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모로 역대급 대선입니다. 국내외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로 20대 대선과 한국정치를 읽습니다. 어떤 후보와 정당이 나의 일상을 안전하고 풍요롭게 할 지,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지 다각도로 모색해 봅니다.[편집자말]
 <화씨 11/9: 트럼프의 시대>의 한 장면

<화씨 11/9: 트럼프의 시대>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기록적인 감세가, (국회에서) 통과됐다. 오바마 케어는, 폐기됐다. 보수 성향의 판사를 140명이나 임명했다. 보수 판사들에게 대법원 종신 임기를 약속했다. 파리 기후협약도, 이란 핵협상도, 연기됐다. 쿠바 화해협정은, 취소됐다. 사설 감옥(회사) 주가가 두 배로 뛰었다. 사립학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는 (멕시코) 장벽을 세웠다.'

업적이 대단하다. 그가 누구인가. 맞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다. 미국 유명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화씨 11/9: 트럼프의 시대>(아래 <화씨 11/9>)에서 트럼프의 공약 실천을 "그의 공약은 유권자들이 아닌 억만장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정리했다. 

이 영화는 2018년 가을에 전 세계 개봉했다. 그렇다. 기억하시다시피, 저 공약들은 트럼프 집권 초기 전광석화처럼 실행에 옮긴 것들이다. 결론적으로, 이를 두고 무어는 독일 나치 집권 시 히틀러와 비교했다. 트럼프의 연설 목소리를 흑백 화면 속 히틀러의 연설 장면과 대입시켜가면서.

트럼프가 독재를 향한 기틀을 닦으려는 조짐마저 보인다는 분석이었다. 이러한 비교와 관련해 일각에서 "그런 비교가 완벽하지 않고 역사를 가져오지 말라"는 지적이 이는 것에 대해 무어와 인터뷰한 예일대 역사학 교수는 이런 반론을 내놨다.

"완벽한 비교란 존재할 수 없다. 역사는 재현되지 않는다. 다만 거대한 패턴이 존재한다. 어떤 형태들의 거대한 원천 말이다. 현재 일이 어찌 진행될지 정확히 알 수 없다면 역사를 대입해 볼 수 있는 거다."

트럼프와 히틀러, 그리고 민주주의 
 
 <화씨 11/9: 트럼프의 시대>의 한 장면

<화씨 11/9: 트럼프의 시대>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역사는 반복된다'는 서구 철학의 오래된 명제는 다양한 형태로 변주돼 왔다. 마르크스는 "한 번은 희극, 한 번은 비극"이란 명언을 남겼고, 움베르크 에코는 이를 비틀어 "역사는 언제나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 번은 비극의 형태로, 다음에는 우스꽝스러운 희극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고 했다.

분석의 차원은 디테일에 있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독재의 경우, 이를 반대하는 국민들이 받아들이는 패턴이나 원천은 유사할지 모를 일이다. 트럼프 집권 초기 마이클 무어도 그랬던 것 같다. <화씨 11/9>의 후반부, 무어가 꼽은 공화당이 아닌 '트럼프당'과 '히틀러당'의 공통점은 이랬다.

공동체가 독재로 향할 때, 일반인을 향한 예의는 그 사람의 인종에 따라 달라진다. 트럼프 시대 미국에서 득세했던 인종차별과 혐오, 폭력을 떠올려 보라. 다음은 종교다. 트럼프는 기독교 신자들이 줄었다며 무슬림에 대한 차별을 부추겼다.

중산층 공동체의 몰락은 전체주의의 강화로 이어진다. 주요 트럼프 지지자들의 계층과 맞아 떨어진다. 뉴스 통제도 필수다. 트럼프는 임기 내내, 언론에 대한 혐오와 공격을 일삼았고, 부정과 부패, 편향을 지적했으며 자신에 대한 언론보도를 가짜뉴스로 몰아갔다.

