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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어딘가 남과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서른에야 ADHD라는 병을 처음 알았고, 서른여덟에 성인 ADHD 확진을 받았습니다. 실체를 모르는 병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사람들 각자가 품고 사는 보이지 않는 아픔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많은 아르바이트와 직장을 거친 후 자신에게 맞는 생활을 찾은 지금, 저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보이지 않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분들의 삶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손을 흔들어 봅니다.[편집자말]
스무살 무렵의 일이다. 친한 친구가 밤중에 전화를 걸어왔다. 목소리가 안 좋은 게 무슨 일이 있었나 싶었다. 자세한 얘길 들어보려는데, 친구가 말했다. "됐다. 다음에 전화할게." 말투가 차가웠다.

전화를 끊고 깨달았다. 나는 핸드폰을 어깨와 머리 사이에 끼운 채 계속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전해진 '타닥타닥' 소리는 "난 네 상황에 관심이 없어"라고 해석되기 충분했다. 스스로 당황스러웠다. 나한테 공감 능력이 이정도로 없는 건가?

나는 눈치를 엄청나게 본다. 눈치가 꽝이라 눈치를 보게 됐지만, 한시도 긴장을 놓지 않는 데 반해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은 심심찮게 일어났다. 마치 백신이 안 깔린 컴퓨터에서 광고창이 연신 팝업되듯이.

최근엔 비오는 날 야근하다 우산도 없는 상사만을 남겨둔 채 차를 얻어타고 가버렸다. 집은 같은 방향이었고, 상사는 전에 나를 여러 번 태워다 주기도 했다. 당시엔 이상한 점을 모르다가 한참을 지나서야 뭔가 찜찜했다. 그리곤 기함했다. "와… 나 미쳤네?" 눈치 빠른 사람으로 사는 기분은 어떨까?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고 싶진 않은데, 눈치 빠른 사람 시켜준다면 생각해 볼 것도 같다.

내 안의 빅브라더

20대 내내 내가 소시오패스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처럼 '사이코패스인가? 소시오패스인가?' 고민한 ADHD인들이 많다는 게 위안이 되기도 했다. 

성급함과 산만함은 전체적 상황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ADHD를 가진 사람이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데는 주의 통제, 작업기억력 문제와 함께, 만족의 지연을 견디지 못하고 단기 보상에 집중하는 충동성 문제가 작용한다.

사회경험이 적었던 20대 때는 과잉행동과 충동성이 다소 직접적으로 나타났다. 대화 중 제 흥에 겨우면 탁자를 거세게 내리쳐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런데 30대 중반에도 간혹 '튈' 때가 있었다. 직장동료들과 발맞춰 걷다가 불쑥 나는 달려야겠다며 한 마리 야생마가 되는 식이다. 갑자기 몸이 너무 근질거리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행동이 과감해지는 것이다.
 
ADHD 환자는 빈약한 주의통제력 때문에 정서적 단서를 잘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때때로 충동조절 부족 또는 불안 때문에 지나치게 편해 보일 수 있다. 이런 모습은 문제나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피상적이고, 무심하고, 책임감 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 소외에 대한 불안 ADHD 환자는 빈약한 주의통제력 때문에 정서적 단서를 잘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때때로 충동조절 부족 또는 불안 때문에 지나치게 편해 보일 수 있다. 이런 모습은 문제나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피상적이고, 무심하고, 책임감 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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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없고 배려가 부족한 사람으로 비치는 게 항상 겁났다. '지금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되지?' '이런 말이 이 상황에 어울리나?' '방금 또 눈치 없이 군 거 아냐?' 자기검열을 하다 보니 모든 게 하나하나 의심스러웠다. 눈치를 USB처럼 띡 꽂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할 수 있는 건 모든 눈치의 조각을 힘껏 끌어모으는 거였다.

