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추울 때는 자연스럽게 따뜻한 국물 음식 또는 따뜻한 술 안주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추위에도 대부분 차가운 소주나 맥주를 선택하게 된다. 추울 때 따듯한 음식을 찾으면서도 차가운 술을 마시는 이유는 무얼까?

19세기 저서 <규합총서>를 1915년께 필사한 것으로 알려진 '부인필지' 서두 '음식총론'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밥 먹기는 봄같이 하고, 국 먹기는 여름같이 하고, 장 먹기는 가을같이 하고, 술 먹기는 겨울같이 하라 하니 밥은 따뜻하고, 국은 뜨겁고, 장은 서늘하고, 술은 찬 것이어야 한다." 음식 대부분이 따뜻하기 때문에 술은 차게 마시는 게 조화롭다고 생각한 듯하다.

하지만 술을 따듯하게 마시는 문화가 다른 나라에는 많이 있다. 와인을 따뜻하게 데운 뱅쇼가 대표적이다. 로마 시대부터 마셨다고 전해지는 뱅쇼는 와인에 다양한 향신료를 넣어 소화나 감기 예방에 도움이 되도록 만들어졌다. 유럽 국가별로 다양한 스타일의 뱅쇼가 다른 이름으로 소비가 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글루바인', 미국은 '멀드 와인'이라 한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따뜻하게 마시는 술로 사케가 대표적이다. 일본에서는 데운 사케를 '오칸'이라고 한다. 쌀 본연의 달짝지근한 맛과 감칠맛이 따뜻한 온도로 한층 짙어지며 맛은 부드러워진다. 복어지느러미를 굽거나 태워서 따끈한 사케에 넣어 내놓는 '히레사케'는 추운 겨울 또 다른 별미이다.
 
다양한 향신료를 넣고 만드는 뱅쇼
▲ 뱅쇼를 만들기 위해 끓이는과정 다양한 향신료를 넣고 만드는 뱅쇼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중국 '삼국지연의'에도 관우가 데운 발효주를 마셨다는 대목이 나온다. 적장의 목을 베러 출전하는 관우에게 조조가 데운 술을 권하자, 갔다 와서 마시겠다고 사양한다. 순식간에 적장의 목을 베고 온 뒤 그 술을 마시니, 술은 식지 않고 여전히 따뜻한 상태였다고 적혀 있다. 발효주라는 단서로 소흥주(사오싱주·紹興酒)라고 추측한다. 황주 중에서도 대표로 꼽는 소흥주는 따뜻하게 데워서 마셔야 그 풍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우리에게는 따뜻하게 마시는 술 문화가 있었을까? 이규보의 시 '겨울밤 산사에서 간소한 주연을 베풀다'에 막걸리를 데워 마신 내용이 나온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7년(1435) 1월17일 기록에는 '음복에 데운 술을 쓰게 하다'라는 기록도 있다.

이 밖에도 1837년대 70여 가지의 전통주 제조법이 기록되어 있는 '양주방'에는 창포주와 관련된 내용이 있는데, 여기도 데워 마시는 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중략) 가을이나 겨울에 두 이레 만에 봄이나 여름엔 한 이레 만에 떠서 하루 세 차례씩 너홉들이 잔으로 따뜻하게 데워 먹으면 늙지 않고 튼튼하여지며 정신이 좋아진다."' 창포주를 따뜻하게 데워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이야기다.

또한 17세기 말에 쓰인 '주방문'에는 끓이는 술인 자주(煮酒)가 소개되어 있다. "좋은 청주 5대야에 후추 3돈, 황밀(꿀) 3돈 얇게 저며 넣고 병뚜껑을 막아 중탕하여 달여 밀이 다 녹거든 내어 쓰라"고 적혀 있다.

근현대에 들어와서도 따듯하게 마시는 술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다. 1937년 11월 9일 조선일보 신문에는 '술맛이란 데우기에 달려'라는 기사가 있다. 술을 데워먹으면 술맛을 좋게 한다는 이야기와 데워먹는 시기로 9월 9일(중양)에서 다음 연도 3월 30일까지가 좋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조선약주, 막걸리, 정종 모두 가능하고 독소가 발산해버리고 향기가 더해진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술을 데울 때는 사람의 몸 더위만큼 데우면 되고 데울 때는 구리쇠 그릇이 가장 좋다고 한다.
 
1937년 11월9일 조선일보
▲ 술맛이란 데우기에 달려 1937년 11월9일 조선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관련사진보기

 
현대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을 따뜻하게 마시는 방법이 일본에서 전파된 문화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거 우리 기록들은 우리도 술을 따뜻하게 마셨다는 걸 알려준다. 지금 마실 수 있는 따뜻한 술이라면 아마도 모주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한국의 뱅쇼'인 셈이다. 모주는 술지게미 또는 막걸리에 대추, 계피, 생강 따위를 넣고 3~4시간 달여서 만드는 술이다. 추운 겨울 따뜻한 모주 한 잔은 어떤 음료보다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 최근에도 몇몇 양조장에서 데워먹는 막걸리나 약주를 제품으로 시판한 적도 있다. 하지만 데워마시는 술들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크게 소비되지는 않았다.

이번 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추위가 다 가기 전에 겨울 별미로 전통주들을 데워 마셔 보는 건 어떨까 한다. 열에 의해 알코올은 조금 사라질지 모르지만, 잔에 온갖 기분 좋은 향이 풍부하게 맴돌 것이다. 따뜻한 술은 차가운 술보다 더 깊은 향을 내며 이 겨울 차가워진 우리의 몸과 마음을 천천히 녹여줄 것이다.
  
모주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원료
▲ 모주의 원료 모주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원료
ⓒ 전주모주 홈페이지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 동시 게재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통주 연구를 하는 농업연구사/ 경기도농업기술원 근무 / 전통주 연구로 대통령상(15년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 진흥) 및 행정자치부 "전통주의 달인" 수상(16년)




연도별 콘텐츠 보기