그리고, 아예 질문 자체를 막았다. 마치, 히틀러가 출판과 신문, 라디오를 통제했던 것처럼. 그렇게 임기 16년을 꿈꾸던 트럼프는 '아임 킹 오브 더 월드'를 외쳤다. "나는 대통령이고, 저들은 아닙니다." 내가 곧 법이었다. 역시나 무어가 만난 뉴욕대 역사학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과거부터 독재자들과 파시스트들이 했던 행동과 같습니다. 부패나 부정이 발생했을 때 누구도 사법을 신뢰하지 않게 됩니다. 정보기관도, 언론도 마찬가지죠. 독재자들은 (대중의) 신뢰 체계 자체를 없애버리려 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믿게 되죠.

그리고 독재자들은 오랜 기간 계속해서 지지자들을 결집시킵니다. 트럼프 역시 유세장에서 지지자들에게 충성 맹세를 시켰죠. 사람들은 트럼프가 거짓말을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오직 트럼프만을 믿게 되죠. 진실을 믿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돼 버리는 겁니다.
"

마이클 무어는 이러한 주장을 특유의 재기발랄하고 유려한 편집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과거 나치와 히틀러 관련 선전이 담긴 영상과 트럼프와 미국 국민들의 현재를 요리조리 교차시키고, 전문가들의 해석을 곁들이는 식이다.

어떤가. 대한민국 국민들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쟁취하며 몰아낸 그 독재의 양상과 비슷한가. 비교해 보시길. 2022년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의 주장이나 공약 중 어떤 대목이 미국 국민들이 46대 대선을 통해 백악관에서 쫓아낸 트럼프의 그것과 닮아 있는지를.

미국의 총체적 난국은 끝났을까
 
 <화씨 11/9: 트럼프의 시대>의 한 장면

<화씨 11/9: 트럼프의 시대>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그렇다고 <화씨 11/9>이 '기승전 트럼프 까기'로 일관하는 건 아니다. '트럼프 현상'을 초래한 요인을 전방위로 헤집는다. 열렬한 민주당 지지자인 무어는 집권 후반부 오바마 정부 또한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렸다. "트럼프를 위한 길을 오바마가 닦았다"며 "최악"이라는 특유의 돌직구도 서슴지 않는다. 그가 길어 올린 오바마 '최악'의 정책은 무엇이었을까. 

오마바 정부에서 감옥에 간 내부고발자 수는 이전 정부보다 훨씬 많았다. 추방된 이민자와 난민들 숫자 또한 기록적이었다. 오바마 정부는 시가지에 드론 폭력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오바마는 급기야 <화씨 11/9>가 CEO 주지사에 의해 주민들과 아이들 생명이 위협받은 처참한 도시로 그려낸 플로리다주 플린트시에다 전쟁 훈련을 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다. 주민들은 테러리즘과 강제로 친숙해져야 했다.

무어는 이러한 '트럼프를 위한 길'이 이미 수십 년간 준비돼 왔다고 꼬집는다. 공화당은 물론이요, 민주당도, '리버럴' 언론들도 보수화되고 기득권화 돼왔다는 지적이었다. 왜 그러냐고. 괜히 영화의 부제가 '위기의 민주주의'겠는가. <화씨 11/9>의 도입부, 2016년 11월 트럼프가 당선되던 미 45대 대선 당시를 보자.

유리천장이 깨지기 직전이었다. 축제 분위기였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환호했다. 기대에 부풀었다. 힐러리 클린턴이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리란 사실을 의심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공화당 당원들도 그랬다. 심지어 트럼프도 별 기대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투표 당일, <뉴욕 타임스>는 힐러리 당선 가능성을 85%로 점쳤다. 결과는 아시는 바대로다.

무어는 이 2시간 넘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종횡무진 말 그대로 총체적인 분석에 나선다. 우선 기득권 언론들. TV 쇼를 통해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은 트럼프를 방송 및 언론들은 처음엔 무시했다. 그러자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가 연전연승하자 태세를 전환했다.

시청률과 클릭수를 담보하는 이 이단아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CBS 사장을 비롯해 무어가 들려주는 방송사 사장의 녹취는 실로 충격적이다. 아예 사장이었던 고 로저 에일스가 '그림자 참모'로 활약했던 폭스뉴스는 두말 하면 잔소리다. 그런 언론들을 트럼프도 십분 활용했다. 그랬던 그가 당선 후 언론들을 탄압하기 시작한 것이야말로 시대의 아이러니긴 하지만.