그래서 '버전업' 된 나는 어딘가 딱딱하고 어색했다. 말 한 마디, 작은 몸짓, 찰나의 표정까지 내 안의 빅브라더에게 결제를 받곤 했다. 정도가 심할 때는 "네가 너무 조심스러우니까 나도 무슨 말을 못하겠잖아"라며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나에게도 중간이 있었으면 했다. 긴장을 풀면 멍해지고, 긴장하면 깡통로봇 같아지고. 사람이 왜 이리 극단적인가?(당시에 ADHD약을 먹을 수 있었다면 좀 나았겠다)

그래도 "생각을 하고 말을 꺼내야지" "넌 왜 이렇게 엉뚱한 소릴 잘하냐?" "분위기 이상하게 만드는 덴 뭐 있지" 같은 말을 들으며 계속 망신 당하는 것보다야 나았다. 적절함을 위해 자연스러움을 포기한 셈이다. 재즈처럼 살며 생기를 느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오해로 쌓아올린 돌무덤 밑에서 사회적 죽음을 맞이할지도 몰랐다. 한 ADHD인은 이런 상황에 대해 "폭탄을 안고 사는 느낌입니다"라고 표현했다. 
 
과도한 자기검열의 부작용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무는 오랜 버릇이 있는데, 치과에서 "지금도 이가 많이 상했다"며 여러 번 지적받았지만 잘 고쳐지지 않았다. 얼마 전 관련 책을 읽다가 이게 충동성과 과잉운동성, 불안을 억누르기 위한 강박행동이라는 걸 알았다. 재미있는 일이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이를 악 물고 살다니!

이런 자기검열에는 역효과가 있었다. 따져볼수록 더 뭐가 뭔지 모르게 되어, 모든 인간관계가 모의고사 수리영역 같았다. 직관을 버리고 판단에만 의존하니 오히려 과장되거나 어색한 행동을 하기도 쉬웠다.

통제하자면 긴장해야 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심리학자 Young과 Bramham은 불안이 주의력 문제와 충동성을 증가시키고 합리적 추론 능력을 억제한다고 지적한다. 애초에 인지적 취약성을 가진 ADHD 환자가 불안과 공존하게 되면 "최대한 집중해야 할 때 ADHD 증상이 훨씬 더 두드러지곤 하기 때문에 '2배'로 인지장애를 겪는다"는 것이다. 

불안하면 작업기억력도 약화된다. 작업기억 시스템이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할 때 일부 자원이 분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분위기 싸해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 때문에 내가 하던 얘기도 방금 들은 얘기도 자주 잊었다. 악성코드 잡으려고 깐 백신이 다른 프로그램 실행을 방해하고 자료도 멋대로 삭제하는 꼴이다.

이렇게 해서 부정적 결과가 늘면 '나는 부적절하고 멍청하다'는 역기능적 신념은 강화됐고, 머릿속 빅브라더는 외쳤다. "그래? 그렇다면 감시 체계를 강화해야겠군!!"

모든 사람에게 지나치게 조심하는 데 대한 보상심리일까? 가까운 사람들, 특히 애인과 얘기할 땐 필터가 아예 작동하지 않았다. 정작 솔직해야 될 때는 상처가 될까 겁나 말을 못하는데, 평소엔 무심코 튀어나온 말 때문에 의도치 않게 상처주었다. "그건 이런이런 맥락이었어"라는 설명을 납득할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었다.

억울할 자격이 없다는 건 종종 슬프다. 하지만 요즘은 억울함도 슬픔도 재빨리 포기한다. 의도가 좋아도 표현 방식이 자기 위주였다면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 게 그나마 챙기고 싶은 어른다움이니까. 가늘게 뜬 인자한 눈으로 나의 어리석음을 관조할 뿐이다. 그래, 네가 거기 그렇게 아직도 있구나.
 
