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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에서 버스를 타고 강화로 갔어요. 걷기도 하고 경운기도 얻어 타고 그러면서 돈대를 찾아다녔어요."

강원도 철원의 작은 암자에서 만난 도연스님이 그랬어요. 돈대를 찾아서 강화도를 오갔노라며 40년도 더 전의 옛날을 떠올렸어요. 1974년도였다는데, 정말 오래전 일이네요. 그 시절에 돈대를 찾아왔다니 놀랍습니다. 카메라를 메고 돈대를 찾아 헤맸을 청년 도연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돈대를 찾아가는 길  

길을 몰라 헤매기도 했을 테고 길을 안다 해도 찾아갈 길이 까마득했을 거예요. 돈대는 대부분 바닷가 언덕에 있으니 근처에 집이 있을 턱이 없지요. 그러니 버스가 다녔겠습니까, 아니면 그 시절에 택시가 있었겠어요? 오로지 걸어서 갈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혹 운이 좋아 경운기라도 만나면 얻어 타기도 했겠지만 그 시절에 경운기가 몇 대나 있었을까요. 그러니 걸어서 가는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무태돈대와 교동도
 무태돈대와 교동도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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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대를 찾아가는 길은 그렇게 어려웠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도로가 잘 닦여져 있고 차들이 다니지만 어떤 면에서는 여전히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요. 강화도 북쪽 해안에 있는 돈대의 경우 출입이 자유롭지 않습니다.

강화에 있었던 54개 돈대 중 현재 존재하는 돈대는 47개입니다. 그 돈대들은 대부분 아무나, 아무 때나 들어가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아무나' 못 들어가는 곳이 있어요. '아무 때'도 물론 안 되지요. 바로 북쪽, 양사면에 있는 돈대들입니다.

강화군 최북단인 양사면은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황해도 개풍군 및 연백군과 인접해 있습니다. 양사면의 바닷가에도 돈대들이 촘촘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황해도를 마주보고 있는 위치에 돈대들이 있어서 민간인의 출입이 자유롭지 않아요. 돈대들이 군부대 인근에 있어 민간인은 들어갈 수가 없답니다. 특별한 경우에만 출입이 허용되니, 돈대를 찾아 가는 길은 예전이나 마찬가지로 어려운 길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돈대를 찾아가기로 했어요. 길이 원래 있었던가요? 없는 길도 사람이 자꾸 걸으면 길이 되듯이 '돈대순례 길'도 마찬가지겠지요. 우리가 애착을 가지고 찾고 또 찾으면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돈대를 찾아가는 길'을 걷는 우리는 길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강화도 돈대 지도와 무태돈대 위치
 강화도 돈대 지도와 무태돈대 위치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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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대기행'을 하겠다고 했더니 다들 환호했습니다. 가보고 싶었으나 나서지 못한 길을 이번 기회에 가보겠노라며 응원했습니다. 그 호응에 힘입어 돈대순례 길을 개발합니다. 돈대의 턱 밑에까지 차를 타고 가는 길이 아니에요. 돈대만 휙 보고 오는 길도 아니랍니다.

돈대순례 길은 돈대의 역사적인 가치와 의미를 알아가는 길이고 느끼는 길이어야 해요. 차를 타고 편하게 가는 게 아니라 걸어서 찾아갑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그 옛날, 돈대를 만들 때 그때로 들어갑니다.

안전지대, 무태돈대

첫 번째로 찾아가는 돈대는 '무태돈대(無殆墩臺)'예요. 무태돈대는 강화군 하점면 창후리 산151-2번지에 있어요. 주소에 '산'이 들어가는 걸로 봐서 돈대가 산에 있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창후리 선착장 근처 나지막한 언덕에 있는데 선착장에서 200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찾아가기가 아주 쉬운 돈대랍니다.  

강화의 서북쪽 끝인 창후리는 교동도로 오가는 배를 타는 포구였어요. 교동대교가 개통되기 전에는 제법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었는데 교동도로 가는 다리가 인화리 쪽에 놓인 후로는 창후리는 찾는 사람이 별로 없는 곳이 되었어요. 사람보다 갈매기들이 더 많이 창후리 선착장 주변을 날아들어요.

무태돈대가 창후리에 있으니 돈대 이름도 당연히 '창후돈대'가 되어야 마땅할 것 같은데 지명과 전혀 상관없는 이름입니다. 무태돈대라고 이름을 지은 특별한 까닭이 있을까요? 돈대가 만들어진 1679년, 숙종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무태돈대
 무태돈대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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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태의 '태(殆)'자는 위태하다 또는 위험하다는 뜻입니다. 앞에 없을 '무(無)'자가 붙어 있으니 무태는 위태하지 않다는 뜻이겠지요. 즉 위험하지 않은 '안전지대'가 바로 무태돈대입니다. 서해안 작은 어촌 마을에 안전지대라는 뜻을 담은 무태돈대를 만들었습니다. 위태로움이 없다니, 그렇게 이름을 지은 까닭이 궁금해집니다.

꽃게가 많이 잡히는 철이면 서해안에서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들에 대한 기사를 종종 봅니다. 우리 해경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법 조업을 합니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 어민들이 입는 손해가 큽니다.

황당선(荒唐船)을 막아라

조선시대에도 중국 어선들이 우리 해역에 들어와 횡포를 부렸습니다. 거칠 '황(荒)'자에 당나라 '당(唐)'자를 붙여 '황당선(荒唐船)'이라 불렀던 이들 중국 배들은 떼를 지어 몰려와 서해를 헤집고 다녔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황당선에 대한 기록이 80여 회나 나올 정도로 그들의 횡포는 컸습니다. 중종 35년(1540년) 1월의 첫 기록부터 고종 20년(1883년)까지 조선은 내내 황당선에 시달렸습니다.

