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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시각장애 당사자이며, 시각, 청각, 발달장애 아들을 시설에 보내고 있는 부모이다. 또한 중도 실명한 시각장애인의 재활 교육을 현장에서 담당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이기도 하다.

21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탈시설'을 바라보는 태도의 "탈시설 정책 개발 중심에는 장애당사자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자기 의견을 표명할 수 없는 중증 발달장애인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법적 후견 역할을 맡고 있는 부모가 대행해야 하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필자의 아들은 청각과 시각을 완전히 상실하고 지적 능력은 3.5세 불과하다는 진단을 받은 바 있다. 이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고 보살피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았다. 미국에도 보내어보었고 집에서 개인교사를 들여 개인교습도 시도해보았었다. 국내 여러 학교와 기관에도 보내어 교육은 물론 생활훈련을 받도록 했었지만, 집에 돌아오면 통제 불능의 아이로 되돌아가는 건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러다 필자와 같은 부모들이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며 모임을 구성해 기금을 모아 시설을 만들었다. 그렇게 시설에 아들을 맡기며 오늘까지 살아온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아들은 1년에 두 번의 방학과 설날, 추석 같은 명절에 집에 돌아와 부모와 함께 한다.

그런데 길어야 열흘 남짓한 그 시일 동안 우리는 정말 심각한 불안으로 초조한 세월을 보내야 한다. 아들은 방학 때나, 명절 때, 귀가할 때는 언제나 엄마만 붙들고 꼼짝을 못 하게 한다. 그냥 보통 아이들처럼 손을 잡고 매달리는 것이 아닌, 멱살을 움켜쥐고 따라다닌다. 아들의 나이 35세, 아내의 나이는 우리 나이로 61세다. 힘으로나 그 어떤 것으로도 통제가 불가능하다. 물론 대화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아내는 아들의 힘에 휘둘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화장실조차도 혼자 갈 수 없다. 잘 때나, 밥 먹을 때, 그 어떤 때에도, 아들은 엄마 멱살만을 움켜쥔 채 졸졸 따라다닌다. 

이제 청력도 많이 잃어 보청기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평범한 대화 자체가 불가능한 남편과 아들을 보살펴가며 살아야 하는 아내의 삶은 그 누구도 이해 못 할 절망의 현실인 것이다. 아마 이런 일은 중증 중복장애아를 자식으로 두고 있는 많은 부모들이 함께 겪고 있는 현실일께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글에서 주장하는 이는 부모가 마치 탈시설을 원하는 아이들의 뜻을 왜곡하고 있는 듯한 뉘앙스로 우리 부모들의 아픈 가슴을 더욱 상처 내고 있다. 왜 우리도 함께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며 가족이 모두 같이 살고 싶지 않은가?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정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까. '탈시설'을 주장하는 장애인은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또 '탈시설'을 반대하는 우리들 또한 나름의 절절한 이유가 존재한다. 반드시 내 의견만이 옳다는 전제의 글은 일반화의 오류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탈시설'을 하여, 자기 나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하고, 또 시설에서 함께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이 서로 다른 경우의 장애인들에게 상처를 덜 주고 공존하는 방법이라 주장해본다.                     

태그:#탈시설, #장애인, #중복장애인, #장애인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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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시인으로 10년째 한국문인협회 회원과 '해바라기'동인으로 활동하고있으며 역시 시각장애인 아마추어 사진가로 열심히 살아가고있습니다. 슬하에 남매를 두고 아내와 더불어 지천명 이후의 삶을 훌륭히 개척해나가고자 부단히 노력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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