이번 생에 눈치는 없지만

 
나는 '중간'이 안 된다면 보살이 되어서라도 어쨌든 행복해지고 싶었다. 최근에 ‘이 악 물기’ 버릇에 대한 얘기를 환자 모임에서 했더니 누군가 말했다. "고생이 많으세요..." 그제서야 어, 그렇구나, 싶었다. 나 참 많이 참았네. 먼저 필요했던 건 내가 내 얘기를 들어주는 일이었다.
▲ 자기대화 나는 "중간"이 안 된다면 보살이 되어서라도 어쨌든 행복해지고 싶었다. 최근에 ‘이 악 물기’ 버릇에 대한 얘기를 환자 모임에서 했더니 누군가 말했다. "고생이 많으세요..." 그제서야 어, 그렇구나, 싶었다. 나 참 많이 참았네. 먼저 필요했던 건 내가 내 얘기를 들어주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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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ADHD가 없더라도, 모든 상황에서 완벽히 '적절함'의 영역에 들어간다는 건 '진짜 나'를 끊임없이 소외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실수보다 더 불행과 친한 건 '내면의 비판자'다. 내가 뭘 하든 사사건건 감시하고 꾸짖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 속에 들어와 온종일 따라다닌다면? 웃는 게 웃는 게 아니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박재연 심리상담전문가는 "자기검열을 넘어서는 것이 자기대화"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당위적 사고와 평가를 보류하고, '내가 이렇게 나를 단정 짓고 있구나'라는 속대화를 먼저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승욱 정신분석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스스로를 혐오하게 된다'고 표현했다. 

나 역시 나로 인한 상대의 감정에 관심을 뒀을 뿐 한 번도 자신에게 제대로 말을 걸지 않았다. 사실 야생의 습성을 채찍과 감금으로 없앨 수 없으니, 나에겐 조련사가 아닌 조력자가 더 필요했다. 발전한 사회 기술을 칭찬도 해주고, 실수도 죄는 아니라며 안심시켜 주는 존재. 

이제야 투명하게 보인다. 안 되는 머리를 굴리며 주위를 살필 때 내 마음이 아팠다는 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것도 이해한다. 불안과 자기통제는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 노력이었고, 기본적으로 공동체에서 배척당하지 않는 안전장치가 됐다.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심, 소외에 대한 공포, 역지사지로 인한 죄책감도 잘못된 게 아니다.

다만 내가 몰랐던 건 이런 거다. 관계 속에서 안정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나에게 소속되는 게 더 중요하다. 가장 두려워해야 할 건 두려움에 삶이 종속되는 것이다. 그건 살아있는 상태를 삶도 죽음도 아니게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자신의 취약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도 오해에 민감하다. 그래도 내 안의 천둥벌거숭이가 뿅 튀어나올 때 좀 더 여유롭게 지켜본다. 미안한 일은 사과하고, '저한테 이렇게 말 안 듣는 자식새끼가 있어요'라는 느낌으로 눙쳐도 본다. 내 어리석음이 만천하에 드러난다면, 입맛은 써도 별 수 있나? 허심탄회하게 인정해야지. 이번 생에 눈치는 없지만, 똥배짱은 있는 걸로. 둘 중 하나만 있어도 그럭저럭 든든하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 ADHD가 있는 사람의 대부분은 안절부절 못하는 ‘내적’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왔다 갔다 하기, 손가락 두드리기, 발 까딱거리기, 자세 바꾸기, 물건 만지작거리기, 몸을 좌우로 흔들기, 흥얼거리기, 지나치게 말 많이 하기 등으로 나타납니다. 저도 이런 느낌을 강하게 갖고 있었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몰래 어금니를 갈고 사적 대화에서 냅킨을 계속 접었다 펴고, 가까운 사람에게만 쉼없이 이야기하는 등 가장 소극적인 형태로 해소해 왔습니다. 여러 번 ADHD 진단에서 누락된 데는 이런 자기통제도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 Susan Young, Jessica Bramham의 <청소년 및 성인을 위한 ADHD의 인지행동치료> (시그마프레스)를 주로 참고하였습니다.
* 글쓴이의 브런치 페이지에도 연재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adhdworker)
* 다음 화에서는 '일상을 좀 먹는 수치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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