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니콜슨 감독.

윌리엄 니콜슨 감독. ⓒ 티캐스트


가족 해체 문제는 아마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고민일 것이다. 특히나 부모의 이혼과 재혼, 상처받은 남은 가족들 이야기는 이미 많은 영화로도 끊임없이 소개되고 있다.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또한 한 가족의 해체와 그로 인해 고민하는 구성원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이 좀 특별한 건 성인인 아들의 시점에서 부모를 바라보고 있다는 데에 있다. 시를 선별해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그레이스, 과묵하고 신중한 성격의 역사 교사인 에드워드 사이에서 자란 제이미는 '더 이상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며 별안간 이혼을 선포한 아버지 에드워드에게 충격을 받는다.
 
자주 말다툼을 하긴 했지만 이혼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던 그레이스와 새로운 사랑이 있음을 고백한 에드워드, 그리고 제이미는 모두 성인이다. 머리로는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알지만 좀처럼 그게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그 과정을 영화는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윌리엄 니콜슨 감독은 한국 관객들에게 <글래디에이터> <레미제라블> 각본가로 잘 알려져 있다. 자전적 이야기를 가지고 처음 연출에 도전한 그를 지난 18일 화상 인터뷰로 만날 수 있었다.
 
가족 해체의 이면을 바라보다
 
영화의 출발은 1999년 윌리엄 니콜슨 감독이 직접 쓴 희곡 <모스크바로부터의 후퇴>였다. "자전적 이야기라 영화화할 경우 내가 감독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며 그가 운을 뗐다. 연극 무대의 제한된 공간이 아닌 영화를 찍게 되면서 감독은 자신의 실제 고향인 영국 씨포드의 작은 해안마을을 배경으로 삼았다.
 
"어릴 때 살던 곳이라 굉장히 잘 안다. 호프 갭(Hope Gap) 절벽의 풍광과 언덕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영화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어머니든 아버지든 나쁜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부모의 입장이 아닌 아들의 관점으로 흐르는데 부모의 이혼은 아들이 성인일지라도 같은 아픔과 고통, 책임감을 느낀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를 통해 누군가를 악인으로 묘사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많은 가족의 해체 이야기가 있는데 보통은 남성을 악당으로 간주하고, 여성은 피해자로 묘사한다. 하지만 내 경우엔 남자든 여자든 이별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고 있고, 두 사람 모두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극중 그레이스처럼 내 어머님은 실제로 시를 사랑하셨다. 긴 시도 거뜬히 외워서 낭독하는 게 일상이었다. 제가 첫사랑과 헤어지고 힘들었을 때 어머니가 사랑과 이별에 대한 시를 모아 책으로 만들어주셨다. 영화에선 그보다 한 단계 나아간 선택을 하는데 시가 그만큼 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윌리엄 니콜슨 감독.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윌리엄 니콜슨 감독. ⓒ 티캐스트


실제 자신이 겪은 일을 바탕으로 했기에 인터뷰 중 윌리엄 니콜슨 감독은 "자녀 입장에서 부모님의 이별이 마치 자신의 책임도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데 절대 자녀의 탓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며 "각자의 행복은 각자 추구해야 하고, 부부가 불행할 때 이혼을 택함으로 행복할 수 있다면 그 길을 갈 수 있게 지지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레이스를 연기한 아네트 배닝, 그리고 에드워드를 표현한 빌 나이 조합은 감독이 던진 회심의 한 수였다. 국내 관객에게도 익숙한 두 사람은 각각 미국과 영국을 대표하는 배우이고, 작품 선택 면에서도 존경받는 이들이다. 다만 아네트 배닝은 출연하기까지 고민의 시간을 좀 가졌다고 한다.
 
"빌 나이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영국에서 그는 억압된 남성의 전형을 잘 연기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어찌 보면 내 아버지를 연기한 건데 실제 아버지도 억압된 영국 남성이었다. 투자를 받기 위해서도 배우 캐스팅이 중요한데 아네트 배닝이 참여하기까지 어려움이 좀 있었다. 훌륭한 배우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미국인이기에 영국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맞는지 스스로 많이 고민한 것 같더라. 출연을 결정하고 촬영에 들어갔을 때 그 걱정이 터무니없는 것임을 알게 됐다. 워낙 뛰어난 연기력이 있으니 캐릭터의 국적은 문제가 안되는 것이지."
 
일관된 메시지
 
앞서 말했듯 <레미제라블> <글레디에이터> <에베레스트> 등 서로 다른 장르의 블록버스터 각본을 써온 그다. 자칫 이런 휴먼 드라마, 사랑 이야기와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써 온 작품 속 인물은 대부분 사랑을 위해 투쟁했고, 목숨을 던지곤 했다. 영화 일을 하며 일관되게 사랑을 화두로 삼고 있는 것 같다는 말에 그 또한 동의하며 말을 이었다.
 
"사랑을 최고 가치로 생각하고 있는 게 맞다. 좀 감성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내 작품 속 캐릭터를 사랑하지 않으면 스토리텔링이 불가능해지는 것 같다. 이번 영화의 경우 부모님의 결혼과 이혼으로부터 배운 걸 잘 담아내야겠다 생각했다. 제가 결혼을 거의 마흔이 됐을 때 했는데 이 결혼 생활을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다. 부모님의 전철을 밝으면 안되겠다 생각했지.
 
내 부모에게 배운 건 항상 배우자에게 솔직하고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부모님은 애초부터 서로에 대해 잘알지 못한 채 결혼에 이른 것 같다. 물론 그땐 순수하고 뜨거운 마음이었겠지만 서로에게 각자가 원하는 모습만 본 것 같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배우자상을 머리에 그리며 결혼 생활을 유지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런 불행을 막기 위해서라도 소통과 솔직함, 진실함이 중요하다. 서로에 대한 기대를 적절하게 가져야 한다. 모든 걸 다해주는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 사랑하고 있어도 때론 혼자 외로움을 느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타인의 삶이 자신의 목적이 될 수 없듯이 외로움 또한 사랑의 일부다. 솔직한 대화로 서로 생각을 공유해야 건강하게 결혼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말씀하신 대로 사랑이라는 주제는 제가 쓴 다른 작품마다 다 녹아 있는 것 같다."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윌리엄 니콜슨 감독.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윌리엄 니콜슨 감독. ⓒ 티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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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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