황당선의 패악질은 심했습니다. 해변 마을을 노략질하고 약탈했으며 부녀자들을 잡아가기도 했습니다. 숙종 8년(1682년)에도 황당선 십여 척이 황해도 앞바다의 초도(椒島)라는 섬에 나타났다고 <승정원일기>에 나옵니다.
 
무태돈대 끝 부분에 군 초소가 보인다.
 무태돈대 끝 부분에 군 초소가 보인다.
ⓒ 한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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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조정에서는 황당선의 횡포를 막을 방법을 강구했습니다. 수병으로 하여금 바다를 지키게 하고 해안가에는 방비책을 세웠을 것입니다. 강화도의 무태돈대는 그러한 까닭으로 쌓은 돈대입니다. 황당선의 침입으로부터 막아주는, 위태로움이 없게 해주는 돈대였던 것이지요.

무태돈대는 조선 숙종 5년(1679년)에 지은 돈대입니다. 숙종은 강화도 해안을 따라 모두 48개의 돈대를 쌓도록 합니다. 1679년 3월에 시작해서 5월에 끝냈으니, 80여 일만에 48개 돈대를 다 만들었습니다.

지금 봐도 정말 대단한 역사(役事)입니다. 당시 조선의 인구가 약 1천만 명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강화도에 와서 돈대를 쌓은 인원이 1만5000명이 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와서 한 공사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80여 일 만에 48개 돈대를

그 사람들은 어디서 어떻게 잠자고 먹고 그랬을까요? 음력 3월에서 5월까지 공사를 했으니 양력으로는 4월에서 6월쯤입니다. 4월은 봄기운이 한창일 때지만 밤에는 선득합니다. 5월과 6월이라고 다를까요. 이슬을 맞으며 밖에서 자면 새벽에는 선득해서 잠이 깰 것입니다. 그럴 때 1만 5000명이라는 사람들은 어디서 어떻게 기숙하며 돈대를 만드는 그 대공사를 해나갔을까요.

그 많은 사람들이 머물렀을 그때의 강화도를 그려봅니다. 돈대를 만드는 장소가 민가와 많이 떨어진 곳이 대부분이니 공사 현장 근처에 숙소를 만들었겠지요. 기둥을 세우고 광목천으로 하늘을 가려 비바람과 이슬을 막았겠지요. 이부자리는 각자 둘러메고 와서 덮었을 겁니다. 
 
무태돈대
 무태돈대
ⓒ 한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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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꾼들에게 품삯은 줬을까요? 먹을거리는 어떻게 조달했으며 다쳤을 때는 또 어떻게 치료를 했을까요? 모든 게 궁금합니다. 그래도 나라에서 하는 큰 공사이니 돈은 많이 풀렸겠지요. 강화도가 흥성댔을 것 같습니다.

돈대를 만드는 작업장 근처에 솥단지를 걸어놓고 밥을 하고 국을 끓였을 겁니다. 물은 어디서 길어왔으며 주방도구들 역시 제대로 있었을까요. 무태돈대를 둘러보노라니 옹색한 살림살이들을 늘어놓고 의식주를 해결했을 그때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합니다. 

아, 무태돈대 한 군데만 보았는데도 온갖 게 다 상상됩니다. 위태로움이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애썼던 선인들의 노고가 떠오릅니다. 그렇게 지키고 보존해온 우리나라입니다.

통일을 준비하는 무태돈대

무태돈대는 지금 또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있어요. 돈대 근처로 도로 공사가 한창입니다. 강화도 해안을 따라 한 바퀴 도는 순환도로를 만드는 공사입니다. 그 길은 인화리로 가서 48번 국도와 만납니다.
 
무태돈대에서 바로본 해넘이.
 무태돈대에서 바로본 해넘이.
ⓒ 이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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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번 국도가 어떤 국도이던가요. 광화문에서 출발해 강화까지 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짧은 국도입니다. 인화리 바다를 앞에 두고 길은 끝이 났는데 교동대교가 놓이면서 지금은 교동도까지 연장되었어요.

무태돈대 근처에 생기는 해안순환도로는 인화리에서 48번 국도와 만납니다. 그리고 교동도로 갑니다. 교동도에서 또 길은 꿈을 꿀 겁니다. 황해도 해주로 나아갈 꿈을 꿀 거예요.

아, 무태돈대는 이름 그대로였어요. 위태로움을 없애주기 위한 선인들의 노고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 인천을 출발해 강화로 와서 교동도를 거쳐 해주로 가는 '서해남북평화도로'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네요. 무태돈대는 통일을 준비하는 돈대였어요.

*무태돈대(無殆墩臺) 기본 정보

.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 소재지 : 인천 강화군 하점면 창후리 산151-2번지
. 소속 : 인화돈대·광암돈대·구등곶돈대·작성돈대와 함께 인화보(寅火堡)의 관리하에 있었음.
. 근처 돈대 : 3.4km 떨어져 있는 남쪽에 망월돈대가 있고 북쪽으로 2.3km 거리에 인화돈대가 있음.
. 크기 및 모양 : 44 x 20m의 길쭉한 직사각형 꼴.
. 규모 : 성곽 둘레 1450m, 성곽너비 2m, 석벽의 높이는 1.2~5.3m
. 현재 상황 : 복원이 이루어졌으나, 불완전 복원으로 포대 위치가 부정확하고 성첩 역시 일부만 복원한 상황임.
. 주변 편의시설 : 근처 창후리 선착장에 주차장과 화장실 및 편의시설 있음.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 12일에 '무태돈대'를 찾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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