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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야심차게 시도해보려던 계획이 시작도 하기 전에 스텝이 꼬였다. '아군'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고 사방이 '적군'에 포위된, 말 그대로 사면초가의 상황에 몰렸다.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토록 일방적으로 난타당할 줄은 미처 몰랐다. 

올해 고1 새내기 아이들의 야간자율학습(아래 야자) 시간 단축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개학 전, 현재 밤 10시인 하교 시간을 9시로 한 시간 앞당기기 위해 여러 교육 주체들의 의견을 듣는 중이다. 야자에 대한 학부모와 교사들의 생각을 듣고 어떻게든 설득할 요량이었다. 

아이들의 바람은 지난해 말 방학을 앞두고 토론을 통해 대강 수렴했다. 시간을 줄이자는 의견보다 야자 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달라는 요구가 대부분이었다. 참고로, 야자 참여를 강제하는 학교가 더러 있긴 해도, 대다수 학교에서는 자율적으로 선택하게 돼 있다.

사실 아이들에게 그것은 '차선책'이었다. 그들은 야자가 아예 없어지기를 바랐고, 나아가 학습 시간과 분량이 줄어들기를 간절히 원했다. 이구동성 "그렇게 된다면 원이 없겠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은 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이 지금껏 '공부 기계'가 아닌 적이 있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작동시키는 이의 의지나 알고리즘대로 움직이는 기계가 무슨 가당찮은 요구냐며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 시답잖은 고민을 할 시간 있으면 닥치고 공부나 하라는 '조언'과 함께. 

아이들은 밤 10시까지의 야자에 대해 단 한 번도 근거나 이유를 따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누구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야자에 참여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차이를 야자의 유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에게 야자는 관행을 넘어 학교생활의 '기본값'이었다. 

학부모들의 생각도 빼다 박은 듯 똑같았다. 다들 고등학생의 본분은 공부고, 공부는 시간과의 싸움이며, 야자는 공부 시간을 확보하는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라고 여겼다. 그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빗대는 표현이 바로 '엉덩이가 무거워야 성공한다'는 이야기다. 

"야자에 참여하지 않는 아이가 있을지언정, 우리나라에 야자가 없는 인문계고등학교가 있을까요? 전국의 모든 학교가 야자를 운영하고 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구태여 색안경을 끼고 야자를 볼 필요는 없다고 봐요."

야자에 대한 한 학부모의 '합리적인' 견해다. 고백하자면, 처음엔 야자의 완전한 폐지를 전제로 각자의 생각을 들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학부모와의 전화 몇 통만으로 그것이 얼마나 지나친 욕심인가를 깨닫게 됐다. 그러고선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바로 시간 단축이었다. 

야자 시간의 단축

늦은 시간이 아니라 운용의 묘를 살리지 못한 게 문제라는 의견도 더러 있었다. 아이들의 생각과 대동소이한 셈이다. 야자 시간에 자습만 허용할 게 아니라 아이들의 자율적이고 다양한 활동을 보장하면 참여도는 물론 만족도도 크게 높아질 거라고 입을 모았다. 

그들의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방과 후 학교 공간을 아이들에게 개방해 다양한 교육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유도하는 건 공교육의 취지에 부합한다. 다만, 학교 내 교육 활동을 책임져야 하는 교사에겐 엄청난 부담이다. 아이들이 있는 곳에 교사의 임장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곧, 야자 시간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땅찮아서가 아니라 임장할 교사가 부족해서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운영되는 프로그램 수만큼의 교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모두가 교실에서 조용히 앉아 자습하는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선 복도에 감독 교사 한두 명이면 충분하다. 

솔직히 야자 때 자율적으로 동아리를 구성해 활동하도록 독려하고도 싶고, 함께 모여 영화를 보거나 체육관에서 땀 흘려 운동하도록 허용하고도 싶다. 여건이 안 되니 뻔히 알면서도 못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자습할 친구만 남고 나머지는 방과 후 귀가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다양한 활동을 허용하면 야자의 학습 분위기가 흐트러질 거라며 반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자습 이외의 활동을 하려면 학교 밖에서 하라는 요구다. 그들에게 고등학교의 공부란 책상에 가만히 앉아서 교과서를 읽고 기출 문제를 풀며 시험 준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학부모들이 야자 시간의 단축을 반대하는 이유는 이것이다. 학교에서 일찍 파하면 그 시간만큼 학원과 독서실을 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초저녁부터 종일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방에서 뒹구는 걸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다"고 하소연하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값비싼 스마트폰을 번번이 사서 쥐여주면서, 한편으로는 학교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지도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럼 애초 사주지 말라고 하면 그건 불가능하다고 답하면서, 교사의 말은 잘 듣지 않느냐며 통제해달라는 거다. 그 어처구니없음에 말문이 막힌다. 