민주당은 어땠나. 한 마디로 거만하고 오만했다. 이메일 스캔들이나 천문학적인 강연비 등 힐러리발 악재는 차라리 부차적인 문제였다. 민주당은 주요 선거에서 연거푸 승리했고, 오바마 정부 8년을 겪으면서 진보적인 의제 역시 국민들 대다수가 지지하는 상황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진보가 대세였다.

민주당 지도부는 겉과 속이 달랐다. 세계가 주목했던 버니 샌더스 열풍을 기억하는가. 무어는 민주당 지도부가 그러한 '좌파 신드롬'을 조직적으로 잠재웠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간접 선거 제도는 낡고 복잡하고 거추장스럽기로 유명하다. 국민들 전체 의사가 정확히 반영되기 어렵다. 

선거운동에 참여한 샌더스 지지자들은 민주당이 이 제도의 허점을 이용, 소수 지도부와 기업가들이 지지하는 힐러리 사수에 나섰다고 주장한다. 무어는 이들의 주장을 가감 없이 전달한다. 그러는 사이, 트럼프는 대도시를 벗어나 바닥 민심을 훑었다. 미디어를 교묘히 활용하는 한편 대중 유세를 즐겼다.

그리하여 <화씨 11/9>는 '위기의 민주주의'를 깨기 위해선, 트럼프의 독재를 막기 위해선 민주당의 자성과 변화가, 국민들의 각성과 행동이 필요하다 역설한다. 그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민주당을 점령하라. 그리고, 행동에 나서라. 소셜 미디어가 무기가 될지어다.

트럼프의 혐오정치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지난 2019년 뉴욕주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이 후보 시절 풋풋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버니 샌더스 캠프 출신인 그는 더 이상 민주당의 기득권 정치를 참지 못하고 직접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여성 중 1명이었다. 트럼프 집권 초반, 수많은 여성 및 미국 내 소수 인종 후보자들이 '민주당을 점령하라'는 구호 아래 풀뿌리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무어가 주목한 또 하나의 '운동'은 10대들로부터 출발했다. 2018년 2월 플로리다주 파크랜드 고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의 생존자 학생들이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총기 반대 시위를 주도해 낸 것이다. 이들의 절박하고 진심어린 투쟁은 급기야 미 전역을 아우르는 것도 모자라 해외에서도 호응한 단일 최대 시위를 이끌어내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이들의 무기는 바로 소셜 미디어에 접속할 수 있는 각자의 스마트폰이었다.

무어는 플린트 시를 비롯해 '트럼프 당선의 길'에 아파하고 극심한 피해를 입었던 도시들의 실상을 고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 와중에 시의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며 파업에 나섰다 주를 넘어 미 전역으로 퍼졌던 웨스트버지니아주 고교 선생님들의 파업과 연대 또한 잊지 않고 부각시킨다. 그야말로 트럼프 시대 미국에 대한 종합적인 진단 보고서라고 할까.

이 다큐가 공개되던 시점을 떠올려 보자. 대한민국은 촛불 탄핵의 여파가 사그라지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트럼프 현상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바라볼 여유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 사이, 트럼프는 재선에서 패배했다. 반면 우리는 20대 대선을 앞두고 권위주의 정권의 부활이나 정치의 퇴행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형국이다.

국민들은 다시금 선택의 기로에 섰다. 민주주의의 수호를 외치는 유권자도, 오로지 정권교체가 지상과제인 유권자도 단 한 표만 행사할 수 있다. <화씨 11/9>가 총체적으로 조망하고 도발적으로 응시한 불과 몇 년 전 미국 상황을 참고하시기를. 정권 교체와 함께 '트럼프 현상'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죽하면 후보가 'K-트럼피즘', 즉 혐오정치를 앞세워도 개의치 않는 유권자들이 생겨났겠는가. 그런 점에서, 영화 속 예일대 역사학 교수의 고견은 우리에게도 유효해보인다. 당신은 어떤 후보에게 소중한 한 표를 던질 것인가.

"미국도 진정한 민주주의에 도달한 건 1970년대다. 흑인이, 여성이 투표하지 못하던 시절, 그건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만든 사람도 이 제도가 오래 갈 거라 예상하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주인이다. 시민들 스스로 주장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망하게 될 것이다."
화씨11/9 마이클무어 트럼프 20대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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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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