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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리에서는 이른 새벽 일출로 하루를 시작하기도 한다.
 꿈틀리에서는 이른 새벽 일출로 하루를 시작하기도 한다.
ⓒ 꿈틀리인생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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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했다. 코로나 때문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졸업을 했다.

일기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일기를 썼다. 처음에는 나름 일기 같은 일기를 썼다. 시험과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진 뒤로, 일기는 내 감정 쓰레기통으로 바뀌어 갔다. 모든 문장에 힘들다는 단어가 빠짐없이 있는 일기를 쓴 적도 있다. 꿈틀리에 온 뒤로는 모든 일기에 느낌표가 있었다. 재미있다는 말이 거의 빠지지 않았다. 나는 원래 재미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런 나를 억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내가 불쌍했다. 

꿈틀리인생학교
 
 산책수업을 한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입니다.
  산책수업을 한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입니다.
ⓒ 꿈틀리인생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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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틀리를 처음 알게 된 건 엄마가 책 <삶을 위한 수업>을 읽고 소개해 준 덕분이었다. 그때 나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자퇴를 원했지만, 학교라는 공동체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있었다. 시험과 성적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던 나에게 꿈틀리는 훌륭한 대안이었다. 덴마크에 여행도 다녀온다고 하니 더욱 그랬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은 학교의 이름이었다. 꿈틀리인생학교, 뭔가 오그라들었다. 학교를 졸업한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학교에서의 시간이 쌓일수록 그 7글자가 점점 와닿았다. 꿈틀대며 움직이고, 시도할 수 있었다. 다양한 사람과 함께하며 삶을 배울 수 있었다. 일반 학교에선 가르치지 않지만 꼭 알아야 하고 기억해야 하는 것을 배웠다. 꿈틀대며 삶을 배우는 꿈틀리인생학교 그 자체였다.

외유내강

면접을 보기 위해 처음 학교에 간 날, 사실 좀 많이 놀랐다. 건물이 생각보다 더 허름했고, 아파트가 익숙한 나는 '와, 여기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학교를 다니면서 든 생각은 '이 학교는 외유내강이다' 하는 것이었다. 겉은 허름했지만 속은 견고했다. 다양한 동물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었고, 나의 또 다른 집이 되어주었고, 가두기보단 뻗어 나갈 기회를 주는 소중한 공간이 되어주었다. 허름한 건물 속에서 나는 분명히 견고해졌고, 확실히 단단해졌다.

나와 관계

배움이 있었다. 전에는 공부라는 핑계로 어쩌면 외면해왔던 인간관계를 직면했다. 솔직히 단체생활은 불편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많았고, 때로는 일부러 거리를 두기도 했다. 근데 마음이 불편했다. 지내다 보니 다른 친구들도 많이 불편하지만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려 노력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많이 연습했다. 의도와 목적이 다분한 때가 있었다. 내가 마음을 준 사람에게 그만한 무언가를 받지 못했을 때 너무 속상했다. 결국 실망은 내가 기대한 탓이라는 걸 알았고, 기대 없이 나의 것을 나누는 연습을 했다. 또 타인을 미워하는 데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었다. 역시 그러지 않는 연습을 했다. 아직도 연습을 해나가는 과정의 단계이지만 분명히 전보다는 마음이 편하다. 

안개꽃
 
모아 가족 산책
 모아 가족 산책
ⓒ 꿈틀리인생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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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따뜻한 공간에 머물다 왔다는 생각이 든다. 푹신하지 않은 침대에서 잠을 잤어도 참 포근했고, 겨울이 너무 추웠지만 함께한 대화와 순간이 참 따뜻했다. 세미나실, 강의실, 교무실, 운동장,.. 학교의 모든 공간에서 다양한 대화를 나눴다. 목적 없이 시작된 대화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다같이 웃고 떠들었고, 장난치고 다투고 화해했다. 그냥 날씨가 좋으면 밖에 앉아서 밥을 먹었고, 나가고 싶으면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일몰과 일출을 보러 다녔다. 언제는 바다에 들어가 놀았고, 언제는 산을 오르며 웃었다. 산 중턱 바위에 앉아 가만히 바람을 맞았고, 처음 본 사람과 인사하고 대화했다. 눈이 비가 되고, 비가 눈이 되었다. 시원하던 바람이 차가워졌다. 있던 동물은 가고, 다른 동물이 찾아와 새로운 가족이 되었다. 고작 1년이었지만 순간순간 바뀌었다. 행복은 장미꽃 한 송이가 아니라 안개꽃 다발이라는 말을 보았다. 꿈틀리는 참 행복했다.

괜찮다

전에는 사촌 동생들이 몇 살인지 별 관심이 없었지만 지금은 중3, 고1 이라는 말을 들으면 바로 관심이 간다. 꿈틀리의 존재를 알려주고 싶어서다. 내가 고1 때 주변 친구들 대부분이 잠깐이라도 자퇴를 고민했다. 나의 언니 역시도 '자퇴하고 싶다. 자퇴하면 뭐하지? 할 게 없네, 딴 생각 말고 공부나 하자.'는 생각했다고 한다. 나도 솔직히 자퇴하려면 목표가 있어야 하고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12년 교육제도를 거스르면 낙오되는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나는 지금 훨씬 행복하다.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꿈틀리는 괜찮음을 알려주었다. 다른 길로 가도, 느려도,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려주었다. 나는 성적이 안 나오면 망하는 줄 알았다. 아등바등하며 시험을 볼 때는 아는 것도 틀렸고, 자퇴를 결정한 뒤에 아무런 긴장 없이 친 시험에서 성적이 가장 잘 나왔다. 괜찮음을 알고 임하는 것과 아닌 것은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괜찮다'고 생각할 때 나를 백분 발휘할 수 있음을 느꼈다.

마치며
 
모아의 개인프로젝트는 사진집 만들기 입니다. 어느 가을날 신안 도초도에서.
 모아의 개인프로젝트는 사진집 만들기 입니다. 어느 가을날 신안 도초도에서.
ⓒ 꿈틀리인생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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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꿈틀리에서 '모아'로 살았다. 여전히 이름을 쓰라고 하면 내 본명을 쓰는 게 익숙하고, 밖에서 6기를 만난다면 별명으로 부를지 본명으로 부를지 조금은 고민할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많이 변했고, 성장했다. 전에는 중학교 졸업하면 고등학교 가고, 고등학교 졸업하면 대학 가는 게 당연했다. 지금은 꼭 대학이 아니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아보고 도전해 보는 것, 나의 길을 가는 것이 더 당연하다. 나는 아직은 일반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고, 부딪히고 싶고, 겪어보고 경험하며 시야를 더 넓혀나가고 싶다. 졸업을 했고, 꿈틀리에서의 1년은 끝났지만 또 다른 1년은 이제 시작이니 그냥 즐기고 싶은 마음이다.

<꿈틀리인생학교>
입학문의: 032-937-7431
블로그: https://blog.naver.com/ggumtlefterskole
영상: https://youtu.be/Osi8w7I8l4s

덧붙이는 글 | 꿈틀리인생학교 6기로 졸업한 손태영(모아)이 보내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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