밤 9시를 '초저녁'이라 부르는 학부모들에게 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10대 청소년의 신체 발달과 뇌의 성장을 위해서 최소 8시간 이상의 수면 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더니, 대뜸 대입에 실패한 스트레스가 더 건강을 해칠 거라며 조롱하듯 대꾸하기도 했다.

야자는 '성역'

교사들은 어떨까. 학부모와 입장은 사뭇 상반돼도 야자 시간의 단축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선 한결같았다. 우선, 학부모들이 한목소리로 반대하는데 귀 막은 채 강행하는 건 학교와 교사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이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꼴이라는 거다.

"대번 교사들의 편의를 위해 아이들 교육을 나 몰라라 하는 학교로 낙인찍힐 게 뻔해요. 학부모들은 예외 없이 학교가 아이들을 오랫동안 붙잡아놓고 있기를 바라죠. 아마 야자 시간을 밤 11시나 자정까지 늘리는 학교가 있다면, 아이를 서로 보내려고 안달할걸요."

밤늦도록 학교가 아이들을 건사하는 걸 두고 학부모들은 그만큼 제자를 사랑하는 교사가 많다는 뜻이라며 고마워한다. 또, 이따금 졸더라도 책상 앞이니 조금이라도 공부에 보탬이 되지 않겠느냐고 자위한다. 더욱이 저녁 급식까지 챙겨주니 야자에는 돌봄 기능까지 제공된다.

고등학교에 와서조차 매일 '학원 뺑뺑이'를 돌리는 일부 상위권 아이들의 학부모들을 제외하면, 야자에 대한 선호도는 압도적으로 높다. 이런 상황일진대 어떤 간 큰 학교가 기존의 야자 시스템을 건드릴 수 있겠는가. 교육 당국의 강제적 조치가 있기 전까지 야자는 '성역'이다.

"야자 시간을 단축한 뒤 전국연합평가 성적이 떨어지기라도 할라치면, 성적 하락의 주범으로 몰려 이내 원상 복구될 게 뻔해요. 사실 공부를 반강제적으로 하도록 길들어진 아이들에게 매일 1시간의 학습 시간 차이는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어요. 곧장 대입에서 실적을 내야 하는 현실에서 야자는 필요악이라고 봐요."

끊임없는 주변 학교와의 성적 비교 압박에 야자를 섣불리 손댈 수 없다는 뜻이다. 학부모와 교사는 물론 아이들 사이에서도 '결과만 좋으면 다 좋다'는 인식이 팽배해 1년 365일 별을 보며 귀가하는 고통쯤은 명문대 진학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비록 농담일지언정 "서울대만 갈 수 있다면 암에 걸려도 좋다"고 선선히 말하는 아이도 봤다. 

야자 폐지가 헛된 꿈이라는 아이들과 야자 시간이 단축되면 학원과 독서실에 보낼 수밖에 없다는 학부모들, 그리고 학부모의 반대와 성적에 대한 부담 때문에 건드릴 수 없다는 교사들. 지음이라 여겨온 동료 교사조차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며 만류했다. 결국 어떻게든 야자를 손보겠다는 나의 계획은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물거품이 됐다.

사족.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야자가 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여기저기 포털을 검색해봤지만, 설득력 있는 답변을 찾을 수 없어 정년퇴직하신 선배 교사들을 찾아가 부러 여쭤봤다. 대개 1970년대에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분들이다. 

그들은 야자의 '기원'을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조차 입시를 통해 진학했던 비평준화 제도에서 찾았다. 명문고에서 명문대로 이어지는 전통을 잇고 명예를 빛내기 위해 입시 공부가 사활을 건 전쟁이 되어 학교마다 '별 보고 등교해서 별 보고 귀가하는' 관행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온존한 학벌 구조와 대학 입시를 공부의 종착역으로 여기는 교육 풍토가 혁파되지 않는 한, 고등학교에서 야자는 존속될 거라고 했다. 이 와중에 한 선배 교사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만연했던 '0교시'를 지금은 상상할 수조차 없지 않냐는 거다. 야자도 언젠가는 '0교시'의 운명을 맞게 될 거라지만, 요즘 같아선 그날이 까마득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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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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