 수준을 참고 수치로 이야기한 적은 있지만 본인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건 경제학의 상식에 부합하는 발언이다. 사실 부채규모의 최적점이 어디인지 자신있게 제시하는 경제학자는 한 명도 없다.

윤석열 후보는 대충 50~60%라며 엉겁결에 자기 의견을 피력했는데, 난다긴다 하는 경제학자들도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문제에서 수치를 거론한 것이야말로 '용감한 무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이 기축통화국이냐 아니냐를 이재명 후보에게 따져물을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힘 선대본이 국가부채비율 60%를 한계선으로 고려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따져물을 문제다. 이게 더욱 내포한 의미가 크다. 국민들의 삶과 긴밀히 결부된 재정집행의 규모와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진심으로 흥미롭다. 저 60%의 근거가 무엇인지. 일반정부부채(D2) 기준 현재 47% 수준 부채비율에서 300조를 더 빚질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본다는 뜻인데, 이는 지금까지 양입제출의 균형재정 원칙을 신봉하는 국민의힘 국가재정운용 기조에서 벗어나 있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주식양도세와 종합부동산세를 없애고 소득세를 깎아주는, 2021년 기준으로 보면 연간 10조 규모 감세까지 약속하면서도 266조원에 이르는 공약이행비용을 오직 기존 재정지출 삭감과 세수 자연증가를 활용해서 조달하겠다는 게 윤석열 후보의 약속이었다. 언론이 진정으로 물어봐야 하는 포인트는 바로 이 부분이다. 

'엑셀 불황'의 교훈

확장재정 정책을 반대하는, 한 시대를 풍미한 이론적 논거가 있었다. 2010년 두 하버드 경제학자 라인하르트와 로고프는 <부채 시대의 성장>이라는 논문을 통해 GDP대비 국가채무비율이 90%를 넘어가면 경제성장률이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것을 논증했다. 당시는 그리스를 시작으로 남유럽발 재정위기가 번져가고 있던 때였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출판된 덕에 이 논문의 결론은 재정긴축론자들의 전가의 보도로 활용됐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누구도 이 논문의 결론을 재현할 수 없었다. 이상하게 여긴 일군의 학자들이 논문 데이터를 뜯어보니 문제가 발견되었고, 이것은 엑셀 입력 실수 같은 기초적인 코딩 오류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오류를 정정하니 국가채무비율과 성장률의 부정적 상관관계 같은 것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이를 두고 크루그먼은 "The Excel Depression(엑셀 불황)" 이라며 광신적 재정긴축 옹호론에 일침을 날렸다.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살펴봤다시피 기축통화 운운은 태극기부대가 광화문에서 뜬금없이 흔들어대는 이스라엘 국기 같은 것이다. 실상 큰 의미 없는 것에 권위를 부여하고 공포를 조장하는 주술적 행동에 가깝다. 크루그먼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에게 국가부채 감축이라는 것은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이다. 큰 정부에 대한 적개심, 민간영역에 대한 무한한 믿음, 달러제국 하에서의 식민의식, IMF 외환위기 트라우마 같은 것이 총체적으로 엮인 하나의 신념체계인 것이다. '엑셀 불황'의 적통 후계자, 바로 '기축통화 긴축론'(The Key Currency Austerity)이라는 이름으로 후세에 전해야 마땅하다.

나는 국가채무의 적정 수준에 대해 논쟁할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나라의 재정을 함부로 흥청망청 써도 된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이유로 재정지출을 폄훼하는 미신이 힘을 얻어 정치의 이론적 근거로 등극하는 순간, 합리적 이성적 토론은 소멸한다. 그리하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피해를 감수하고 부단히 고통을 감내한 국민들을 내팽겨치고, 나라 곳간만 끝간 데 없이 부유해지는 디스토피아 엔딩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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