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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나날이다. 일 년을 살아내려면 주부들은 때에 맞춰 해야 할 일이 있다. 어제(22일)는 '12지의 제7위인 오일을 가리키는 세시 풍속, 말날'이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세시 풍속으로 이날 장을 담그는 것은 말이 좋아하는 콩이 장의 원료고 또 핏빛처럼 장 빛깔이 진하고 맛이 달고 좋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세시 풍속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우리의 삶 가운데 남아있다. 예전에 비해 많이 퇴색된 부분도 있지만 아직도 남아있어 우리의 삶 에 적용하고 살아간다. 항상 바쁘게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 속에서 세시 풍속은 쉼을 하면서 인정을 나누는 아름다운 풍속 같다. 보름에는 찰밥과 나물을 해 먹고, 삼월 삼진 날은 진달래 화전을 해 먹는다. 절기에 따라 여러 가지 음식을 나누어 먹는 모습이 보기 좋다. 

보통 일이 아니었던 찰밥 만들기 

말날 이틀 전 전주에 살고 있는 동서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님, 화요일 (22일) 말날이에요. 간장을 담그러 큰집에 가려고 하는데, 형님은 간장 안 담그시는지요." "응, 나는 올해는 간장 안 담그는데." 사실 우리 집은 국간장은 잘 먹지 않는다. 아니 먹을 일이 별로 없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2년 전에 만든 간장도 남아있고 남편이 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국을 잘 끓이지 않는다. 된장 때문에 어쩌다 한 번씩 담그고 있다.

모처럼 전주에서 온다고 하는데 동서네 가족을 모른 채 할 수가 없다. 몸이 아픈 큰집 형님은 딸네 집으로 쉬러 가셨다. "그럼 내가 찰밥 해 가지고 갈게. 점심이나 먹게" 말하고 전화를 끓었다.

귀찮은 생각에 밖에 나가 밥을 사 먹고 싶지만 요즈음 오미크론 확진자가 너무 많아 외식도 자유롭지 않다. 그렇다고 군산까지 오는 시동생네 가족을 그냥 보내기는 섭섭하고 정이 없다. 나이 들어가면서 형제의 만남이 애틋하다. 일 년에 몇 번이나 만날까 싶은 마음이 들면서, 기회만 되면 만나려 한다.

2월 달부터 시작한 시니어 수업에 가서 꽃 그림 그리고 있다. 일주일이면 4번 나가야 하고 오전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집에만 있다가 가야 할, 해야 할 목표가 있어 즐겁다. 사람도 만나고 활기 있어 좋다. 무언가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어 잡념이 없어지니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생각해 보니 밤에 찰밥을 쪄야 큰집에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아 점심을 먹고 난 후 찹쌀을 물에 불렸다. 팥도 삶으려고 냉동고 문을 여니 이게 웬일. 냉동고에 있던 물건들이 흐물거린다. 야단났다. 냉장고를 건드린 일도 없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비상사태다. 놀라서 냉동고 속 물건들을 다른 냉동고로 옮기고 이것저것 확인을 하고 버릴 것은 버렸다. 보통 일이 아니다.

오래된 냉동고라서 얼음이 잔뜩 얼어 있었다. 그걸 떼어 내는 일은 엄청난 에너지를 요하는 힘든 일이다. 언제 사놓은 건지 알지도 못하는 것들도 있고, 한번 냉동고에 넣어두고 잃어버리고 먹지 않은 식자재들도 많았다. 반성하면서 다른 곳에 냉동물을 피신시키고 냉동고를 비우고 청소했다. 힘들기는 해도 어쩌면 홀가분하다. 냉동고 서럽을 꺼내어 모두 씻었다. 아주 큰 일을 한 기분이다.

밤에 찰밥을 하려니 너무 피곤하고 별생각이 다 난다. 에고, 동서네가 온다고 해도 모른 체 해도 될 일을 밥 준비를 한다고 약속했으니 나도 참 오지랖이 넓기도 하다. 몸이 피곤하니 살짝 다른 생각을 해 보는 거다. 사람이 누군가를 위한 일을 하려면 인내가 따른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어 다행이다, 하면서 마음을 돌린다. 사람에게 가장 즐거운 일은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이다.

아침에 나물이라도 좀 할까 싶어 말린 호박을 물에 불려 삶았더니 너무 물렁해서 먹을 수 없어 버리고 말았다. 내가 만든 일이다. 나이란 참 어쩔 수 없다. 가끔 드는 생각이다. 그냥 힘들이지 않고 간결하게 살 일이지 왜 일을 벌이고 살까? 좋아서 하는 일이니 누구를 탓할 수 없다. 

몸이 피곤한 게 대수인가

서둘러 아침을 먹고 시니어 갔다가 돌아와 준비해 놓은 찰밥과 샐러드, 김을 들고 큰집으로 갔다. 다행히 어제 큰집 형님도 딸네 집에서 내려오셨다. 사람의 온기가 있어 반갑다. "형님 좋아하는 찰밥 해 왔어요". 그 말에 반가워 반색을 하신다. 형님은 가지고 간 찰밥을 보고서 "맛있겠다" 하신다. 형님이 좋아하시니 모습을 보며 마음이 찡해 온다. 몸이 말을 안 들어 이제는 음식을 못 하는 아쉬움이 남는 듯하다. 마음만 있지 마음대로 음식을 못하는 일이 힘들 것 같다. 

조금 후 전주에서 시동생과 동서가 도착을 했다. 한참 만에 삼 형제가 만나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동서는 간장 담글 준비하고 나는 밥상을 차리고 동서가 끓여온 갈비탕도 내놓았다. 오랜만에 삼 형제가 모여 밥을 먹으니 감회가 새롭다.

유난히 우애가 좋은 삼 형제는 코로나가 오기 전에는 차로 전국을 누비며 여행을 할 정도였다. 추억도 많이 만들고, 정이 넘치는 형제들이다. 코로나가 오면서 같이 만나 밥도 못 먹었다.

몸이 피곤한 것이 대수인가. 따뜻한 밥 한 끼로 그간 힘들었던 마음이 모두 사라진다. 역시 좋은 사람과 만나 맛있는 것도 먹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때 사람 사는 것 같다. 명절과 제사 때도 만나지 못한 회포를 풀었다.

점심을 먹고 동서와 함께 간장을 담갔다. 일 년 먹거리를 해 놓은 날, 기분이 좋다. 간장을 담그면서 형제와 만나는 오늘이 또 하나의 우리의 추억이 된다. 오지랖이 넓어도 좋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마음을 다하는 진심이 전해질 때 외롭지 않고 사는 맛이 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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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설원 이숙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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