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24 14:00최종 업데이트 22.02.24 14:00
  • 본문듣기

국방부 검찰단. 2021.6.7 ⓒ 연합뉴스

 
지난 1월 공군 소속의 대령급 군사경찰 두 명이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들은 각각 전직 군사경찰단장, 중앙수사대장으로 공군 군사경찰을 통솔하는 위치에 있었는데, 2021년 5월 공군에서 상급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고 이예람 중사가 사망한 직후 국방부에 허위보고를 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국방부 검찰단은 사망사건 보고서에 사망자가 성추행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누락하고, 유가족이 보인 반응도 조작한 점을 확인하여 이들을 기소했다.


이에 앞서 군인권센터는 유가족이 수사관에게 '고인이 평소 강제추행 사건을 겪은 뒤 동료들의 2차 가해, 가해자 선처 요구 등으로 힘들어하였다'며 조사와 처벌을 요구하였는데, '딸이 스스로 사망한 것을 인정하지만 사망동기를 명확히 밝혀달라며 애통해하는 것 외 특이반응 없음'이라 조작 기재된 보고서를 공개한 바 있다.

군사법원은 군사경찰단장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중앙수사대장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국방부 장관 직속... 왜

심각한 성폭행이 발생하고 선처를 요구하는 가해자와 상급자들의 회유와 협박이 백주 대낮에 횡행하였으나, 군사경찰은 노골적으로 가해자를 옹호했고 군검찰은 2개월간 피해자를 방치했다. 견디다 못해 전출 간 새 부대에서도 '성폭행 피해자' 꼬리표를 달고 괴롭힘을 당하던 피해자는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다.

피해자 혼자 속앓이를 하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성폭력 예방과 피해자 보호의 책임이 있는 군사경찰, 군검찰, 양성평등센터, 국선변호인 모두 사건 관계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별무신통이었다.

그뿐인가. 공군 군검찰은 피해자가 사망한 뒤에도 '죽을까 봐' 가해자를 구속하지 않았고, '증거를 인멸할까 봐' 이미 발부된 압수수색 영장도 집행하지 않았다. 기상천외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사망 사건을 수사한 군사경찰은 국방부에 허위보고까지 했다. 사건이 언론에 폭로되지 않았다면 피해자의 억울한 죽음조차 묻혔을 일이다.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은 군의 성폭력 대응 체계가 완전히 무너져있다는 것을 구조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조작, 은폐, 회유, 협박... 군이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이 참담한 민낯을 드러냈다. 여론이 들끓었다. 국방부는 민·관·군 합동위원회를 출범시켜 대책을 논의했다.

그러나 합동위가 운영된 4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절반에 가까운 민간위원이 사퇴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이 국방부의 개혁 의지를 확인하기 어렵고, 들러리 서는 것 같다는 지적과 함께 위원회를 떠났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합동위는 73개의 정책 권고를 내놨다. 그중 하나가 '장관 직속 성폭력 전담기구' 설치였다. 각 군에 산개된 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 보호 업무를 신속·통합 관리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반영된 권고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장 모 중사가 2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 압송됐다. 2021.6.2 ⓒ 국방부 제공

 
장관 직속 성폭력 전담기구 설치는 2018년 송영무 장관 때부터 논의된 오랜 과제였다. 당시 미투 운동 흐름 속에 군에서도 장성급 장군 여럿이 성범죄 가해자로 처벌을 받았다. 국방부 양성평등위원회의 권고로 시작된 전담조직 설치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여긴 장관은 담당자들을 미국 국방부 산하 성폭력 예방대응국(SAPRO)에 견학까지 보냈다. 하지만 장관이 바뀌면서 전담조직 설치는 유야무야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장관 직속 전담기구가 필요한 까닭은 군의 독특한 구조 때문이다. 표면 상 국방부는 육·해·공군을 통솔하는 중앙행정기관이지만, 각 군 참모총장은 고유의 군정권을 갖고 독자적 행정을 펼친다. 때문에 국방부와 각 군은 실질적으로는 업무 협조 관계나 다름없다. 때문에 보통의 정책부서들처럼 국방부 차관의 지휘를 받는 조직으로는 각 군을 틀어쥐고 관리할 수가 없다. 심지어 차관은 의전 서열도 각 군 참모총장 밑이다.

그러나 장관 직속은 다르다. 장관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군정권과 군령권을 모두 쥐고 각 군을 통솔하기도 하지만, 군인 출신만 장관에 앉히는 탓에 참모총장들의 선배요, 상관으로 군림하기도 한다. 문민장관의 필요성과 별개로, 엉망진창이 돼버린 성폭력 대응 체계를 일원화하여 바로잡으려면 이러한 장관의 권위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조직의 위상을 어떻게 두느냐는 조직의 실효적 운영과 직결되는 문제다. 제도는 의지의 총아다. 성폭력전담기구 설치가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지만, 국방부가 성폭력 문제 해결에 얼마만큼의 의지를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바로미터는 된다.

속 빈 강정

그러나 국방부는 지난 2월 22일, 차관 직속의 군인권개선추진단을 3년 한시 조직으로 발족하고 그 밑에 성폭력 예방·대응기구를 신설했다. 합동위 권고인 '장관 직속의 전담기구'는 고사하고, 차관 밑의 한시적 인권 담당 조직의 한 개 과 수준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원래 국방부에는 양성평등정책과가 있어 성폭력과 성평등 정책을 맡아보고 있었는데 성폭력을 떼내 성폭력 예방·대응기구로 옮긴 것 외엔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 성폭력예방대응담당관(과장)도 기존의 양성평등정책과장이 그대로 맡는다.

군인권개선추진단이 향후 상설 병영인권국으로 이어진다는 계획이긴 하지만, 전군의 성폭력 예방과 대응 대책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 하는 시점에 한시조직 밑의 일개 과가 이러한 업무를 주관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무엇보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과연 국방부 과장급 조직을 믿고 문을 두드릴 수 있겠냐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요란스럽게 성폭력전담기구를 설치했지만, 실상은 속 빈 강정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국방부는 합동위 운영 당시에도 장관 직속 기구 설치를 탐탁히 여기지 않았다. 이미 그때부터 병영인권국 산하에 전담기구를 두자는 발상이 흘러나왔다. 권고는 장관 직속 전담기구 설치로 나갔지만, 결과는 국방부 의중대로 된 셈이다. 여론이 잠잠해지고 나니 결국 합동위도 국방부의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씁쓸한 성적표만 남았다.
  

공군 성추행 피해자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주완씨가 18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무기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2021.11.18 ⓒ 권우성

 
오늘(24일)은 이예람 중사가 세상을 떠난 날로부터 9개월 하고도 이틀이 지났다. 이 중사는 아직도 국군수도병원 냉동고에 안치되어 있다. 이 중사 아버지가 집에 가지 않고 딸의 곁을 지킨다. 진실이 밝혀지고, 가해자, 2차 가해자, 부실수사 책임자가 온전히 처벌 받아 군의 성폭력 문제 해결 의지가 확인될 때까지 장례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바뀐 것은 없고, 유가족의 원통한 하루가 이렇게 또 지나갈 뿐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